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4D로 재생되는 한국판 고양이 소설 - 성은이 냥극하옵니다

글 입력 2024.01.0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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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소설은 익숙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명한 명작들로 남아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고양이 소설의 명성을 이을 소설이 등장했다. 다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아포칼립스, 나쓰메 소세키는 풍자를 배경으로 했다면, 백승화 작가는 코믹을 선택했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발랄한 퓨전 사극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면서도 시대상의 애환과 부패를 녹여 추리소설의 틀을 가졌으니, 술술 읽히는 책이었다.

 



이 책, 고양이를 정말 귀여워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동물과 그렇게 친밀한 편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조금 무서워하기도 했고, 키워본 적이 없어서 더욱이 친해질 기회가 별로 없었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주변 친구들이 강아지, 고양이를 키우며 그나마 몇몇 아이들과만 정을 붙일 수 있었다. 물론 특별히 정을 나눈 고양이도 있어, 종종 생각날 때도 있었다. 그러나 키우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보고 싶다는, 집사의 마음보다는 집사 친구의 마음에 그쳤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 고양이를 정말 좋아하는 마음이 느껴져 나도 냥집사의 마음을 십분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가 고양이라는 존재 자체를 귀여워하는 것이 여실히 느껴진다. 귀여워하면 끝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 책은 고양이가 귀엽다는 것을 대전제로 깔고 간다. 그래서 처음부터 왕도 바로 고양이를 ‘냥줍’하여 ‘금손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이야기의 진행에서도 곳곳에 보인다.

 

 

간혹 여인네들이 한데 모여 수군대길래 무슨 중요한 얘기라도 하는가 싶어 다가가 보면, 새끼 고양이의 말랑말랑하고 분홍분홍한 발바닥을 찬양하고 있질 않나, 사자 같은 털을 가진 서역의 고양이 목격담에 관해 치열한 토론을 하고 있질 않나.

 

p82

 


조선시대에도 고양이를 사랑하는 모임 ‘묘사모’가 있었을 거라는 귀여운 퓨전 상상. 심지어 고양이를 묘사하는 내용이 너무나 애묘인의 마음 그 자체다. 글만 읽는데도 모든 집사들이 사랑하는 고양이의 발바닥 젤리와 꾹꾹이가 느껴지는 듯하여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고양이와 유기아를 돌봐주어 ‘묘마마’라는 불리는 여인도 등장한다. 고양이 묘(猫)에 엄마를 뜻하는 ‘마마(mama)’라니, 이름이 참 현대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묘마마’는 실제로 역사에 기록된 칭호였다. 고양이 마님이라는 뜻의 ‘묘마마(猫媽媽)’였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캣맘(Cat Mom)이 있었다니, 진짜 조선이 상상보다 더 트렌디하다니. 그렇게 생각하니 진짜 묘사모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금손은 어떠한가?”

“여전히 귀엽습니다요.”

 

p170

 

 

“본래 약조한 대로 죽이지 않고, 몰래 데리고 있다는 건… 임금에게 몸값을 받을 요량이오?”

“몸값? 이놈의 고양이가 천금 만금어치라도 된다니?”

“그럼 도대체, 왜?!”

노부부의 대답은 단순하고 확실했다.

“귀엽잖슴.”

 

p185

 


결정적인 비밀이나 사실이 밝혀질 때도 ‘고양이가 귀엽다’는 공식으로 밀고 나간다. 세자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으면서도 고양이를 좋아했던 이유도 ‘귀여워서’, 노부부가 고양이를 죽이지 않고 키운 이유도 ‘귀여워서’. 정말 고양이를 귀여워하는 작가가 아니고서는 상상하지 못할 내용의 흐름이다.


어찌 보면 논리적이지 않은 흐름일 수도 있다. 이야기의 흐름에서 정말 중요했던 행동의 이유가 그저 ‘고양이가 귀여워서’라니. 그러나 애묘인들에게는 이보다 더 납득되는 이유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적인 이야기의 흐름에서 밝혀지는 사실이 ‘고양이는 귀엽다’라는 내용이라니. 이 구성 자체가 정말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고서는 쓰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재미'있다!


