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신과 인간에 관하여 - 라스트 세션 [공연]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이야기
글 입력 2022.01.2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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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수많은 종교가 있고, 그에 따른 수많은 신이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신이 있다. 종교가 있는 이들은 자신의 종교가 진리라고 믿으며 자신이 섬기는 신만이 유일하다고 믿는 이도 있다. 과거에는 종교로 인한 무시무시한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종교를 두고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이 생기기도 했다. 종교의 자유가 생긴 지금은 신을 믿느냐 안 믿느냐를 논하기보단, 어떤 신을 믿느냐고 물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무신론자다. 많은 종교가 저마다의 교리를 부르짖는 이 세상에서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신의 구원이고, 저주고 하는 어려운 말과는 관계없이, 그냥 내가 그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간단하게 말해 내가 아직 어떤 신의 영향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을 믿지 않을 뿐이지 종교의 존재나 영향 자체를 부정하진 않기 때문에 시간이 흐른 뒤 내가 어떤 신을 믿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연극 [라스트 세션]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20세기의 대표적인 무신론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기독교 변증가 루이스 박사의 만남은 실제 역사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은 두 사람의 저돌적인 토론을 무대 위로 불러냈다. 무대 위에서 프로이트와 루이스는 제 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에 만나 신과 종교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버린다. 그들은 신에 대해 서로에게 묻고 답하며 삶과 인간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다.


[라스트 세션]은 2009년 초연을 시작으로 2년간 775회의 롱런 공연을 기록한 바 있다. 그와 동시에 2011년 오프브로드웨이 얼라이언스 최우수신작연극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2020년 한국에서 초연되었다. 그 후 2년 만에 다시 한번 관객들에게 뜨거운 논쟁을 선사하고자 한다.


이번 한국 공연에서는 신구, 오영수 배우가 지그문트 프로이트 역을 맡고 이상윤, 전박찬 배우가 루이스를 맡았다. 이 중, 신구 배우와 전박찬 배우가 펼치는 열띤 토론의 한 가운데에 들어가 보았다.

 

 

22라스트세션_메인포스터_페어(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신을 믿지 않으십니까?



‘대위님은 신을 믿지 않으십니까?’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의 한 대사이다. 뮤지컬 속에서 주인공은, 오직 신만이 이 세상을 이런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며 신을 믿는다고 말한다. 반대로, 프로이트는 세상의 처절함을 근거로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세상 속 인간의 불행들이 신의 의도인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루이스는 성경 속 이야기를 꺼내 그 의견에 반박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논쟁에서 나는 한 가지 특이점을 발견했다. 두 사람의 의견 모두 인간이 먼저였다는 점이다. 종교와 맹목성은 떼어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신이 존재하기에, 신이 말씀했기에, 신이 지시했기에 신봉자들은 깨달음을 얻고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행동하는 이유는 오직 신이 그들에게 지시를 내려서이다. 프로이트는 과학적 근거를 들어 신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입증하려 했고, 루이스는 성경 속 이야기와 자신의 생각을 근거로 신의 존재를 입증하려 했다. 이렇게 신의 존재에 대한 어떠한 이유를 밝혀내려는 것 자체가 신보다 인간 존재를 우선적으로 생각한 부분인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이 토론은 성립할 수 없다. 신을 믿어야 하는 이유가 아닌 신이 존재한다는 이유를 밝히려는 건 인간의 주도적인 행동이다. 왜냐하면 종교의 교리상,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유를 밝혀야 하는 가설이 아니라 기정사실이기 때문에 그저 믿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신의 존재를 프로이트에게 납득시키고자 했던 루이스의 주장 역시, 신을 믿는 ‘인간’에 중점을 맞춘 주장이라고 느껴졌다.


신을 믿지 않는 내게 종교는 인간이 만들었고, 인간이 쌓아 올렸으며, 인간이 전파한 인간의 것이다. 그렇기에 종교 자체를 흥미롭게 느끼고 있다. 무조건적으로 신을 숭배하는 주장이 아니라, 인간의 입장에서 논리적으로 신의 존재를 이해하려는 주장과 인간의 입장에서 신을 믿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한 토론을 들으니, 비로소 종교에 대한 이해가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어떤 종교에서도 인간이 먼저라는 내 생각으로부터 강한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던 극이었다.


