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잠시 1980년 5월의 광주로 떠났다. 선선하고 기분 좋은 날씨에 마주한 44년 전 광주의 봄날은 너무나도 추웠다. 분명 그날의 봄 날씨도 오늘날과 다르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나에게 너무나도 추웠던 광주의 봄날을 마주하게 하고, 많은 감정이 뒤섞이게 한 작품은 연극 [짬뽕]이었다.
연극 [짬뽕]은 1980년 5월의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당시 광주 소시민의 삶을 블랙코미디 관점에서 바라본 작품이다. 올해 벌써 20주년을 맞이할 정도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연극을 직접 관람하면서 20년 동안 꾸준히 사랑을 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내가 느낀 연극 [짬뽕]이 꾸준히 사랑받은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만큼 우리나라 역사에서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문화예술 작품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렇기에 직접 그 시기를 경험하지 않은 젊은 사람들까지 다른 역사적 사건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실제로 작년에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의 관객층 세대 비율을 살펴보면 20대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하여 5.18 민주화운동은 불과 44년 전의 일로 비교적 최근에 일어났던 사건으로 여전히 직접 그 시기를 경험한 중장년층이 많이 존재한다. 즉, 5.18 민주화 운동은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아파하고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그래서 그런지 극장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을 볼 수 있었다. 내 또래의 20대부터 50~60대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다른 공연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이처럼 남녀노소 모두가 공감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기에 오랫동안 사랑을 받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끝내 민주주의를 이루는 데에 큰 역할을 했지만, 여전히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이 많은 만큼 보통 다른 작품들에서는 무겁게 다뤄왔다. 그런데 [짬뽕]은 “5.18이 짬뽕 한 그릇 때문에 일어났다고?!”라는 엉뚱하고도 참신한 발상으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되어 5.18 민주화운동을 코미디로 풀어내었다.
5.18이 ‘짬뽕’ 한 그릇 때문에 일어났다니. 이 얼마나 황당한 말인가. 황당하고도 기발한 상상력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나를 포함하여 극장 안 관객들의 배꼽을 잡게 했다. 모든 캐릭터가 개성이 넘친다는 점도 이 연극을 더 빛나게 하여 관객들이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몰입하도록 했다.
‘춘래원’이라는 중국집을 운영하며 사랑하는 이들과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신작로’, 다방에서 일하면서 애교와 정이 넘치는 ‘신작로’의 연인 ‘오미란’, 겉멋이 많이 든 사람처럼만 보였지만 신군부 세력에 맞서 싸울 정의심을 가지고 있던 ‘백만식’, 다리가 불편하지만 씩씩하고 당찬 성격의 입도 거친 ‘신지나’라는 주요 인물들은 물론 군인 행세를 하던 방위 두 명과 부모님과 갑작스레 이유 모를 이별 후 정신이 이상해졌지만, 이웃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해맑고 장난도 좋아하는 ‘순이’, 조금 수상한 듯하면서 ‘순이’의 장난에 계속 넘어가는 ‘스님’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를 한 명만 꼽으라면 대답을 하기 힘들 정도로 모든 캐릭터가 매력이 넘치다 못해 흘렀다. 또 중간중간 등장하는 기자와 아나운서의 코믹한 모습과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학생, 계엄군에게 성폭력을 당한 여학생의 모습까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에 남을 정도로 비워두는 장면 하나 없이 꽉꽉 채워져 있었다. 덕분에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이처럼 당시 역사적 사건의 문제점들을 개성이 강한 캐릭터와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로 너무 무겁지 않게 코믹한 방식으로 풀어내어 지적하는 방식이 신선하게 다가왔고, 이 역시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더불어 그동안 5.18을 주제로 한 작품에서는 대부분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앞장섰던 사람들이나 계엄군 등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들의 입장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짬뽕]은 5.18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소시민의 삶. 그저 중국집을 운영하면서 소소한 미래를 꿈꿔왔던 소시민의 삶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짬뽕 때문에 벌어진 만식과 군인들 간의 싸움 때문에 광주가 혼란스러워졌다고 생각할 만큼 신군부 세력의 실체는 물론 광주 시민들이 맞서 싸우는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끝내 5월 18일, 미란과 만식과 지나는 이유도 모른 채로 계엄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진실을 알지 못하는 소시민의 삶을 보여주는 점이 오히려 1980년대 광주의 5월을 더 잔인하게 다가오게 했던 것 같다. 그만큼 언론을 강하게 통제했다는 사실이고, 실제로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들까지 이유 모를 죽임을 당했으니 말이다.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5.18을 정치적인 입장이 아닌 광주 소시민의 삶을 통해 정말 그 시절에 온 것처럼 느끼게 하고 정겹게 풀어냈다는 점이 큰 차별적인 요소로 다가왔다는 점도 이 연극이 롱런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라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점들 외에도 이 연극이 지금까지 사랑받아 온,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랑받을 것 같은 요소는 정말 많다. 관객 두 분을 무대 위로 모셔서 진짜 짜장면과 짬뽕을 대접하고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도록 하는 등 관객도 연극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각종 공간과 막을 활용한 연출, 세심하게 준비된 소품들과 현실감 있는 음향은 마치 내가 그 시기에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광주 소시민의 삶과 5.18의 잔인함이 실감 나게 했다.
그리고 연극이 끝난 후에도 여운이 계속 남았던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혼자 살아남은 ‘신작로’가 통장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연극 초반에 ‘신작로’의 통장에는 150만 원의 잔액이 있었고 앞으로 150만 원만 더 모으면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한 미래를 맞이하는 꿈을 이야기한다. 이후 ‘신작로’의 통장에는 천만 원이 넘는 금액이 모였지만, 그를 같이 기뻐하고 함께 꿈을 이룰 가족은 한 명도 남지 않았다. 그렇게 ‘신작로’의 꿈은 평생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다.
비록 ‘짬뽕 한 그릇’ 때문에 5.18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황당한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1980년대 광주의 봄에는 그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었다. 계엄군이 과잉 무력 진압으로 시민들을 폭도와 간첩으로 몰아가며 구타했고, 거짓 진술을 받아내기도 하면서 많은 이들이 어이없는 죽임을 당했다. 그렇기에 어쩌면 짬뽕 때문에 5.18이 일어났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마냥 허구라 할 수도 없겠다.
현재 우리가 당연시하고 있는 민주주의,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말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1980년 5월, 많은 이들이 미래의 따뜻한 봄날을 꿈꾸며 너무나 아리고 추웠던 그 봄날을 견디고 맞서 싸워 얻어낸 소중한 권리이다.
연극 [짬뽕]은 나에게 다시 한번 따뜻한 봄날을 선물해 준 이들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한 동시에 고마운 마음을 깊이 새기도록 하였고, 큰 웃음과 여운을 선사해 주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관람하기 좋은, 꼭 봤으면 하는 연극으로 따뜻한 봄날, 잠깐 시간을 내어 소중한 사람과 함께 광주의 ‘춘래원’으로 떠나보기를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