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리틀 포레스트와 리틀 포레스트 [영화]

글 입력 2022.09.0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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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포레스트>는 이가라시 다이스케라는 일본 작가의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로, 일본의 리틀포레스트는 2015년에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과 봄>으로 나뉘어서 개봉하였으며, 한국에서는 2018년, 단편으로 리메이크 되어 개봉하게 된다. 일본의 <리틀 포레스트>는 나의 인생영화 중 하나로, 사실 한국판이 나왔을 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영화에 한국식 감성이 담기는걸 그리 달갑지 않아했었고, 극장에서 내려간지 한참이 지난 후에야 ott 서비스를 통해 보게 되었다. 여전히 일본판을 훨씬 사랑하긴 하지만, 두 버전 모두 각기 매력을 가지고 있어 여러 번 돌려보다보니 내 안에서 두 영화의 내용이나 설정이 뒤섞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한 번 제대로 두 영화를 비교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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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캐스팅


 

일본판은 주인공 역으로 하시모토 아이가, 그리고 엄마 역으로는 키리시마 카렌이 캐스팅 되었고, 한국판에서는 주인공으로 김태리, 그리고 엄마 역으로는 문소리가 캐스팅되었다. 일본판을 먼저보고 한국판을 접한 나로서는, 한국판 캐스팅의 탁월함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대충 묶은 머리, 후줄근한 체크남방에 장작을 패고 모내기를 하며, 커다란 애벌레를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덥썩 잡아 내던지는 그런 역할에, 나는 아무리 상상해봐도 비슷한 나이대의 배우로는 김태리 이외에는 잘 떠오르지 않는 것 같다.

 

<리틀포레스트>에서 엄마는 늘 과거 장면에서만 등장하지만 주인공에게 있어서도 극 자체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존재다. 일본판에서 엄마 역으로 등장했던 키리시마 카렌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인상적인 배우였는데, 리틀포레스트 이외에는 이렇다 할 필모그래피가 없는 듯하다.

 

한국판에는 문소리가 등장한다. 문소리라는 배우는 한국 관객들에게 이미 각인되어 있는 존재감이 있으며, 동시에 친근함 또한 준다. 다정한 엄마인 동시에 대문을 걸어나가 자신의 주체적인 인생을 살아나가는, 그런 엄마 역할에 문소리 역시 너무나 잘 녹아들었다.

 

“이래서 태리 엄마는 문소리일 수 밖에 없었다” - 임순례 감독

 

 

 

요리


 

사실 극 중에서 영화를 다루는 비중은 일본판이 훨씬 크다. 몇 번째 요리- 로 파트가 나뉘어질 만큼 요리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영화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일본판에서는 요리의 재료를 구하는 과정, 심지어는 재료가 되는 채소를 기르는 과정에서부터 시작해 수확하고 보존하는 방법에서부터 시작해 요리의 레시피와 만드는 과정까지의 모두를 상세하게 보여준다. 반면 한국판에서는 그런 자세한 과정은 생략되는 편이며, 영화의 템포에 따라 음식도 빠르게 조리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한국판은 보여지는 요리의 비주얼과 색감에 신경쓴 티가 많이 나는데, 이는 두 영화의 봄 파스타를 비교하면 확연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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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이나 수제비(핫토)는 두 영화에서 모두 등장하며, 식혜 대신 막걸리, 케이크 대신 떡처럼 한국적인 음식으로 대체한 부분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또 떡볶이나 콩국수처럼 한국판에만 등장할 수 있는 음식들도 있다.

 

또, 일본판에서는 곤돌메기와 오리를 잡아서 조리하는 과정이 나온다면 한국판에서는 모든 음식이 채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임순례 감독이 채식주의자임에서 비롯된다.

 

“고기 먹는 장면을 본 관객들은 고기를 먹고 싶어질 테고, 그만큼 고기 소비가 늘어날 것이 염려됐다” - 임순례 감독

 

두 영화 모두에서 주변에서 직접 구한 제철재료로 직접 요리해서 먹는 요리는 도시에서 먹는 인스턴트 음식으로는 채울 수 없는 허기와, 포만감 그 이상의 것을 채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요리를 다루는 비중이 큰 일본판에서는 요리를 통해 더욱 많은 것들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요리는 마음을 비춘는 거울”임을 보여주기도 하고, 엄마와의 연결점도 한국판에 비해 더욱 많이 드러난다. 나의 것과는 다른 식감을 냈던 푸성귀볶음에는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엄마의 정성이 들어있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 엄마의 것과는 다른 나만의 감자빵 레시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편지로 엄마의 감자빵 레시피를 받게되는 한국판과는 다른 지점이다.

