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차가운 기호로 뜨거운 우주를 그리다 - 전시 '빅토르 바자렐리'

글 입력 2024.01.1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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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할 바자렐리의 전시-반응하는 눈-은 여타 다른 시각예술에서 기대하는 것과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강박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깔끔하게 칠해진 도형의 순열은 압도적이다. 특히 이 경험은 작은 그림보다 거대한 그림으로 보았을 때, 실제 전시회에서 마주했을 때 더 강렬하다.

 

이번 바자렐리 전시회를 관람객으로서 두 가지 특징으로 요약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첫째, 바자렐리 예술의 '옵아트'를 그 시작부터 완성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다. 전시는 바자렐리의 삶과 그의 예술에서의 주요한 변화가 있었던 순간마다 섹션을 나누었다. 특히 흔히 말하는 '옵아트' 예술이 완전히 자리 잡기 이전 섹션에서는 바자렐리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그가 추구했던 미술이 무엇인지 특별한 설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내가 이 전시회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전시의 구성이다. 우선 편의상 본격적으로 옵아트를 전시한 공간을 '옵아트 공간', 옵아트를 발전시켜온 이전 작품들을 전시한 공간을 '옵아트 이전 공간'으로 구분하려고 한다(물론 이전 공간이라 해서 옵아트가 아니라고 정의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정착한 어떤 스타일을 가르는 것으로 두 공간을 구분하고 싶다.). '옵아트 이전 공간'은 흔히 알려진 바자렐리의 옵아트를 발표하기 이전 시기로, 상대적으로 적은 공간을 각 섹션의 입구에 따라 미로처럼 이리저리 빠져나오도록 구성하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옵아트 공간'은 좀 더 넓은 공간에 천장이 높고 작품에서 사용된 자극적인 색채들로 벽면을 채웠다. 이러한 구성으로 개인적으로는 바자렐리의 연구물들이 마침내 '옵아트'라는 꽃을 피워내는 과정을 함께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도 바자렐리의 전시회답다고 생각했는데, 나 자신이 단순히 일차원 평면의 작품을 감상하는 우아한 감상자의 역할보다는 어떤 자극에 적극 반응하는 객체로서 대하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바자렐리의 작품처럼 전시의 구성도 논리적이다. 예를 들어 '옵아트 이전 공간'은 '옵아트 공간'의 감상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초반에는 주로 광고디자인의 반복된 패턴과 시공간, 주제를 이차원적 평면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바자렐리의 실험과 그의 논리적 경향이 잘 드러난다. 이러한 섹션들을 잘 살펴보고 나중에 옵아트를 감상하면 '옵아트'에 대한 실험은 상당히 이른 시간 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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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 Vasarely, 1939, Zebras, Gouache, pencil, colour and white chalk on paper, Vasarely Museum, Budapest

 

 

'옵아트 이전 공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얼룩말'인데, 작품의 명성만큼이나 이 작품을 통해 바자렐리가 미술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세상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서로의 무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흑백을 바꾸는 방식으로 그림을 완성했는데도 두 마리의 얼룩말이 서로 얽혀있는 모양새로 보인다. 무늬의 물결에 따라 굴곡과 역동성이 돋보인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바자렐리의 탁월한 공감각을 살필 수 있다. 그가 추구한 예술이 하나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단순해 보이는 요소가 배치, 정렬, 리듬에 따라 생명력을 가진다는 점도 알 수 있다. 후에는 '색채 알파벳'이라고 표현된 단순한 요소의 배치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후쿠오카'처럼 추상적이고 단순한 형태로 변해간다.

 

이후 바자렐리는 '옵아트 공간'의 후반부에 들어서는 도형을 통해 우주를 표현하고자 했다. 바자렐리가 그림을 그렸을 시점을 생각하면, 아마 우주 망원경으로 지금보다는 불분명한 지식으로 그것을 관찰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작품을 그려진지 어언 20년이 지나가는 오늘날의 지식을 비추어보았을 때, 그것은 여전히 우주를 묘사한 가장 좋은 그림 중 하나인 것 같다.

