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장기하, 근데 이제 공중부양을 곁들인 [음악]

글 입력 2022.04.15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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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돌아왔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2008년 싱글 앨범 <싸구려 커피>로 데뷔, 인디밴드로서는 꽤 큰 성공을 거두고 2018년 정규 5집 mono를 마지막으로 데뷔 10년만에 밴드의 해체를 선언했다.  그 후 장기하는 3년의 공백을 가졌고, 솔로 가수 장기하로서의 첫 앨범 <공중부양>으로 돌아왔다. 


나는 늘 그의 독특한 음악을 사랑했고, “장얼” 시절에도 보통은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와이어를 달고 공중에서 이번 타이틀 ‘부럽지가 않어’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서는 이제 입을 벌리고 박수를 치게 됐다. 사실 그의 신보 소식을 듣기 전에 어느 날 유튜브에서 스탠딩 마이크를 들고 하늘을 날고 있는 그의 모습을 먼저 보게 되었다. 아마 나와 같은 경험을 한 분들은 장기하는 어쩌다가 날면서 노래를 하게 된 걸까? 하고 당혹스러울 테다. 

 

*

 

그의 이번 앨범은 <공중부양>이다. 앨범 이름의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다 만들어놓고 보니 대체로 뭔가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일단 가사가 그랬다. 뭘 잘못한 건지 모르고, 얼마나 갈지 모르고, 부러움을 모르고, 가만 있으면 그만이고, 결국 다 떠나보낸 사람의 이야기. 디딜 땅을 잃은 채 둥둥 뜬 삶.

 

또 한 가지, 이 음반엔 베이스가 없다. 처음부터 안 넣으려던 건 아니었는데, 일단 내 목소리부터 쭉 녹음하고 더 필요한 최소한의 소리만 요것저것 추가해서 만들다 보니 다섯 곡 모두 베이스 없는 음악이 되어버렸다. 디딜 땅을 잃은 채 둥둥 뜬 음악.”


*

 

이번 앨범은 현대미술 같다는 평을 받기도 하는데, 그가 개념미술에서 받은 영향이 드러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쉬면서 독일 베를린에 머물 때 미술관에 다니면서 개념미술에 조금 관심을 갖게 됐는데 은연중에 영향이 제게 스며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인터뷰 중

 

 

개념미술이란 물질이나 오브제가 아닌 ”개념“을 재료로 하는 미술로, 작품 자체보다는 작품에 담긴 예술가의 개념이나 아이디어를 더 중요시 하는 예술사조이다.


 

”개념예술은 무엇보다도 개념을 재료로 하는 예술이다. 음악의 재료가 소리인 것처럼 말이다. 개념들은 언어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개념예술은 언어로 재료로 하는 예술행위라고 할 수 있다.“

 

- 헨리 플린트

 

 

장기하의 이번 음악은 헨리 플린트가 정의하는 개념예술의 의미와 맞닿아있다. 늘 말 자체에 담긴 움직임을 음악적으로 표현했던 그는 이번 앨범에서 말이 곧 음악임을 보여준다. 베이스를 과감하게 없애버리고 “대중가요로 인식될 수 있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최소한의 소리”만을 담아낸 음악은 그의 목소리 자체와 그가 하고 있는 말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음악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말과 노래의 관계는 뭘까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계속 생각해왔어요. 말과 노래는 원래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죠.”

 

 

그의 노래는 늘 그랬지만 이번 노래는 더더욱 눈을 감고 들어도 그 가사가 선명히 뇌리에 박힌다. <부럽지도 않어>의 뮤비는 배우도 스토리도 립싱크도 없다. 그럼으로써 그의 음악의 핵심이자 본질인 말 자체에 집중하게 만든다. 정말 작정하고 모든 거추장스러운 장식은 덜어내려 한 것 같다.

 

 


 

 

많은 걸 덜어냈지만 그 결과는 전혀 가볍지 않으며, 오히려 묵직한 잔상을 남긴다. 그가 하고 싶은 음악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

 

*

 

이번 앨범의 트랙들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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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잘못한 걸까요


 

아무 이유 없이도, 고통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런 경우에도, 고통의 이유는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 음반 소개

 

 

트랙 설명마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 트랙은 주로 이별과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담았던 장기하와 얼굴들의 4집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를 떠올리게 한다.


 

“만약 내가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달랐다면 뭐라도 바뀌었을까 하는 생각 언제쯤 그만둘 수 있을까요.”

