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판타지가 그리는 '종말'이 우리에게 건네는 경고 [드라마/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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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을 거치며 환경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미래학자 제러미 레프킨은 코로나19(COVID-19)로 인한 팬데믹의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꼽는다. 그는 특히 팬데믹과 관련된 기후변화의 원인을 물순환 교란으로 인한 생태계 붕괴, 인간의 야생생물 서식지 파괴, 기후재난으로 인한 야생생물들의 이주, 이 세 가지로 나눈다. 그 중 물순환 교란은 지구 온난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지구가 1도씩 뜨거워질 때마다 대기는 7%씩 더 많은 강수량을 빨아들입니다.
열은 구름이 지표에서 강수를 더 빨리 취하도록 몰아칩니다.
그래서 통제가 어려운 물난리를 겪는 겁니다.
그 거칠고 극단적인 현상 속에 가뭄과 산불도 일어납니다.”
제레미 레프킨*
이처럼 지구온난화는 강수에도 영향을 미치고,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재난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지구온난화로 해류대순환의 기능이 위협받으며, 지구가 자체적으로 온도를 조절하기 어려워지고 이상기후가 심화되는 현상이 반복된다.
해류는 바닷물의 밀도와 온도 차이에 의해 순환하고, 이는 지구의 기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 녹은 빙하에서 유입된 담수는 더 차갑고 밀도가 높아야 할 바닷물의 염도와 밀도를 낮추고, 따뜻한 해류가 기존의 차가운 해류 쪽으로 움직이기 어려워진다. 이로 인해 지구 전체의 온도 조절이 어려워져 이상 기후가 나타나고, 물 공급에도 차질이 생기는 일이 반복된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구온난화와 이상 기후가 이어지는 어느 날, 비가 멈추지 않고 계속 오거나, 영원히 비가 오지 않는 세상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판타지가 그리는 '종말'이 우리에게 건네는 경고
대만 드라마 <무신지지불하우 : 신이 없는 땅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환경 문제로 인해 신이 축복을 거둬가면서 원인 모를 전염병이 퍼지고, 비가 오지 않는 세상을 마주한 사람들을 그린다. 이 드라마는 대만 원주민인 ‘아미족’의 정령신화에서 영감을 얻어 ‘카카라얀’이라는 창조신과 ‘카와스’라 불리는 신들이 존재하는 세상을 가정한다. 드라마 속에서 '카와스'는 만물에 깃든 정령이자 자신의 자리에서 인간을 축복하는 신의 역할을 한다.
드라마는 이렇게 판타지 요소를 더하여 인간이 자초한 ‘종말’을 보여주면서 오히려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인간을 둘러싼 자연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하지만 진짜 세상의 종말은 여러분 생각처럼 그렇게 소란스럽지 않을 거야.
오히려 아주 고요할 걸? 지금까지 지구는 세 번의 대멸종을 겪었는데
모두 아주 조용히 진행됐지. 어쩌면 지금도 종말이 진행중일 수도 있어.
여러분이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으니 종말은 멀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보여도 무시하고 있는 거지."
‘카와스’ 중에 하나인 지혜의 신 ‘리푸후이’는 대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의 말처럼, 드라마 속 종말은 전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날에서 시작한다. 유난히 일찍 시작된 장마가 이어지던 어느 날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비가 오던 날이었다.
드라마 속 세계관에서 비가 내리는 것은 카카라얀의 대행자이자 비의 신 ‘오라드’가 주관하는데, 그는 카카라얀의 명령에 따라 모든 카와스를 철수시키는 일을 돕고, 자신도 떠날 준비를 한다. 하지만 마지막 비가 내리는 날, 수호신으로서 자신이 지켜왔던 인간 ‘셰텐디’가 죽어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처음으로 카카라얀의 뜻을 거스르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는 종말로 다가가는 세상에 남아 셰텐디의 곁을 지킨다.
신의 축복이자 선물인 ‘카와스’가 없어진 세상에는 불행이 찾아오기 시작하는데, 인간이 파괴한 강에서 태어난 존재에 의해 ‘백조증’이라는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병으로 의식을 잃고 의료 시스템은 마비된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이제는 낯설지 않은 풍경들을 드라마 속에서 볼 수 있었다. 비록 판타지에서 시작한 이야기였지만, 드라마 속 장면들과 이야기는 분명히 우리의 현실을 비추고 있었다.
