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겨우 내가 되는 꿈 – 약한 게 아니라 슌한 거야 [도서]

민들레인데 장미인 척, 버드나무인데 소나무인 척하지 않는 그런 거요
글 입력 2024.02.2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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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약슌.jpg

 


안녕하세요. 슌님. 책 잘 읽어보았습니다.

 

슌님은 자신도 모르게 주로 우울이나 불안 등 어두운 감정을 소재로 글을 쓰고 만화를 그리고 있다고 하셨지요? 저 역시 그래요. 뭔가를 쓰고 만들고… 별 소득은 없지만 매일 쑥대밭인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사부작사부작 바쁜 그런 부류입니다.

 

실은 <약한 게 아니라 슌한 거야>를 읽고 동질감을 느껴 반갑게 작가님의 인터뷰 영상을 몇 찾아보았습니다. 영상 속 슌님은 ‘무언가를 표현하거나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기질’이라 스스로를 설명하시더라고요.

 

아마 저도 슌님도, 존재의 수치심과 모멸감 등을 더욱 촘촘하게 감각하고 타인이 의도치 않게 비춘 속내를 보다 세밀하게 파악하는 유형의 (약간은 피곤하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상합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감정을 허심탄회하게 게우는 창작 없이는 견딜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튼 <약한 게 아니라 슌한 거야>를 통해 전해 들은 작가님의 이야기에 여러 생각이 얽혀 도무지 그것들을 뱉지 않을 수 없어 편지를 씁니다.

 

먼저 제 근황을 꺼내볼게요. 요즘 전 출근하기가 싫어 8시 40분까지 침대에서 밍기적거리다 겨우 일어납니다. ‘이제 진짜’ 외출하지 않으면 지각 확정인 시간이 다가오는 조급한 순간까지, 침대 위에서 한가롭게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는 야시꾸리한 죄책감을 은밀하게 즐겨요.

 

수능 공부나 대입에 열을 올렸던 학생은 아니라 학교 가기 싫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서른이 되어 (서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날을 기다렸습니다. 29세까지도 나이가 찬 느낌이 잘 안 살거든요.) 전날 저녁 9시쯤부터 ‘내일 출근하기 싫다’고 죽상을 하는 저를 보자면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의문이 듭니다. 이토록 가기 싫은 직장에서 하루,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워서요.

 

슌님, 저는 현재 한 어플의 유일한 콘텐츠 에디터로 1년째 근무 중인데요, 이 회사에서 자신감을 채울 날보다 잃는 날이 많았던 것 같아요. 기껏 공들여 쓴 문안이나 제작한 콘텐츠는 임원진들의 주관적인 입맛으로 뒤엎어지기 일쑤였고, 그들의 짜증 섞인 비난을 받으며 각 임원의 입장 차이를 좁히는 일에 진을 빼야 했거든요.

 

컨펌을 받는 날이면 콘텐츠를 만드는데 들이는 시간보다 스무고개를 하는 심정으로 그들의 ‘스타일’을 알아채는 것에 시간을 더 쏟아야 했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잘 모르는 듯 보이는 그놈의 ‘스타일’ 말이죠. (쓰다 보니 감정이 격해집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근거 있는 피드백을 줄 사수나 놓친 부분을 채워줄 팀원이 있었다면 힘이 되었으련만 그마저도 없었습니다. 고충을 왜곡 없이 공감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할 동료가 전무한 회사 생활은 외로웠어요.


 

내 삶은 망가지고 있을 때, 눈에 띄는 몇 가지 신호를 보내오는 것 같다. 첫 번째, 어제 뭐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두 번째, 자꾸 자극적인 음식이 당긴다. 세 번째,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다. 네 번째, 살이 찐다. 다섯 번째, 주변이 더러워진다.

 

- 약한 게 아니라 슌한 거야 中

 

 

스트레스가 누적되니 삶이 망가지고 있다는 신호들이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지만 귀를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당장 정규직으로 이직할 수 있는 회사도 마땅치 않았고 무엇보다 처음으로 정규직으로 절 채용한 현재 회사에서 안정적으로 일을 배울 기회가 혹시 더 생기진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못했었거든요.

 

친한 지인들에게 슬쩍 직장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니 누군가 ‘해파리처럼 살라’고 조언하더군요. 자아를 버리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르라는 뜻이었을 겁니다. 그래, 해보지 뭐. 싶었어요. 한데 이 다짐을 한 지 24시간이 지나기도 전, 저는 컨펌을 받고 임원진의 방을 나오며 잔뜩 화가 나 양쪽 볼이 옛날 햄처럼 동그랗게 발개진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해파리에 빙의했던 저는… 하마터면 해파리구이(?) 비슷한 게 될 뻔했다는 말입니다. 온몸에 오른 열을 식히려 몇 번의 심호흡을 반복했던지요.

