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남 눈치 많이 보는 한국 사회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로 살아남기 [문화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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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가장 잘 팔아야 하는 직업 중 하나가 ‘코미디언’이지 않나 싶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팔지만, 코미디언만큼 인생의 사소한 에피소드 하나하나 저장해 놓고 장전 대기한 채 사는 직업군도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코미디에는 웃겨야 할 ‘상대’뿐 아니라 소재로 삼을 ‘대상’을 필요로 한다. 이때 가장 안전한 소재가 ‘자기 자신’이며, 그리고 자기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청자로 삼곤 한다.
이런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장르가 ‘스탠드업 코미디’이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생소하지만, 미국에서 발달한 장르로, 마이크 하나 들고 무대에 나와 말로써 관객을 웃긴다.
직설적으로 혹은 자조적으로, "스탠드업 코미디"의 매력
아래는 타나카 아이코 (Aiko Tanaka) 라는 배우의 스탠드업 코미디 영상이다.
최근에는 아메리카 갓 탤런트(America's got Talent) 2022에서 세미파이널까지 진출했다고 한다. 그녀의 본업이 코미디언은 아니지만, 배우가 하고 싶어서 미국으로 건너갔고 그녀는 자신을 소재로 삼아 무대에 선다.
그녀는 일본인이지만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인이다. 이 문화 차이에서 오는 요소를 이야깃거리로 삼는다. 위 코미디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미국인은 포옹하고 악수하는 스킨십이 많다. 반면 일본인은 허리 숙여 인사를 많이 하는데, 이때 아키코는 일본인의 인사 방식을 다소 우스꽝스럽게 묘사한다. 아마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이 했으면, ‘인종차별’이라고 취급받았을 개그이다.
또한 아이코는 영주권을 따야만 하는 미국 이민자로서의 처지를 ‘코미디’로 승화한다. 전 남자친구가 일본말이 자신을 흥분하게 하니, 한번 해보라고 한다. 이에 아이코는 그럼 차이나타운 가서 해결하는 게 어때? “일본어든 중국어든 어차피 차이를 모르잖아?”라고 응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남자친구가 요구하자, 아이코는 일본말을 한다. 남자가 무슨 뜻이야? 라고 묻자, “너랑 사귀는 이유는 영주권 때문이야”라고 답한다.
그녀는 기승전결의 빌드업을 통해 말을 하는 것뿐 아니라, 특유의 제스처와 호흡으로 좌중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이 농담을 라틴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하면 아무도 웃지 않는다고 마지막에 덧붙이면서 영주권을 갖기 위한 이민자들의 비극을 희극으로 승화시킨다.
이처럼 스탠드업 코미디는 적절한 반전과 기승전결, 호흡, 개그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야기 소재거리도 소재지만, 어떻게 대중에게 전달하는지도 중요하다. 전 세계 최초로 스타티움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연 미국의 코미디언 케빈 하츠 (Kevin Hart)의 썰푸는 모습을 보면 경이롭다. 아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문화 차이로 이해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넷플릭스에서 위 영상의 풀버전은 <케빈 하트: 네 멋대로 산다> 편으로 올라와있고, 한번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이게 바로 스탠드업 코미디구나, 싶다. 스타디움의 수많은 청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쇼여서 그런지, 보편적인 주제인 자신의 ‘가족’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마이크 하나로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가장 쉬운 형식도 없지만, 그래서 가장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한다. 적절한 농담은 ‘치밀한 계획’ 아래 진행된다. 유명한 인터넷 강사들이 연단 위에서 강의할 때도, 그들은 몇십 번 몇백 번 시뮬레이션을 돌리면서 학생들이 지루할 타이밍, 웃길 타이밍을 계산하면서 농담 하나하나를 연습한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인터넷 강사야말로, 최고의 스탠드업 코미디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무대, 연단 앞에 선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곧 코미디쇼의 장르이자 정체성이다.
코미디언이 눈치를 보는 한국의 "스탠드업 코미디"
한국에서 최근에 시도된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그래서 다소 색깔 있는 코미디언이 마이크를 잡은 듯하다. 박나래, 유병재, 이수근이 넷플릭스에서 제작된 스탠드업 코미디쇼의 마이크를 잡았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들의 공통점은 ‘순발력’과 ‘재치’이다. 박나래는 ‘농염주의보’라는 제목으로, 유병재는 ‘블랙코미디, B의 농담’이라는 제목으로, 이수근은 ‘눈치코치’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순발력’과 ‘재치’만으로 코미디의 정수를 삼키지는 못한다. 박나래는 자신의 연애 경험담을, 유병재는 자신을 향한 악성 댓글을, 이수근은 과거의 코미디경험을 소재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들은 눈치를 본다. 누구? 대중의 눈치를, 관중의 눈치를, 자신의 눈치를. 이수근의 코미디쇼 제목은 아예 '눈치코치'이다.
물론 한국 사회가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기에는 적절한 배경을 가진 사회는 아니긴 하다.
