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 같은 삶, 영화 같은 사진: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글 입력 2022.08.25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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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비일상적인 놀라운 것, 특히 긍정적인 방향일 때 수식어를 붙인다. '영화 같다'라고. 이번엔 영화의 뜻 자체에서도 그러하다고 할 만한 전시를 경험했다. 영화란 무엇인가. 시청각을 아우르는 복합예술이다. 이미지와 청각이 결부되어 어떠한 감정을, 감상을, 감동을 자아낸다. 전시장엔 그에 관한 짤막한 설명이 전부였으므로, 그의 자취가 담긴 책『비비안 마이어』에 기술된 이야기와 엮어 전시를 되감아보고자 한다.

 

 


비비안 마이어의 삶



그의 이름이 세상에 나와 검색창에 오른 건 2007년 시카고 경매장이 출발점이었다. 존 말루프는 자신이 집필하던 역사책에 참고할 사진을 찾다가 그곳에서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손에 얻는다. 원래 사진에 관심 있던 그인지라 이게 평범한 사람이 대충 셔터를 누른 사진이 아님을 직감하고, 곳곳에 흩어진 비비안의 사진과 네거티브 필름들을 끌어 모은다. 그리고 이 시선의 주인공인 비비안 마이어가 대체 누구인지도 찾기로 한다.


별 소득 없이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2009년 4월. 그제야 실마리가 보였다. 미국 신문에 난 부고 기사를 발견한 것이다. 비비안 마이어라는 이름과 '뛰어난 사진작가'이면서 '존과 레인, 매슈 3형제의 제2의 어머니'라는 부연설명까지, 호기심이 일 수밖에 없을 말들을 따라 겐스버그 가족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사이 온라인 사진 공유 커뮤니티인 '플리커'에 비비안 마이어의 일부 사진을 올려 더 많은 의견을 듣기로 했다. 전 세계로 순식간에 퍼져나간 사진들은 그의 사진이 지닌 파급력을 여실히 드러냈다. 여기에 제프리 골드스타인도 아카이브 작업에 합류했다. 온라인에서 떠돌던 사진들은 뉴스로, 강연과 전시로 이어졌고 2022년 지금, 한국에서도 책과 전시가 연달아 나오며 그 흐름을 여전히 잇는 중이다.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으니 아카이빙 사업에 진척이 생길 법도 한데 비비안 마이어를 알던 사람들도 그에 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았다. 말도 제각각이다. 누군가에겐 엄격하고 냉담한, 비사교적인 사람이었고 또 다른 이에겐 사교적이고 열정적인, 재미난 사람이었다.


무수한 베일에 싸인 그의 이야기를 한데 모은 과정은 책에 자세히 나와있으니 생략하고, 전시에서 보았던 이미지와 엮을 말들만 언급하겠다. 첫째, 그의 가정환경은 꽤 많이 퍽퍽했다. 약물중독, 알코올 중독, 우울증으로 가족 구성원들이 그를 챙겨주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신 두 할머니인 마리아, 외제니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다. 그들이 남긴 거대한 유산 덕분에 이를 처분하면서 생긴 여윳돈으로 1952년, 비비안 마이어만의 독창적인 사진 특징을 만든 롤라이플렉스를 구매한다.

 

 


롤라이플렉스와 SELF-PORTRAIT



지금이야 1:1 비율의 사진 크기가 모두에게 익숙하다. 인스타그램을 즐겨하는 사람에겐 오히려 직사각형 비율의 사진이 낯설기도 할 것이다. 이 같은 정방형 사진에 매료된 건 비비안 마이어도 마찬가지였다. 뛰어난 질감 표현, 프레임을 가득 채운 피사체의 바스트샷, 대칭성은 50년대의 비비안 마이어 사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건 자화상. 셀피의 시초라고도 불리는 만큼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엔 자기 자신 또한 많다. 전시에서도 'SELF-PORTRAIT'이라는 섹션을 만들어 비비안 마이어가 스스로를 포착한 순간을 쭉 펼쳐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비비안 마이어의 표정과 시선이다. 어느 하나 웃는 얼굴이 없다. 카메라의 렌즈에 눈을 맞추지 않고, 정면을 직시하듯 다부진 얼굴로 셔터를 눌렀다.


 

2.뉴욕, 1954년.jpg

뉴욕, 1954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특히 위의 사진은 비비안 마이어가 사진을 찍을 때의 자기 자신을 담은 것 같다. 전시 내부는 촬영 스팟 세 곳을 제외하고는 사진 촬영이 불가해서 사진으로 담아올 순 없었지만, 베레모를 쓴 중년 남성의 사진이었다. 헤드룸 없이 인물이 정사각형 한 폭을 거의 다 차지한 구도로. 압도적이기도 했던 그 모습을 완성한 건 시선이었다.


