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뮤지컬에게 저는 어떤 의미냐면요, 그냥 저예요.

뮤지컬의 미래가 되고자 하는 사람, 이남기 에디터님을 만나다
글 입력 2022.03.2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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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건

내가 자유로워지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것 또한 나라는 걸

내 소중한 사람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中

 

 

어디서 위와 같은 말을 접했다.

 

정확히 어디서 본 건지는 모르겠다. 아마 인터넷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의 일기장에서 봤겠지. 그때 우연히 본 후 참 인상적인 문구다 싶어 바로 기록을 해두었는데, 언제부턴가 위의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는 자신의 어둠을 숨기려 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어둠을 고백해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본 남기님은 후자의 사람이었다. 아픈 과거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맞서려 하는 사람, 과거를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 남기님이 쓰신 <우울증과 살아남기>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용기 있는 사람이라니. 저렇게 과거로부터 당당해질 수 있다니.

 

남기님의 글을 조금씩 보던 나는 남기님이 뮤지컬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소수자의 어려움도 깊게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다음 인터뷰는 이 분이다'라고 일찌감치 선언하고 인터뷰 문화 초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몇 달 뒤, 대표님께 Project 당신 신청폼을 받고나서 바로 1순위에 '이남기 에디터님'이라고 적었다. 주제가 주제다보니 최대한 공손히, 조심스레 남기님을 만나뵙고 싶다고 기입했다. 다행스럽게도 남기님과 연결될 수 있었고, 단톡방에 초대되고 나서 만날 날과 장소를 잡은 후에야 비로소 마음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 달 뒤에 충무로역 근처의 한적한 카페에서 만났다.

 

 

 

아트인사이트와의 인연



KJH(인터뷰어, 이하 K). 첫 질문은 아트인사이트 활동에 관한 것으로 시작해보죠. 활동 시작 계기를 듣고 싶어요. 21기 에디터 맞으시죠?

 

YNG(인터뷰이, 이하 Y). 네 맞습니다. 알고 계시네요. 일단 제 전공은 예술 쪽이 아니에요.

 

..이것도 역시 아시겠지만?

 

K. 식품 공학...(웃음)

 

Y. (웃음) 네 맞아요. 이 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대학 얘기부터 할 필요가 있겠어요.

 

제가 대학을 식품공학과로 가긴 했지만, 대학에 들어갈 때부터 예술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어느 정도 있었어요.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런 마음이 있었는데, 과학 고등학교였기 때문에 예술 활동을 하기에는 제한적인 부분이 있었죠. 그래서 이런 욕망을 간직하고만 있었는데, 마침 제가 진학한 대학교가 연극영화과로 유명해서 관련 교양 수업을 들어보고 싶더라고요. 저에게 맞는 진로와 적성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연극학, 영화학 수업을 들어봤어요.

 

전 전공보다 교양에 더 집중하면서 수업을 들었는데, 연극학 수업 도중에 교수님이 괜찮은 공연을 몇 개 추천해주셨어요. 저는 그때 지방에 거주하고 있어서 공연을 보기 힘들었는데, 진로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해 서울과 집을 오가며 공연을 꾸준히 보러 다녔어요.

 

그런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눈앞에서 펼쳐지는 공연들도 재밌고 수업 시간에 배우는 이론마저도 전 재밌더라고요. 이때가 큰 터닝 포인트였어요. 이걸 직업으로 삼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죠. 확신이 생기니까 '이것과 관련해서 더 많은 활동을 하려면 뭘 해야 할까'라고 생각했고, 마침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고요.

 

K. 그 이후로 컬쳐리스트를 거쳐 PRESS까지 되신거고요.

 

Y. 네. 그렇습니다.

 

K. 아마 이 글을 보게 될 다른 아트인사이트 구성원 분들도 PRESS 활동을 궁금해할 듯 한데, 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Y. 현재 아트인사이트에서 PRESS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지는 않아요. 그러다 보니 각자의 개성이 뚜렷해요. 저는 그 중에서도 책을 읽거나, 공연 콘텐츠를 주로 감상하고 리뷰 기사를 작성하죠.

