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고요한 듯 지저귀는 시간의 향연 - 아웃 오브 이집트

글 입력 2021.10.2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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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한 듯 긴장감 있고, 태양의 한숨에 땅이 쩍쩍 마르고 숨이 턱턱 막힐 듯하면서도 서늘한 계절감이 느껴지고, 인간 존재에 회의감이 들면서도 인간의 온기가 느껴지는 책.


도서 <아웃 오브 이집트>다.

 

 

 

책의 분위기



“그래서, 그 책/영화는 어떤 내용이야?”


영화나 책에 관해 대화가 시작될 때, 상대는 보지 않고 필자만 본 상태일 때, 자연스럽게 듣는 질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설명하지 못한다.


“어… 그게…”


두 번, 세 번이고 반복해서 보지 않는 이상 줄거리를 잘 기억해내질 못하는 필자다. 심지어 주인공 이름마저 떠올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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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나 느낌. 장면.


줄거리, 인물의 이름 대신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는 것이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 모래 빛 이탈리아, 그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푸른 잎사귀와 바다, 인물들. 그리고 피아노 선율. 말했듯 인물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러한 면에서 도서 <아웃 오브 이집트>는 뜨거운 여름, 한낮의 나른함과 노을 질 때의 주황빛 활기가 공존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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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평온하고 사색적인 일이 시작되었다. 옴 라마단은 빨래집게 몇 개를 입술에 문 채로 홑이불을 쫙 펴서 하나씩 널었다. 이불을 첫 번째 줄에 널고 그 옆줄에도 널고 나서 첫 번째 줄의 맞은편에도 널면 향기로운 휘장을 친 통로가 줄줄이 생겨났다. 그 천국의 통로를 달리노라면 모든 게 잊어졌다. 위에는 하늘, 아래에는 침묵. 깨끗한 이불이 햇살에 말라 가는 냄새.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회색 시멘트 바닥에서 풍기는 짜디짠 여름과 바닷물 냄새.

 

- 도서 <아웃 오브 이집트> P. 144

 

 

도서 <아웃 오브 이집트>는 저자 안드레 애치먼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20세기 초, 이집트>


가족과 이집트로 이주한 주인공. 서로 다른 인종, 문화, 종교, 언어 등 다양한 문화 혼합이라는 낯선 상황 속에서도, 등화관제가 일상이 된 중동전쟁 속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의 가족. 모든 이야기가 저자 안드레 애치먼의 시선으로 묘사된다.

 

 


줄다리기, 시소



역설적이라고 해야 할까, 균형이 알맞다고 해야 할까.


도서 <아웃 오브 이집트>는 느슨함과 긴장감이 공존하는 책이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시간의 흐름을 감추려는 듯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흘렀고,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바다와 풍경은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듯 고요히, 항상 그 자리에 존재했다.


이와 반대로,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는 꽤나 ‘시끄럽다’.


청각 장애가 있는 어머니 지지, 집안을 살필 여력이 없는 아버지 앙리, 피아노 치는 숙모 플로라, 앙숙 같은 외할머니 성녀와 친할머니 공주. 그리고 함께 이집트의 땅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가족. 하나같이 개성 있는 그들의 성격을 따라가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울림(갈등)을 보고 있자면, 지루하게만 보이던 이집트가 생기롭게 보인다.

 

 

그해 봄 평일 아침 알렉산드리아의 하늘은 평상시처럼 얼룩덜룩했다. 해안가에서 소금기 어린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고 시내 상점가의 소음이 흘러 들어간 좁은 골목길에는 노란색과 초록색 줄무늬 차양이 즐비한 시장이 인파와 좌판, 서로 부딪히는 방물장수들로 북적거렸다. 늘 그렇듯 햇살이 판석에 내리쬐기 직전에는 잠깐 소란이 가라앉고 시원한 바람이 거리에 불어오고 한 번 걸러 낸 듯한 가려운 햇살이 도시를 감쌌다. 환하지만 눈부시지 않은 햇살이었다.

