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창작물이라고 왜 말을 못 해 [문화 전반]

업무상 저작물 창작자의 권리를 찾아서
글 입력 2021.12.30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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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내가 그린 캐릭터가 카카오의 라이언보다 대박이 났다고 상상해보자. 인형으로도 팔리고, 만화로도 만들어지고, 세상 온갖 곳에 보이는데, 내게 주어지는 돈은 0원이라면 어떨까? 그저 지난달과 같은 액수의 월급만이 통장에 들어오는 이 상황은 지금 우리 주변의 창작자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업무상 저작물의 저작권은 창작자 개인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 업무를 지휘, 기획, 감독한 법인(회사)에 귀속된다. 업무상 저작물이 한 개인의 능력으로만 만들어진 게 아니라, 회사의 물적·인적 투자를 바탕으로 탄생했다고 보아 사용자(회사)의 이익을 고려한 규정이다.

 

하지만 개인 창작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저작물에 어떠한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는 점이 불합리하다고 여겨진다. 회사의 기획과 주도하에 이뤄진 창작 활동이라지만, 저작물을 만든 ‘창작행위’는 회사가 아니라 종업원, 인간이 한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반면 비슷한 케이스로 볼 수 있는 직무발명은 발명자를 종업원으로 보고 있다. 회사에 소속된 직원이 직무상 창작한 발명에 대해 특허를 받을 권리가 그 직원에게 귀속된다. 회사는 이에 대한 통상실시권(특허권자가 아닌 제3자가 정해진 규정 안에서 특허발명을 사용하는 권리)을 지닐 수 있고, 아예 발명에 대한 권리 전부를 양도받기 위해서는 직원에게 합당한 보상을 주어야 한다.

 

업무상 저작물과 직무 발명 모두 회사 내의 근로자가 한 행위다. 물체나 성질, 특징은 다르지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창작/개발을 한 것인데 예외적으로 업무상 저작물만 어떠한 권리나 보상금이 없다 보니 이에 대한 보상의 필요성이 논의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업무상 저작물 조항을 개선해 창작자의 권익과 법인의 원활한 저작물 이용이 균형을 이루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실제 저작물을 작성한 사람을 저작자로 하는 특약을 맺음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서로의 합의로 창작자(종업원)의 권리도 사용자(법인)의 권리도 지킬 수 있는 장치라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 소속되는 신인, 개인 창작자들이 고용주에 위치한 회사에 특약을 요구할 수 있는 위치인지 생각해보면 실효성이 있는 장치인지 고민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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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은 많은 이들의 공정한 이용을 위해서도 존재하지만, 가장 중요한 목표는 창작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업무상 저작물 관련법은 창작의 주체에게 불리해보인다. 나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업무상 저작물의 보상체계나 권리 귀속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실질적인 창작행위는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점.

둘째, 창작자의 의욕을 저하하는 불합리한 제도.

셋째, 여러 나라의 법률을 참고했을 때 국내의 업무상 저작권은 상이하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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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법 제2조 제1호에 따르면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말한다. 인간이 표현한 게 아니라면 저작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원숭이가 실수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 찍은 사진도, 인공지능이 만든 그림도 저작물로 인정받을 수 없다. 인간인 사진작가가 인간이 만든 카메라를 들고 갔다 찍은 사진이었지만 실제로 셔터를 누른 것은 원숭이의 손이었기 때문이고, 사람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 인간이 탄생시킨 인공지능이지만 그는 결국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업무상 저작물 또한 마찬가지다. 한 종업원이 회사가 주는 급여를 받으며 그들의 지시하에 저작물을 만들었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창작 행위를 한 것은 종업원 개인이다. 회사의 물적·인적 투자는 앞서 언급한 사례의 사진기, 인공지능 안에 들어 있는 빅데이터와 유사하다. 창작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나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작 행위에 함께한 것은 없다.

 

작품 창작 활동에 기여한 권리를 분리할 수 없는 공동저작물에서는 자연인과 법인이 함께 할 수 있다. 하지만 물질적으로만 지원하는 경우는 제외다. 창작에 이바지한 부분을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표현에 직접적인 행위를 개인과 같이했을 때 법인도 저작자의 권리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사례까지 놓고 보면, 창작에 깊이 관여하지 않고 기획과 지원만을 한 법인에 창작자의 모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부당해 보인다.

