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통받기에 나는 존재한다 – 도서 ‘삶이라는 고통’

가벼움을 던지고 무겁게 살아가기
글 입력 2023.11.0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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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를 질투하기


 

지금 이 시기에는 한대수라는 사람을 먼 옛날에 활동했던 반가운 사람으로 기억하거나, 아니면 처음 보는 기묘한 예술인으로 보고 새로이 접근하는 사람으로 나뉠 것이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어떤 사람이길래 ‘삶은 고통이다’라는 말로 당당하게 책을 낼 수 있는 거지? 이건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다.

 

히피, 보헤미안, 한국 모던록의 창시자이자 한국 포크록의 대가… 그를 설명하는 단어들은 이렇듯 화려하다. 그가 겪은 문화적 배경 또한 (그냥 지나가는 젊은이 하나가 보기에는) 탐이 나고 질투도 날 정도로 화려하기도 하다.

 

그가 한국에서 주로 활동했던 시기인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겪어온 길이 늘 그랬듯) 정치적으로는 혼란스러웠고, 그러는 한편 전쟁 이후 성장기를 겪으며 문화적으로는 빠르게 발전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의 전위예술가들은 파격적인 활동을 펼쳐 세간을 놀라게 했다. 한국 영화계에서는 이 시기를 진정한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로 기억한다.

 

그가 미국에 있었을 때는 말할 것도 없다. 비틀즈, 밥 딜런,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잭 케루악, 앨런 긴즈버그, 레너드 코헨… 지금의 젊은 세대 입장에서는 살아 계셨다는 사실 자체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멀게 느껴지는 전설의 예술가들이 커리어의 정점을 찍는 모습을 청년 한대수는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그가 느꼈을 문화적 ‘혜택’이라는 것에 대한 동경과 질투. 이것은 내가 그간 과거 세대에게 느껴왔던 감정이다.

 

 

 

정리된 역사의 한계


 

사실상 문화나 역사라는 게 딱 10년 주기에 맞추어 정확하게 변화하는 것이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많은 것들이 정리를 목적으로 그렇게 분리되고 분류된다. 그리고 그렇게 나뉘면서 윗세대가 했던 업적이 정량적으로 정리되는데, 그렇게 분류해서 보고 느끼는 것은 뭐랄까, ‘왜 그렇게 하셨어요?’ 정도가 될까?

 

남은 역사적 자료들이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은 자유롭고 풍족하고(원래 풍족해야 기록을 남길 수 있다마는) 즐거운 데 왜 지금 그들은 답답하고 한계가 보이고 고집이 세냔 말이다.

 

그러나 당시에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미국도 한국도, 전쟁이 당장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 뿐 사회는 혼란스러워지고 천박해지고 있었다. 그런 부조리들 속에서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의 일부가 지금 내가 보는 예술 작품들인 것이다. 한대수는? 그는 사진을 선택했다.

 

 

 

존재 증명하기


 

그가 꽤 오랜 세월을 사진으로 벌어서 생계를 유지했음에도 그가 사진작가였음을 아는 한국인이 많지 않은 듯하다. 이 사진집에 대한 반응을 모니터링 해보면 ‘한대수가 사진도 찍었어?’라는 반응이 제법 많으니 말이다.

 

사진집을 보면 그의 사진 작품이 그간 숨겨져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그의 사진은 사울레이터처럼 아름답고 감성적이지는 않다. 주요 역사를 기록한 기자들의 흑백 사진처럼 극적이지도 않다.

 

그저 존재하는 사진이다.

 

보통은 아름다운 것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 혹은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한대수는 거리에서 잊히고 스러져가는 사람들을 증명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듯하다. 사진 속 그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배경도 없다. 아무도 그들이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모른다.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그들을 보고 사진으로 증거를 남기는 것이 그의 행위인 것이다.

 

 

 

삶은 고통이라는 말의 무게


 

[i suffer therefore i am]

 

표지에 적힌 이 문장을 보았을 때, 그리고 ‘삶이라는 고통’이라는 제목은 이 문장을 한국식 표현으로 바꾼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전율을 느꼈다. 삶이 고통이라는 것은 뻔하디뻔한 말 같다. 그러나 ‘고통받기에 내가 존재한다’는 말 속에는 긴 시간이 압축되어 숨어있다.

 

삶은 고통이다. 한대수는 그것을 몸소 겪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이방인이었으며, 언제나 외톨이였다. 전쟁을 목격했다. 문화적으로 꽃피는 시기의 한복판이 있었음에도 시끄러운 세상에 관심을 두며 경계했다. 지금은 빛바랜 문구라고 생각했던 ‘사랑과 평화’를 말하던 삶의 방식을 택했으며,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그런 가장 쉬운 목표가 짓밟히는 것을 보고 있다.

 

그는 75세이다. 75세의 나이면 사실 많이 지친다. 시끄러운 세상사에 관심을 두기 보다는 다른 중요한 것들이 눈앞에 있을 것이라는 게 나의 추측이다. 이때 쯤에는 모든 무거운 생각을 내려놓고 가볍게 존재해야지, 막연하게 그린 그의 나이 즈음에 접어든 내 미래이다. 그러나 그는 60년 전에나 지금이나 세상에 전쟁이 일어나고 있음에 분노한다. 이 책은 그런 분노와 고통을 증명하려는 수많은 노력 중 하나일 것이다.

 

끝없이 고통을 증명한다는 것에 관해 골똘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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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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