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류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 '우리에게 남은 시간' 최평순 PD

글 입력 2023.12.26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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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은 여태껏 먼 나라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기후 위기가 피부에 와닿는 날이 유독 많았다. 숨쉬기조차 힘든 더운 날씨가 끝없이 이어지던 지난여름, 그리고 유난히 따뜻했던 12월 초순을 보내며 경각심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을 테다. 그러나 전 지구적인 문제 앞에서는 무얼 어떻게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다짐보다 막막한 기분이 앞설 때가 많다. 환경 문제는 그렇게 개인의 관심사에서 쉽게 잊히고, 뉴스에서도 다른 이슈에 묻혀버리곤 한다.


인류의 활동이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시대라는 의미로 ‘인류세’라는 단어까지 등장했지만, 여전히 환경 문제가 우리 사회의 주류 담론이 되기 어려운 건 왜일까. EBS에서 환경·생태 프로그램을 만드는 최평순 PD는 이러한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며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썼다. 인류세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객관적으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그리고 위기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지 작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8일, 최평순 PD를 직접 만나 책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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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최충식

 

 

“제가 2013년 무렵 <하나뿐인 지구>라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들었던

과학자들의 ‘예측’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 ‘사실’이 되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어요.”

 


작가님, 반갑습니다. 방송이 아닌 책으로 인터뷰를 하는 오늘만큼은 피디님이 아니라 작가님이라 불러야 할 것 같은데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어떻게 쓰게 되신 책인가요?


환경·생태 프로그램을 만들며 현장에 다니고 관련된 뉴스를 계속 접하다 보니 환경 문제가 긴급하다는 생각은 계속 있었어요. 우리가 굉장히 결정적인 시기를 살고 있다는 위기감도 느끼고요. 그러던 중 2019년 일어난 아마존 화재가 책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였습니다. ‘지구의 허파’가 대규모로 불타는 상황을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뉴스로 다루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생각보다 보도가 많이 되지 않고 사람들의 관심도도 떨어지더라고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활동가를 만나고, 그들과 대화하며 느꼈던 점과 제 생각에 일상 속 일화를 더해 완성된 책이에요. 인터뷰와 에세이가 합쳐진 형태로, 어렵지 않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책을 만들기 위해 여러 사람과 대화하고 또 서면으로 글을 주고받으며 작가님이 새롭게 알게 된 점이 있다면요?


제가 2013년 무렵 <하나뿐인 지구>라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들었던 과학자들의 ‘예측’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 ‘사실’이 되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어요. 예를 들어 2014년 <하나뿐인 지구-기후 변화 특집 히말라야 대재앙 빙하 쓰나미>를 만들 때 빙하홍수의 위험성을 다뤘는데, 2021년에는 실제로 인도 북부 히말라야 고산 지대에서 빙하홍수가 일어났다는 뉴스를 봤죠.


10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기록을 쭉 훑어보니 그때가 아니라 지금이 이 위기의 정점이라는 사실도 무서웠어요. 실제로 유럽연합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에 따르면 올해의 전 지구 평균기온이 측정이 이루어진 이래 가장 높았다고 해요.

 

 

10여 년 전만 해도 '인류세'라는 단어가 지금만큼 많이 사용되지 않았는데, 요즘은 인류세라는 단어가 그때보다는 대중화되었어요. 작가님은 거기서 오는 변화를 체감하시나요?


주변 언론인이나 과학자, 환경 활동가들 사이엔 확실히 변화가 있어요. 일단 언론에 ‘인류세’라는 단어 사용이 늘어났어요. 제가 만든 프로그램 <인류세>로 2020년 동명의 책을 낼 때만 해도 인류세 관련 국내 저자의 도서는 많지 않았는데, 요즘은 여럿 출간되었죠. 하지만 솔직히 말해 대중들 사이에서는 크게 체감하지 못했어요. 대중적으로 확산되기에는 인류세라는 단어 자체가 약간 어렵기도 하고요.

 

 

환경 문제는 그 범위와 영향력이 너무 광범위해서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사 밖으로 밀려나는 느낌도 들어요.