정면을 보는 것 같지만 완벽하게 카메라와 눈을 맞추지 않는 오묘함. 핀트가 살짝 어긋난 느낌이 되레 눈길을 끈다. 이건 롤라이플렉스 자체의 특징이기도 하다. 가슴 언저리에서 사진을 찍어야 하는 보통의 사진기와 달리 허리춤에서 카메라 윗면에 있는 뷰파인더로 피사체를 확인하고, 카메라 앞쪽에 있는 동그란 셔터를 누른다. 카메라 렌즈가 아이 레벨보다 아래에 있기에 자연스럽게 아래에서 위쪽, 그러니까 로우 앵글로 찍게 된다. 카메라를 그저 들고 있다는 인상을 줄 뿐이지 누군가를, 특히 자신이 사진의 대상이 되었다고는 확신하기 어려울 테다.


비비안이 거리에서 찍은 인물 사진의 상당수가 그러했다. 정면으로 인물을 꽉 채운 사진이라면 더더욱. 그래서인지 인물의 순간이 자연스럽게 포착되었다. 셔터를 누를 때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단번에 누른다던 주변인의 언급을 생각하면, 이때의 경험들이 쌓여 카메라를 눌렀을 때 카메라가 반응하는 속도까지 체화가 된 것이 아닐까.



3.장소 미상, 날짜 미상.jpg

장소 미상, 날짜 미상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이처럼 타인을 찍는 행위는 비밀스러우나 자화상을 찍을 땐 그렇지 않다. 카메라를 통해 내가 나를 본다. 영화 <캐롤> 감독인 토드 헤인즈가 인터뷰에서 말했다. 영화 속 '테레즈'라는 캐릭터는 사진작가로 나오는데 그 설정의 근간엔 비비안 마이어가 있었다고.


비비안과 반대로 인물 사진 찍기를 꺼려하는 테레즈는 캐롤의 사진을 홀린 듯이 찍으며 변화를 맞이한다. 뷰파인더 너머의 사람을 알고자 하는 욕구, 그 사람의 순간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 두 가지가 뒤섞이며 사랑이 된다. 비비안이 세계 여행을 하며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찍으려던 것도 그러한 경계심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을까? 한 사람을 자세히, 오래 들여다보면 온갖 감정이 싹틀 수밖에 없으니.


돌보던 아이들이나 그들의 가족의 곁을 어느 순간 홀연히 떠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느꼈다. 비비안은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사람을 찾아 떠돌아다녔다. 카메라와 피사체의 널찍한 거리는 안정감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즐거움을 느끼되 결코 가까이 다가서지 않고. 비비안을 아는 어떤 이가 '보수적'이라고 표현했던 것이 떠오른다. 상처를 만들지 않으면서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떨쳐내는, 어찌 보면 유일한 방법이었을 테다.


세상과 교류하는 방식으로 나 자신도 바라본다는 건 꽤 성찰적인 태도다. 겨우 사진 한 장으로 무얼 알 수 있겠냐고 반문하겠지만, 사진은 일종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때, 그 당시의 나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으니까.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자 하며, 어디로 향하는지 확인하면서도 미련 넘치게 돌아보지는 않고.


문득 비비안의 창고에서 발견된 작품들 중 단 5%만이 사진으로 존재할 뿐, 나머지는 현상하지 않은 필름과 네거티브 필름으로 이루어졌다는 게 떠오른다. 경제적 문제가 있긴 했지만, 피사체가 된 사람이 사진을 달라고 해도 응하지 않고, 사진을 꾸준히 찍어왔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았던 점을 고려해보자. 셔터를 누르기까지 아주 짧은 시간이 걸렸고 단 한 장만 찍고 넘어가는 때도 많았단 점 또한.


흘러가는 시간을 영원히 붙들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순간에 최선을 다해 몰입한 것으로 충분했는지, 알 길은 없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제아무리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다고 한들 비비안도 똑같이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었다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진



혼란한 가정환경이라고 인지했기 때문인지, 괜한 부스럼 만들기 싫어서인지 비비안은 아이 돌보는 일을 거의 일평생 하면서 누구에게도 자신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그 자신에 관한 이야기도 삼갔다. 어떤 고용주는 비비안이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도 모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기껏 찍은 사진을 당사자에게 선물로 주지도, 돈을 받아 팔려고 애쓰지도 않고, 그저 셔터를 눌러온 그의 삶이 기이하고 신기할 뿐이다. 비어있는 조각이 많아서일까. 만약 그가 열성을 쏟아부었던 엽서 사업이 성공했더라면, 전문 사진작가로서 생애 명성을 얻었다면, 그래서 자신의 사진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더라면,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을지 끝없이 상상하게 된다.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한들 사람에겐 사람이 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과 깊은 교류를 하지 않은 비비안 마이어도 말년엔 겐스버그 가족과 많은 것들을 나누었듯이. 무엇보다 그는 길거리 사진가이지 않은가.


길에는 거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리보다 눈에 들어오는 건 사람들이다. 분주히 발을 놀리고, 서로를 마주 보며 대화하고, 앉고, 웃고, 일어서고, 뛰고, 기다리고. 그가 찍은 영상에서도 사람들이 담겼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의 다리, 뒷모습, 손 따위가. 사진의 주제가 사람 자체인 비비안 마이어만큼 사람을 사랑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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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1960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비비안의 언어는 사진이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가 떠난 자리에 남은 사진들을 보고 반응하는 것이 아닐까. 그의 물음에, 혹은 그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여 대답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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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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