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구마 익히기 [음식]

글 입력 2021.10.2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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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부터 부쩍 꼬박꼬박 끼니를 놓치지 않고 무언가 먹고 있다. 식욕이 좋아졌다는 의미다.

 

자동차에 연료가 들어가지 않으면 경고등이 켜지고 시간이 지나 작동을 멈추는 것처럼, 세차게 굴러가야 하는 머리는 점점 속력을 줄이며 포도당 부족을 강력히 외치고, 배는 이내 꼬르륵 소리를 낸다. 그럴 땐 서둘러 부엌으로 나와야 한다. 조리 시간이 필요 없이 곧장 먹을 수 있는 식품이(삶은 달걀, 시리얼처럼) 있으면 감사하지만, 언제나 그렇지는 못하다. 그럴 땐 큰 에너지를 얻기 위해 조금의 에너지 소모가 필요하다.


하루는 배가 고파서 부엌에 갔는데 전날 사 온 고구마가 포장 봉지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부끄럽게도 난 이십 년 넘게 살면서 한 번도 혼자 고구마를 익혀본 적이 없다. 늘 누군가(대체로 가족) 이미 준비해둔 잘 익은 고구마를 먹을 뿐이었다. 하지만 더 배고픈 사람이 먼저 몸을 움직여 음식을 준비해야 했기에, 잠시 방으로 돌아가 내가 음식을 준비해서 먹는 동안 노트북도 충전을 할 수 있게 설치해두고 나왔다. 충전하는 동안에는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배터리 수명에 좋다는 글을 읽은 후부터 생긴 나의 습관이다.


이 정보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기계든 에너지를 충전하는 동안에는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으로 정리됐다. 알아두면 쓸 데 있는 사소하지만 새로운 정보는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이후부터 '사용 시간'과 '충전 시간'을 구분하게 됐다.

 

직접 실천해 보니 배터리 수명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자기기와 함께 생활하는 현대인들이 적어도 기계 충전 시간에는 같이 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렇게라도 공식적인 쉬는 시간을 만드는 게 사람의 몸 건강에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조금 눈물이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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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고구마 익히기



고구마를 익혀본 적이 없었기에 물로 삶는 것과 전자레인지, 에어프라이어 중 어떤 방식이 가장 좋은지 답을 알지 못했다. 우리 집 메인 셰프님께 여쭤보았고 에어프라이어를 이용한 조리를 선택했다.

 

'가장 좋은 조리방식'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 고구마를 에어프라이어에 넣기 전 물에 씻으며 잠시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좋다'라는 기준은 맛과 시간 중 어디에 초점을 맞춘 것일까. 어쩌면 환경에 주는 영향을 생각한 것일까. 물로 삶는 건 가스 혹은 전기를 이용한 '열'뿐만 아니라 굉장한 '물' 소비도 필요하니 말이다. 최선의 조리 방법은 여러 차례 시도해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하고 맛보면 맛과 시간, 환경 중에 무엇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할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몹시 배가 고팠기 때문에 그건 당장 중요하지 않았다. 끼니가 아닌 간식으로 생각한 조리이기 때문에 적당히 요기할 정도로만 봉지에서 꺼내 물로 표면을 닦은 고구마를 에어프라이어에 넣었다. 얼마나 돌려야 할지도 마찬가지로 답을 알지 못했지만, 불로 가열하는 것이 아니니 주관적인 적당함으로 우선 10분을 설정했다.


고구마가 익혀지는 10분은 내가 건드리지 않아도 되는 확실히 보장된 시간이다. 불 위에 올려놨다면 혹여나 일부가 타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마음으로 모든 부분에 열이 골고루 닿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주어야 하지만, 새로운 기계의 발명으로 사람의 할 일을 대신해줄 수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몸소 느낀다.

 

고마움이라... 기계에 일을 시키고 고마움을 느꼈다.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체하는 상황은 두 가지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귀찮은 일을 덜어준다는 편안함과 할 수 있는 일을 빼앗긴다는 두려움. 취업을 생각하며 '일하는' 사람이 될 준비를 하다 보면 기계에 두려운 마음이 들지만, 고구마를 익히도록 일을 '시키는' 입장이 되어 보니 편안함을 경험한다. 기술의 발전이 두려운 건 나처럼 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뿐인가.

 

올해 초에 본 <드라마 스테이지 2021 - 박성실 씨의 사차 산업혁명> 내용이 두려웠던 건 사회에서 내가 지금 고구마를 익히듯 관리자의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입장에서 따라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감정을 느끼는 걸 보면 나도 얄팍한 사람이구나 싶어 마음이 다소 언짢아졌다.

 

 


"고구마가 원래 잘 안 익어"



'삐비빅 삐비빅' 벌써 10분이 흘렀다.

 

고구마를 익혀본 경험은 없어도 속까지 잘 익었는지 확인하는 법은 안다. 젓가락 하나로 찔러보는 것이다. '콩콩' 아직 확실히 덜 익었다. 한 번 길게 돌렸으니 이번에는 조금 시간을 줄여서 7분으로 설정하고 다시 시작 버튼을 눌렀다. 시간이 지나서 알림이 울렸을 때 고구마를 다시 찔러봤다.

 

제법 어렵지 않게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크기가 가장 작아서 그나마 익었을 것 같은 고구마 하나를 꺼냈다. 자주색 껍질에 손을 대봤다가 뜨거워서 금방 뗀다. 분명 익었겠다고 판단하고 반을 손으로 갈라서 껍질을 벗겨 먹었다. 이 따뜻한 아삭함은 무엇일까. 분명 겉이 굉장히 뜨겁고 맛있는데 식감이 아삭했다.

