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뮤지컬 '제이미', 잿빛 세상 속에서 무지개를 그리는 소년에 관하여. [공연예술]

글 입력 2020.10.18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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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는 자신의 꿈을 펼치려 노력하는 17살의 드랙퀸 소년에 관한 뮤지컬이다. 전혀 흔하지 않으며, 유별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 등 서사를 담은 매체는 ‘보편성’을 가져야 흥행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통하는 이야기일수록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이미>는 단순하게 보면 흥행하기 어려운 뮤지컬이다. ‘게이’, ‘학생’, ‘드랙퀸’이라는 세 단어가 매우 좁은 의미의 대상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또한, 하이틴 드라마이긴 하지만 흔히 나오는 ‘멋있는 남주’와 ‘발랄한 여주’는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 뮤지컬이 보란 듯이 흥행의 길을 걸으며 한국 초연을 하고, 영화로 리메이크되어 개봉을 앞둔 것일까?



 

#1 특별해도 괜찮아, 난 그냥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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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는 특별한 소년이다. 하이힐을 신고 춤을 추며, 눈썹을 그리고 치마를 입는 ‘드랙퀸(Drag Queen)’이 되길 원한다. 그렇다 보니 그는 선생님께 구박받고, 친구에게 놀림 받는다. 그런데도 제이미는 당당하다. 이 당당함은 뮤지컬의 첫 장면에서부터 여실히 드러난다. 꿈을 외치고, ‘난 그냥 나’라고 말하며 신나는 음악에 맞춰 교실 책상 위를 뛰어다니는 제이미의 모습은 관객을 매료시킬 만하다.

 

뮤지컬 속에서 제이미의 목표는 ‘졸업 파티에 드레스를 입고 가는 것’이다. 당연히 처음부터 쉽지는 않다. 그러나 제이미는 숱한 차별과 무시를 딛고 일어선다. 그리고 결국 드레스를 입고 졸업 파티에 참석한다. 처음에는 제이미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았던 관객도 그의 다사다난한 성장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러운 응원의 박수를 보내게 된다. 내가 공연을 본 날에는 주변에 가족 단위 관객도 있었고, 뮤지컬을 처음 보는 커플도 있었고, 나처럼 혼자 공연을 보는 관객도 있었다. 그런데, 2막에서 제이미가 졸업 파티에 하얀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자 모두가 감탄을 내뱉었다. 누군가는 ‘왜 이렇게 예뻐?’라고 속삭였다. 나는 조금 놀랐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였지만, 모두가 자연스럽게 극에 몰입해서 주인공을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마치 제이미를 나의 친구처럼, 동생처럼, 아들처럼 여기고 응원해주는 것이었다.




#2 항상 널 지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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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가 환호와 응원을 받는 것이 극의 지향점이긴 하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제이미는 숱한 상처 또한 받는다. 우선, 제이미의 아빠는 특별한 제이미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들을 양육하는 것을 포기한다. 제이미는 이런 아빠에게 큰 상처를 받고 괴로워한다. 어린 소년이 견디기 힘든 아픔이었을 것이다. 또한, 극 중 화장실에서 눈썹을 그리던 제이미가 선생님에게 걸리는 장면이 있다. 눈썹을 잘못 그려 괴상해진 얼굴을 보고 선생님은 오히려 복도에 나가라고 말한다. 제이미는 공개적인 놀림감이 되었지만, 그는 자신을 예술작품에 비유하며 자신만의 춤을 춘다. 그 어떤 아픔도 극복해낸다. 그는 어떻게 이토록 단단한 내면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건 제이미의 주위에 그를 지지하는 인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이미는 엄마 ‘마가렛’, 그리고 ‘레이 이모’와 함께 산다. 이 두 인물은 제이미를 무조건 사랑한다. 제이미의 아빠는 가정을 돌보지 않기에, 엄마는 자신이 아빠인 척하며 제이미에게 선물을 준다. 그러나,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제이미는 자신을 속인 엄마에게 분노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엄마는 제이미는 나의 아들이라며, 모성애가 담긴 절절한 노래를 부른다. 이 장면에서 대부분 관객은 눈물을 흘린다. 어머니의 사랑이 없었다면 제이미의 성장이 이루어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레이 이모는 제이미를 향해 끊임없이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 너는 아름답고, 너는 한정판이라며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노래한다. 엄마와 이모, 이 두 캐릭터는 다소 평면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제이미와 같은 소년이 성장하려면 이처럼 열렬한 응원과 사랑을 보내는 주변인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3 그렇다면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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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남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이다. 그러나 타인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누구나 살면서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거나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마주하는 일을 겪었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데 있어서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여겨지고는 한다. 이전에 어느 교양 프로그램에서 ‘3T’ 이론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3T’란, ‘Technology’, ‘Talent’, ‘Tolerance’를 뜻한다. 포용력(Tolerance)이 높은 사회일수록 재능(Talent)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기술(Technology)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이 나와 피부색이 다르건, 종교가 다르건,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이 다르건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괴짜라고 불리는 특이한 사람들이 모여 능력을 펼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제이미>에서는 ‘포용’에 관한 주제를 전체적으로 내포한다. 드랙퀸을 꿈꾸는 성소수자인 제이미, 그리고 제이미의 친구이자 의사를 꿈꾸는 무슬림 여성인 프리티. 이 두 인물은 차별과 놀림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두 명은 서로를 응원하고 의지한다. 또, 자신을 향한 괴롭힘에 맞서며 주변을 변화시킨다.

 

이것은 비단 뮤지컬 속에 국한되어있는 문제는 아니다. ‘괴짜’는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곳이 학교이든, 직장이든, 다른 어느 단체에서든 나와 다른 별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그 사람이 노동자 계급의 사회 운동가일 수도 있고, 학교의 부조리함에 맞서 의견을 개진하는 학생일 수도 있으며, 직장 내의 폭압에 저항하는 한 회사원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그동안 당신이 속했던 사회는, 그리고 당신은 그 괴짜를 용인했는가? 혹은 묵인했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괴짜의 존재를 억눌러 지워버렸는가?


*


나는 뮤지컬 <제이미>의 영국 공연 영상을 유튜브에서 처음 접했는데, 독특한 무대에 눈길이 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뮤지컬이 한국에 들어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한국에서 라이센스 공연이 상연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정말 설렜다. 심지어 내년에는 뮤지컬 영화로도 개봉된다고 한다.

 

<제이미>의 음악과 안무는 굉장히 세련됐다. 흥겨운 비트를 기반으로 한 팝 음악에 스트리트 댄스가 더해져 신나고 경쾌하다. 특히, 커튼콜 때는 코로나19 때문에 함성을 지르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쉬울 정도였다. 이렇듯 <제이미>는 쇼 뮤지컬의 형식을 보여주고 있지만, 관객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는 뮤지컬이기도 하다. 특히, 2막에서는 연극적인 요소가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나 인물의 감정에 몰입하며 보게 된다. 곱씹어 생각해보면 좋은 대사와 가사도 많다.

 

‘태어날 때부터 반짝거렸던 제이미’, 재연으로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그때는 마스크 없이 함께 환호하고 손뼉 칠 수 있기를!

 

 

[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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