 

- 도서 <아웃 오브 이집트> P. 427

 

 

공간의 평온함과 인물의 생생함이 섞여 이집트가 마음속 깊이 각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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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도서 <아웃 오브 이집트>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저자 안드레 애치먼의 회고록이다. 그만큼 문체와 분위기가 영화와 비슷하다. 세심한 장면 묘사, 스스럼없지만 차근히 풀어내는 인간의 감정. 많은 부분이 서로 닮아 있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필자의 인생 영화 중 하나라는 점을 생각해봤을 때, 도서 <아웃 오브 이집트>는 한번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이 되었다.

 

 

 

일상이 그토록 아름다웠던가



저자 안드레 애치먼의 글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지루해 보이는 일상도 그의 손끝에서는 특별해진다.


이집트라는 공간은 생소하다. 세 글자에서부터 받는 이미지로는 숨을 쉴 수도 없이 날씨가 후덥지근하고 도로엔 황색 흙이 흩날릴 것 같다. 하지만 어린 안드레 애치먼에게 이집트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남은 듯하다. 이집트에 대한 로망이 생길 정도였으니 말이다.

 

 

10시 30분쯤 되면 마차를 불러 할머니와 스탠리 해변으로 갔다. 해변에는 할머니의 형제자매들과 어머니의 오두막이 있었다. 마차에 나란히 앉아 있으면 마담 아넬레가 만든 아몬드 크림과 티로즈 연고, 오이 로션의 건강하고 편안한 향기가 풍겼다. 이 세 가지 향기는 그 시절 햇살 가득한 아침의 기억에 영원히 새겨졌다.


- 도서 <아웃 오브 이집트> P. 152

 

 

창문 사이로 여자들이 장갑을 껴 보고 여직원들은 형형색색의 스웨터를 끝도 없이 개고 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웨터 보풀이 턱을 간질였다. 찻집에서 보내는 기나긴 저녁, 크리스마스 쇼핑과 선물에 앞서 만나는 모직 스웨터의 푹신한 가을 냄새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스웨터가 턱을 간질여도 그대로 내버려 두고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장 큰 페이스트리 가게 델리스의 타르트와 핫초콜릿을 떠올렸다.

 

- 도서 <아웃 오브 이집트> P. 203

 


공책에 머무는 4월의 햇살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법의 주문을 걸어 벽과 책, 책상, 내 손, 베껴 쓴 코란 구절에서 여름 한낮의 강렬한 햇볕과 따뜻한 바닷물, 친근한 바닷가 별장이 멀지 않았음이 느껴졌다. 내 방에 걸린 오래된 마티스의 복제화가 아침 햇살에 빛나며 손짓했다. 마티스의 니스 집 발코니 난간 사이에는 파란 공간, 언제나 그렇듯 바다가 있었다. 압두의 주방에서 라임과 멜론, 너무 익은 오이 냄새가 풍겼다.

 

- 도서 <아웃 오브 이집트> P. 323

 

 

 

포근한 이불 같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이었다. 마차가 달리는 동안 할머니는 수년 전 루치디로 가는 길에 그랬던 것처럼 갑자기 내 다리를 두드리고 말했다. “바닷가에 가기 좋은 날씨야.” 나는 스웨터를 벗었다. 허벅지에 너무 가까이 닿는 울 플란넬 바지의 불편한 감촉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반바지로 갈아입어야 하는 시기였다. 가벼운 면 반바지를 생각하니 울의 감촉을 견딜 수가 없었다. 어두운 거리를 지나가 광장이 나오고 코니시에 접어들었다. 10분도 되지 않아 이집트 마지막 왕조를 세운 알바니아인 모하메드 알리의 동상이 나왔다.

 

- 도서 <아웃 오브 이집트> P. 433

 


다른 책보다 읽는 시간이 오래 걸린 건 사실이다. 중동전쟁, 유대인, 이주민 등의 역사적 배경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에너지를 쏟아야 했고, 인물의 성격과 사건을 하나하나 머리에 담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이집트의 일상에 젖어 들어 10월의 차가운 공기 위에 따뜻한 이불을 덮어주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저자 안드레 애치먼의 손에서 피어난 이집트의 시간.


도서 <아웃 오브 이집트>에서 볼 수 있다.



[신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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