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남의 입에 풀칠하는 '업'을 지닌 사람들 - 도서 '모던키친'

글 입력 2023.11.3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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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모던키친>에는 많은 시선이 있다.

 

현대적인 주방이라는 소재에 이끌려 선택한 책이지만, 실제 읽을 때는 소재 자체보다는 저자의 스타일이 좀 더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말 그대로 이 책은-그가 적극 자신의 고초를 책에서 설명하는 것과 상관없이- 저자 특유의 스타일이 구성과 형식, 실제 텍스트에 녹아 들어있다. 비교적 명확한 소재를 갖추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지는 것을 보면, '브랜딩 마케터'라고 스스로를 지칭하는 저자의 표현도 아주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브랜딩은 사람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 책에도 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느껴진다.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의 시선이 왜곡되어 전달되지 않도록 부단히 신경 쓴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이 비단 저자의 스타일에 삼켜져 본래 소재를 잃어버렸다거나, 어떤 검열이 두드러졌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음을 밝힌다.

 

책 전반에 걸친 '시선'이 책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저자는 현실적인 저술 배경(클라이언트의 요청, 생업과 직접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과 개인적인 신념(모든 사람이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의 삶을 부정적인 방식으로 곡해되어 보도되어선 안 된다)으로 최대한 곡해 없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담으려고 한다. 독자로서 거칠게 표현해보자면, 전자는 다소 조심스러운 태도로, 후자는 책 전반에 깔린 약간 따뜻한 감수성(약간은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처럼 느껴지는)이 있는 태도로 느껴졌다. 이 두 가지가 묘하게 엮여 완성된 이 책은 그래서 정말 어떤 독특한 스타일이 만들어진다.

 

상대적으로 제약 없이 글을 쓰는 처지에서 말하기 뭐하지만, 사람들의 생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문 기고가의 경험은 상당히 공감할만했고 약간은 머리 아프게 느껴졌다. 이 책에는 어떤 생동감 있는 열정을 한 쪽에 품고, 현장의 하나하나를 관찰하는 어떤 순수한 환희가 페이지의 왼쪽에, 다른 한쪽에는 이 일 자체에도 많은 것들이 걸려있다는 부담감이 페이지의 오른쪽에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양쪽의 페이지로 채워가면서 살아가는 게 또 어른의 삶이 아닌가.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책, 혹은 브랜딩을 한다는 것은 이 양자를 언제나 적절히 잘 고려하여 조정하는 것일 것이다.

 

이제 내가 내린 소설 같은 결론에 대해서는 그만 이야기하고, 그러한 인상을 주었던 실제 책의 구성들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선 나로서 책을 요약하자면, <모던키친>은 '수많은 시선'을 담으려는 저자 특유의 글쓰기가 현대 주방의 '사람들'과 잘 어우러진 책이다. 이 표현을 약간 변형해서 해석해보면, 이 책은 '현대 주방'의 이야기보다는 현대 주방의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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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식품공장, 연구소/교육원, 식당, 떡집과 빵집, 농장이라는 다섯 개의 책의 구성은 상당히 학술적이다. 지금까지 개별 단위에서 수제로 만들어지던 요리의 영역이, 이제는 기술발달로 더욱 극적인 규모의 경제로 변모했음을 보여주는 '공장', 단순한 영양이 아니라 문화와 결합하거나, 고도의 첨단 기술을 활용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연구소, 교육원', 브랜딩을 통해 주목받고 있는 '떡과 빵집', 그리고 그 재료를 여전히 공급하고 있지만, 이전과 다른 스마트 팜으로 자리 잡은 '농장'.

 

이처럼 책의 기획은 분석적인 관점에서 시작되었을지 모르겠지만, 현장을 방문한 후의 이야기는 상당히 인간적이다. 책 <모던 키친>은 각 소재와 시대적인 변화에 맞춰서 방문한 현장을 충실하게 묘사하는 것을 잊지 않지만, 분석적인 태도로 그곳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이러한 태도를 보인 이유를 첫 번째 주석에서 그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첫 번째 주석에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짧게 밝히며, 이 책에서는 최대한 그러한 요소를 배제하려고 했다고 표현했다. 그가 그렇게 했던 것은,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은 충실히 자신의 업무에 집중하는, 매일매일 입에 풀칠하면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임을 잘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번이고 저자는 그것을 전하는 자신을 욕하더라도, 이 현장의 사람들을 욕하지는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과연 그 말대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완성한 이 원고의 독자로서 현장의 사람들도 저자도 미워할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생겨나는 수많은 사건과 현상들은 분석할만하고 분석해야 하는 것이지만, 하나의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좋은 것이 된다. 차가운 담론에 익숙한 현대사회에서는 오히려 이런 접근법이 더 힘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것이 '담론'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책에서 독특하게 두 가지 구성을 끼워 넣었다. 첫 번째로, 각 섹션의 첫 장에서 방문한 날짜, 방문 장소, 받은 선물에 대해 메모한 부분이다. 점검표처럼 디자인한 각 섹션의 첫 번째 페이지를 따라가다 보면, 정말로 저자가 되어 그 현장을 방문한 느낌이 든다. 책의 서술 방식도 어떤 곳을 방문했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앞서 말한 '장소' 자체의 이야기만큼이나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상과 성격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방문했던 경험이 저자에게는 어땠는지도 소탈한 방식으로 썼다.

 

두번째로는 '오늘의 모던키친'이라는 부록을 끼워놓은 것이다. 취재 이후 시간이 흐른 후, 저자는 각 인물이 요즘은 어떻게 사는지 확인하여 근황을 적어두었다. 취재 이후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이직하지는 않았는지, 장사는 잘되는지 써둔 짧은 글에는, 책의 내용에서만큼이나 그들의 이미지가 살아있어 저자가 몇 번이나 끼워 넣었던 대로 "잘 되길 바란다"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책에서'모든 시선'을 녹여내려고 했던 저자의 시도에 초점을 맞췄지만, 사실 이 책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책의 영리한 구성뿐만 아니라, 겉표지와 전체적인 디자인, 사진의 퀄리티는 책의 가격이 무색할 정도로 높은 퀄리티를 자랑한다. 겉표지의 질감, 왼쪽에만 책 날개가 남아있는 구성, 색감이 잘 드러나는 종이뿐만 아니라, 그 안과 밖의 콘텐츠를 채우는 디자인은 여타 책들과 비교를 거부한다. 이 책의 내용과 초점이 소재와 비교하면 소박한 범위에 있음에도, 이 책이 다분히 도시스러운 느낌이 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을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글을 쓰고 보니 정말 재미있는 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모던 키친>은 충실한 구성과 디자인으로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영리한 기획 아래에서 수행되면서도 동시에 클라이언트와 현장의 사람들이라는 현실적인 요건을 굳건히 보호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그러면서도 저자만이 가진 인간적인 감수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화려한 상징과 이미지를 빌려는 직접 마케터에 약간의 민망함을 느낀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독자로서 답을 보내면, 그런 빈 수레보다야 약간 어깨에 힘이 들어간 이 책이 전문가답다고 이야기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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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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