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 그리고 사람 [문화 전반]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그리고 영화 '벨벳 골드마인'
글 입력 2022.01.30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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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읽어본 책 중,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첫 페이지를 고르라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오스카 와일드가 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머리말을 꼽을 것이다.


 

“예술가는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예술은 드러내고 예술가는 감추는 것이 예술의 목적이다. (중략)


어느 한 사람이 자신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어떤 유용한 물건을 만들었다면 우리는 그를 용서할 수 있다. 쓸모없는 것을 만들었을 때 그에 대한 유일한 변명은 그것을 지독하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모든 예술은 정말 쓸모없는 것이다.”

 

 

세 페이지 남짓한 이 머리말은, 오스카 와일드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통해 말하고 싶은 내용의 핵심을 모두 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여러 번 읽고 또 읽었지만, 머리말과는 역설적으로 이 책에서는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가 어떤 사람인지가 너무나도 명확히 드러난다.

 

페이지를 넘기며 가장 감탄했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자신의 개성과 가치관을 인물을 통해 명확히 표현해내면서 동시에 독자를 작가 대신 작품에 완전히 몰입하게 하는 것. 탐미주의를 주창하는 오스카 와일드가 자주 쓸 법한 표현을 빌리자면,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추하면서도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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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친구와 술을 마시며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 있었다. 나는 영화를 정말 좋아하지만, 무언가를 창작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는 못할 것 같다고 말이다. 지금보다 한 해 어렸던 나는, 세상에 내가 쓰거나 만든 무언가를 내놓기를 두려워했다. 빈 잔을 채우던 친구는 내게 왜냐고 물어왔다. 나는 내가 만들어낸 것 속에 내가 너무 많이 담겨있을까 무섭다고 했다.


항상 자신의 경험이나 삶을 너무 많이 드러내지 않고도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지나치게 솔직한 이야기를 해 누군가가 나를 꿰뚫어 볼 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이 무서웠다. 하지만 반대로 지나치게 ‘나’를 드러내는 것을 배제한 체 무언가를 적어보려 하면, 그 글은 내 것이 아닌 남의 것 같았으며 죽어있는 글 같아 보였다.


개인의 작품 안에 개인은 얼마나 투영되어야 할까, 그리고 내가 나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없애야 할까는 오랜 시간 동안 나의 고민거리였다. 이런 고민을 한창 하던 시기 접하게 된 책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었다. 책을 읽은 후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의 삶이 궁금해져 찾아보기도 했다. 그의 삶은 도리언 그레이 같기도, 바질 같기도, 헨리 경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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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 바질은 그가 그린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공개적으로 전시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데 그의 초상화를 전시하지 않겠다는 이유가 뭔가?” 헨리 경이 물었다.


”왜냐하면,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내가 그 초상화 속에 이 이상한 예술적 숭배를 표현했기 때문이야. 물론 그 사실을 그에게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그는 아무것도 몰라. 알아서도 안 되고. 하지만 세상은 온갖 추측을 하겠지. 난 뭘 캐려고 유심히 살피는 세상 사람들의 경박한 눈길에 내 영혼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그들의 현미경 아래 내 심장을 놓이게 하고 싶지 않다고. 해리, 그 안에 너무나 많은 나 자신들이 들어있어. 나 자신의 거의 모든 것이!“

 

 

내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으며 가장 공감할 수 있었던 캐릭터는 화가 바질이었다. 바질에게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의 벽을 깰 수 있도록 만들어준 뮤즈였으며, 바질은 자신의 그림에 이러한 숭배 감정과 도리언 그레이와 예술에 대한 경탄을 드러낸다. 하지만 바질은 그림 속에 드러난 자신의 속내를 세상에 내보일 수 있을 정도로 대담한 사람이 아니었다. 바질은 도리언을 아꼈지만, 도리언의 관심을 집중시킬 정도로 매력 있거나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엇나가는 도리언을 바로잡지는 못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일부를 떼어내 그린 도리언의 초상화가 흉측하게 변한 모습을 보고는 충격을 받고, 사망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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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 헤인즈 감독의 1998년 작 ’벨벳 골드마인‘에도 오스카 와일드가 등장한다. ’벨벳 골드마인‘은 오프닝 부분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초록빛 보석 이야기를 언급하며, 화려하고 반짝이는 의상을 입고 쾌락과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1970년대 글램록 스타의 이야기를 다룬다.


’벨벳 골드마인‘의 주인공인 브라이언 슬레이드는 1970년대 영국 최고의 글램록 스타였다. 스팽글과 하이힐, 레이스, 쨍한 염색으로 꾸며진 온통 화려한 이미지들은 붕 떠 있다. 브라이언 슬레이드를 비롯한 글램록 열풍의 중심에 있었던 이들은 자꾸만 착륙하지 못하고 자신을 찾지 못한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벨벳 골드마인‘은 아름다움에 대한 영화지만 결국 영원히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말한다. ’벨벳 골드마인‘ 속 브라이언 슬레이드는 보여지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이미지 속 진짜 자기 자신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이 콘서트에서 암살되는 자작극을 버리고, 숨은 채 잊혀져 간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예술은 자아의 표출구가 되기도 하지만, 되려 자아를 억압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예술이 형성한 하나의 이미지가 종국에는 창작자를 죄어오기도 한다. ‘Life imitates art’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삶이 예술을 모방하는 것인가, 예술이 삶을 모방하는 것인가.

 

확실한 것은 예술과 삶을 떼어놓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과 예술을 어느 정도로 분리할 것이며, 나 자신의 얼만큼을 작품 속에 떼어 세상에 공개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 또한 예술가의 몫이다. 그렇다면 작품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작품을 대해야 하는 것일까. 작품 속 작가의 작은 비밀들을 하나하나 파헤쳐야 할까, 아니면 그저 멀리서 관조하는 자세로 작품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다 보면 과연 창작자는 무엇을 원할지가 궁금해진다.


분명한 것은 예술은 그 뒤에 사람이 숨어있기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는 작품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지게 하는 작품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작품과 개인을 동일시하는 것은 위험하고, 때로는 오스카 와일드의 주장처럼 적당히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을 때 예술은 더욱더 매력적이기도 하다.


책 한 권을 읽고 작가의 삶에 대해 찾아보기 위해 구글 검색창을 넘기다가 창을 닫았다. 저녁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하고 싶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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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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