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막스 리히터 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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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0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막스 리히터 스페셜(MAX RICHTER SPECIAL)] 연주회가 열렸다. 이번 공연은 하이든의 <무인도> 서곡을 시작으로 장 필리프 라모의 오페라 <레 보레아드> 모음곡, 막스 리히터의 < On The Nature of Daylight >
, 그리고 <비발디 사계 리콤포즈드>로 이루어졌다. 오랜만의 공연관람에 들뜬 마음으로 방문한 공연장은 여전히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설렘을 주었다. 이번 공연은 특히 더 기대가 되었는데, 바로 국내에서 초연되는 막스 리히터의
< On The Nature of Daylight >와 발매 후 22개국 클래식 차트 1위를 석권한 <비발디 사계 리콤포즈드>때문이다. 막스 리히터의
< On The Nature of Daylight >는 영국 가디언지로부터 21세기 최고의 클래식 작품으로 선정된 곡으로,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폭력 메시지를 담은 <블루 노트북>의 수록된 곡이다. 제목이 생소할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클라이막스 장면 음악으로 익숙한 곡이기도 하다. <비발디 사계 리콤포즈드>는 불후의 명곡 '비발디 사계'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기존 비발디의 사계에서 25%만을 남기고 막스 리히터의 참신하고 다양한 작곡기법을 사용해 재탄생한 그만의 사계는 과연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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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시작되고, 하이든의 <무인도> 서곡을 시작으로 장 필리프 라모의 오페라 <레 보레아드> 모음곡, 막스 리히터의 < On The Nature of Daylight >이 차례로 연주되었다. 잔잔히 진행되는 막스 리히터의 멜로디를 듣고 있자니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클라이막스 장면이 떠올랐다.
당시 잊어버린 과거의 기억이 서서히 돌아오는 김혜자 배우의 연기가 인상깊었는데, 공연장에서 곡을 듣고 있으니 김혜자 배우의 연기를 더욱 돋보이게 한 것이 바로 막스 리히터의 음악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곡은 음악에는 꼭 클라이맥스 부분이 있어야하며, 그 클라이맥스 부분이 극을 더욱 긴장감과 임팩트있게 만든다는 고정관념을 타파했다. 미니멀리즘 특유의 단순화된 멜로디와 구조적 반복성으로도 극을 충분히 클라이맥스로 끌어올릴 수 있으며, 관객들이 몰입하도록 이끄는 힘이 있음을 느끼게 했다.
인터미션 이후 이어진 <비발디 사계 리콤포즈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과연 원곡의 25%만을 남기고 새롭게 탄생한 사계를 사계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으나, 연주가 시작되고 이는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비발디 고유의 음악적 언어는 남겨두었지만, 루핑기법, 리듬의 변칙적인 재구성 등 막스 리히터의 참신하고 다양한 작곡기법이 과거와 현재를 접목시켜 고전적이면서도 세련된 <사계>를 탄생시켰다.
막스 리히터의 곡은 전체적으로 필자가 알던 클래식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평소 익숙한클래식 음악은 '도입 - 클라이막스 - 결말' 로 이어져 깔끔하게 정리되어 하나의 극을 역동적으로 이끌어가는 느낌이었다면, 막스 리히터의 곡은 시작부터 끝까지 무엇하나 명확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고요히 시작하여 잔잔히 마무리되는, 하지만 그 안에 모든 서사가 담겨있는 느낌을 받았다.
미니멀리즘 특유의 단순화된 멜로디와 구조적 반복성이 돋보였던 < On The Nature of Daylight >부터, 과거와 현재를 접목시킨 <비발디 사계 리콤포즈드>까지. 눈으로 작품을 감상하며 미술사조를 관람하듯, 귀로 그의 음악을 들으며 음악의 사조를 경험한 느낌이었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음악을 들으며 미니멀리즘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생소하면서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관객들의 박수는 지휘자와 바이올리니스트의 걸음을 계속하여 무대 위로 이끌었다. 그만큼 관객들에게 인상깊은 무대였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편, 이번 공연을 이끈 아드리엘 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은 오는 9월 퀸 엘리자베스 경연에서 1위를 차지한 첼리스트 최하영과 새로운 무대에 꾸린다. 이번 공연의 감동이 9월의 공연에서도 이어지기를 바라며 리뷰를 마친다.
[김히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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