 

에디터와 컬쳐리스트는 이미 선정된 콘텐츠 중에서 원하는 것을 고르지만, PRESS는 문화 콘텐츠를 직접 발굴해야 합니다. 저는 주로 공연을 관람하지만, 전시회나 책, 음반도 향유할 수 있어요. 보통 PRESS 활동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이루어지고요. 

 

K. 공연 같은 경우에는 Preview가 적용이 되는 것 같던데요.

 

Y. 공연은 보통 프리뷰랑 리뷰를 같이 써야 해요. 책이나 영화와는 다르게 공연은 특정 기간에만 상연되잖아요. 그러다보니 리뷰 글을 쓸 때 쯤이면 공연 기간이 거의 끝나기도 해서, 미리 프리뷰를 써서 해당 공연에 대한 정보를 먼저 알릴 필요가 있어요.

 

물론 관객의 선택에 프리뷰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지는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저도 공연을 보기 전에 프리뷰를 쓰는 거라 많은 내용을 쓸 수는 없거든요. 그렇지만 공연은 사전 예매 관객을 확보하는 것이 절실한 분야라서, 미리 최대한의 정보를 전달하려 해요.

 

K. PRESS 활동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을까요?

 

Y. PRESS를 하면서 '내가 쓰는 리뷰가 창작자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고는 해요. 제가 선택한 공연이니만큼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고, 좋은 리뷰를 써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기거든요. 그렇다고 만족스러웠던 것만 쓰는 게 아니라,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 같이 써서 차후에 보완될 수 있게끔 돕기도 하죠.

 

K.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하는 거네요.

 

Y. 그렇죠. 그렇기에 저도 공연 관계자분들께 누가 되지 않기 위해 관련된 공부를 더 많이 하려고 합니다. 웬만한 전공자들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잘 알아야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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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명함.

 

 

K. 그래서 뮤지컬도 엄청 많이 보셨나봐요. <제이미>부터 시작을 해서 <라흐마니노프>, <블랙 메리 포핀스>, <스포츠> 등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뮤지컬 글도 꽤 많은데.

 

Y. 사실 제가 본 건 훨씬 많은데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쓸 때는 검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소개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생각을 하죠. 그냥 재밌었다, 전체적으로 화려했고 음악도 좋았다, 연기도 너무 잘하더라, 이러면 이건 그냥 블로그에 쓰는 사담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근데 또 이렇게 두고 보면 저런 글들의 공통점이 뭐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해요.

 

K. 공통점이라 하심은?

 

Y. 내가 왜 저 뮤지컬에 관한 글을 썼지? 하는.

 

K. 그때 당시에는 남기님이 이걸 써야겠다, 이게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최선이다, 라고 느끼신 것 아닐까요.

 

Y. 근데 사실 정말 후기를 쓰고 싶은데 못 쓰고 있는 작품들도 많아요. 작품의 하나하나가 너무 좋아서 못 쓰는 것들이요. 뭔가에 대해 글을 쓴다는 건, 어떻게 보면 제 견해를 늘어놓는 것과 같잖아요. 그게 하나의 미술 작품일 수 있고, 음악일 수도 있는 건데, 결국 저는 작품의 소비자로서 나름대로 평가할 수밖에 없어요. 좋은 작품도 저만의 감상으로 비평해야 하니까 부담이 생기는 거죠. '내가 감히?' 같은 생각도 들고요.

 

소개하고 싶은 작품들이 많은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써야 될지 잘 모르겠어요. 예술이란 게 파면 팔수록 할 얘기가 더 많아지잖아요. 그러다 보니 전에 썼던 글을 읽으면 얕게 생각했다는 게 보일 때가 있어요. '지금 쓴다면 더 많은 걸 쓸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할 때도 있어서 애정하는 작품들은 일부러 묵혀두고는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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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님의 아트인사이트 첫 글, <잿빛 세상 속에서 무지개를 그리는 소년에 대하여> 주제이기도 했던 뮤지컬 <제이미>

 

 

 

창작자의 고뇌



K. 남기님이 생각하시는 잘 만든 작품은 어떤 게 있나요?

 

Y. 정말 어려운 질문이에요. 그치만 저라도 저한테 이걸 물어보고 싶을 것 같아요. '네가 생각했을 때 좋은 작품은 어떤 거야?' 라고 자문할 때가 많은데, 항상 쉽게 답하지 못하겠어요. 늘 저의 기준이 바뀌기도 하고, 뭔가를 만들어내는 창작자로서 창작 윤리 등을 무시 못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K. 창작 윤리요?

