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말의 결실, 코토바(Cotoba) - 4pricøt [음반]

격렬과 서정의 매스 록
글 입력 2022.06.02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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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수학이라는 말이 있다. 피타고라스가 대장간의 망치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음계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처럼, 우리는 음악을 들을 때 자연스레 숫자를 느낀다. ‘하나, 둘, 셋, 넷’, 머리속으로 셈을 세지 않아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노트는 리듬을 구성한다. 화성도 마찬가지다. 겨우 반음 차이로 밝고 어두움을 감각적으로 구분하니, 소리에 대한 수(數)적 감각은 음악을 느끼는 사람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수가 깨진다면 어떨까? 음악을 듣는 중 예상과 다르게 박자가 틀어지고 안정된 화성을 벗어난다면 강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재즈를 비롯한 다양한 음악은 이러한 불편함을 의도적으로 활용한다. 어보이드 노트와 난해한 코드 진행을 사용하거나 계산하기 어려운 불규칙한 리듬을 이용해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폴 데스몬드(Paul Desmond) 작곡의 유명 재즈곡 ‘Take Five’에서 느낄 수 있는 오묘한 불편함을 상상해도 좋을 것이다.

 

수학의 이름을 달고 나온 ‘매스 록(Math Rock)'이란 장르가 있다. 매스 록은 11/8 박자, 7/8 박자와 같은 전위적인 리듬을 통해 박자가 전달하는 감각을 자극한다. 한 곡 안에서 박자가 여러 번 바뀐다거나, 악센트와 속도가 다채롭게 구성되는 특징은 청자가 리듬을 편안하게 따라가기보다 연주자에게 감상의 주도권을 내어주게 한다. 이러한 변박의 연출이 매스 록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매스 록의 사운드는 마찬가지로 특별하다. 인스트루멘탈에 좀 더 치중된 방향 아래서 악기들은 복잡한 연주로 얽히며 변박의 느낌을 강조한다. 또한, 클린에서 크런치 사이의 톤으로 탄현감을 살리는 기타 사운드, 드롭튜닝과 오픈코드를 사용하면서 리듬 위에서 펼쳐지는 아르페지오는 리프와 코드 위의 선율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블루스 기반의 록과는 차별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한국의 매스 록 밴드 코토바(Cotoba, コトバ)를 소개하고자 한다. 코토바는 됸쥬(보컬/기타), 다프네(프로듀서/기타), 세이(베이스), 민서(드럼)로 구성된 4인조 밴드로, 밴드의 이름은 일본어로 ‘언어’, ‘말'이란 의미가 있다. 코토바는 2018년 첫 EP <언어의 형태>로 데뷔해 어느덧 활동 3년 차에 접어들었다. 밴드의 행보는 밀도 높고 과감했다. 네 장의 싱글과 세 장의 EP를 발매하면서 ‘2020 Glastonbury Festival’, 일본의 ‘Music Lane Festival Okinawa 2021’에도 초청되었다. 이들은 매스 록과 포스트 록을 필두로 구축한 독창적인 문법으로 한국 밴드 씬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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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코토바의 첫 정규 앨범 <4pricøt>이 발매됐다. <4pricøt>은 밴드가 걸어온 긴 활동의 결실이다. 앨범에는 새로운 타이틀과 재녹음을 포함해 총 열한 곡이 수록되었다. 코토바는 첫 정규 앨범에 오기까지 많은 메시지를 던져왔다. <언어의 형태>는 음악의 구조적 언어를 탐구함과 동시에 악곡의 설계를 실험한 작품이다. 또한 < Loss >는 구조 속에서 펼쳐지는 감정을 표현해 ‘상실'을 노래했고, <날씨의 이름>과 <세상은 곧 끝나니까>는 밖으로 시선을 돌려 인간과 세상을 관찰하며 기후변화를 이야기했다. 코토바가 표현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음악적 향방의 총체는 <4pricøt>으로 수렴됐다. 다듬어진 수록곡으로 쌓아온 결실을 보여주며, 새로운 타이틀로 앞으로 향할 자유를 보여줬다. 이번 앨범은 밴드가 펼쳐온 작품세계를 이해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코토바는 이전 발매작을 다시 녹음하며 밴드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간다. ‘소멸의 소실'은 첫 EP <언어의 정원>의 타이틀이었다. 프로듀서 다프네는 그의 작업기에서 ‘변박에 대한 두려움을 버린 곡’이라고 말했는데, 곡의 장치로 쓰이던 변박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게 된 계기라고 이해할 수 있다. ‘소멸의 소실'은 비슷한 리프를 연주하면서도 11/8박자로 시작해 9/8박자, 5/8박자까지 변한다. 원곡은 잔잔하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위해 어쿠스틱 기타를 사용했지만 재녹음 버전에서는 밴드의 플레이가 엮이는 모습을 위해 일렉기타를 편성했다.

