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선함'이라는 원칙 [도서/문학]

<디즈니만이 하는 것> - 로버트 아이거
글 입력 2024.01.11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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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는 리더인가요? Is CEO a leader?

선생님이 안경을 매만지며 질문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Can be.

침묵을 깨고 그는 대답했다.

 

정답보다도 이 짧은 시간의 침묵은 어디로부터 기인한 것인지, 그것이 더 궁금했다. 어째서 누구도 선뜻 “그렇다”거나, “아니다”라거나 확언하지 못했나? 결국 터져나온 대답조차도 애매모호했으므로, 이것에 대한 선생님의 판단을 기다렸다.

 

네, 맞아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어요. Yes. Right.

어떠한 하나의 범주에 종속될 수 있는 정답을 원했던 나를 포함한 다른 학생들은 여전히 침묵 속에 있었다.

 

제 말은, 리더일 수도, 매니저일 수도 있다는 거죠. He can be a leader or a manager.

 


 

 

최근에 많은 선임의 군상을 수집하게 되었다. 그 중 한 명은 뛰어난 기술자였다. 그는 직설적인 그의 소통방식이 옳다고 자신했다. 나도 돌려 말하지 않는 화법을 가졌으므로 꽤나 잘 맞을 것처럼 보였으나, 둘의 대화는 대부분이 엇나갔다. 그는 나의 기술적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가 자신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었다. 그는 본인의 판단에 즉각적으로 반응했고, 말과 행동으로 옮겼으므로 효율성이 높은 것에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반면, 그의 기준에 부합한 것, 그 외적인 것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나는 하릴없이 대기했고 그의 능력을 믿는 것과는 별개로 그 사람 자체에 대한 신뢰가 높을 수는 없었다.

 

반면, 꽤 직설적인 또 다른 한 명의 선임과의 대화는 매우 즐거웠다. 그가 앞의 선임과 달리 대부분의 영역에서 나의 가능성을 믿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역시도 내가 부족한 부분을 진단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나의 말과 그의 말이 섞여 논리를 완성해내는 회의가 이어졌다. “당신의 의견에 설득당했다.”라는 말이 내가 들을 수 있었던 최고의 칭찬이었는데, 이로 인해 나는 그를 ‘설득’하기 위해 더 많은 아이디어와 함께 근거들을 모아갔고, 우리는 처음의 계획보다도 더 많은 일들을 함께 처리했다. 나는 그를 신뢰하고, 그가 신뢰하는 나를 신뢰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말을 이었다.

매니저는 전체적인 프로젝트를 관리하죠. A manager manages things to work out well.

리더도 같은 일을 하구요. A leader also manages things to work out well.

다른 점이 있다면, 리더는 사람들이 따른다는 거죠. But a leader has a bunch of followers.

 


 

 

나는 앞으로도 후자의 선임을 따르기로 했다. 한 사람의 의견만으로 전자는 매니저이며, 후자는 리더라고 정의 내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모두가 후자를 택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조직에 소속된 두 사람 모두 나를 업무효율성을 높여야 하는 ‘도구’로 가치를 매기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므로 한 사람은 나를 ‘인간적으로’ 대우했기 때문이라는 기준도 적용시킬 수 없다. 다만, 본인 개인의 성과에만 과도하게 집중한 한 명의 사고체계는 나에게 여과없이 드러나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디즈니가 지금의 마블을 인수해서 마블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바꿔 놓는다면, 이 세상에 그것만큼 어리석은 짓거리는 없을 겁니다. - 로버트 아이거
 

 

로버트 아이거는 디즈니의 CEO를 맡아 픽사, 마블, 21세기 폭스 등을 인수해 디즈니월드는 이례적으로 확장시켜,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경영자 중 한 명이다. CEO 취임 직후 진행한 픽사의 인수과정이 문제가 되었더라면, 그 이후의 대대적 기업 인수과정에 대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로버트 아이거에 대해 처음 접한 분들께 ‘몸집 불리기’가 유일한 목적이라고 성급하게 판단하기를 멈추어 달라고 요청드리고 싶다. 특히 픽사 인수 건은 디즈니컴퍼니 내부를 포함해 모두의 반대를 무릎쓰고 추진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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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앨런 아이거(Robert Allen Iger, 월트디즈니 CEO)

 

 

당시 대중이 제일 궁금했던 질문은 “픽사가 왜?”, “(픽사의 CEO였던)스티브 잡스가 왜?”, 이 두가지였다. 특히 로버트 아이거가 디즈니의 CEO로 취임하기 이전에 픽사와 디즈니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무엇보다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업의 CEO들이 잘 굴러가는 회사의 최종결정권을 제 손으로 넘기겠다는 점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편, 로버트 아이거는 각 인수 후보 기업의 CEO 뿐만 아니라, 디즈니컴퍼니의 이사회들을 설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전혀 순탄하지 않았던 이 여정의 목적은 금전적 파급효과는 물론, 각 기업들의 조직 문화가 경직된 디즈니컴퍼니에 미칠 무형적 영향에의 투자였다. 바로 이 점이 나의 업무적 기능에만 집중했던 선임이 나의 리더가 아닌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나는 꽤나 어떠한 조직의 부속품이 되기를 희망하는 편인데,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을 끌어내어 줄 잘 짜여진 환경을 찾는 것이지, 내가 퍼포먼스를 잘 낼 수 있다고 보장된 어떤 일을 반복하면 되는 벌집을 찾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꿀벌2478호가 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개성’이라느니, ‘특권’이라느니, ‘자아’, 등등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가는 것인데, 이 욕구를 무시하는 것은 (설사 정말로 그들이 꿀벌이 맞다고 해도) 그들을 100% 활용하는 효과성 있는 방안은 아니다. 지금 당장의 효율성은 보장되겠으나, 나의 사례만 보아도 그에 대한 반감이 꽤나 많이 엿보이니, happily ever after(그 뒤로도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매니저로서 단순히 일손이 필요했던 것이라면 다를 수 있겠지만.