 

Y. 네. 하나 예를 들어보자면, 제가 얼마 전에 연극 하나를 보고 왔는데요, 그 연극에는 B의 불우한 삶을 소재로 사용해 연극을 집필한 작가 A가 등장해요. A는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이용했다'라며 따지는 B에게 이렇게 말해요. "이렇게 해야지 너처럼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릴 수 있어."라고요.

 

그걸 보면서 제가 계속 고민했던 게,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공연이 많잖아요. 그런 극을 보고 치유를 받는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누군가의 인생을 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써먹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내가 타인의 삶을 소비하는 건 아닐지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하고요. 타인의 불행을 나의 편의로 바꾸고 있는 건 아닌가, 이런 생각이 계속 들어요.

 

그리고 또 공연이 마냥 모두에게 열려 있을 수는 없거든요. 장애인들이 관람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논란이 되는 연극도 있어요. 혐오나 차별적인 메시지가 전반적으로 깔려있어서 특정 관객을 배제하는 연극도 있죠.

 

그래서 요즘 그런 잣대를 계속 저한테 하나하나씩 들이밀다보니 좋은 공연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정말 있는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K. 확실히 그런 관점으로 볼 때는 모든 걸 충족하는 완벽한 작품을 꼽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Y. 저조차도 100% 저의 이야기만 녹여내서 작품을 만들 수는 없어요. 주변에서 들려오는 쓰기 좋은 소재를 모아, 저도 모르게 제 이야기에 활용할 수도 있는 거죠. 그러면 그런 부분에서 괴리가 생기는 거예요. 창작자와 관객으로서의 괴리감이 생겨서 제가 관객으로 봤을 때는 즐겁고 의미 있는 내용일지라도 창작자로서는 그게 아닐 수 있다는 거죠. 

 

잘 만든 작품이 어떤 거야, 라는 질문은 명사로 딱 제시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그건 어쩌면 동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이야기는 '창작자는 왜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관객은 왜 그것을 관람하는가'라는 질문으로도 이어질 것 같아요. 저는 나중에 제가 주도적으로 창작한 작품을 극에 올리고 싶은데요, 전 제가 작품을 올림으로써 세상을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주의거든요.

 

'하나의 공연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기존에 있었던 잘못된 관습을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치유의 메시지를 던질 수 있어야 해요. 이 치유의 메시지가 결국 아까 말한 좋은 작품과도 연관이 되는 거죠.

 

K. 어떻게 보면 위의 질문은 답을 찾고 제시를 하는 게 아니라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네요. 내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이란 뭘까, 끝없이 고민하는 것.

 

Y. 맞아요. 그래서 하나의 공연을 어떤 나무에 비유하자면 계속 가지치기를 하는 거죠. 과거에 올랐던 명작도 지금 올리기에 문제가 될 부분이 있다면, 그걸 수정하면서 예리하게 살펴보는 거예요. 그런 단점들을 고쳐나가는 가지치기의 과정이 좋은 공연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이건 어떤 예술 분야에서라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되겠죠.

 

K. 점점 더 세상의 관심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내려오는 추세잖아요. 옛날에는 조명받지 못했던 개인들이 세상에 드러나고 죽어있던 목소리들이 하나 둘씩 터져나오고.

 

Y. 그렇죠. 거기에 동감해요. 저는 방금 말씀해 주신 관점에서 공연을 많이 보거든요. 그 작품이 전체적으로 던지는 메시지도 의미가 있지만, 저기 있는 개인이 무대 위에서 말을 하고 노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죠.

 

'나는 왜 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결국 그 해답은 다수가 아닌 소수의 이야기로 이어져야 해요. 어떤 사람이 권력을 잡고 거대한 위치에 서 있다면, 그를 통해 공감의 풀을 확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옛날의 셰익스피어 작품 같은 고전을 현대 무대에 옮긴다고 하면 성격적인 결함을 더 많이 만들어주는 것도 그런 맥락인 거죠. 개인을 더 볼 수 있게끔 하는 거요. 평범하고도 비범한 개인의 모습을.

