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른 겨울 아침의 기억 - 머스키 마일드(Musky Mild)

글 입력 2021.10.14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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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을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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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가득한 공간, 앞이 잘 보이지 않으면 두 귀는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고 듣는다. 하나의 감각이 지워지면, 다른 감각이 자연히 발달하는 것이다. 감각의 변화에 따라 관심과 욕망을 가진 대상도 변화한다.


코로나가 일상의 한 부분이 된 후, 나는 처음으로 향을 맡고 느끼는 감각에 호기심을 느꼈다. 그전까지 상대를 바라보고 나를 표현할 때 가장 집중하게 되는 건 얼굴이었다. 눈코입의 다양한 조합으로 만들어내는 표정, 그중에도 웃음을 지을 때의 눈 모양과 보조개에 눈이 갔다.

 

하지만 커다란 마스크 밑으로 표정이 숨어버린 지 오래. 눈으로 보이는 부분이 작아지자 누군가의 샴푸나 바디워시, 그리고 향수가 만드는 향이 더 선명히 느껴졌다.


매번 마음에 드는 향을 찾지 못해 향수에 관심을 비웠던 나도 다시금 향을 찾게 되었다. 조금씩 사 모으고, 선물 받았던 향수들을 다시 꺼냈다. 어쩐지 모두 봄과 여름에 어울리는 향이라 숨 가쁘게 찾아온 추운 계절에 맞는 향을 구하고 싶었다.

 

향수 브랜드 ‘펄스테이’의 ‘머스키 마일드(Musky Wild)’ 향을 맡는 순간, 진한 겨울을 느꼈다.

 

 

 

향에 머무르다, 펄스테이(Perstay)


 

[크기변환]펄스테이.jpg

 

 

펄스테이는 Perfume과 Stay를 이은 브랜드다. 다양한 향기들 중에 나에게 맞는 향을 찾고 머무를 수 있는 용기와 자유를 선사한다. 그중, 머스키 마일드 향이 만들어진 배경을 들었다.


 

지난겨울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퇴근길에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과 구름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향수입니다. 해는 어느덧 넘어가 하늘은 이미 붉게 물들고 있었고, 그런 하늘빛을 받아 오묘한 주황빛을 내는 구름들이 너무나 포근하면서도 따뜻해서 그냥 푹 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지는 탑, 미들, 그리고 베이스 노트에 대한 설명은 향이 만들어진 조향사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Top: mandarin, black currant

Middle: orange flower, jasmine, tuberose

Base: white musk, vetiver, vanilla


겨울에 피는 꽃이 떠올랐다. 화이트 머스크 향이 더해져 꽃 위로 흰 눈이 둥글게 쌓이는 모습을 만들었다. 문득 오래전 좋아했던 음악이 들리는 듯했다.

 

 

 

눈이 오네


 


 

눈이 오네 구름 같은

저만치 하얀 눈이 방울져 창가를 지나

사람들과 사람들의

그림 같은 기억에 앉아 녹아가네 

지나간 마음은 지나간 그대로

그대와 나만의 아름다웠던 그 나날들이

나는 두려워져 

녹아 없어질까 난 무서워 

 

- 10cm, 눈이 오네 中

 


향에는 비밀이 있다. 같은 향을 맡고, 사람들은 모두 다른 반응을 보인다.

 

포근한 침구가 떠오르는 향을 좋아하는 사람도, 열대 식물이 신비한 생명력을 뿜는 숲을 연상시키는 자연의 향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코 끝을 스치는 향 앞에서 그 사람의 취향을 더 알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은 상상력을 건들기 때문이다. 새로운 향을 맡을 때 사람들은 각자의 세상으로 떠난다. 누구도 알 수 없는 나만의 경험을 떠올리고, 오래 꿈꿔온 순간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 향을 맡고 마음에 든다고 말할 때, 그 사람은 어떤 세계를 지나오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크기변환]눈.jpg

 

 

나는 머스키 마일드의 향 앞에서 10cm의 ‘눈이 오네’라는 음악을 떠올렸다. 언뜻 학창 시절, 이른 겨울 아침 등굣길에 들었던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cm의 눈은 한 해의 첫눈이 주는 기쁨과 설렘과는 다르다. 겨울의 중턱에서 이미 여러 번 보았던 눈, 지난밤 내렸던 눈이 길가의 먼지와 뒤섞여 검은색으로 변하기도 하고, 그 위에 새로운 눈이 내리기도 한 풍경. 그 거리를 걸으며 눈이 와 아름답기도, 쓸쓸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 아침 같았다.


머스키 마일드의 향은 깨끗하게 세탁한 하얀 이불 속에 들어간 듯 포근하지만, ‘눈이 오네’와 같은 채워지지 않는 감정도 느껴졌다. 향이 이른 겨울 아침, 눈 쌓인 길을 걷던 어느 날을 불러왔다. 그 날 아침, 하얀 눈은 아름답지만 자꾸만 녹아 없어지고, 눈이 쌓인 그 자리를 우린 쉽게 잊어버린다는 점에서 슬프다고 생각했다.


겨울을 품은 펄스테이의 향수, 머스키 마일드를 경험해 보았다. 펄스테이의 조향사들은 일상적이지만 특별한 순간을 담아 향기를 만들었다. 나에게 꼭 맞는 향수를 택해 향기로 나를 표현한다면 이번 겨울이 조금은 덜 쓸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명함.jpg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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