 

 
이따금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당신이 최대주주이니 이런 부탁을 안 할 수가 없군요.” 그럴 때면 그는 항상 이렇게 대꾸했다. “나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그건 모욕이거든요. 난 그저 좋은 친구일 뿐이에요.” - 로버트 아이거와 스티브 잡스의 대화 中
 

 

서로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되어 인수합병이 이루어졌고, 로버트 아이거는 ‘전쟁에서의 승리!’ 전략을 취한 것이 아니라 인적자원까지 온전히 흡수해 디즈니의 새로운 전성기를 그려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의 성취에 기반하여 “결국 최종적인 계약의 성사 여부는 매번 인간적인 요소에 좌우되었다. 인간적인 진실성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얘기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선함’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끊임없는 고민을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결국 이기는 것은 선함이기 때문에’, ‘도덕과 법과 같은 규율로 정해져 있는 것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등 많은 이야기들이 그 이유로 논의가 되고 있다. ‘선한 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가치판단 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사람들이 선한 것에 끌리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선함’이란, 사전적 의미로야 “사회 규범, 도덕에 어긋남이 없이 옳고 바르다.” 따위의 뜻이지만 사실 '나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적 확신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심리적 확신은 종종 진심으로부터 기인한다. (다수의 심리학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위험회피와 관련된 본능으로 진심을 구별해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앞전의 선임에게 끌리지 않았다. 복기해보자면, 나는 그가 은연중에 드러낸 진심이 불편했다.

 

나는 세상에서 ‘착한 사람’이라고 묶는 집단에 속한다. (건조하게 나의 개인 특질이 소속된 군집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다시 한 번, 나는 착하고 선한 것이 옳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선하게 행동하는 것에는 내가 보고 자라온 것이 그것인 이유가 크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사회적인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왔다. 착하게 살면서도 그 보상에 대한 기대치는 없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매번 소속된 집단에서 나오게 될 때마다, 생일 때마다, 축하할 일이 있을 때마다 유별나게 인사와 선물들을 많이 받곤 한다.

 

또한 그 대가로 세상이 나에게 호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내가 받는 호의는 비단 내가 수집하는 사랑의 총량 뿐만이 아니기 때문에 로버트 아이거가 이야기한 ‘인간적인 진실성’에 대한 동의의 의미로 선함에서 비롯된 진심을 계속해서 유지할 예정이다. 등가교환의 의미가 아니라, 멈출 이유가 없기 때문에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책의 지면을 빌어 나의 재임 기간 중에 디즈니가 이룬 성공이 내가 처음에 제시한 비전을 완벽하게 실행에 옮긴 결과인 것처럼 으스대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 이 여정이 어디서 어떤 식으로 끝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전혀 없었다. (…) 내가 언젠가는 디즈니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 로버트 아이거
 

 

나의 꿈을 누군가 물어왔을 때, 항상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어린 아이들이 주변에 몰려들어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나이가 들어가고 싶다.” 얼마 전에 물어온 3년 뒤에 무얼 하고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는, “모르죠!”라고 대답했다. 일련의 사건들로 20살 이후에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길 위에 있을 지, 한 순간도 확언하지 않게 되었다. 이를테면, ‘나는 대학을 갈 사람이 아니야.’, ‘나는 공부를 오래 할 성격이 아니야.’ 따위의 것들이다. – 나는 대학과정을 마치고,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리더로서 나의 모습이 가까운 미래라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에 리더로의 자질을 자근히 갖춰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나는 스스로 취급하기를, 고작 서른살이 채 되지 않은 어린 애였다. 물론 내가 어떤 프로젝트를 이끈 경험이 적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항상 리더인 나에게 상위의 리더가 있었으므로 온전한 리더로 나를 정의하지 않았다.

 

현재 나의 직무를 가진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며 <디즈니만이 하는 것(로버트 아이거)>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을 때에서야 내가 선택한 직무에 대해 다시 정의해보았고, 내 직업이 ‘리더’ 그 자체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것은) 나에게 그리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다. (…) 그런 상황에서는 사람과 제품의 품질, 진실성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원칙이 최우선이었고 모든 것은 그 원칙을 얼마나 철저하게 고수하느냐에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 로버트 아이거
 

 

내가 추구하고 있는 인간상이 조합되어 좋은 영향을 발산하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나, 종국에 닿을 곳으로 목표하는 것은 아니기를, 나에게 바란다. 타인이 정의내리는 나의 모습을 가장 위에 걸어 놓는다면 언젠가는 흔들리는 순간이 온다는 것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내가 가진 선함이라는 원칙이 진심이 되어 호의가 따라왔듯, 내가 쌓아온, 쌓아 나갈 원칙들이 모여 지금보다 더 단단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추진력과 과감함, 결단력, 지식은 누구나 쌓아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나로서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따라온다면, 기분이 좋을 뿐인 지금의 나의 모습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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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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