 

조용히 다시 에어프라이어로 가서 이번에는 3분 설정하고 돌렸다. 배가 고프니 아삭한 고구마도 그저 맛있었다. 덜 익은 고구마를 조금씩 아껴먹고 있을 때 벌써 3분이 지났다는 알림 소리가 들렸다. 젓가락으로 고구마를 찌르는데 전과 들어가는 힘의 정도가 비슷한 것 같아서 어설프게 찌르고 돌리고를 2번 반복했을 때쯤 나의 구원자, 우리 집 메인 셰프님이 부엌으로 오셨다.


"고구마가 원래 잘 안 익어" 이것이 그의 첫 마디였다. 우아하게 고구마를 찔러보시고는 이제 거의 익은 것 같다며 잔열이 남아있는 기계에 잠시 두었다가 꺼내셨다. 고구마를 접시에 옮기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고구마가 먹기 좋게 익으면 내용물이 작아지면서 껍질이 쭈글쭈글해져. 젓가락을 찔러봐도 모르겠을 때는 그걸 확인해 봐." 어디서 읽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생활 정보였다. 생각해보니 내가 전에 먹었던 고구마는 겉이 쭈글쭈글하지 않았던가. 다음엔 제대로 익힐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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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끝에 달콤한 고구마



오랜 시간 기다리며 그리워진 고구마는 따뜻하게 잘 익은 모습으로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반을 갈라서 고구마 본체와 껍질 사이에 생긴 틈으로 힘을 들이지 않고 껍질을 쉽게 벗겼다. 달큰한 냄새가 났다. 한 입을 베어 물었더니 내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대했던 달콤한 부드러움이 입안 전체로 퍼졌다. 오랜만에 먹어서인지 예상보다 더 맛있고 강한 행복을 느꼈다. 에너지 방전 상태에서 시작한 조리 시간이 길어져서 고단했는데 한 입만으로 지금까지 쌓였던 부정적 감정이 모두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걸린 만큼 잘 익은 고구마, 익는 게 느리더라도 결국 나에게 달콤함을 선물하는 고구마를 다음에 또 익히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항상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생물마다 제각각 편한 생활의 빠르기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게으름과 부지런함이라는 태도를 떠나서 같은 행동을 해도 상대적으로 빠른 생물이 있고 느린 생물이 있다. 이를테면 거북이는 땅에서 움직이는 속도가 느리지만 우리는 이를 두고 '게으르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나의 빠르기가 그렇다. 느리다. 특히 새로운 걸 학습하거나, 일을 처리하는 상황에서 속력을 내지 못한다. 뭔가를 가르쳤을 때 금방 이해해서 필요한 상황에 적용하고, 할 일을 빠르게 처리해서 다음 단계로 원활히 진행하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습득력과 작업 속도는 곧 생산성으로 연결되기에 '느림'은 내가 고치고 싶은 속성이다. 나는 익는 데 오래 걸린 고구마를 너그러이 용서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고구마의 달콤함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의 피곤함을 녹여준 달콤함처럼 오래 걸린 만큼 만족스러운 성과를 가져오는 사람이 되는 것은 내 평생 목표이다. 하지만 말만 번지르르하고 언제나 그런 결과를 낼 자신은 없다. 애초에 나의 느린 행동에 모든 순간 완벽해지고 싶다는 야망이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벽을 꿈꾸며 신중히 방향을 설정하며 움직이지만, 그 걸음이 늘 옳은 것이 아니었기에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였는지도 모른다.

 

*

 

고구마가 익는 데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다 익은 고구마가 달콤하고 맛있길 바라는 마음은 커졌다. 나의 학습 시간과 작업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커졌다.

 

생각해 보면 두 사례 모두 오래 걸리는 시간을 담보로 높은 만족도를 '내가' 요구하고 있다. 익혀지는 고구마의 입장을 들어보지 못했고, 나의 결과물과 관계된 사람들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사실 고구마는 한순간도 나에게 달콤함을 약속하지 않았고, 누구도 나에게 부담을 강요하지 않았다.


바꿔 생각하면 30분가량 걸려서 모두 익은 고구마는 나에게 달콤함을 선사했지만 그건 직접 맛을 보기 전까지 알 수 없는 보장되지 않은 선물과 같은 것이었다. 운이 좋게 기대한 수준을 넘는 기쁨을 누렸지만 아니었어도 나는 아쉬움을 토로할 필요가 없다. 고구마는 때론 달콤할 수도 씁쓸할 수도 고소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오래 걸려 맺은 결과물에 아쉬움이 남아도 괜찮을지 모른다. 긴 시간 고구마가 익기 위해 열을 사용한 것처럼 나의 진심 어린 노력으로 이루어낸 결실이니 말이다.

 

대상과 나에게 갖는 기대치를 낮추면 결과에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찾아온 좋은 결과는 긍정적인 감정을 일으킨다. 기대치를 낮추는 건 상대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고구마가 싱거워도 다음에 다시 맛을 알 수 없는 고구마를 사는 것처럼, 기대치를 낮추면 성과 뒤에 존재하는 '대상'을 볼 수 있다.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생각에서 깨어나 마지막 남은 고구마를 집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고구마 껍질 사이로 노란 속살이 보였다. 껍질을 벗겨 새로이 한입 베어 물었다. '달콤해서 고마워' 머릿속에만 머물 줄 알았던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듯 입술이 달싹였다.

 

 

[정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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