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피드백 모임] 풀리다: 춥던 날씨가 누그러지다

1월부터 4월까지 함께한 사람들
글 입력 2024.04.1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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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풀렸다. 1월에 있었던 첫 모임에는 눈이 왔고 우린 포장지 같은 패딩으로 꽁꽁 싸맨 채 만났다. 그런데 이번 달 있었던 마지막 모임, 그러니까 정식으로서는 마지막이 될 4월의 모임에는 봄이 완연하다 못해 여름에 쫓기는 듯했다.


날이 풀렸다. 저 문장을 쓰다가 새삼스러워 사전을 좀 찾아봤다. 풀리다는 ‘춥던 날씨가 누그러지다’라는 뜻을 가진다고 한다. 이 의미로 쓰일 때는 피동이 아니다. 아무래도 날씨는 풀리는 거지, 전지전능하시다는 누군가 날씨를 푸는 건 아닐 테니까.


‘풀다’의 피동인 ‘풀리다’까지 살펴보면 의미가 꽤 섬세하게 나눠져 있다. 하나하나 살펴보며 우리 모임을 하나하나 풀어보겠다.

 

 

 

1-10. 긴장된 상태가 부드럽게 되다.


 

환한 방에 들어서자 마음이 좀 놓이는지 굳었던 얼굴이 풀리기 시작하였다.


만남의 첫 수순은 당연히 인사 나누기. 활발한 사람이냐 아니면 조용한 사람이냐라는 이분법적 구분으로 따지자면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은 모두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연스레 첫 만남에는 약간의 서먹함이 공기를 채웠다. 하지만 우리의 대화는 어색할지언정 한 번도 끊기지 않았고 그 어색함마저도 금세 몸집을 줄였다. 각자의 긴장된 몸, 그리고 그 사이의 긴장된 분위기는 어느새 풀렸다.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1-2. 생각이나 이야기 따위가 말해지다.



모임의 목적이 여기서 나온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하는 사람들의 오프라인 피드백 모임. 그것이 우리의 모임이었고 우리는 서로 쓴 글을 봐주기 위해 만났다. 


아트인사이트에서 ‘오프라인 피드백 모임’을 모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귀가 솔깃하면서도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에는 망설임이 컸다. 내가 피드백이란 걸 줄 수 있는 사람인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피드백을 받기만 하고 싶지, 줄 자신은 없었다. 


무언가 켕기는 게 있을 때는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된다. 그때도 피드백의 정의를 찾아봤다(피드백은 의외로 표준국어대사전에 떳떳하게 이름을 올린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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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의 출력과 입력 어쩌고 하는 물리 분야의 첫 번째 정의는 일단 제치자. 그다음에도 세 가지의 정의가 남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의미는 ‘학습자의 학습 행동에 대하여 교사가 적절한 반응을 보이는 일’, 그리고 ‘진행된 행동이나 반응의 결과를 본인에게 알려 주는 일’, 마지막으로 ‘수용자 반응에 대한 전달자의 대응적 반작용’이라는 의미가 있다. 


우리의 피드백 모임은 ‘진행된 행동이나 반응의 결과를 본인에게 알려 주는 일’을 하는 피드백 모임이었다. 서로의 평가자라기보다는 독자이자 감상자. 교육적인 피드백이라고 생각하면 주기도 받기도 어렵지만, 솔직한 반응을 공유하는 시간이라면 부담이 줄어든다. 


피드백 모임이라는 거창한 이름 아래 너무 사소한 행위가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 유명 작가가 아닌 상황에서 내 글의 독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이 잘 전달되었는지, 독자가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 도리어 나는 보지 못했지만 독자가 본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시간이다. 우린 둘러앉아 서로의 생각이나 이야기 따위를 말하고 듣고 또 말하며 한참을 풀어냈다.

 

 

 

2-1. 액체에 다른 액체나 가루 따위가 섞이다.


 

이번에 새로 산 물감은 물에 잘 풀린다.


이건 풀리다의 두 번째 뜻이라 유일하게 결이 약간 다른 단어다. 이 모임을 신청한 것은 스스로의 결정이지만, 구성원을 결정한 것은 내가 아니다. 우리는 각자를 따로따로 아는 한 사람에 의해 묶였는데, 서로의 성향을 고려해 묶였다고 들었으며 그 점을 여실히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당연하게도, 차이점은 존재했다.


크고 작은 다른 점이 여럿 있겠지만 내가 가장 크게 느낀 차이점은 두 가지였다. 인터뷰와 음악 취향. 나는 인터뷰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솔직히 할 생각도 든 적이 없다. 또 음악도 듣는 것은 좋아하지만 외국의 밴드 음악을 많이 들어서 국내 노래는 듣지 않은 지 좀 되었다. 하지만 다른 두 사람은 인터뷰를 진행한 경험이 많이 있었고 또 아이돌과 밴드를 포함해 다양한 국내 음악을 즐겼다.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났을 때의 행복과,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의 행복은 굳이 비교할 것이 없다. 둘은 배타적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그냥 기회가 주어졌을 때 둘 다 최선을 다해 행복해하면 된다. 운이 좋게도 나는 여기서 나와 닮았지만 또 다른 두 사람을 만났고, 더 운이 좋게도 그들이 그 경험을 여러 번 글로 남긴 덕에 나는 마음껏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그들의 인터뷰, 그들이 음악을 듣고 쓴 글을 읽으며 내가 미처 몰랐던 인터뷰와 음악의 의미를 알아갔고, 그 글로 다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또 인터뷰와 음악이 주는 기쁨을 배워갔다. 


