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바라보는 일은 이토록 경이롭다 -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

글 입력 2022.09.03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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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내려가는 사람



최근에 읽은 에세이집 이현아 작가의 <여름의 피부>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쓴다는 것 내려간다는 것 써내려간다는 것. 나는 그림 일기를 쓰면서 내려간다, 가라앉는다라는 신체적 느낌을 받았다. 펜을 움직이면서 나는 얼마나 깊이 침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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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자신을 ‘써내려가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거기에 더해 그녀를 ‘봐내려가는 사람’ 이라고 생각했다. 푸른 그림 속의 세계나 그림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사람의 자세, 자고 있는 사람의 마음의 모양 같은 것들을 끈질기게 봤다. 그리고 본 것에서 나아가 유년기와 자신의 일상을 겹쳐 떠올렸다.

 

어떤 사람을 너무 오래, 자주 보면 그 사람과 내가 하나로 겹쳐지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듯이 그녀는 봐내려간 자리에서 멈춰 한참을 기다렸다. 그림이 자신에게 닿기까지. 그래서 그림에 숨은 모든 것을 다 알게 되기까지.

 

그녀는 한참 봐내려간 뒤에 써내려갔다. <여름의 피부>는 침잠한 기록이었다.

 

나는 마이어의 그림을 보며 그녀도 봐내려간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기록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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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는 각자만의 기록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마이어에게 카메라가 그러했듯이.

 

나는 매해 꾸준히 일기를 쓰자는 약속을 어겨가면서 나만의 방식으로 대안적인 기록 근육을 길러왔다. 17만 원을 주고 구매한 소니 녹음기 TX 650에 내가 간절히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오늘은 할머니의 걸음걸이에 대해 기록했다.

 

어제도 비가 오고, 오늘도 비가 와서 할머니 신발이 무거워 보인다.

 

이 문장을 목소리로 기록할 때 문득 할머니가 내 쪽을 한번 돌아봤다. 혹시 우리의 마음이 찰나에 통한 것일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과 사물을 사랑할 결심으로 바라볼 때 말없이도 우리가 통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는다.

 

하루는 녹음기에 녹음된 봄이 왔다, 말하는 내 목소리를 들었다.

 

봄이 오려면 멀었는데 내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몸 어딘가에 꽃이 피려나 손끝이 근질거렸던 날을 기억한다.

 

녹음기에 녹음된 문장이 300개를 넘어간대도 나도, 세상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계속하게 되는 이유는 기록이 나만의 소통 방식이기 때문이다.

 

시선이 생각이 될 때, 그리고 목소리가 될 때,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물성 있는 녹음기 안에 담길 때 나는 이토록 낯설고, 어쩔 땐 두렵기까지 한 세상과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이어의 관심사는 특권, 젠더, 인종, 정치, 죽음 등이었다. 그녀는 1956년부터 1990년까지 시카고에서 아이 돌보미, 관리인, 가정부 등의 일을 하며 바라봤다. 행인들, 삶이 망가진 사람들, 5번가와 바우어리 거리, 공원, 배, 지하철 그림자.

 

유난히 오래 바라봤던 그림은 해변가에서 아이가 엄마의 두 다리를 양팔에 품고 있는 그림이었다. 작은 아이가 엄마의 두 다리 너머로 어렴풋이 세상을 바라보는, 예민하지만 다정하고, 낯선 시선. 그것이 마이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바라보고, 기록하고, 사랑하려 애쓰는 사람. 마이어는 그런 기록자였다.

 

 

 

마이어처럼 바라보기



로라 립먼은 글 <사진 속의 여인>에서 마이어의 그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서 그의 존재감을 느낀다.”

 

 

우리는 마이어가 보는 세상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마이어처럼 볼 수는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마이어의 고용주였던 마렌 베이렌더의 문장을 읽고,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어찌 보면 카메라가 마이어의 친구였는지도 몰라요. 카메라라는 친구를 통해 다른 이들을 본 거죠. 사진은 마이어가 굳이 자신에 대해 털어놓지 않고도 사람들을 자기 삶에 불러들이는 수단이었을 거예요.”

 

 

그녀의 예민하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행동 때문에 그 주위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평생 혼자 살았고, 생의 끝에는 노숙인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세상에 홀로 떨어진 듯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마다 카메라를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카메라라는 친구와 한바탕 긴 대화를 나누듯이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사진은 삶을 견디는 방식이었고, 즐거운 놀이였고, 사랑 그 자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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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마이어는 아무것도 삭제하지 않는 방식으로 바라본다. 대다수 사진가가 최상의 사진을 확보하려고 여러 구도로 여러 장 찍는 데 반해 마이어는 피사체를 단 한 번만 찍었다. 그것은 필름을 아끼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시선에 의해 그 무엇도 누락돼서는 안 된다는 의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순 보이는 것을 단순하게 담는 일은 풍경과 사람과 세상에 대한 그녀만의 존중 방식이었을 것이다.

 

잘 바라보는 일이란 참 경이로운 일이라는 것. 마이어의 그림을 통해 마음속에 소중히 품을 문장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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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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