 

예컨대 햄릿이 덴마크의 왕자로 연극에 등장했다면, 요즘에는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을 수 있죠. 이런 예시들은 실제 연극으로 올려지고 있어요. <로미오와 줄리엣>을 <줄리엣과 줄리엣>이나 <로미오와 로미오>로 올릴 수도 있는 거고, 리처드 3세 같은 군주를 양복을 입은 평범한 회사원으로 등장시킬 수도 있고요.

 

그런 게 사실 시대의 부름에 응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관객은 변화하는 시대에 알맞은 작품들이 나오길 원하거든요. 이런 측면에 있어서 창작자들이 귀 기울여야 할 작은 목소리들이 많은 것 같고요.

 

제가 아까 좋은 연극에 대한 기준을 계속 가지치기를 하는 과정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와 비슷하게 이전에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쥐어주는 것도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창작자들은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더 좋은 공연을 만들기를 원해요. 그중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신념은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고요.

 

또 뭐가 있을까요. 지금 영상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주요 매체로 떠올랐잖아요? 아날로그적인 예술에 어떻게 영상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도 더 좋은 공연을 만들기 위한 가지치기라고 할 수 있겠죠.

 

K. 기존 뮤지컬의 한계였죠. 직접 가야만 볼 수 있었으니.

 

Y. 직접 가야만 볼 수 있는 공간상의 문턱도 점점 낮추다 보면 온라인 극장의 장점도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환경 문제에서도 아직까지 종이 티켓을 쓰는 극장이 많으니까 그걸 리유저블 티켓으로 바꿀 수 있거든요. 모바일 티켓으로 바꿀 수도 있고, 티켓을 다시 반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 수도 있는 거고요. 

 

지금 여기저기서 나오는 소수자와 디지털, 환경 이슈들은 모두 더 좋은 공연을 만들기 위한 노력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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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쓰셨어요.

 

Y. 그렇죠. 저는 그런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라는 연극이 있어요.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내세우는 극인데, 이 연극은 공연예술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조명이 잘 안 됐어요. 주류 서사가 아니기도 하고 비극적인 내용에다가 즐길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라서요. 보통의 관객들은 즐기려는 목적으로 공연을 관람하죠. 그래서 사회적인 화두를 던지는 극이면 조명받기가 어려워요. 

 

이 극을 집필하셨던 이은용 작가는 돌아가셨는데, 그 죽음을 생각하면 우리 사회의 지워진 존재들을 끝없이 떠올리게 되죠. 저도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퀴어 운동가였던 육우당에 관한 글도 썼죠. 그분도 요절하셨기 때문에, 무거운 책임을 갖고 글을 썼어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저는 앞으로 어떤 극을 만들어야 하나 고민이 되죠.

 

그런데 이게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아요.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는 백상예술대상에서 연극상을 받았는데, '관객 수가 적은 연극이 상을 받을 수 있냐'라는 항의도 제기 되었죠.

 

이처럼 작품 안팎을 오가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깊은 고민에 빠져요. 공연을 만들려는 사람으로서 이런 피드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나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다가가고 있는 걸까? 하는 질문이 꼬리를 물죠.

 

K. 아무래도 창작자의 입장에 있다보면 부정적인 피드백 같은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많으실 것 같아요.

 

Y. 쉬운 문제가 아니에요. 공연예술은 또 피드백이 적극적으로 들어오는 분야거든요. 현장성이 워낙 큰 예술이라서요. 관객의 반응을 빨리 수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그에 따른 부정적인 얘기도 그만큼 빨리 듣게 돼요.

 

K. 민감한 주제를 다룰수록 더 고민이 깊어질 것 같네요. 창작자의 의무나 운명, 그런 것 같기도 하고.

 

Y.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런 것들은 모두 '정말 바꿀 수 있는가?', '어떤 작품으로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져요. 아까 말씀드린 창작 윤리도 그렇고요. 누군가의 죽음과 치환되는 고통이 여전히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걸 그대로 불합리하게 작품에서 그려내는 게 맞을까, 아니면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내서 해피 엔딩으로 끝내는 게 맞을까, 같은 고민도 하는데, 모든 게 정말 쉽지 않거든요. 