 

“아무 결정도 못내렸는데 다 졸아버렸다” “타는게 무서워 너무 저으면 잼이 탁해진다.” - <리틀포레스트 : 여름과 가을> 중

“조바심내는 건 금물. 팥소를 만들 때도 설탕을 빨리 넣으면 아무리 져도 팥이 물러지지 않는다.” - <리틀 포레스트 : 겨울과 봄 > 중

 

 

 

관계들


 

주인공에게는 마을에 두 명의 친구가 있다. 한국판에서는 재하(류준열)과 은숙(진기주)이가, 일본판에서는 유우타(일본판에서는 친구가 아니라 후배)와 킷코가 있다. 이들의 관계성 또한 두 영화에서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한국판에서는 이 세 친구가 함께 먹고 마시며 노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일본판에서는 주인공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으며 주인공과 킷코, 주인공과 유우타 이렇게 둘이 함께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으나 셋이서 함께하는 장면은 거의 볼 수 없다. 역시 한국에선 ‘술과 맛있는건 친구와 함께!’인걸까. 사실 이 부분이 한국 관객들로 하여금 가장 힐링을 느끼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이며, 영화를 ‘한국스럽게’하는 설정인 듯하다.

 

또한 한국판에서는 은숙이 재하에게 노골적으로 관심을 표하며, 혜원은 표면적으로는 재하에게 이성적 관심은 없는 듯 보인다. 반면 일본판에서 이치코는 분명 유우타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낭만적인 말을 하는 키 큰 남자에게 약한 것 같다” 거나, 한밤중에 식혜를 너무 많이 만들었다며 키코에게 들킬지도 모르니 걸어오라고 하는 부분 등에서 그에 대한 호감을 담백하게 드러낸다. 영화 결말부에 유우타의 아이를 안고 있는 키코를 볼 수 있는건 오히려 일본판이였지만 말이다!

 

한편, 가족도 친척도 없이 오로지 “혼자”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본판과 달리, 한국판에는 주인공 혜원의 고모가 등장한다. 혜원은 고모의 농사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고모가 해주는 밥을 먹기도 하며 지속적으로 고모와 교류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고모가 혜원의 엄마와 연락하고 지내는 듯한 암시가 나오기도 한다.

 

 

 

엄마


 

<리틀 포레스트>의 또 한명의 주인공인 ‘엄마’에 대한 묘사와 연출도 두 영화는 비슷한 듯 사뭇 다르다. 일본판에서의 엄마는 이치코에게 있어서도 관객에게 있어서도 미스테리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귀찮아서 당근을 솎아내지 않았던 모습이라든지 흰배추나비를 무자비하게 죽였던 엄마에 대한 기억 등 불완전한 모습의 엄마 또한 일본판에서만 볼 수 있다. 

 

한국판에서도 일본판에서도 모두 엄마는 딸을 두고 떠나지만, 그 이유에 있어서도 영화의 설정은 다르다. 일본판에서는 엄마가 떠난 이유를 결코 명확히 알 수 없고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녀가 보내온 편지에서도 왜 떠났는지, 지금은 어디서 뭘하고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고, “원이 아니라 나선”이라는,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사람으로서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반면 한국판 혜원의 엄마는 떠나는 이유에 대해 명확한 이유를 편지로 남긴다. 아빠의 결혼으로 포기했던 일들을 해보고 싶다고. 또한 이 곳에 살았던 이유는 정말 딸을 위해서였음과, “다시 돌아오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는 식의,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암시를 남기기도 한다. 편지를 통해서나 중간중간의 연출을 통해서나, “요리와 나에 대한 사랑”이라는 혜원의 대사를 통해서나, 한국판에서의 엄마는 딸을 떠나기는 하지만 딸을 정말 사랑하는, 다정한 엄마임이 느껴지는 연출을 보여준다. (그래서 더욱 왜 떠났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불러일으키곤 하는 것 같다)

 

물론 일본판의 엄마도 이치코를 사랑했을 것이다. 이치코가 혼자 해내고 있는 모든 것을, 2인분의 식량을 준비하고 요리하고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아이를 잘 길러낸 것은 사랑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한겨울 눈이 잔뜩 쌓인 날 엄마에게 머위를 따달라는 딸을 보내고 담배를 꺼내물며 "얼마나 걸릴지 알긴 하는거야?" 하는 엄마의 모습은 굉장히 차갑게 느껴진다. 일본판의 엄마는 한국판과는 달리 다시는 돌아올 것 같지 않고, 남겨질 딸에 대한 걱정도 거의 느껴지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의 인생을 찾아 떠났다는 느낌을 준다. 