 

이러한 부당함은 결국 창작자의 의욕을 저하로 이어진다. 본인의 창작활동이 어떠한 보상으로도 연결되지 않는 일이 반복되면 창작자는 회사에서 일할 의욕을 잃을 수밖에 없다. 앞서 말했듯이 창작물의 권리를 종업원 개인의 권리로 주장할 수 있는 특약은 현장에서 이뤄지기는 어렵다. 회사와 종업원 간 힘의 격차를 고려했을 때 현실적으로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창작자의 창작 의욕 저하는 결국 회사에도 손해다. 자신의 노력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창작자는 회사를 떠날 것이고, 회사 입장에서는 해당 창작물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고, 또 이어서 발전시킬 수 있는 창작자를 놓쳐버리는 셈이다. 회사 역시 업무상 저작물에 대한 보상금 체계가 명확히 있다면 창작인력을 영입하고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업무상 저작물 법안은 타 국가와도 다른 양상을 보인다. 대륙법계의 대표 국가 독일의 경우는 저작권법에서 업무상 저작물이라는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를 저작자의 인격을 중요시하는 대륙 법계의 특성으로만 볼 수는 없다. 저작자의 재산적 이익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는 영미법계 국가들 또한 법인에 대한 저작인격권을 제한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업무상 저작물의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 모두 법인에 귀속하고 있다. 종업원은 창작자임에도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오직 인간만이 이뤄낼 수 있는 창작 행위의 결과와 권리를 비인격적인 존재로 볼 수 있는 법인에 부여하는 법안은 옳은 것일까? 무조건 타 국가와 비교하여 같지 않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저작자의 권리에 대해 많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돌아보면 법 개정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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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법안을 개정하는 게 현명한 결정일까? 첫 번째 방안은 저작재산권은 회사에, 저작인격권은 종업원에게 부여하고, 업무상 저작물로 회사가 번 수익에 따른 배분 금액을 종업원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영화계에는 러닝개런티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영화에 참여하는 감독이나 배우, 스태프들이 출연료 외에 흥행 결과에 따라 개런티를 지급받는 방식이다. 이는 흥행에 따라 개런티를 부여하는 방식이라 자금의 부담도 덜하다. 업무상 저작물의 보상체계에서는 배우의 출연료가 종업원의 기본 월급, 흥행에 따른 수익은 저작물로 얻은 이익으로 간주해 이를 적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회사는 종업원이 만든 업무상 저작물이 성공할지, 아닐지 모름에도 저작권료나, 보상금을 주어야 하는 불확실함을 떨쳐버릴 수 있다. 창작자인 종업원은 재산적 이익을 확보할 수 있으면서도 인격권은 본인이 소유하고 있어 자신의 창작물임을 인정받았다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방안은 직무발명처럼 회사는 통상실시권만 갖고 창작한 종업원이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을 모두 갖는 것이다. 회사가 온전한 권리를 얻고 싶다면 합당한 보상을 통해 창작자로부터 권리를 사들여야 한다. 회사와 종업원 사이의 자유로운 협상을 추구하는 방안이지만, 사용자인 회사 입장에는 불리한 조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세부적인 사안으로 ‘합당한 보상’의 금액을 산정하는 부분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저작물 창작 과정에 기획의 디테일, 횟수, 지원한 물적 자원과 인적 자원의 양을 따져 보상금의 범위를 산정하는 것이다. 물론 수치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다수 존재하지만, 기획과 지휘에 큰 노력을 들인 회사라면 자신들의 기획/지도 행위를 입증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으로 생각된다. 보상금은 결국 창작자의 창작 행위, 그로 얻은 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금액이기 때문에 창작자인 종업원이 보상금을 받고 권리를 넘기는 것은 합리적인 협상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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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콘텐츠는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디지털화로 인해 창작도 복제도 쉬워진 현 사회에서, 저작자의 권리를 온전히 지키는 힘은 문화콘텐츠 강국의 바탕이 된다. 수많은 회사 안의 창작자들에게 <파리의 연인> 박신양처럼 "내 창작물을 내 거라고 왜 말을 못 하냐고" 소리치는 게 능사는 아니다. 더욱 더 많은 종업원 창작자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시장이 되기 위해 지금까지 얘기한 이 법안 개정이 먼저 이뤄질 수 있도록 다 함께 관심과 노력을 쏟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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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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