 

K. 단기간에 끝낼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창작의 고통이 예전에는 소재가 잘 떠오르지 않는 힘듦에 한정되어 있었다면, 지금은 그런 소재를 어떻게 세심하게 전달할까, 이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까, 하는 쪽으로 더 넓게 포함된 것 같아요. 

 

Y. 민감한 주제를 다루다 보면 어떻게 해도 크고 작은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어떻게 표현하든, 이런 문제를 제시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거든요. 

 

저는 연극이 답을 정해주는 예술이 아니고, 관객이 연극을 통해 답을 찾아갈 수 있게끔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남들이 잘못되었고, 내 생각만이 옳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그럼에도 위와 같은 작품을 올리고 싶은 이유는 공론화의 장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우울증과 살아남기


 

K. 저는 남기님 글을 쭉 읽고 인터뷰를 하러 왔는데, 글에서 느껴지는 남기님과 실제로 만나 뵌 남기님의 분위기가 비슷해요.

 

Y. 저는 무언가 창작할 때 그 안에는 창작자가 어느 정도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저를 들어가게 할지가 이제 고민인데요, 저는 제 글에 저를 많이 녹이는 편이에요. 글을 봤을 때 제가 많이 드러나더라고요.

 

K. 저는 그런 글들을 정말 좋아해요. 한 개인이 녹여진 글들요. 그 사람의 정체성이 드러나고 추구하는 가치관이 보여지는, 그런 글들이 너무 좋더라고요.

  

Y. 제가 공연 관련 글을 많이 썼지만, 어느 정도 개인적인 것도 조금씩 썼거든요. 어디 가서 쉽게 꺼내놓지 못하는 얘기들인데, 제가 우울증 관련해서 쓴 글이 있어요. 그 글은 정말 '읽어주세요', 이런 의도가 아니었거든요.

 

처음 의도는 '글을 쓰고는 싶은데 보여줄 곳은 없고, 그럼 아트인사이트에 써야지'였어요. 저의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창구가 그땐 여기밖에 없었으니까요.

 

사실 이런 글이 문화예술과는 거리가 멀고 제가 여태껏 썼던 글과는 결이 아예 다르잖아요. 그래서 완전히 힘을 빼고 썼어요. 평소 연극이나 뮤지컬 글을 쓰면 다시 몇 번 읽어보고 교정도 하고 이 표현이 맞나, 이 표현이 어울리나, 생각하면서 고치는데, 우울증 관련 글은 정말 의식의 흐름대로 쓴 글이에요. 또, 제 얘기니까 그걸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겠어요.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니까 고칠 필요가 없죠. 그래서 감정을 배출한다는 느낌으로 썼어요.

 

솔직히 정신질환은 쉽게 말하기 힘든 이야기잖아요. 이런 얘기를 꺼내놓으면 '어, 어...?' 같은 반응이 돌아오죠. 일상적인 대화에 어울리지도 않고요. 그러다 보니 민망해지고 어려워져서 아트인사이트에 조심스레 썼던 건데,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끌었죠. 독자들께서 댓글도 달아주시고, 인스타 DM으로도 말 걸어주시고, 참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어요. 

 

만약 그런 글을 쓴 게 후회되었다면, 어떻게든 지우려 했겠죠. 근데 아직 남겨두고 있어요. 생각보다 사람들은 저한테 관심이 없더라고요. 아까 말한 관심과는 다른 의미로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죠?

 

K. 네네. 알고 있어요.

 

Y. 이걸 쓰면 보고 싶은 사람은 보고, 아니면 안 보는 거지. 눈치를 볼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적어도 내 얘기를 할 때는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니까 글로 썼던 거고요.

 

그리고 다른 얘기를 드려보자면, 저는 사람의 한 가지 면이 그 사람의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위와 같이 주제가 확연히 다른 글들을 쓰려고 했던 것도 '나는 이런 사람만은 아니다'라는 걸 계속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 이야기를 쓰긴 그러니까 저를 도마 위에 올린 거죠. 저를 제물로 삼고 여러 모습을 꺼내놓음으로써 개인의 다양성을 보여주려 했어요. 

 

그런 관점들로 글을 썼지만, 결국엔 결론이 나지 않았어요.