 

<4pricøt>은 코토바의 음악적 뿌리와 지향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Warm Salad’ 등의 인스트루멘탈 트랙은 일본 매스 록 밴드에서 받은 영향이 관찰되어 ‘토(Toe)’가 연상되는 유려한 드럼 플레이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코토바는 매스 록의 문법이었던, 과하게 멜로딕한 코드와 태핑(Tapping) 주법을 피해 가며 독자적인 문법을 찾아간다. ‘찾고 있는 것은'에서는 보컬을 제거하고 완전한 인스트루멘탈 트랙으로 향했는데, 느린 속도감은 다른 매스 록에 비해 악기가 엮이는 수 싸움을 좀 더 가깝고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4pricøt>의 타이틀인 ‘계산된 자유', ‘Kyrie’, ‘Love & Art’는 코토바가 쌓아온 길에서 좀 더 새로운 방향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앨범의 첫 트랙을 장식하는 ‘계산된 자유’는 팝에 닿아있는 코토바만의 매스 록을 보여준다. 팝에 닿아있다고 말한 이유는 코토바가 추구하던 악기 중심 구조의 반대편을 탐구했기 때문이다. 곡의 인트로는 청량하고 강렬한 사운드와 함께 안정적인 4박으로 진행되어 편안한 박자를 연출한다. 그리고 문학적인 가사와 함께 등장하는 됸쥬의 보컬은 밴드의 언어로서 새롭게 발화하고, 이전 작품들의 주제였던 상실의 세계관은 오히려 자유를 꿈꾼다고 말하며 끝난다. 그래도 곡의 초반에 구축된 팝의 문법은 점점 복잡한 층위로 변하며 코토바가 늘 보여줬던 계산된 구조를 보여준다. 4박의 리듬을 벗어나려는 기타와 베이스의 시도, 그리고 후반부에 나타나는 6박과 8박의 교차는 자유를 위한 계산의 과정이다.

 

‘Love & Art’ 또한 안정된 멜로디 파트와 계산적 구조의 이중성을 가진 곡이다. 특히 공간감이라는 변수를 추가하며 새로운 감정을 표현하는데, 강한 다이내믹과 호소력 짙은 보컬을 통해 넓어진 사운드 스케이프 안에서 격렬한 감정을 연출한다. 다른 타이틀인 ‘kyrie’는 코토바의 몇 안 되는 3분 남짓한 길이의 곡이다. 항상 4~5분 분량의 긴 호흡을 선보였던 밴드에게 짧은 호흡은 드문 시도다. ‘kyrie’의 메인 테마는 드럼과 기타가 엮어내는 폴리 리듬이다. ‘melon’과 ‘reyn’에서도 등장한 기타와 드럼이 어긋나며 교차하는 구조는 곡의 중심마다 날카롭게 등장한다. 보컬 멜로디가 바운스 리듬으로 등장하며 신선함을 연출하지만, 여전히 박자 구조와 격렬한 사운드를 곡의 중심에 두어 방향을 잡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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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pricøt>은 길었던 시간의 결실이자 장르의 바닷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앨범이다. 뚜렷해지는 보컬의 역할, 격렬해지는 악기의 다이나믹과 톤은 3년의 시간을 관통하며 그러데이션처럼 물들었다. 앞서 밝히지 않았던 앨범 제목인 ‘4pricøt’의 의미는 ‘apricot’, 살구 열매다. 대문자 알파벳 ‘A’는 숫자 4로, 소문자 ‘o’는 공집합 기호, 혹은 덴마크어 ‘ø’로 대치됐다. 살구 열매라는 소재를 선택한 이유도 있다. 프로듀서 다프네는 브런치에서 이번 앨범을 두고 ‘세상에서 받은 사랑으로 맺는 열매'라고 말했다. 음악의 수를 계산하며 언어를 탐구하는 밴드의 작품세계는 자유를 얻었다. 달콤한 과실 이후엔 어떤 모습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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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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