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없던 길’의 안내자, 닷페이스

글 입력 2022.05.1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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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가 지난 2일 해산 소식을 전했다. 닷페이스는 성평등, 환경, 장애인, 젠더 다양성 등 사회적 논의를 다루며 마이너리티의 이야기에 주목해 온 뉴미디어로, 유튜브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매스컴의 모습을 선도적으로 보여주었다. 2016년에 창립하여 6년간 닷페이스를 이끌어온 조소담 대표는 구독자 ‘닷페피플’에게 보낸 마지막 메일에서 재정적 어려움과 자원의 한계를 해산의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함께 나열된 ‘소진되는 마음’, ‘부족한 역량’ 등의 단어들은 물리적 자원의 한계만이 유일한 원인이 아님을 짐작하게 한다. 주류 언론이 잘 드러내지 않는 길을 조명하며 울려 퍼지지 않는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인 그들의 여정이 그 자체로 순탄치 않았으리라는 것을 함께 걸어온 많은 이들이 느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고마움과 더불어, 그들이 증명한 가능성을 돌아보고 이후 또 다른 여정을 이어나가야 할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을 무겁게 느낀다.

 

누군가는 기존 언론에 대항하여 등장한 뉴미디어의 현실을 되짚기도 하고, 미디어 생태계에 닥친 위기를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청년층이 기성세대에 비해 딱딱한 사회적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편견에 도전하며 중요한 논의를 다양한 매체 형식을 통해 탁월하게 다룬 상징적인 미디어였기에,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충격과 파동은 잔잔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소담 대표가 ‘슬픔과 상실감만 느끼기보다’, ‘다음을 응원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한 것처럼, 지금의 사라짐을 선명히 기억하면서도 그들이 찍은 마침표 이후 써나가야 할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적합한 인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닷페이스가 세상에 남긴 흔적을 살펴보고, 그들이 등장했다는 것과 또 사라진다는 것을 어떤 의미로 바라봐야 하는지 모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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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페이스를 처음 접한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다. 아마 여러 콘텐츠를 통해 접하다가, 2019년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n번방 사건’ 관련 취재를 통해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추적단 불꽃’ 등의 활약으로 드러나 있지 않았던 한국 사회의 디지털 성폭력 실태가 공론화되는 거대한 움직임에 닷페이스도 함께 있었다. 문제를 자극적이거나 단발적인 가십으로 소모하지 않고, 짧은 영상으로 쉽고 부담 없이 다가가는 대신 전달해야 할 내용이 많으면 콘텐츠를 나누어 연재하며 장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고자 했던 닷페이스는 당시 디지털 성폭력 문제에 관해서도 긴 호흡의 시리즈를 통해 문제의 본질을 다각적으로 탐색했다. 한두 번의 일렁임으로 멈추지 않은 커다란 파도가 나에게도 도달한 순간이었다.

 

혐오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를 쉽게 노출시키는 플랫폼과, 그 대척점에서 양질의 정보와 담론을 제공하기는커녕 불분명한 사실을 기반으로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언론에 대해 불신과 회의만이 쌓였을 당시 닷페이스를 만나며 섣부른 좌절에 부끄러워졌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변화를 위해 ‘말해지지 않은 현실’을 알리는 이들이 있었다. 닷페이스는 디지털 성폭력 외에도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매수, 여성 BJ가 처한 부당한 계약 상황, ‘다이어트 약’의 위험성 등 수많은 여성 대상 폭력과 차별의 현실을 고발하며 부조리를 무마하려 하는 세상에 맞섰다. 가려진 가해자를 지목했으며,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을 제시했고, 제도적인 변화를 이루어냈다(한겨레, ‘국회 여가위, 성매매 아동·청소년 ‘피해자로 보호’ 법안 의결‘). 내가 마주했던 것은 단지 영상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책임과 용기로 직조된 신뢰와 연대의 장이었다.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세상‘에서도 제도와 윤리라는 이름을 한 신뢰의 하한선이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이들이 있다. 닷페이스는 그들을 놓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 있어야 할 최소한의 믿음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구축했으며,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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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현실을 우리의 자리에


 

닷페이스는 정기 후원 시스템은 물론 유튜브의 구독 시스템을 활용하여 변화의 맥락을 특정 다수에게 일관적으로 제시했고 의제의 방향을 효과적으로 이끌었다. 혼자서는 어려운 변화를 뉴미디어의 특성을 활용하여 성취한 것이다. 닷페이스를 두고 뉴미디어의 한계를 논하기 전에, 뉴미디어로서 보여준 눈부신 가능성에 우선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그들은 공통분모가 없는 산발적인 입장의 사람들을 매번 하나의 논의 하에 모았다. 닷페이스의 구독자들은 각기 다른 관심사와 흥미로 채널을 구독하기 시작했지만, 전혀 다른 의제를 또한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접했다.