 

우리의 세계와 우주가 언제나 어떤 법칙에 따라 움직이지만, 어떤 착시를 일으키는 것처럼 그 결과는 예측할 수 없이 요동친다는 점이 그의 그림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자렐리의 작품들은 논리적이면서 시공간을 꿰뚫는 어떤 철학적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전시 공간으로 돌아와, 각 섹션을 빗장처럼 꾸며놓은 반응하는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옵아트 이전 공간'은 정말 잘 구성되어있다. 바자렐리의 작품 변화를 차례대로 잘 구성한 것도 훌륭하지만, 관람객으로서 더 좋았던 것은 비교할만한 작품들이 함께 놓여있다는 점이다. 바자렐리의 개념이 정교화되고 곧 이어질 장대한 음악의 서곡처럼 등장하는 옵아트의 요소들은 관람객의 몫이니 부디 직접 감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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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 Vasarely, 1979, Stri-oet. Acrylic on Canvas. Vasarely Museum, Budapest

 

 

둘째, 강렬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하는 전시다. 바자렐리의 예술은 '옵아트 공간'에서 빛을 발한다. 옵아트 공간의 한쪽 벽면에는 시각적 충격을 통해 사람들을 자극하고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바자렐리의 짧은 경구가 쓰여 있었다. 옵아트의 자식들이 아닌 옵아트 자체의 감상을 해보는 처지에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바자렐리의 작품은 처음에 상당히 기계적으로 느껴졌다.

 

이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판단은 아니었는데, 후반부의 바자렐리에 관한 짧은 다큐멘터리에서 그의 예술이 그러한 방식으로 묘사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자렐리는 자신의 작품이 디자인처럼 재생산될 수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기계와 여러 사람을 동원하여 그렸다. 후에는 프로그램에 의해 예술이 창작될 수 있음을 예견하는 그의 말에서 어떤 기계적인 감성을 느낀 것은 당연하다.

 

작품이 관람객에게 강렬한 시각적 자극을 준다는 점도 이런 기계적 감상을 부추긴다. 사실, 바자렐리의 작품은 '감상'한다기보다는 '감응'한다에 가까운 경험을 선사한다.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는 패턴과 강렬한 원색 이미지는 작품에 오래 머물게 하기 어렵게 하고 어떤 해석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는다. 보통 전시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인지적'인 과정을 거친다면, 바자렐리의 작품은 상당히 '생리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이 전시회의 또 다른 이름이 '반응하는 눈'도 이러한 감상이 상당히 보편적임을 시사한다.

 

전시관을 나오고 나서도 바자렐리의 작품들이 하나의 강렬한 자극 이상의 지적인 경험으로 남았는가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작품을 보고 난 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강렬한 자극에 반응하는 것은 지적인 작업이 될 수 있을까? 뻔한 말이지만, 결국 이러한 강렬한 자극을 어떻게 처리하는가가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바자렐리의 강렬한 시각적 자극은 나에게 어떤 '감상'을 남겼는가? 분명 이에 대한 답변은 다른 시각 예술과 비교해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가장 강렬하게 경험한 것은, -앞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그의 옵아트가 나를 감상자가 아니라 어떤 반응하는 객체로 뒤바꾸어 놓았다는 점이다. 바자렐리가 미술의 거품 낀 허례허식과 현금화에 은근히 부정적인 태도를 내비친 것처럼, '감응'이 아니라 '감상'의 영역에서 머무르던 관람객으로서는 상당히 도발적이다.

 

관람객의 위치를 뒤바꾸어놓는 바자렐리의 시도는 문명의 행위를 좀 더 원초적인 행위로 돌려놓는다. 그의 작품도 광고에서 시각예술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그의 이러한 전환은 시각예술의 원초적인 경험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 작품 하나하나를 그리는 대신 설계해나가며 그 작품들을 재생산해내는 바자렐리의 모습을 더해지면 관람객으로서는 그의 작품이 약간은 얄밉게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화려한 색채와 패턴 사이를 잘 들여다보면, 그가 돌아가고자 했던 시각예술의 본질에는 사실 어떤 자연적 질서가 숨어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바자렐리가 색채와 어떤 정서와 자연을 도입하고자 했던 시도를 존중한다. 그는 그것을 하나의 코딩작업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나는 그 행위 자체보다는 그가 정말로 그려내고자 했던 하나의 장면이 있다고 본다. 그 작품에는 창조와 파멸이 끝없이 이루어지는 우주와 부풀어 오르고 꺼져가는 격렬한 생명력이 기호보다 많은 의미를 품고 숨어있다.

 

그래서 누가 내게 바자렐리 전시회가 아니라, 바자렐리에 대한 첫인상이 어땠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차가운 기호로 뜨거운 우주를 표현하고 싶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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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 Vasarely, 1972, orion k. Acrylic on Canvas.

 

 

[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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