 

- 가사 중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만한 생각이다. 노래에서 뜻하는 듯한 연인이 아니더라도, 모든 관계에서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기에 더욱더 가사에 공감하게 되기도 하고, 가사의 화자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 라고 소리쳐 말하고 싶기도 하다. 그만 자책하고 털고 일어나라고. 아 그건 사실 나에게 해주었어야 했던 이야기였나.

 

 

얼마나 가겠어

 

 

어느 날 문득, 내가 살아봐야 얼마나 살아봤다고 세상 다 살아본 사람처럼 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를 여러 번 곱씹어보아도, “얼마나 가겠어”의 주어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주어는 각자에게 있어 무엇이든 될 수 있겠다. 연애도, 슬픔도, 기쁨도, 내가 부러워하는 저 사람의 통장 잔고도. 이 모든 걸 담아내는 내 인생도 얼마나 가겠나. 결국은 다 한 순간임을, 장기하답게 툭툭, 담백하게 던지듯 말해준다. 그냥 이 순간을 잘 살아내기나 하자고.

 

 

“그럼 언제 죽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따지면 너 미리 죽을래? 어차피 죽을 거니깐 뭐 그만 살래?”

 

 

부럽지가 않어


 

모든 자랑을 다 이기는 최고의 자랑은 뭘까? 자랑계의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는? 아하, 부럽지가 않다는 자랑이겠군!

 

 

“야 너네 자랑하고 싶은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장기하 특유의 말하는 듯한 첫 가사에 왠지 웃음이 난다. 그러나 금방 가사에 담긴 의미에 집중하게 된다.


 

“나는 과연 니 덕분에 행복할까 내가 더 많이 가져서 만족할까 

아니지 세상에는 천만원을 가진 놈도 있지

난 그놈을 부러워하는 거야”

 

 

뛰는 놈 위에는 나는 놈이 있고, 욕심과 부러움에는 끝이 없다. 내가 이재용만큼 부자가 된다면? 그 다음엔 마크 주커버그나 빌 게이츠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까. 이렇게 배 아파하며 “쟤보다 잘되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는 우리에게 장기하가 펀치를 날린다. 흥, 난 한 개도 안 부러워. 그러니까 이런 내가 부럽지?라고.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부러우니까....자랑을......에 그러니까..


 

가만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

 

 

스스로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가사로 꼭 한 번 쓰고 싶었다. 이 문장을 쓰고, 두 번째 줄을 쓰려는 순간, 나는 또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다.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

 

 

제목이 가사의 전부인 곡이며, 이번 앨범에서 가장 독특하고 실험적인 곡이라 할 수 있겠다. 불필요한 행동은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이 앨범의 제작 의도를 관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트랙의 길이는 6분이다. 일렉트로닉한 사운드에 소리꾼 이자람의 심청가가 조각조각 더해지고, 그 사이사이에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라는 똑같은 가사가 반복된다.

 

요즈음 대중음악의 길이는 거의 3분 정도이다. 그런 우리에게 6분의 곡의 길이는 상당히 길다. 아니 “너무 길게” 느껴진다. 뭐야 이 노래는 6분 동안 다른 가사도 없이 이 말만 반복하는거야? 하면서 노래를 끌라치면,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 라고 말하는 그에게 붙잡히고 만다. 6분 동안만 좀 가만히 있어봐. 그것도 못해?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밴드를 마무리한 뒤부터 이 음반을 만들기 시작할 무렵까지 이 년 동안 파주에서 살았다. 자유롭다면 자유롭게, 한가롭다면 한가롭게, 또 외롭다면 외롭게 지냈다. 이 노래를 부르거나 들을 때면 그때 집에 가만 앉아 쳐다보던 맑은 하늘이 마음속에 그려진다. 그야말로 붕 뜬 채 흐르던 나날들이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 그가 말하는 ‘붕 뜬 느낌’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다. 둥둥 떠다니는 음들과 함께 부유하며 가사를 음미하게 된다. 우리는 많은걸 떠나보내야만 하지만, 그래도 이런 음악 안에서 나의 마음을 끌어안은 채 위로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오월이 시작되는 날 이 노래를 듣고 싶을 것 같다.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파란 하늘에 눈이 시린 오늘 마침내

오월이

오랜만에 우리집 현관문을 

탁탁탁탁 두드리네”

 

 


김민정 에디터.jpg

 

 

[김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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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박무아
    • 아이유의 전남친은 당연히 아무도 안 부럽겠지? 라는 말을 하고 싶네요 ㅎㅎ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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