겸손을 미덕으로 아는 우리 사회에서는 절대 자기 자신을 앞에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나댄다”라는 표현으로 낙인을 찍거나, 구별 짓곤 했다. 물론 지금은 예전보다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능력이 뛰어날수록 인성이 뛰어날수록 자신을 낮추기 바빴다. 오죽하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이 있을까. 이런 사회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라? 언감생심이다.
그래서 그런지, 위에 언급된 코미디쇼에서 그들은 초반에 사과부터 하거나, 관중들에게 생각한 그런 게 아닐 수도 있으니 미리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다. (8만 8천 원이나 내고 온 관객의 눈치를 본다. 적어도 티겟 값은 해야 하니까)
숨은 의도를 꼭 파악해내려는, 한국인들의 성향
한국인들은 유달리 누군가의 말을 액면 그대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꼭 숨은 의도를 파악하려고 한다. 그래서 영화 <인터스텔라>와 같은, 다른 곳에서는 흥행하지 않는 영화들이 유달리 한국에서 흥행을 하는 걸까? 모든 것에는 숨은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종종 전시, 영화, 드라마 등 콘텐츠 등을 검색하면 결말, 의미 해석이 붙은 콘텐츠와 같이 뜨는 것을 보면, 한국인은 유의미한 티켓값, 보람, 효용성 등을 유달리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더 나아가 남 눈치를 보느라, 해석하지 못하는 자신의 위신을 심히 걱정하기도 한다.
이는 한국사회가 굉장히 눈치를 많이 보는 사회라는 증거이다. 그런 한국인들에게 ‘스탠드업 코미디’는 단연 낯설거나 거북할 수밖에 없다. 직설적인 발언을 통해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소위 말해서 ‘웃프다’라는 감정.
하지만 우리는 이런 감정을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
농담을 농담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의 중요성
“웃프다”의 뜻은, ‘웃기면서 슬프다, 표면적으로는 웃기지만 실제로 처한 상황이나 처지가 좋지 못하여 슬프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코미디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누군가는 슬프지만 좌중이 함께 웃기에 자신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승화하지만, 코미디언의 말이 하는 의도를 파악하는 데 치중하는 누군가는 자신의 슬픈 처지를 ‘비꼬는’ 듯한 뉘앙스로 받아들인다.
‘비꼬다’를 영어식 표현으로 하면 ‘sarcastic’ 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간 사촌이 최근 한국에 놀러 온 적이 있다. 그는 매우 유쾌했다. 특유의 제스처와 그만의 ‘sarcastic’ 한 유머가 웃음을 유발하는데,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의 말을 말 그대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의 결핍’에만 주목을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촌과 차를 모는 액티비티한 활동을 함께 하다가 나만 구렁에 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사촌은 나에게 sarcastic한 농담을 던졌다.
솔직히 나는 내가 ‘운전’을 잘 할거로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잘하지 못했기에 (운전면허도 어렵게 땄다) 이에 대한 결핍을 본의 아니게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운전으로 농담을 들으니, 솔직히 처음엔 기분이 나빴던 것 같다.
그러나 사촌은 이런 내 사정을 알기 만무하고, 재미있게 해주려고 장난 친 것 뿐이었다. 이렇게 글로 적다 보니, 그만의 뉘앙스와 유쾌한 제스처를 모두 담지는 못해서 전반적인 분위기를 다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결론적으로 그의 농담은 just 농담이었던 것이다. 웃고 떠들기 위한 윤활유 같은 역할로서의 농담!
코미디의 중요한 덕목, 재치와 순발력 그리고 "통찰력"
코미디에서 눈치를 통해 ‘재치’와 ‘순발력’을 발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스탠드업 코미디 장르에서 필요로 하는 ‘통찰력’도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필요할 말을 할 때 웃음이 작동할 수 있다. 한국의 문화 중 중요한 전통에 ‘풍자와 해학’이 있지 않았나. 요즘에는 ‘풍자와 해학’의 전통을 많이 느낄 수 없어서 아쉽다.
하지만 유튜브의 세계가, 이제는 존재한다. 누군가는 기존 코미디언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고 이야기하지만, 기존 판이 짜여진 코미디에서는 신랄하게 이야기할 수 없어서 혹은 개성을 강하게 드러낼 수 없어서 제거된 이야기들이 등장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이 열렸다.
코미디언이 아니라도 <너덜트>처럼 그들만의 방식으로 코미디에 통찰력을 담아낼 수 있고, 기존의 갖춰진 판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똘기를 <강유미-좋아서 하는 채널>에서 보았고, 콩고 왕자인 조나단이 자신의 피부색을 소재로 삼는 ‘암살 개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다양성은 유튜브의 세계가 존재하기에 드러난 것이 아니었을까. 더 나아가 지금은 많이 사라진 풍자와 해학을 담은 코미디 장르의 콘텐츠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만큼 혐오로 점철된 콘텐츠도 많이 양산되었지만, 코미디의 본질을 한번 고민해보고 코미디를 보는 ‘눈’을 기른다면, 앞으로 더 다양한 양질의 코미디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에 웃기는 놈 많고, 덕분에 우리는 '깔깔' 뿐 아니라 '웃프다' 등 웃음과 관련된 다양한 감정을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
[민지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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