이 때문에 프로이트와 루이스 역시 토론 속에서 그들을 인간 자체로 바라보게 된다. 그들은 신의 영역에 대해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신 앞에 놓인 ‘인간’. 즉 그들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끝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었다. 프로이트는 구강암에 대한 끔찍한 고통 앞에 솔직해졌고, 음악이 주는 감동의 두려움을 인정했다. 루이스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인정함과 동시에 현실에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것은 서로의 생각에 설득되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토론이 스스로를 인간 자체로 바라보도록 이끌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무대 위에서 마주한 건 하나의 무신론자와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 사람 프로이트와 루이스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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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나는 믿지 않는다 해도, 종교는 사람의 인생에 있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종교인들은 종교가 있어 비로소 삶의 이유와 삶의 방향을 찾는다. 그보다 더 보편적인 인간의 삶의 이유는 바로 신념 정도가 되겠다. 인간 모두 종교는 없어도 신념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논쟁 속에서 느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상대방의 의견을 포용하는 자세? 보다 논리적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무너뜨리려는 자세? 모두 아니다. 우리가 이들의 대화 속에서 가져야 할 건 바로 개인의 신념이다. 프로이트도 루이스도 전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토론에 임한다. 서로의 의견에 인정할 부분이 있다면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은 꺾지 않는다. 프로이트가 루이스가 떠난 후 음악을 들으며 사색에 잠기긴 했지만 그는 끝까지 무신론자로 생을 마감했다. 루이스가 프로이트에게 보험이 있으면 좋겠다는 농담을 던지긴 하지만 그 역시 끝까지 신을 사랑했다. 이처럼 이들은 스스로의 신념을 굳게 지켰다. 이 극을 보는 우리 역시 마음 한구석에 있는 각자의 신념을 소중히 지켜야 할 것이다.


프로이트는 감정이 두려워도 생각을 멈춰선 안 된다고 했다. 내 생각이 어떤 감정의 결과를 불러올지 그게 두려워도, 정말 두려운 건 그것에 대한 생각을 아예 멈춰버리는 것이다. 그만큼 자신의 생각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건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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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주제의 연극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 건 다름 아닌 무대 구성과 배우들의 연기였다. 생각해볼 여지가 많았던 극본의 대사도 정말 좋았다. 하지만 작은 무대 곳곳의 소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구성이 인상 깊었다. 프로이트의 서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극은 프로이트의 책상과 작은 소파, 침대를 오가는 동선을 활용하면서 자칫 작게만 느껴질 수 있는 무대를 확장시킨다. 그를 통해 관객들은 움직이는 시선을 통해서 보다 다채로운 관극을 할 수 있다. 또한, 프로이트의 책상 서랍, 전화기, 책상 뒤에 놓인 오브제 등 작은 소품들의 활용은 디테일을 살려 관객들의 몰입을 돕는다. 조도를 조절하는 조명의 섬세함도 몰입에 큰 도움이 되었다.


관람했던 회차의 캐스팅은 신구 배우와 전박찬 배우였다. 관극을 하기 전부터 기대되는 캐스팅이었다. 신구 배우는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익숙한 배우이고, 전박찬 배우는 연기를 처음 보는 신선한 배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만큼 우려도 따라붙었다. 전박찬 배우의 연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정보가 없었고, 신구 배우의 익숙한 이미지가 프로이트 역할의 몰입을 방해하면 어쩌나 싶은 우려였다.


이러한 우려가 무색할 만큼, 나는 신구와 전박찬 캐스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우선, 이 극은 90분이라는 상당히 긴 러닝 타임을 인터미션이나 퇴장 없이 두 배우가 오롯이 이끌어나가야 하는 2인극이다. 그만큼 두 배우의 호흡이 중요하다. 신구 배우와 전박찬 배우는 90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주고받는 연기의 합이 좋았다. 특히 토론이 절정에 달하며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감정이 격앙되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두 사람의 긴장감은 압권이었다. 서로의 입장을 굽힐 생각이 없는 프로이트와 루이스는 치열한 토론 속에서 첨예하게 대립하지만, 공습경보와 프로이트의 고통을 함께하면서 작은 친밀감이 형성되기도 한다. 이 친밀감이 두 배우 사이에서 포착되었을 때의 희열도 이루 말할 수 없다. 두 사람의 연기 합 속에서 간간이 등장하는 농담들이 상당히 위트 있어서 극을 유연하게 진행했다.


신구 배우는 프로이트 그 자체를 연기했다. 무대 위에 있는 건 내가 아는 신구가 아니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 자체였다. 저명한 과학자로서 정신 분석을 연구하지만 스스로의 감정을 두려워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 자체가 눈앞에 있었다. 차분하게 의견을 펴는 모습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도, 격앙된 목소리로 분노하는 모습까지 그는 오직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연기했다. 전박찬 배우의 연기도 인상 깊었다. 또렷한 발음과 발성으로 전달하는 그의 대사는 전달력이 매우 높았다. 또한 전박찬 배우가 마냥 번듯하고 매너 좋은 모습만이 아니라, 강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루이스의 모습을 연기해서 보다 몰입할 수 있었다. 공습경보에 두려워하는 모습부터 프로이트의 고통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지만 손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싶어 하는 모습 등 그의 입체적인 연기는 루이스라는 사람 그 자체를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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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 오영수, 전박찬, 이상윤 배우가 펼치는 토론의 장 [라스트 세션]은 2022년 3월 6일까지 대학로 TOM 1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인터파크에서 예매 가능하며, 화, 목, 금 오후 8시. 수요일 오후 5시 토, 일, 공휴일에는 오후 3시와 6시에 관람할 수 있다. 무신론자와 유신론자를 막론하고 인생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할 수 있었던 연극 [라스트 세션]. 인생과 인간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면 꼭 관람해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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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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