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붉은 실의 여인, 시오타 치하루 [미술/전시]

글 입력 2021.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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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타 치하루는 일본의 설치 미술가로 침대, 창문, 드레스, 신발, 서류 가방 등 일상적 사물을 사용하는 다양한 예술 퍼포먼스와 설치를 선보인다. 이처럼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을 통해 그는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 사물에 심어진 인간 기억들의 관계를 탐구한다.


특히 치하루는 주로 거미줄 같은 실을 사용한 작품을 만들며 ‘거미 여인’이라는 칭호로 불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실일까. 그가 실을 가지고 작업하게 된 데에는 '꿈'이라는 계기가 있다. 치하루는 유학 시절 어느 날 밤, 평면 그림의 일부가 된 자신이 물감으로 뒤덮여 숨을 쉬지 못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화가를 꿈꿨던 치하루는 이 꿈을 계기로 그림을 그리는 대신 실로 공간을 창조하는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그는 디자인붐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실로 만들어내는 선들은 캔버스 속의 붓놀림과 같다"라고 말한다. 즉 치하루는 회화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이라는 붓으로 공간을 그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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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타 치하루, 〈불확실한 여정〉, 2016/2019, 메탈 프레임, 붉은색 울, 가변 설치

 

 

이 작품은 부산시립미술관에서 2019년 12월부터 2020년 4월까지 열린 〈영혼의 떨림〉 전에서 본 작품이다.

 

치하루는 특히 위의 작품처럼 전시장 전체를 활용해 그 공간을 실로 엮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보았던 작품인데, 보자마자 기이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는 느낌을 받았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뼈대만 남은 배 모양의 철 프레임에 일본에서 '생명'을 상징하는 붉은 실들이 마구 연결되어 있다. 온통 새빨간 공간이라 그런지, 붉은 실의 의미를 알아서인지 마치 누군가의 심장을 둘러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영혼의 떨림〉을 기획한 박효원 학예사는 "배 형상의 오브제는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난민, 이민과 망명 등 정착할 수 없는 현실의 위기를 은유하지만, 작가가 이러한 문제에 직접적으로 답하거나 행동한 것은 아니다. 승선의 목적은 뚜렷하지만, 항해는 불확실한 그러나 희망으로 향하는 상징을 표현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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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타 치하루, 〈내 몸 밖〉, 2019, 구리, 우피, 가변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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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타 치하루, 〈내 몸 밖〉, 2019, 구리, 우피, 가변 설치

 

 

다음은 <내 몸 밖>이라는 작품이다. 치하루는 두 번의 암 투병을 겪으며 마음과 몸이 분리되고, 세포와 기관이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이는 그가 병으로 인해 마주한 죽음에 대한 감정이 생생히 담겨 있는 작품이다.

 

치하루는 자신의 작품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느낀 감정을 담아, 죽음을 직시하며 오히려 새로운 삶으로 환원시킨다. 이처럼 그는 암 투병 이후 좁고 한정적인 주제보다는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인간의 생명은 수명을 다하면 이 우주에 녹아 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중략)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것은 소멸이 아니라, 더 큰 세상으로 융화되는 과정이다. 내 생각이 맞다면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죽음과 삶은 모두 한 차원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오타 치하루는 존재의 근원을 알기 위해 페인트를 뒤집어쓰기도, 며칠간 단식을 하기도, 맨몸으로 흙이 가득한 동굴로 기어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우아하면서도 어딘가 오싹하고 기이하며, 보는 내내 어딘가 짓눌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치하루의 작품을 통해 본 삶과 죽음, 그리고 나와 연결된 수많은 관계와 존재. 과연 그 경계에 선 인간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까.

 

 

참고 자료

중앙일보, 이은주, 미술 덕후들이 먼저 찜했다, 설치작가 시오타 치하루 전시, 2020. 07. 29.

네이버 포스트 소셜아트뉴스, 미술관가는남자, 여성, 그 연약한 '영혼의 떨림'... 부산시립미술관 시오타 치하루 첫 개인전, 2020. 01. 20.

부산시립미술관, 〈시오타 치하루: 영혼의 떨림〉 월 텍스트, 2019. 12. 17 - 2020. 04. 19.

 

 

[유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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