 

이날, 사원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는 회사의 태도를 더는 견딜 수 없겠다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정말로 이제는 한계가 온 거지요.

 

 

나의 성격, 재능, 외모, 목소리, 행동, 모든 것이 싫었다. 그냥 싫은 게 아니라 지긋지긋하게 싫었다.

 

- 같은 책

 

 

대단한 인재까진 못돼도 영 쓸모없진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슬프게도 이 회사를 다니며 스스로를 실로 후지다고 평가하기에 이르렀어요. 회사의 모욕적인 태도를 견디고 집으로 돌아온 날이면 한참 부족하게 느껴지는 저를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습니다. 입으로는 회사의 태도를 험담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이런 집단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나약한 나’를 탓했어요.

 

언젠가는 생기 넘치게 살았던 거 같은데, 1년간 집단에 묻은 오점처럼 여겨지다 보니 무언가를 자신있게 추진하거나 결정하기가 두려워지는 순간까지 오더라구요. 모두 저마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덩그러니 남은 퍼즐 한 조각처럼 어디엔가 쓸모를 찾지 못할까 봐, 그 어디에서도 필요로 하지 않을까 봐, 그래서 1인분의 삶도 해내지 못할까 봐 계속 불안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잘했던 적은 한 번도 없던 사람처럼 스스로의 가치를 의심했어요.


 

나를 믿어 주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 재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늘이 정해 준 재능이 아니라면 가능한 일은 그뿐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같은 책

 


사실 저를 가장 믿지 못한 건 회사도, 동료도 아닌, 제 자신이었을 거예요. 나를 믿어주는 일은 일종의 재능이 맞는 듯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그 어떤 재능도 하루아침에 생기진 않는 법이겠죠. 게다가 의심을 곧잘 품는, 맹목적인 믿음이 부족한 저라면 더더욱 스스로와 공유하는 시간으로 나에 대한 확신을 쌓는 시간이 필요했을 거예요. 마치 타인을 경계심 없이 신뢰하게 되는 과정처럼요.

 

 

믿을 것은 결국 내가 실제로 보고, 듣고, 경험한 나의 시간뿐이다. '살아온 나'보다 더 확실한 믿음이 있을까?

 

- 같은 책

 

 

앞으로 전 인내를 가지고 스스로의 멸망과 부활을, 배신과 용서를 경험해야 할 겁니다. 이제 에디터로 겨우 2년 차인 제가 직업인으로의 역량을 무작정 믿겠다는 건 때가 오지도 않았는데 무르익기를 바라는 도둑놈 심보였을지도 몰라요.

 

그런데요 슌님. 요 몇 달간 제 마음은 자꾸 조급하기만 했어요. 자연스레 다가올 타이밍을 잠자코 기다리면 될 것을, 그 시기를 억지로 앞당기려 안달이었습니다. 회사에서 ‘따귀맞은 영혼’을 다른 방법으로 빠르게 회복할 수 있길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일을 벌이고 또 벌였어요.

 

왜, 뭐든 성급하면 제대로 된 판단을 못하게 되지 않습니까. 전 스스로를 가만히 두지 않을 요량으로 꾸역꾸역 일상을 바쁘게 채웠어요. 그렇게 떠밀리듯 당장 이번 2월만 해도 콘텐츠 기획자 워크숍과 문화예술 관련 모임을 신청했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재즈를 곁들여 매주 글을 쓰는 모임을 또 신청했어요.(하이고…)

 

인생에 정답은 없다지만 이렇게 무리를 하는 건 필시 오답일 거예요. 게다가 딴짓거리를 할 여유도 없이 매사 능률이나 성장 따위(듣기만 해도 지겹습니다…)에 집착하다가는 전 영원히 비상사태인 사람처럼 비장하게 하루를 임할 거고… 숙제처럼 쳐내야 할 것부터 떠올리며 아침을 맞이하게 될 테죠. 빈둥거림이 없는 삶은 상상만으로도 재미없고 처절하기만 하네요.

 

불과 2달 전, 분명 저는 ‘유연하고 느슨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유연과 느슨은 개뿔, 내 손으로 직접 목줄 꽉 맨 채 달리라고, 그래야만 한다고 협박하고 있는 수준이었네요.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인간입니다. 정녕 스스로를 고장 내고 싶었던 걸까요.