동화되었다는 표현은 맞지 않을 것 같다. 많이 바뀌었다고는 해도 나는 여전히 인터뷰와도, 국내 노래와도 친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같게 되었다는 말은 기만일 테다. 그러나 과거의 나와 비교해 그들을 향한 호기심이 불어난 것은 확실하고 머지않은 미래에는 정말 동화된 나 자신을 만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 전 단계인 지금은, 나라는 액체에 그들의 방울이 몇 방울 섞여 들어 풀린 단계라고 하겠다. 

 

 

 

1-5. 모르거나 복잡한 문제 따위가 밝혀지거나 해결되다.


 

문제가 잘 풀리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응당히 할 고민이 있다. 많다. 글을 쓰기 전에, 쓰면서, 쓰고 나서, 계속 고민하고 고민한다. 다들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도, 나는 이 고민을 나눌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알맞은 기회가 왔으니 아주 알차게 뽑아먹어야겠다 다짐했다. 


마침 모임이 있는 기간 동안 아트인사이트에서 적절한 과제가 주어지기도 했다. 글쓰기 노하우를 주제로 글쓰기. 자연스레 우리의 모임에서도 이 주제가 언급되었고 우린 이 문제를 함께 풀었다.


대화를 거쳐 문제의 해답이 나왔느냐 하면 아니라고 답하겠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의 매듭이라면, 이전에는 매듭이 도대체 어떻게 꼬여있는지조차 모르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대화 후에는 그 꼬임의 구조라도 이해한 것 같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 매듭을 붙들고 골머리를 앓는 것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1-9. 꿈, 이름, 점괘 따위가 판단되다.


 

점괘가 풀리다.


마지막 만남에서는 서로 책을 가져와 만났다. 다른 모임에서 서로 책을 선물하고 감상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러워진 것이다. 첫 번째로 함께 나누었던 글 중 하나가 책 선물에 관한 것이기도 했기에 어찌 보면 수미상관을 이루는 모임이라 할 수도 있겠다. 


책을 선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물론 선물한 책이 읽히든 안 읽히든 신경 쓰지 않는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꼭 상대의 맘에 쏙 드는 책을 선물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려면 그 사람을 잘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잘 알고 있을까? 고작 4개월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만난 게 전부다. 그런데 무턱대고 책을 선물하고 싶어진 이유가 비단 우리 모두가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것, 그것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이들은 나를 내 글로 아는 사람들이다. 


‘나’를 아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내 글’을 아는 사람도 몇 있겠지만 ‘나’를 ‘내 글’로 아는 사람들은 생소했다. 게다가 나는 이 사람들이 나를 내 글로 알아’가는’ 과정까지 지켜보았다. 


우리가 함께 읽는 서로의 글은 바로 여기 아트인사이트의 기고 글뿐이었다. 그 글들을 쓸 때는 그리 사적인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과 읽으니 어쩐지 내 머릿속이 낱낱이 드러나는 기분이 들어 부끄러웠다. 그리고 모순되게도 너무 가려져 있어 나라는 사람에 대한 오해가 일어날까 걱정하는 마음도 함께 들었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과 걱정은 만남을 거듭할수록 줄어들었는데, 내가 쓴 글로 나를 평가받는 것은 의외로 설레는 일이었다. 마치 내 글이라는 점괘로 날 풀이하는 것 같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처럼 날 더 좋게 봐주는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그들은, 내 글이라는 점괘로 나를 풀이한 이 사람들은, 그 풀이를 바탕으로 또다시 새로운 점괘를 내놨다. <귀신들의 땅>, <아니 근데 그게 맞아?>, <요즘 노래 안 들어요>. 내가 선물 받은 책 세 권의 제목이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제목만 봐도 벌써 손길이 가는(심지어 한 권은 원래도 사려던 책이었다) 책들인 걸 보면 꽤 용한 점집인 것 같다.


공식적인 만남은 4월의 모임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서로 선물한 책을 매개로라도 다시 보게 되리라. 그때쯤엔 우리가 서로 선물한 책들도 다 읽었거나 적어도 읽는 중이지 않을까. 내가 그들에 대해 한 풀이는 용하다는 소릴 들을지, 아니면 선무당인 게 들통날지 궁금하다. 그리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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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의 횟수는 한쪽 손의 손가락도 다 접게 하지 못하는데, 풀린 것은 왜 이리 많은지. 여러모로 풀리고 풀리고 풀리는 모임이 끝나고, 날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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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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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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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리
    • 글이 너무 매력적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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