그래도 예전보다는 주목받는 환경 문제가 늘어났어요. 대표적인 게 플라스틱 이슈인데, 예전과 비교하면 사람들 생각이 변했다는 게 확실히 느껴지죠. 하지만 기후 문제는 아직 거기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기후 위기의 타격을 덜 받다 보니 체감하는 변화도 적고, 남의 나라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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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보다 먼저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계속 일해오신 분이 계신데,

그분들 앞에서 제가 좌절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요.”


 

기후 위기에 관해선 우리가 백날 노력해 봤자 미국이나 중국처럼 인구가 많은 나라가 바뀌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반응도 자주 접해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죠. 하지만 우리나라도 여느 나라 못지않게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예요. 이번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도 ‘오늘의 화석상’을 수상했어요. 오늘의 화석상은 총회가 열릴 때마다 기후행동네트워크에서 기후 위기 대응을 방해하는 국가에게 주는 상이에요.


책을 쓰며 김산하 박사와 관련된 대화를 했어요. 김산하 박사는 미국과 중국의 기후 위기 대응이 미흡한 건 맞지만 미국인과 중국인은 자기가 그 정도 영향력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인식은 있다고 지적하더군요. 반면 우리나라는 탄소 배출량이 세계 10위권인 데다가 석유화학이 주력 산업이면서도 우리의 영향력을 간과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셨죠. 실제로 우리나라 많은 이들이 기후 위기나 환경 문제에 무감각하고, 책임감도 별로 느끼지 않는 듯해요.

 

 

이런 분위기에서 환경·생태 프로그램으로 관심을 끌려면 어려울 때가 많을 것 같습니다.


문제의식을 갖고 열심히 만든 다큐멘터리가 생각보다 관심을 못 받을 때면 기운이 빠지죠. 그래도 방송을 만들며 만나는 분들한테 많은 힘을 얻습니다. 과학자든 활동가든 저보다 먼저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계속 일해오신 분이 계신데, 그분들 앞에서 제가 좌절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요. 방송을 더 잘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문제를 더 효과적으로 알리고 싶다는 일종의 승부욕도 생겨납니다.

 

 

그 승부욕이 어떤 쪽으로 발현되는지도 궁금해지는데요.


이 정도까지 했는데 반응이 없다면, 다음에는 어떤 방식의 스토리텔링이 필요할까. 어떤 인상적인 이미지가 더 사람들의 이목을 끌까 전략을 고민해요. 그 전략이 조금이나마 통할 때면 성취감도 듭니다.


3부작 다큐멘터리 <인류세> 1부에서 미세먼지를 다뤘던 기억이 나요. 그걸 기획하던 2018년만 해도 코로나19도 없고, 플라스틱 이슈도 지금만큼 활발하지 않아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면 미세먼지 이야기를 해야 했거든요.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다가 인도 델리까지 갔어요. 불꽃축제 전후로 대기 중 미세먼지 수치가 어떻게 변했는지와 ‘쓰레기산’을 연상시키는 매립지를 카메라에 담았죠.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그림이 더 설득력 있을 때가 있는데, 그때 보여드린 델리의 풍경이 많은 사람에게 충격적이었던 것 같아요.


2021년에 했던 다큐프라임 5부작 <여섯 번째 대멸종>은 르포 형식으로 오랑우탄 이야기를 해봤어요. 인간의 개발로 서식지가 파괴된 오랑우탄이 먹이를 찾으러 인간의 영역으로 내려오다가 그 지역의 주민들과 충돌하며 벌어지는 안타까운 현실을 담았어요. 그런 식으로 새롭게 스토리텔링을 해보는 거죠.

 

 

한쪽이 지나치게 무관심한 분위기라면 다른 쪽에서는 ‘그린워싱’이라는 단어가 나올 만큼 보여주기식 친환경 정책과 광고도 늘어나는 듯해요.


맞아요. 그래서 보여주기식 또는 내 죄책감을 덜기 위한 일 말고 진짜 환경에 도움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충분히 고민해봐야 해요. 예를 들어, 화석연료차보다 전기차가 친환경적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개인이 오래 쓰지도 않은 화석연료차를 버리고 전기차를 새로 산다면, 그게 과연 화석연료차를 오래 타는 것보다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생각해볼 지점입니다.

 

 

작가님이 생활 속에서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실천하는 일이 있다면 하나만 소개해주세요.