 

 

한 사람이 한 시기에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오래 고친다고 해도 나아지지 않아요. (…) 그래서 때가 되면 원고를 보내요. 내 능력의 70, 80%를 써야 한다, 그런 철학을 갖고 있어요.

 

- 김영하 소설가 인터뷰

 

 

다행스럽게도 저에게는 잊을 법하면 삶의 지혜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슌님을 비롯한 작가분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불쏘시개로 쓰라고 부추기는 내면의 소리와 달리 한계를 그어주는 그의 문장에 안심이 되었어요.

 

황새 따라가다 뱁새 가랑이가 찢어진다지요. 저는 뱁새입니다. 그냥 인정해야겠어요. 회사 사람들이 저를 깎아내려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게 저인걸요. 누군가의 속도를 흉내 내다가 금세 방전되어 소리 소문 없이 픽 고꾸라질 순 없지 않습니까. (쓰며 스스로를 설득하는 중입니다.)

 

엄마는 말버릇처럼 인생 길다고 했습니다. 엄마의 말처럼 반드시 지금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전 나름대로 길을 그려가며 지도를 확장할 수 있을 겁니다. 김영하 작가님 말처럼 한 시기에 클 수 있는 만큼만, 딱 뱁새만큼만 크면 칭찬받아 마땅할 겁니다.


 

좋은 일에도, 나쁜 일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게 된 것도 결국 ‘나’로 마침표를 찍는다고 여기면서부터였다. (…) 좋은 쪽도 나쁜 쪽도 모두 나의 몫. 그리 대단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그저 나일 뿐이다.

 

- 같은 책

 

 

놀랍게도 저는 커서도 내가 나일 거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지금보다 더 납작한 배를 가진 나를, 부지런한 나를, 아량이 넓어진 나를 꿈꿨어요. 제 모습 중 아주 가끔 튀어나오는 가장 좋아 보이는 버전의 저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진짜 나가 있다는 환상도 버려야 한다. 진정한 자신을 찾아 떠난다든지, 어떤 특별한 과정을 통해 진짜 나를 만나게 되었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치 현실의 나는 가짜고, 본질을 품은 진짜는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미안하지만 전부 나다. 내가 건너온 시간 속 다양한 얼굴을 한 나의 모습 전부가 나다.

 

- 같은 책

 

 

언젠가 이 짜치는 회사를 탈출해 정착할 회사에 다닐 것이라고. 언젠가 지금의 좁은 자취방에서 벗어나 근사한 집을 꾸릴 것이라고. 지금은 임시의 삶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고작 이 정도라는 걸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겠죠. 얼마나 완전무결한 스스로를 꿈꿨던 걸까요. 저는 커서 겨우 제가 될 뿐인데 말이에요.

 

슌님. 결론은요. 제가 겨우 내가 되는 꿈을 꾸게 되었다는 겁니다. 살면서 처음으로요. 민들레인데 장미인 척, 버드나무인데 소나무인 척하지 않는 그런 거요.


 

장점이란 햇살을 반사하여 빛나는 달과 같아, 태양 같은 눈으로 바라봐 주는 이들이 있어야 밝게 빛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용기 내어 나를 드러낼수록 나의 장점이 많아질지도 모르겠다. 내 곁엔 밝게 빛나는 눈으로 나를 봐주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으니…!

 

- 같은 책

 

 

고유의 빛을 점점 잃었다고 생각할 시기, P는 분명 내게 ‘스스로 빛나는 사람’이라 말했습니다. 사실 전 어떤 인간도 결코 스스로 빛날 수 없을 거라 생각해요. 저 역시 그렇게 말해준 그 덕분에 힘을 내 빛을 뿜어볼 시도라도 할 수 있었던 거니까요. 그래서 누군가와 만나는지, 누군가와 친해지는지, 누군가와 일하는 지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들에게 이전처럼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는 것도 참 재밌는 사실이다.

 

- 같은 책

 

 

4월 중순이면 지금 회사에서 일한 지 딱 1년이 됩니다. 며칠 전부터 이직을 위해 1년 전 만들어두었던 포트폴리오를 뒤엎고 있어요. 그저 구직이 급급해 스스로를 포장하는 일은 저도 지겨워서요. 결이 다른 인간들끼리 한 공간에 있는 건 피차 곤욕이지 않겠습니까.

 

작년보다 구직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고 마음먹고 있어요. 물론 취업 준비 너무 기간이 길어지면 '아차차, 이게 아니었구나!' 뒷걸음하며 다시 재빠르게 적당히 포장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1년 전의 저보다는 한 꺼풀 벗어 조금이라도 더 솔직해진, 그런 나를 밝게 바라봐 줄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죠?


 

[권기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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