 

K. 어떻게 보면 평생의 싸움이죠.

 

Y. 그렇죠. 그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만약 누군가를 원망함으로써 그 문제가 해결될 일이었다면 일찌감치 끝났겠죠. 사실 저는 저를 제일 많이 원망해요. 누군가에게 전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었거든요.

 

어렸을 때 폭력을 당한 것은 제 잘못이 아니었겠죠. 그렇지만 그 이후에 어떻게 대처를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에 있어서는 제가 절 보살피지 못한 잘못도 크거든요. 그렇게 복합적으로 생각해보면 누군가만을 탓할 문제는 아닌 거죠.

 

누군가를 원망하고 죽일 듯이 미워하는 과정이 저한테도 있었죠. 없을 수가 없죠. 그 감정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지만, '마음의 병을 만든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생각해본다면 그건 아버지의 것만이 아니거든요. 그걸 짊어져야 할 사람은 저고, 그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함으로써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니까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가족과 살았으니까 사연을 알잖아요. 사연을 알면 딱하지 않은 사람은 없거든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거예요.

 

영화 <윤희에게>에 등장하는 주인공 윤희는 나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인데, 영화에서 이런 말을 해요. '더 이상 내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라고요. 그 말에 많이 공감했어요. 잘못을 따지고 책망함으로써 해결되는 일은 없거든요. 부끄러울 것도 아니고요. 

 

상처가 있는 사람 중에서는 그걸 표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냥 마음속에 넣어두는 사람도 있거든요. 저는 제가 후자라고 생각했어요. 무엇이 더 나은지 따질 수는 없겠지만, 영화에서 윤희의 모습이 저랑 너무 비슷한 거예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때려 부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제가 그럴 사람은 못 되거든요. 그래서 내면의 아픔을 삼키는 태도가 이해되더라고요.

 

그렇게 묵혀두었던 저의 이야기를 아트인사이트에 올림으로써 답답한 마음이 해소되었다는 것도 의미 있지만, 다른 분들께 영항을 미쳤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었어요.

 

제가 쓴 글에 그런 댓글이 달렸어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거. SNS 메시지를 통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 말은 '나도 그랬어. 나도 그런 적이 있어'라면서 경험을 공유하는 것과도 같죠. 우리는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 식의 치유법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연결의 메시지를 무대에 올려야 하지 않나 싶은 거예요. 누군가가 겪는 삶의 단편들이, 무대 위의 또 다른 누군가가 겪는 삶의 순간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무대를 통해 모두가 치유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메시지는 소수자들에게 더욱더 중요할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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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윤희에게> 스틸컷

 

 

K. 저는 지금 어떤 책의 한 문장이 생각나요. '자신의 어두운 면을 내보임으로써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 라는 내용이요.

 

Y. 맞아요. 그런데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저에게 있어 어두운 면은 개인사와 정신적인 질병이잖아요. 그걸 드러내어 자유로움에 다가가는 과정,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에요.

 

K. 쓰면서도 엄청 고민을 많이 하셨어요.

 

Y. 그게 좀 느껴지시나요. 엄청나게 고민해요. 이걸 사회 문제로 확장해본다면, 우리 사회는 전체주의가 강하잖아요. 똑같은 걸 선호하고 다르면 안 되고 다른 것에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게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았죠. 개인의 취향부터 일관됨을 강요하는 문화가 있기에, 오히려 그런 경직된 사회 속에서도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걸 내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K. 소수자들도 그런 의미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고요.

 

Y. 맞아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거예요. 이런 병을 앓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어떻게 보면 저도 소수자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소수자들의 입장에 더 공감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더 감사한 것도 있어요. 제가 소수자 입장에 서보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들이 보이거든요.

 

K. 이 세상에는 다수에 의해 배제된 소수 입장에 서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이 꽤 있죠.

 

Y. 또한 모든 사람은 갑이 될 수도 있고, 을이 될 수도 있는 이중성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저는 장애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다수자잖아요. 그러면 분명히 제가 이해하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배제하는 지점이 있을 거란 말이죠.

 

연극이나 뮤지컬에서도 모든 부분에서 소수자인 사람을 드러내 보이면 그게 모두에게 공감의 여지를 줄 것이냐, 그건 아니거든요. 이쪽에서는 다수인데 저쪽에서는 소수인 사람, 즉 복합적인 인간의 면면을 보여주어야 극이 가지는 메시지에 힘이 실린다고 봐요. 