저도 엄격하게는 못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을 느슨하게 계속하려고 해요. 비건처럼 완전 채식은 못 해도 생선을 먹는 페스코로 사는 식으로요. 다른 사람이 잘 안 할 것 같은 일은…에어컨 없이 사는 것 정도겠네요. 여름이면 창문 열고 시원한 옷을 입고, 대나무로 된 깔개를 침대에 깔아요. 정말 더울 땐 얼음베개를 사용하기도 해요. 지금까진 그럭저럭 버텼는데, 여름이 점점 더워져서 자신이 없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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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최충식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돈 룩 업’과 같은 태도만은 지양하자는 거예요.

어렵지 않게 쓰인 책이니 읽으면서 지금의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개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저도 그걸 알고 싶어서 방송을 만들고 책을 쓰며 다양한 분을 만나고 다녔어요. 에드워드 윌슨이나 제레드 다이아몬드 같은 세계적인 석학들을 비롯해 환경 문제 전문가와 활동가처럼 저보다 이 문제를 잘 아시고 더 많이 고민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눴죠. 여러 책에서 지혜를 빌려 오기도 했습니다.


여러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김홍중 교수의 말처럼 ‘무해한 삶’을 지향하며 생활 속 실천을 하되, 그 실천이 단순히 ‘착한 소비자 운동’에 머무르지 않고 홍성욱 교수의 말처럼 ‘실천적 연대’로 이어지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는 게 아니라 내가 다른 존재와 맺는 관계에 집중하고, 그 관계의 총체가 곧 나라는 새로운 감수성이 필요한 것이죠. 홍성욱 교수는 이를 ‘포스트 휴머니즘 감수성’이라 불렀어요.

 

 

감수성을 바꾸는 게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저는 젠지(Gen-Z) 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출생)에 희망을 갖고 있어요. 그래도 이들이 기성세대와는 감수성이 다르다는 게 보이거든요. 확실히 환경 문제와 기후 위기를 ‘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기성세대보다 많은 듯해요. 물론 이들이 투표권을 가지고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사회적 기득권이 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테니 조바심이 나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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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말씀을 들으니 올 한 해 제가 얼마나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졌는지 반성도 하게 돼요. 2023년을 마무리하며, 올해 우리가 알고 가면 좋을 환경 이슈가 있다면 무엇인지 소개해주실 수 있을지요.


해마다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COP는 정부간 기후 변화 협의체(IPCC)에서 내는 보고서를 근거로 합니다. 즉 매년 전 세계 과학자들과 세계 각국 정상이 모여 기후 위기에 관한 보고서와 합의문을 업데이트하고 있다는 의미예요. 여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건 세계 시민으로서 우리가 최소한의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는 COP28가 끝났습니다. 이번 협의서에 들어가는 단어 하나를 놓고 세계 정상들이 엄청 회의를 길게 했어요. 그렇게 들어가게 된 문구가 ‘결정적인 시기인 10년 안에 에너지 체계에서 화석 연료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전환을 가속해야 한다’예요. ‘화석 연료를 퇴출하자’나, ‘화석 연료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전환을 하자’도 아니고 ‘전환을 가속해야 한다’로 타협된 건데, 저는 그래도 ‘결정적인 시기인 10년’이라고 시기를 명시한 게 유의미하다고 봐요.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읽을 독자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책을 쓰기 전 어떻게 접근해야 사람들한테 쉽게 다가갈까 고민하다가 <돈 룩 업>이라는 영화를 봤어요. 소행성 충돌이 다가오는데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 외면해버리기를 택하는 미국 사회를 비꼬는 블랙코미디인데, 우리나라 역시 상황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소행성 충돌은 공룡을 다 멸종시키고 지질 시대를 바꿀 만큼 큰 사건이잖아요. 그렇다면 지금 인간에 의해 벌어지는 기후 문제와 생물 대멸종 역시 소행성 충돌에 버금가는 사건인 셈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그 문제를 쉽게 외면하고 있어요.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돈 룩 업’과 같은 태도만은 지양하자는 거예요. 어렵지 않게 쓰인 책이니 읽으면서 지금의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젠 정말로 외면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또 저는 지금 다큐프라임으로 <날씨의 시대>라는 3부작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어요. 역시 기후 위기를 다룬 작품으로 내년 2월 방영될 예정이니 여기에도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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