 

닷페이스의 취재는 문제에 관련된 사람이나 피해자를 직접 찾아가서 의견을 물으며 개인의 목소리를 취합하는 것에서 주로 시작한다. ‘할 말 많은 인터뷰’ 시리즈는 잘 드러나지 않은 노동자의 상황과 사회적 억압의 피해 현실을 인터뷰 형식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린 대표적인 사례다. 닷페이스는 해당 콘텐츠를 통해 전문 직종으로서의 사회적 인식과 존중이 소홀한 특정 노동자의 고충에 집중하면서도, 그것을 개인의 ‘애환’으로 치부하지 않고 사회적 문제와 연결하여 모두의 현실에 해당함을 알렸다. 이를테면, 요양 보호사들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개인이 자리한 열악한 처우를 밝히는 데서 시작하여 코로나19 상황에서 특히 필요성이 대두된 돌봄노동의 인식과 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메시지로 주제를 확장했다. 특정 집단이 주로 수행하거나 특정 직종에 한정된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 우리 모두의 재난과 관련되어 있으며,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현실에 적극적인 관심을 두어야 함을 겸허히 체감케 했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밀한 사연을 들려주면서도 공적 방향성을 잃지 않은 닷페이스의 방식은 각자의 현실을 모두가 해결해야 할 공론으로 다루고자 했다. 대통령 선거 기간에 대통령 후보의 자격 검증을 전문 기자나 정치 평론가 등이 아닌 각자의 의제를 가진 일반 시민을 통해 시도한 것은 이러한 닷페이스의 태도가 십분 드러난 기획이었다. 닷페이스는 여성, 비수도권 노동자, 성소수자, 청년 기후위기 활동가 등과 대통령의 담화를 마련했고, 우선순위가 밀려나고 폄하되는 문제에 관한 실질적인 정책과 공약을 촉구했다. ‘정치 혐오’의 위험에 있었던 시민들에게 계속해서 후보의 정치를 알렸고, 그것이 나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일상의 목소리로 설득한 것이다. 최대한 많은 현실이 안전하게 자리할 수 있도록 닷페이스는 사회에게, 정치인에게, 시민에게 쉬지 않고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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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없던 길을 만들지


 

닷페이스가 기획한 ‘세계 최초 온라인 퀴어퍼레이드’는 아마 뉴미디어의 흐름 속에서도 의미 있게 기억될 콘텐츠일 것이다. 정기적으로 열리던 퀴어문화축제가 팬데믹으로 인해 잠정 중단되자, 닷페이스는 퀴어퍼레이드 행진이 이루어지는 거리 위 캐릭터의 모습을 직접 꾸며서 마치 행진에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연출한 이미지를 SNS에 공유할 수 있는 사이트를 개설했다. 여기엔 무려 86,225명의 유저가 참여하여 SNS에는 유례없는 행진 대열이 펼쳐졌다. SNS의 광범위성과 시공간의 느슨한 제약, 너르게 이루어지는 연대의 시너지를 활용한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는 사라진 축제의 장을 다시금 마련했고 서로의 여전한 존재를 확인하게 했다.

 

나지 않은 길에서 방치되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된 활로를 제공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지만,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내몰고 배제하는 사회에서 닷페이스는 ‘없던 길’의 길라잡이가 되어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안녕히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이야기했다. 해산 소식을 밝히고 난 후 최근 업로드 한 ‘코로나 사망자 통계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 기획은 코로나로 인한 증상으로 숨졌으나 코로나 사망자로 인정되지 못한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일상으로의 복귀에 들뜬 분위기 속에서도, 닷페이스는 제도와 법의 구멍 사이로 빠져나간 인도주의의 원칙을 직시했다. 닷페이스는 이처럼 다수의 편리와 국가의 ‘대의’를 위해 간과되는 삶을 포괄하여 촘촘한 관계망을 구축하고자 했고, 누구 하나 쉽게 튕겨 나가지 않는 견고한 세상을 꿈꿨다. 다양한 지평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그곳에는 길이 났고 우리는 더욱 다양한 너비의 지평에 설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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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페이스가 남긴 발자국 그다음을 걸어야 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필요한 논의를 이끌어가며 주류 언론이 하지 못한 시도로 변화를 이룩하고 있는 미디어들이 사라짐 없이 지속되기를 바라며 무엇을 바꿔야 할까? 닷페이스가 당면한 한계와 부족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들을 둘러싼 ‘잘못된’ 환경을 알고 있다. 기득권을 대변하려 사실을 곡해하는 언론이 강세하고, 시민의 삶에 주목하여 모두의 자유를 좇는 미디어가 오히려 위험을 끌어안는 작금의 상황은 그 자체로 사회에 울리는 적신호처럼 보인다. 권력에 잠식되어 정작 필요한 소리가 오가지 못하는 토론장에서 좋은 결론이 나올 리 만무하다.

 

기득권이 약자를 억압할 때 사용하는 ‘여론전’의 매개로 전락하며 신뢰를 잃은 언론이 날카로운 견제를 받고, 차별과 폭력에 맞서 시민과 약자를 대변하는 이들이 안전하게 자리할 수 있는 현실을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혐오로 유지되는 매체가 사람과 사람을 잇지 않기를 바란다. 공적 환경에서의 차별이 환영받지 못하고 수그러져야 할 필요를 느끼며, 닷페이스 역시 힘 있게 외쳤던 차별금지법을 떠올린다. 척박해지는 사회에 끝까지 평등의 원칙을 되새겼던 그들의 강한 움직임이 이제는 모두를 위해 명문화되고 보전되기를 원한다. 모든 이들의 자유와 권리는 유효하며, 이를 위협하는 혐오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기본 전제 위에서 다양한 미디어가 다양한 삶과 공존하기를 바란다. 그들이 이끌었던 새로운 길 위에서 그들이 꿈꿨던 세상을 여전히 향하는 것, 그것이 오랜 안내자이자 동행자를 가장 아쉬움 없이 배웅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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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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