 

나는 소설을 읽으며 웃음을 터뜨리기보다는 눈물을 흘릴 때가 압도적으로 많다. 어쩌면 그것이 책이자 소설의 재미라고 생각한다. 깊고 자세한 묘사로 감정선을 잘 따라갈 수 있고, 더 깊이 몰입할 수 있는 것. 나만의 상상을 더 해 각자 고유의 간접경험으로 바꾸어 몰입하고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이 책 자체의 재미이기에, 소설을 읽을 때 진짜 재미나 웃음을 기대하고 읽을 때는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소설을 읽으며 진짜 웃음이 나오면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그 작가의 팬이 되곤 한다. 내가 처음으로 느꼈던 것이 <완득이>. 한국 작가의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깔깔 웃었고, 그 뒤로 김려령 작가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두 번째가 정세랑 작가의 <이만큼 가까이>. 정세랑 작가는 부연 설명 없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요즘 대세 작가이자, 읽을 때마다 눈물과 웃음을 함께 느낀다.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이 소설이다. 백승화 작가의 유머 코드는 초반부부터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변상벽이 변빈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니라 적서 차별이 행해질 때마다 변빈이 미안하다며 하는 말 때문이었다.

“나만 양반이라 미안해.”

차라리 욕이 나았다.

 

p39

 

 

서자인 동생에게 “나만 양반이라 미안해.”라고 말하는 적자 형이라니. ‘차라리 욕이 나았다’라는 말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단락 덕분에 이 소설의 방향을 초반부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슬픔도 웃음으로 승화시킨 책이라는 것을 말이다. 무겁게 다가가기보다는 유쾌하게 풀어내며, 그러나 본질을 잃지 않는 명랑함이 좋았다.


백승화 작가 특유의 이런 발랄함과 유쾌함은 특히 심각한 상황에서 줄곧 사용되고는 한다. 이후에 음모를 꾸민 자에게 거짓 밀서를 넣어 놓고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기다리는 긴장되는 상황에서도, 뜬금없는 개그가 나온다.


 

[← 오른편을 보시오]

무심코 화살표를 따라 돌아보았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오른편 왼편도 모르는가?”

아뿔싸!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변빈의 머리에 검은 천이 씌워졌다.

 

p147

 


분명 우리 편인 사람이 머리에 검은 천이 씌워지고 어딘가로 끌려가는, 심각한 상황임에도 그리 걱정되지 않는다. 단순하지만 직관적이고, 유치하지만 쉬운 개그를 통해 한시름 마음을 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직선적인 개그는 시도했을 때 웃기지 않으면 낭패인데, 글만으로도 웃겨서 좋았다. 특히 문장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나도 같이 왼쪽을 돌아봤다가 아차! 싶어지는 몰입감을 느낄 수 있어 흥미로웠다.


 

“오해는 마시오! 기분이 좋아서 그러는 거라 하니!”

개박하에 잔뜩 취한 호랑이가 서창집에게 몸을 마구 비벼 댔다. 서창집은 실신하고야 말았다.

 

p205

 


놀랍게도 모든 비밀이 풀리고 최대 빌런이 처치당하는 장면이다. 나는 호랑이가 나와 결국 호랑이에게 물어뜯기는 권선징악의 끝일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호랑이가 나와도 사람이 죽지 않는 이야기라니. 심지어 그 호랑이가 사람이 좋아 큰 몸을 고양이 마냥 비비고 있을 장면이 떠오르니 웃음을 참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품이 영화라면, 가족이 모두 함께 웃으며 볼 수 있는 전체 연령가가 아닐지 생각했다. 역사 공부는 덤.




4D로 재생되는 소설



이 소설은 술술 읽히는 것이 제맛이었다. 권법 같은 몇몇 행동 동작을 묘사할 때 빼고는 대체로 눈에 선연히 그려지는 것이 이 소설의 장점이었는데, 실제로 작가의 말을 보니 원래 영화 시나리오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읽으며 최근 한 드라마가 떠올랐다. 조선시대에 다시 관직을 찾기 위해 협력하다가 거대한 음모를 마주하는 <혼례대첩>. 두 주인공이 협력하게 되는 과정, 남자 주인공에게 작지만, 웃긴 조력자가 있는 것 등 공통점이 많았다. 확실히 요즘 퓨전 사극의 인기가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 소설을 다 읽고 더 좋았던 것은 백승화 작가의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모든 비밀의 근원이 고양이가 귀여워서 때문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오히려 이렇게 좋아하고 귀여워하는 것에 대해 열렬히 쓸 수 있었던 백승화 작가의 진심 어린 애정이 느껴져서 더욱 이 책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길 수 없다고 하지 않나. 시대상, 슬픔, 음모를 모두 웃음으로 승화한 백승화 작가의 <성은이 냥극하옵니다>를 드라마에서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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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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