독일의 종 보호 활동가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디르크 슈테펜스’는 그의 책 『인간의 종말』에서 우리가 현재 여섯 번째 대멸종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멸종은 진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현재 진행되는 종의 멸종은 정상적인 진화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유엔 세계생물다양성위원회의 추정에 따르면 하루에 150종이 멸종하고, 21세기 말까지 100만 종이 멸종할 위험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생각보다 많은 존재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실제로 멸종의 속도가 지금의 수준으로 유지될지, 정말로 인간의 종말이 가깝게 다가오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제는 위기가 우리 앞에 있음을 점점 실감하게 된다. 약 십 년 전에 환경 교육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환경은 ‘미래 세대에게 빌려온 것이기에’ 아끼고 보전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이제는 환경 위기가 미래 세대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우리에게 닥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드라마는 신화의 방식으로 ‘종말’을 은유한다. 이는 인간이 그려낸 상상력의 산물이자 '판타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꼭 완전히 같은 형태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판타지라 여겼던 일들이 언제 현실이 될지, 환경이 인류에게 계속해서 보내고 있는 경고가 언제 ‘마지막 경고’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몇 년 전에는 전혀 예상 못한 현실 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세상의 ‘종말’이 스쳐가는 나날,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
"처음부터 그랬다. 너희가 아무것도 내놓지 않았을 때도
난 이미 너희에게 온 세상을 주었다. 하지만 너희는 이 축복을 소중히 여기기는커녕 이 좋은 것들을 거래의 대가로 삼았지.
그렇게 얻은 것이 진정 너희가 원하던 것이었느냐? (...)
너도 생각해 본 적 없겠지. 너보다 먼저 날 향해
자신들을 해치는 인간을 막아 달라고 빌던 수많은 생명이 있었단 걸."
"이 모든 걸 보여주시는 이유가 지금 일어난 일들은 우리가 자초했다는 걸
알려주시는 거에요? 그럼 제 소원을 안 들어주실 건가요?"
"네가 알았으면 좋겠구나. 넌 나와 거래할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나는 네가 필요한 건 모두 아낌없이 줬거든.
선택해야 하는 자는 내가 아니라 너다."
드라마에서 세상의 종말을 멈춰 달라고 부탁하러 간 셰텐디에게 카카라얀은 인간이 파괴한 자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카카라얀은 자신은 전지전능하기에 누구도 선택할 수 없지만, 오히려 인간인 셰텐디는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언젠지 모를 아주 오래 전부터 자연은 우리에게 그저 주어진 것이었다. 그때부터 그것을 어떻게 대하고 다룰 지는 인간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우리 앞에 여전히 선택지들이 놓여 있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직 남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축복은 대가가 필요 없지만 언제든 카카라얀이 거둬갈 수 있어. 기회는 달라.
대가를 좀 치러야 하지만 네가 손에 꼭 쥐고만 있다면 누구도 뺏을 수 없어.”
드라마 속, 스스로 인간을 축복하는 카와스에서 인간을 해치는 ‘카리야’가 된 구름과 거짓말의 신 ‘토엠’은 자신이 축복이 아닌 기회를 주는 존재라고 말한다.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밝혀지는 토엠의 정체와 상관없이 이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처음 자연은 아무런 대가 없이 주어진 것이었지만, 인간은 자연에서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노력했고 이를 위해 선택해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인간은 축복을 기회로 바꾸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 노력의 방향을 바꾸어야 할 때이다. 인간은 작은 편리를 누리는 기회보다, 우리가 받은 축복을 지키고 같은 축복을 공유하는 더 많은 존재들과 공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위한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제로웨이스트의 생활방식이나 비거니즘의 실천이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기업에서도 이에 발맞추어 환경 이슈에 대한 고려와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환경을 위한 제도의 도입과 환경을 위해 세계적으로 연대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비록 종말의 시계를 늦추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인류에게는 아직 더 오래 축복을 누리기 위한 기회를 만들어 갈 힘이 남아 있다고 믿는다.
드라마의 마지막화 부제는 ‘세상의 종말이 스쳐가는 나날’이다. 드라마는 우리가 마주하는 오늘이 어쩌면 ‘세상의 종말이 스쳐가는 나날’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종말이 스쳐 지나갔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 있지만, 그것에 체념하거나 안도하기보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과 환경을 조금이라도 더 지키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 선택은 이 땅에 함께 살아가는 다른 생명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무엇보다 우리 인간 자신을 위한 선택이다.
*출처 : 안희경, “제러미 리프킨, 코로나는 기후변화가 낳은 펜데믹···함께 해결 안하면 같이 무너져”, <경향신문>, 2020.5.14.
[김효중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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