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거주 환경, 그리고 예술 작품의 색깔 [영화]

글 입력 2022.01.05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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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영감과 작업의 원천은 생각보다 더 다양한 갈래에서 비롯된다. 그중에서도 거주 환경은 예술가들의 정체성 확립과 작업 제작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례로 영국 출신 예술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의 초기 60년대 그림에서는 캘리포니아로 넘어가서 작업한 밝고 선명한 색채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림에서 화가가 온몸으로 체화하게 된 과정과 영향을 찾아볼 수 있듯이 영화감독도 하나의 창작자로서 연출이나 편집 등 영화 속에서 그들만의 고유한 색깔과 분위기를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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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ockney 〈First Love Painting〉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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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ockney 〈We Two Boys Together Clinging〉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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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ockney 〈Interior with Blue Terrace and Garden〉 2017


 

다큐멘터리 영화 〈데이비드 린치: 아트 라이프(David Lynch: The Art Life, 2016)〉는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David Keith Lynch, 1946-)를 조명하고 있다. 데이비드 린치는 데뷔작 〈이레이저 헤드 (Eraserhead, 1977)〉를 시작으로 〈엘리펀트 맨 (The Elephant Man, 1980)〉, 〈블루 벨벳 (Blue Velvet, 1986)〉, 〈광란의 사랑 (Wild at Heart, 1990)〉, 〈멀홀랜드 드라이브 (Mulholland Drive, 2001)〉 등 다수의 명작을 제작했다.

 

그에게는 '컬트의 제왕', '아카데미 감독상 노미네이트'는 물론 '칸 감독상 수상'과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1위', '칸 황금 종려상 수상' 등 화려한 이력과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 사이에서도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는 소위 있어 보이고 해석이 필요한 어려운 영화에 속한다. 이처럼 영화계에 한 획을 긋고 날 때부터 감독을 꿈꾸었을 것 같은 데이비드 린치의 원래 꿈은 아이러니하게도 영화감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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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린치는 영화계에 발을 담그기 이전 그림을 전공했는데 당시 그림을 그리면서 작업 과정 중 여러 실험을 통해 우연한 기회로 움직이는 그림(moving painting)과 영상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영상에 막 흥미를 갖기 시작했던 그는 생활비가 필요해 당시 미국 영화 학교 독립 영화 펀딩에 공모했고 이 공모전에 선정되어 그날 이후로 영화감독의 길을 걷게 된다.

 

한편, 이 다큐멘터리 극의 중간중간에는 데이비드 린치가 제작한 드로잉과 페인팅, 조각 영상을 보여준다. 이 작업물들은 주로 매우 어둡고 음산하며 불쾌함이 느껴질 수 있는 분위기이다. 그의 영화와 그림 작업은 난해하고 밝지 않다. 데이비드 린치의 고유한 색깔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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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Lynch 〈Boys Light Fir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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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Lynch 〈Bob Finds Himself in a World For Which He Has No Understanding〉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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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Lynch 〈This Mas was Shot〉 2004

 

 

데이비드 린치가 기억하는 유년 시절의 기억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들과 즐겨한 전쟁놀이 그리고 남이 그린 밑그림에 색칠을 절대 못 하게 하며 창의력을 키우게 한 어머니와 위선적이지 않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던 아버지가 있다.

 

데이비드 린치는 꽤 안정적이고 사랑이 가득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런데도 그의 10대는 담배와 술이 가득하고 어두운 드로잉을 주로 그리며 꽤 거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보스턴 예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곳은 학생들이 학교가 정한 방식 내에서 작업해야 했다. 갇힌 틀 안의 작업을 원하지 않았던 그는 짧고 강한 방황의 기간을 지나 펜실베니아 예술 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학교가 위치했던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그의 영감의 원천과 작업의 기반이 되는 색깔이 더욱 뚜렷해지게 된다. 데이비드 린치는 필라델피아를 뉴욕의 가난한 동네와 같았다고 비유한다. 그가 언급하는 필라델피아의 수식어는 평범하지 않은 도시, 공포와 광기, 절망과 폭력, 연기가 자욱한 큰 공장 등 주로 어둡고 차갑다. 그는 이곳에서 잦은 인종 혐오를 목격하고 병들고 부패한 냄새가 가득했음을 기억하며, 특히 영안실 건너편에 거주해 죽음과 가까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당시 언급한 분위기를 통해 역사적인 분위기를 살펴보면 60년대 당시 필라델피아는 탈산업화와 40년대 후반 이루어졌던 대규모 도시 개발로 들어섰던 공장들의 낙후와 재개발로 어수선했을 것이다. 이런 도시에서의 거주 환경은 예술가로 성장해가는 한 사람에게 양가적인 영향을 주었다.

 

데이비드 린치: "예술을 시작하기에 도시엔 공포가 가득했고 내 감정은 흥분되었다. 필라델피아는 예술가로서 아트 라이프를 만끽할 수 있는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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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한 명을 다루고 있는 〈데이비드 린치: 아트라이프〉 다큐멘터리는 자전적인 성격과 포맷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을 깊게 다루기보다 러프하게 막 써 내려간 일기장을 훑어 읽듯 전개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영화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지점은 자아가 확립되는 인간에게 특정한 시기와 지역에서의 거주환경이 아주 유기적이고 깊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모든 창작이 매번 새롭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듯 보여도 이는 과거의 기억과 경험에서 비롯됨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손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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