 

누구를 희생양으로 삼아서 '이 사람 봐, 이 사람 불쌍하지? 이 사람은 정말 비극적인 인생을 살았어'라고 보여주는 건 소수자로서 겪는 폭력을 전시하는 것 밖에 안 되는 거죠. 사람이 가진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제가 가진 다른 이면을 드러내는 것에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K.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나의 이면을 보여주는 행위는 다른 사람들이 가진 마음의 상처에 대해서도 조금 더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 같아요.

 

Y. 우울증이나 정신 질병에 있어서는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너무 신중하면 입을 닫게 될 때도 있어요. 침묵은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버텼니?', '힘들었겠다', '지금은 괜찮니?' 정도의 격려를 계속 던져줌으로써 상처를 치유하는 거죠. 내가 여기 당신 곁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런 것들이 인간으로서 건네는 위로이기도 하지만, 예술의 역할이기도 하고요. 실제로는 사람보다 예술에 의해서 도움을 받을 때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해요. 누군가의 몇 마디 말보다 음악이나 영화, 연극이 주는 메시지가 더 절실하게 다가올 때도 있거든요. 이런 것이야말로 좋은 예술이지 않을까.

 

 

 

뮤지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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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라슨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틱틱붐>

 

 

K. 인생의 롤모델이 있으신가요?

 

Y. 네, 있습니다. 영화 <틱틱붐> 보셨나요?

 

K. 네 봤습니다. 좋은 영화라고 소개받아서 봤어요. 보고 너무 감명 깊어서 작곡 하는 지인에게 다시 추천해줬어요.

 

Y. 정말 좋은 작품이죠. 황조교님 아시나요? 뮤지컬 콘텐츠를 제작하는 인플루언서이자 배우이시죠.제가 전에 썼던 글 중에 황조교님 인터뷰가 있는데 그걸로 인연이 맺어졌거든요.

 

K. 아, 글 봤습니다. 꾸준히 연락하시는군요.

 

Y. 맞아요. 저와 작품을 보는 눈이 비슷하셔서 소통이 잘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황조교님께 감사한 부분이 많아요.

 

그분께서 저에게 <틱틱붐>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온라인으로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자고 제안해주셨어요.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를 주신 거죠. 그래서 함께 작품 안팎의 모든 일화를 찾아봤어요. 논문도 보고, 영화에 숨겨진 여러 디테일까지 몽땅 찾아봤는데요. 영화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조나단 라슨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조나단 라슨과 저의 상황이 좀 비슷해요. 알바를 하면서 동시에 작품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혼자서 만든 작품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모르니까 계속 작품을 쓸 수밖에 없죠. <틱틱붐>에서도 라슨에게 주어진 숙제가 계속 작품을 쓰는 거였잖아요. 얻어걸릴 때까지요. 저 역시 그렇죠. 저도 뮤지컬을 만드는 사람이니까 그 부분이 특히 와 닿았어요.

 

K. 뮤지컬을 앞으로 쭉 하게 되실 텐데, 뮤지컬에 있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Y. 뮤지컬은 종합 예술이니까 작곡에 있어서든,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어서든, 두루두루 많은 것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 중에서도 첫 번째는 대본을 쓸 줄 아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겠죠.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건 그 대본이 좋냐, 아니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대본은 결국 모든 극예술의 토대예요. 이게 좋지 않으면 다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제가 글쓰기를 열심히 하는 이유이고요.

 

두 번째는 음악이에요. 물론 글과 음악 두 개를 모두 다 전문가처럼 완벽하게 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뒤처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배우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야 제가 원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잖아요.

 

그 후에는 무대 디자인이나 연출, 세상을 보는 눈, 포용력 등이 있겠어요. 이렇게 말하니까 제가 뮤지컬 원로가 되어서 약간 조언하는 것처럼 들리는데(웃음) 이건 제 신념일 뿐이에요.

