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극에 관하여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11.05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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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에는 비극이 존재한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죽음을 맞아야만 하는 현실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성적으로 인간의 비극을 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극적 인생을 어떻게 비추어 볼 것인지도 중요하다.

 

드라마에 있어서 비극은 가장 우월한 장르이다. 고전적 의미에서 비극은 자아와 세계의 대결로 압축된다. 세계의 한복판에 던져진 비극의 주인공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운명 혹은 숙명이라는 굴레와 맞닥뜨려진다. 그는 자신의 자유 의지를 방해하는 외부적 힘에 대항하여 고통과 시련을 감내하고 맞서 싸우지만 점차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다가 결국에는 패퇴하고 만다.

 

비극적 상황은 비록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로부터 주어지지만, 그에 대한 선택과 판단은 온전히 그러한 상황과 맞닥뜨린 주체의 의지로부터 결정된다. 하지만 의지적 선택과 판단은 항상 주체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로 이어진다. 비극이 비극인 이유는 그러한 의도의 빗나감, 즉 이성과 합리로는 예측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세계 앞에 인간이 패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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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하는 사랑
사랑을 위한 죽음
비극을 이끄는 운명과 행운

 

 

본디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랑의 과정에서 부모의 반대나 기존의 가치체계, 윤리, 사회적 관념 등 다양한 요소들로 인해 난관에 봉착한다. 그러나 이 모든 매듭들은 처음에는 꽁꽁 묶여 있다가 대단원에 이르면 모두 풀려 행복한 결말로 극이 끝나게 된다. 등장인물들이 겪는 고난은 일종의 교훈을 주는 것이다.

 

비극에서 다뤄지는 사랑은 희극 속의 사랑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희극의 경우, 결혼으로 사랑의 결말을 맺는 것이 자연스러운 주제이므로 어떤 소동이나 문제가 사랑의 과정에서 고난과 역경을 겪게 할지라도 해피엔딩으로 극복이 되며, 사랑의 행로에 놓여있는 어려움들은 크게 비극적이지 않다.

 

반면 비극에서의 사랑은 결혼이나 이를 약속하는 행복한 결말로 이루어질 수 없다. 비극의 일반적인 결말은 죽음이다. 비극은 주인공의 죽음에 우선하며 결국 죽음으로 이끌어가는 주인공의 인생에 고통스러운 면모를 묘사하며 이례적인 고통과 재난이 저명한 인물에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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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생여고> 1화 中, 남자 주인공의 독신 맹세

ⓒ아이치이 IQI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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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생여고> 1화 中, 여자 주인공의 혼약

ⓒ아이치이 IQIYI

 

 

위 작품은 중국 드라마 <주생여고>이다.

 

이 작품에서의 남자 주인공은 평생 나라와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충성을 맹세한 친왕이다. 수많은 공적과 우아한 성품을 가진 그는 권력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황제를 향해 독신 맹세를 하는데,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여자 주인공의 황실과 얽혀있는 혼약은 남자 주인공과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임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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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생여고> 2화 中, *배사례 장면

ⓒ아이치이 IQIYI

 

 

*배사례 (拜師禮) : 스승에게 인사를 드린다는 뜻으로, 제자로 받아들여진다는 의미

 

무엇보다 남녀 주인공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로, 동양철학적인 시선에서 보아도 부적절한, 이어질 수 없는 인연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주인공들은 운명에 이끌려 가는 동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가슴 아파하고, 깊이 갈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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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생여고> 23화 中, 남자 주인공의 죽음

ⓒ아이치이 IQI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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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생여고> 24화 中, 여자 주인공의 죽음

ⓒ아이치이 IQIYI

 

 
그리고 결국, 나라에 대한 굳건한 충성심에도 결국 모함을 받아 죽음을 맞이하는 남자 주인공과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워하며 성벽에 몸을 던지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은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온전히 보여준다.

 

일반적인 비극성 작품과 다른 점은 이 작품의 주인공이 가진 처지가 그의 엉뚱한 과오로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자 주인공의 맹세는 오로지 영지를 보호하는 친왕으로서 그의 충성심과 애민정신을 다짐한 것이며, 여자 주인공의 혼약 또한 그의 의지로 맺은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불운한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주인공이나 그 주변 인물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밀려 멸망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들이 피할 수 없는 힘은 냉혹하고도 움직일 수 없는 운명이라는 사실이며, 여러 비극적인 장면들을 통해 거듭 확인할 수 있다. 작품을 보면 간발의 차로 여자 주인공의 혼약 확정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 가장 안타까웠던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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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생여고> 24화 中

ⓒ아이치이 IQIYI

 

 
계속되는 황실 내부 갈등과 외부적인 세력 싸움 같은 돌발적인 사건들의 연쇄는 운명적으로 비극의 결말을 향하고 있다. 모함을 받아 잔인한 형벌을 받고 죽는 남자 주인공과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다음 생을 기약하며 결국 성벽에서 몸을 던지는 여자 주인공처럼, 사랑의 비극에서는 단일 주인공보다는 남녀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또한 이들의 사랑은 희극에서처럼 고난을 겪을지라도 비극의 특성으로 인해 그들에게 주어진 결말은 죽음인 것이다.

 

다만 사랑을 주제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희극적 요소들도 가지고 있으면서 비극의 형식을 갖춘다. 여자 주인공을 향한 마음으로 인해 독신을 맹세했던 것을 계속 떠올리고 갈등하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과 그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여자 주인공의 모습은 희극을 떠올리게 한다.

 

비록 이들의 죽음은 비극의 형식을 갖추었지만 그 죽음이 사회의 화합을 가져오고, 명예를 지키며, 두 사람의 온전한 결합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남녀 주인공의 죽음 이후 새로운 왕이 즉위해 나라가 안정되었고, 여자 주인공의 가문은 명예를 지켰으며, 여자 주인공이 다음 생을 기약하는 장면은 결국 내세적으로라도 온전한 결합을 할 것임을 암시한다.

 

그들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깊은 여운을 준다. 개인적으로 비극적인 결말의 작품을 좋아한다. 여운이 오래 남아 작품을 이해하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롭기 때문이다. 남자 주인공의 입장에서, 여자 주인공의 입장에서 각각 보는 재미가 있다.

 

남녀 주인공이 둘 다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이 흔하지 않은데, 이 작품은 완전한 비극적인 결말로 오히려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극대화하고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래서 비극이란 것이 과연 무엇이길래 우리에게 이러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여 글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끝내 알게 된 것은 비극이란 사랑과 죽음이라는 상반된 명제로, 수많은 독자와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오히려 희극의 요소를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는 문예 양식의 갈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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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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