  

 

 

결말


 

두 영화의 결말은 판이하게 다르며, 이 결말들이야말로 각 작품의 성격을 잘보여주며 주제를 달리하는 지점이 된다.

 

한국판은 엄마가 돌아왔음을 암시하며 영화가 끝이 난다. 그리하여 엄마의 편지에서처럼 두 사람의 여행이 끝났음을, 아주심기, 즉 더 이상 옮겨다니지 않고 완전하게 정착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 는 곧잘 “힐링 영화”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힘이 들면 언제든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준다. 혜원의 “리틀 포레스트”는 그런 곳이다.

 

일본판, <리틀포레스트 : 겨울과 봄>의 결말은, 코모리 마을의 수확제에서 이치코가 전통무용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끝이 난다. 이 장면은 이치코가 다시 코모리를 떠난 이유와, 그리고 완전히 코모리에 다시 돌아온 이유를 완벽하게 설명해낸다.

 

이치코가 다시 떠났을 때, 그 이유를 유우타를 통해 전해 들을 수 있다. 

 

“이대로 코모리에 있는게 스스로 납득이 안된다고. 처음에 숨을 곳이 없어 돌아온 것 같았잖아. 그게 아니라 진취적인 마음으로 살 곳을 결정하고 싶댔어. 마을에 자신이 있을 곳을 만들겠다고. 아니면 코모리에 실례되는 것 같다고 했어.”

 

그렇게 다시 돌아온 이치코의 모습을 이번엔 집에서가 아니라 마을의 수확회에서 볼 수 있다. 멋지게 공연을 해내고 있는 이치코는 이제 마을의 어엿한 일원이 되었고, 그녀의 단정하면서도 결연한 얼굴에서 이제는 도망치는게 아니라 제대로 코모리에서의 삶을 마주하고 있는, 성장한 어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녀가 추고 있는 춤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지만 제자리만 도는게 아니라 올라갔다 내려갔다하는, 원이 아니라 나선의 삶을 앞으로 살리라는 것을.

 

 

 

일본판을 더 좋아하는 이유


 

한국판 리틀포레스트의 러닝 타임은 103분, 일본판은 <여름과 가을>, <겨울과 봄> 두 편의 러닝타임을 합하면 231분이다. 두 배가 넘는 러닝 타임과 느리고 정적인 템포의 진행에 더러 지루하다고 말하는 관객들도 많이 있지만, 이 길이와 이 템포가 아니고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일본판에는 담긴다.

 

코모리에서 산다는 건 겨울이 끝나면 다음 겨울 식량을 준비하는, 그런 것이다. 매일매일 성실하게 온몸으로 부딪히지 않으면 안되는 삶이며, 자신히 직접 몸으로 겪었기에 믿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는 삶이다. 한국판에서는 왜 혜원이 다시 미성리로 돌아와 정착하는지, 그리고 엄마는 왜 떠났으며 왜 다시 돌아오는지에 대한 개연성이 부족하다면, 일본판은 코모리는 이런 곳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관객도 충분히 보고 느꼈기에 이치코의 귀향이 충분히 납득된다.

 

"그(재하)는 해답을 갖고 이곳으로 돌아왔다. 나만 돌아왔다. 아무것도 찾지 못한채. 엄마는 답을 찾았을까?" - <리틀 포레스트> 중

 

"유우타는 자기 인생과 마주하려고 돌아온 것 같다." - <리틀 포레스트 : 여름과 가을> 중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이 역시 도시로 갔다 돌아온 남자 주인공을 보면 느낀 점에 대한 부분이다. 한국판에서는 "해답"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지만, 사실 인생에 정답이 어디있을까. 그 보다는 자기 인생과 제대로 마주한다는 표현 쪽에 나는 마음이 간다. 일본판 리틀포레스트는 긴 러닝타임을 통해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인생에 제대로 마주한다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를 담아내기에, 이 영화는 종종 다시 꺼내보며 삶에 대한 마음가짐을 고쳐먹게 해준다. 이것이 내가 일본판 리틀포레스트를 사랑하는 이유다.

 

 

 

그 외


 

위에서 언급한 것 이외의 작은 차이점들로는, 일본판에서는 이름 모를 고양이가 때때로 화면에 등장한다면, 한국판에서는 '오구'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극 전체에서 혜원과 그의 친구들과 교류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치코는 마트 알바 등을 하다가 돌아온 것으로 보이는 반면, 혜원에게는 임용고시 공부와 실패라는 설정이 추가되어 있다.

 

일본판의 배경이 되는 코모리는 코(작은) 모리(숲)이라는 뜻으로, 이것이 제목이 리틀 포레스트인 이유다.

 

두 버전의 <리틀 포레스트> 중 당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김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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