 

아, 연기도 빠질 수 없겠네요. 연기는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연기는 어떻게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내는 거잖아요. 어떤 캐릭터의 인생을 내가 보여줘야 하는 건데, 그럼 그게 어떤 캐릭터인지 이해함과 동시에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만약 80살을 산 캐릭터를 연기해야 한다면, 우리가 80살을 온전히 산 채로 그 캐릭터를 보여줄 수는 없잖아요. 그 중 극히 일부만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데, 너무 극에 몰입하면 오히려 왜곡되지 않나 싶어요. 누군가의 인생을 함부로 판단하려 하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연기해야 해요. 캐릭터에 몰입은 하되, 너무 깊이 빠지지는 말아야 하죠. 

 

K. 대단하신데요, 혼자서 거기까지 도달하셨다는 게.

 

Y. 생각만 했을 뿐이지, 아직 결과물은 없어요. 고민만 하게 되는 이유도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걸 왜 무대에 올려야 해?'라는 질문을 스스로 많이 해서 그래요.

 

'사람들이 무슨 이유에서 나의 뮤지컬을 보러 올까?' 싶죠. 거기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작품을 만들어야 해요. 물론 제가 쓰고 있는 작품들도 완벽하지는 않아요. 저는 돌고 돌아서 진로를 찾았으니까, 작품 하나를 만들어도 허투루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렇다고 해서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으면 안 될 것 같기는 해요. 계속 고민만 하면 거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올해 안에 공연을 올리려고요. 여기서 선언할게요. 기록이 남아야 압박이 생기고 책임이 생기니까.

 

K. 올해 안에요?

 

Y. 제가 지금 조연출로 참여하고 있는 <내일>이라는 뮤지컬이 있는데, 그거 말고도 공연을 올리려고요. 

 

K. 약속하신겁니다? 제가 지켜볼 거예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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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님이 조연출로 참여한 뮤지컬 <내일> 

 

 

K. 마지막 질문 드릴게요. 남기님이 쓰신 황조교님 인터뷰 글 마지막 질문이 뭐였는지 기억하세요? 


Y. 아.

 

K. 단순하면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뻔한 질문이기도 한,

 

Y. 그... 앞에는 안 읽어주셔도 됩니다.(웃음) 뒤에만 말씀해 주세요.

 

K. (웃음) 남기님에게 뮤지컬이란 무엇인가요?

 

Y. 세상에. 이렇게 돌아올 줄 몰랐는데. 정말 어려운 질문이에요. 천천히 생각해볼게요. 오늘 절 많이 곤란하게 하시네요.(웃음) 

 

<틱틱붐>에서 조나단 라슨이 '내가 뮤지컬의 미래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전 그 특유의 뻔뻔함이 아주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때 당시의 라슨은 무대에 제대로 올렸던 뮤지컬이 없었고 준비만 하고 있었을 때인데, 집에서 친구들이랑 놀면서 당당하게 '나는 뮤지컬의 미래야'라고 이야기를 한다는 게 정말 멋있는 또라이처럼(웃음) 느껴지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저에게 뮤지컬이 어떤 의미냐는 질문을 뒤집어서요. 뮤지컬에게 저는 어떤 의미냐면요, 그냥 저예요. 뮤지컬에게 이남기는 미래인 거죠. 

 

*

 

어쩌면 내가 남기님을 만나뵙기 전에 가졌던 마음은 지나친 기우였던 것일까. 이번 대담을 통해 과거를 바라보고 대처하는 그의 안목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 나는 그가 보여준 용기의 원천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는 굳세고 강한 사람이었고 자신을 그렇게 만든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는 곧,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아보겠다는 의지를 내보이는 것이었다. 그의 시야는 한 군데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보이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게로 향해 있었다. 

 

세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 다수에 의해 배척된 소수의 사람들. 그는 바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만났을 때의 남기님은 이미 자신의 길을 어느 정도 닦아놓은 상태였다. 조연출로 <내일>이라는 뮤지컬에 참여 중이고, 올해 안에 자신의 공연을 내놓는 것이 목표라는 그의 모습에 살짝 놀라기도 했지만 이내 미소가 지어졌다. 

 

어쩌면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 그는 정말로 뮤지컬의 미래가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미 그는 뮤지컬의 미래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의 이야기는 한참 전에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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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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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MY
    • 생각이 깊고 다양하신 것 같아요! 남기 에디터, 조연출님의 꿈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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