[Review] 19세기 여성 작가들이 들었던 펜의 무게는 얼마였을까? - 다락방의 미친 여자

붉은 구두를 신고 죽음의 춤을 출지라도 써야만 했던 여성 작가들
글 입력 2022.10.03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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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빅토리아 시대는 이전과 달리 여성이 작가가 된다는 것이 유달리 변칙적이거나 이례적이지 않은 최초의 시대였다. 제인 오스틴부터 메리 셸리, 에밀리 브론테, 샬롯 브론테, 조지 엘리엇, 에밀리 디킨슨까지 거대한 여성 작가들이 대거 등장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성들이 전유해 온 기존 문학사의 이론으로는 그들의 작품을 온전히 설명할 수가 없었고 이에 샌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는 여성 작가들의 계보를 추적하여 그들 작가와 작품만이 공유하는 정통성을 확립하기에 이른다. 그들의 페미니즘적 문학 연구는 43년 전 미국에서 방대한 분량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라는 책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한편,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미국 대법원에서 폐기되고 이란의 여성들이 히잡을 벗어 던지기 위해 목숨을 건 시위를 하는 지금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재출간을 통해 여전히 유의미한 담론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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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저자는 기존의 문학 이론이나 분석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하며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미친 분신'이나 '감금과 탈출의 이미지' 등이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은 이를 통해 당시 여성 작가들이 남성 작가들은 겪지 않는 (겪을 필요조차 없는) 작가가 되는 것에 대한 '불안'과 그 불안의 '근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부장적 시대 아래에 문학은 “펜은 음경의 은유이며, 작가는 작품을 창조하는 아버지 신이다. 따라서 작품은 지배자인 아버지 신의 소유물”이라는 부권은유가 본질적으로 깔려 있었다. 이에 따라 문학을 창작하는 일, 즉 작가는 남성의 일이었으며 문학에서 여성은 가장인 남성 작가가 만들어낸 작품 속 '뮤즈'로만 존재할 수 있었다. 여성들은 남성 작가들의 작품 안에서 예술품으로 감금, 박제되었고 이는 실제로 여성을 천사와 괴물이라는 극단적인 두 가지의 이미지라는 한계에 가두는 결과를 낳았다.


[조앤 디디온이 말했듯이 '글쓰기란 공격이다.' 왜냐하면 글쓰기는 '하나의 강제이며 누군가의 가장 사적인 공간을 침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수많은 여성 문인들의 '가장 사적인 공간'을 침략해온 남성의 구성물을 철저하게 연구하려면 수백 페이지가 필요할 것이다.] (p. 99)


펜은 칼보다 강하다. 따라서 남성 작가들의 펜으로 사적 영역을 침략 당한 여성 문인들은 펜을 쥐기도 전에 자신들에게 덧씌워진 신화적 가면을 마주 보는 일이 필요했다. 책은 이 과정을 1장 “여왕의 거울”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화 <백설 공주>를 통해 설명한다. 여왕이 의존하는 거울의 목소리는 왕의 목소리이다. 능동적이며 전략적인 여왕은 왕의 목소리라는 가부장 영향 아래에서 끝내 미쳐 버리고 순진하고 멍청한 백설 공주는 살아남는다.

 

그러나 책은 본질적으로 이 두 여자가 한 인물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자율성과 내면성을 빼앗긴 자기 안의 백설 공주를 혐오해 죽이려던 여왕이 결국 이에 실패하고 자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왕은 이야기의 마지막에 빨갛게 달아오른 신발을 신고 죽음의 춤을 춘다.


여성 작가들은 남성 텍스트라는 감옥을 탈출하려 애쓰지만 이미 이전부터 침략당해 온 자아로 인해 스스로 자신을 천사/괴물이라는 이중적 이미지에 가두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 속에서도 불안을 딛고 그들은 작품을 산출했다. 그리하여 19세기의 '자부심 강한 여성 작가들이 남성 텍스트라는 유리관에서 나와 여왕의 거울을 폭파했을 때, 오래전 침묵 속에서 추었던 죽음의 춤은 승리의 춤, 언어를 향한 춤, 권위의 춤이 되었다.' (p.137)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페미니즘 시학이라는 이론을 선언하고 19세기 당시 여성 작가들이 작가를 시도하기 위하여 어떤 현실과 맞서야 했는지를 설명한다. 또한 이러한 현실과 투쟁한 여성 작가들이 작품 안에서 그들의 불안과 혼동을 어떤 양상으로 발현하는가를 탐색한다. 한편, 2부에서 6부까지는 제인 오스틴, 메리 셸리, 에밀리 브론테, 샬롯 브론테, 조지 엘리엇, 디킨슨에 이르는 당대의 위대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하고 비평하며 그들이 기존 문학의 가부장적 인습을 어떻게 비판하고 탈피하려 하는지 보여준다.


여성 작가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가부장적 사회를 비판하고 수정해 나갔으나 자아 분열적 이중성이라는 일관된 흐름을 보여준다. 태어나면서부터 남성 텍스트에 침략당한 자아로 인해 여성은 들끓는 주체적 욕망과 온순하고 순종적인 이미지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는다. 따라서 여성 작가의 작품은 순종하는 표면적 텍스트 아래에 깔린 그들의 진짜 욕구를 읽어내야 한다. 이러한 여성 작가와 작품의 특징은 남성들이 지배하던 부권은유적 문학사와는 다른 흐름을 만들어 냈고 저자들은 이를 근거로 여성 문학에 고유한 정통성을 부여한다.


대학을 다닐 적에 한 교양 수업에서 비디오아트 관련 내용을 배웠던 적이 있다. 새로운 기술의 발달로 등장한 비디오아트는 초창기에 여성 예술가들이 두드러지는 활동을 했다고 한다. 여성 비디오 아티스트들은 주로 자신이 뮤즈가 되어 여성의 신체나 자아에 대한 탐구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개인적인 감상일 수도 있겠으나 당시 나는 남성 예술가와 달리 여성 예술가들은 유독 자신의 젠더인 여성과 자아 탐구에 대한 작품이 많다고 생각했다. 남성-창조자, 여성-뮤즈라는 남성 예술가들의 일반적 공식은 여성 예술가들에게 여성-창조자, 남성-뮤즈라는 대칭적 구조로 적용되지 않는 듯했다. 아마 그 이유는 이 책의 초반부에서 설명하듯 가부장적 사회 안에서 길러진 여성들이 이미 학습해 버린 남성적 시각 때문이리라.


순종하고 침묵하는 죽음의 삶 대신 좁은 다락방에 갇혀 미친 취급을 받더라도 펜을 드는 삶을 택한 여성 작가들의 '미친 분신'은 여전히 다양한 곳에서 투쟁 중이다. 페미니즘을 알게 된 후로 나 또한 여성으로서 분열적 딜레마를 겪고 있음을 느낀다. 때로는 그저 외면한 채 침묵하기도, 때로는 참지 못하고 소릴 내기도 하면서 말이다. 끝내는 읽고 말하고 쓰는 삶을 나 또한 택하고 싶다. 음경을 상징하던 펜을 부러뜨리고 여성의 펜으로 고유한 여성의 문학을 일군 그들처럼.

 

 

[이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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