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아이들이 세상을 바꾼다

정의롭지 못한 어른의 부끄러움
글 입력 2022.01.1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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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믿지 않는 아이들이 세상을 바꾼다. 어른들이 망쳐놓은 걸 정의로운 아이들이 바로잡는다.


못난 어른은 아이들을 보호해주지 않고 계산기 두드리며 서로의 잇속만 챙기다가 책임회피로 마무리한다. 어른이 만든 세상에 내던져져 보호막을 갖추지도 못한 어린아이에게 어른이 기어코 상처를 준다. 마치 이번 군부대 위문편지 사건처럼 말이다.


아이들이 성의 없는 편지를 쓴 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내가 심각하게 생각한 건 위문편지로 피해를 본 학생이 있었음에도 매년 위문 편지쓰기를 강요했다는 부분이다. 학번과 이름을 적었더니 학교로 찾아오는 군인, 신분을 밝히지 않았더니 페이스북을 통해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연락 달라는 군인, 여고생에게 듣는 오빠 소리가 좋다고 하는 군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개인 정보가 노출되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가해자가 분명한 사건을 겪고 또 다른 학생이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 어른으로 할 만한 행동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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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속한 학교가 학생 편을 들지 않으면 아이들은 무엇에 정의를 기대해야 할까.


학교는 학생의 편지가 취지를 심하게 왜곡했다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성명과 함께 해당 부대에 사과할 것임을 밝혔다. 미성년자인 고등학생이 피해자가 되었고 될 수 있는 상황이었고 현재 2차 가해로 피해를 보는 상황은 취지에 부합하는 결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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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입장문은 어른들의 분노에 기폭제가 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학교의 결정에 많은 어른들이 국민청원과 민원 등을 통해 행동했다. 그 결과 청원 2일 만에 12만 명의 동의를 얻었고, 14일에는 교육부와 학교에 항의하는 전화와 팩스 총공이 있었다. 또한 포털 검색어에 학생 신상이 노출되지 않는 방법을 공유하며 학생을 지키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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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구경하 기자는 13일 일제 강점기에 시작된 위문편지에 관한 기사를 게재했다. 내용을 보면 “학교에서 집단적으로 군대에 보내는 공식적인 위문편지는 일본에서 처음 등장해, 중·일 전쟁을 계기로 조선인에게 본격 강제된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며,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을 연구한 김영순 박사의 논문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였다.

 

 

“이 같은 위문 편지 쓰기는 일본어를 교육하고 "황군에 대한 감사의 관념과 애국심을 향상"시키기 위해 전시 내내 총독부 차원에서 전국에서 장려

(...)

대부분의 위문 편지는 일본인 '황군'을 위한 것이었다고

(...)

또 위문 편지의 천편일률적인 내용과 형식을 볼 때, 실제 군인을 위로하기보다는 조선인 학생들에게 '황군'에 대한 '감사'와 '충성'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려는 황민화 교육, 규율 기제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분석합니다.“

 

 

기사에 따르면 위문편지 쓰기는 군민주화와 함께 사라지고 학교 단위의 위문편지는 부대와 결연을 맺은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쓰였다고 한다. 일제의 잔재가 군민주화시기를 지나 21세기까지 부대와 학교의 자매결연으로 남아있었다.


14일, 해당 학교는 위문편지와 봉사활동을 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하여 교육청에 통보할 예정임이 관계자를 통해 밝혀졌으며,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SNS를 통해 학생에 대한 괴롭힘을 멈춰줄 것을 호소했다.

 

또한 높아진 성인지 감수성이 기존의 것에 의문을 던지며 구체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며 시대 흐름에 맞는 평화 통일 교육 활동의 변화 요구, 성역할에 대한 편견이 반영된 교육 활동 등을 고려하지 못했던 점을 되돌아보게 한다고 교육감으로서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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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어릴 적 ‘국군아저씨께’로 시작하는 위문편지를 썼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군대이니 나를 보호하는 군인에게 감사 인사를 표하는 건 그런대로 납득이 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고생에게 위문편지를 강요하는 건 어떻게 봐도 부당하다. 여고생이기 때문에 위문편지 하나로 피해자가 될 수 있는데 주의문구 하나로 예방책 삼은 학교는 안일했다. 마치 내용을 검열할 것처럼 봉투를 봉하지 말라고 했지만 학생의 편지가 전달된 걸 보면 검수는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학교가 편지를 수거해서 전달하기만 했다면, 만에 하나 학생이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고 개인정보를 적었더라도 학교는 막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선택한 사회가 아니니 어른은 미성년자를 보호해주어야 한다. 아이가 부당함을 느끼고 목소리를 낸다면 들어주어야 한다. 예방할 수 있는 사고에 아이가 다치고서야 처치하는 일은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이번에도 부당함에 저항한 학생이 시작이었다. 어른들이 시킨 일이니까, 남들 다 해왔던 일이니까, 라는 이유로 납득하고 넘어갔더라면 미래의 학생들도 똑같은 상황에 내몰렸을지 모른다.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아이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나아가 정의롭지 못한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든다고.

 

 

참고기사: 구경하, "학생에게 강요된 위문편지, 언제부터 왜 썼나", KBS NEWS, 2022.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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