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술계를 뒤집어놓은 위작 사건 [미술]

원효대사의 해골물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글 입력 2021.10.0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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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에게 미술이 가장 흥미롭게 느껴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미술과 돈이 만났을 때’와 ‘미술과 범죄가 만났을 때’가 아닐까? 만약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이 다큐멘터리가 입맛에 맞을 것이다. 제목은 <당신의 눈을 속이다: 세기의 미술품 위조 사건 (Made You Look: A True Story About Fake Art)>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미술품 사기 사건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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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당신의 눈을 속이다: 세기의 미술품 위조 사건> 포스터

 

 

이 사기 사건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65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뉴욕의 명망 있는 갤리러인 노들러 갤러리(Knoedler Gallery)가 1994년부터 20년에 걸쳐 판매한 약 60여 점의 작품들은 모두 위작이었다.

 

노들러 갤러리의 전 관장인 앤 프리드먼(Ann Freedman)은 글라피아 로잘레스(Glafira Rosales)라는 자칭 미술품 중개인을 통해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과 같은 20세기 최고의 화가들의 작품을 샀다. 그리고 모두가 진품이라 믿고 있었던 그 작품들은 화가이자 수학 교수였던 첸 페이선(Pei Shen Qian)이라는 사람이 그린 위작이었음이 드러났다.

 

이 위작들은 20년에 걸쳐 총 8천만 달러(약 900억 원)에 팔렸고 작품 구매자는 일류 컬렉터뿐 아니라 갤러리와 유명 미술관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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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노들러 갤러리의 전 관장 앤 프리드먼, 도메니코와 엘레노어 데 솔레 부부가 노들러 갤러리에서 구매한 마크 로스코의 위작, 앤 프리드먼에게 위작을 판 글라피아 로잘레스

 

 

미국 너머 세계 미술계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었다. 결과적으로 작품을 유통한 갤러리, 그 갤러리에서 작품을 구매한 컬렉터, 여러 미술 전문가, 대형 미술관 등 모두가 진짜 같은 가짜에 속았다.

 

영화는 이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들과 미술계 전문가들, 그 외 심리학자나 뉴욕타임스 기자들의 인터뷰로 진행된다. 노들러 갤러리 전 관장 앤 프리드먼은 위작인 줄 모르고 팔았으며 위작임을 알아내기 어려웠다고 주장한다. 반면 마크 로스코의 위작을 800만 달러에 산 컬렉터 도메니코와 엘레노어 부부((Demenico & Eleanor De Sole)는 그녀가 알면서도 팔았다고 주장한다.

 

다른 인물들 또한 “앤 프리드먼의 입장에서 작품이 가짜인지 알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견과 “그걸 알아내지 못했다면 정말 멍청한 것”, “작품을 너무 팔고 싶은 나머지 위험 신호를 무시한 것”이라는 의견으로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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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노들러 갤러리가 구매한 잭슨 폴록. (오) 글라피라가 앤 프리드먼에게 보여준 첫 작품, 마크 로스코의 위작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의 작품(위작)을 본 이들은 하나같이 "아름답다"라고 소리쳤다. 앤 프리드먼은 글라피아가 트렁크에서 꺼낸 로스코의 작품이 아름다웠다고, 도메니코와 엘레노어 데 솔레 부부는 마크 로스코의 또다른 페인팅을 보고 경의로웠다고 말했다. 그렇게 아무도 위작임을 모른 채 몇백만 달러를 주고 위작을 사고, 대형 미술관에 전시하고, 작가 카탈로그에 실었다.

 

'New York Art Forensics'의 제프리 테일러는 위작을 사게 되는 수집가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고방식이 있다고 했다.

 

 

"사랑에 빠지는 것과 똑같은 과정이다. 결점을 못 본 척하고 너그럽게 봐준다. 새로운 사랑에 빠진 사람이 상대의 결점을 못 본 척하듯이."

 

- 제프리 테일러(Jeffery Taylor)

 

 

결점을 못 본 척하고 너그럽게 봐주는 것. 사랑에 빠진 사람이 상대의 결점을 못 본 척하듯이 작품에 대해 불분명한 점이 보이더라도 이미 마음을 빼앗겨버려 많은 질문을 던지지 않고 산다는 것이다. 작품의 소장자가 불분명하고 소장 이력이 없다는 것을 그들이 몰랐던 게 아니다.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그런 결점들을 무시해버렸거나 모른척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

 

이 영화가 끝나고 오히려 미술 자체에 대한 의문이 맴돌았다. 훌륭한 작품은 그 자체로 훌륭한 것인가? 미술품의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무엇 혹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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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우린 모두 맥락에 따라 어떤 것을 봅니다. 뉴욕 현대미술관이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면 전문가들조차 이렇게 생각 못 하죠. ‘저 그림에 뭔가 문제가 있어’. 그 그림을 심사했을 미술관과 전체 인프라를 믿는 거예요."

 

- 퍼트리샤 코언(Patricia Cohen)

 

 

명품샵에는 그에 맞는 물건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듯이 노들러 갤러리는 명망 있는 갤러리였기에 위작이 있을거라곤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미술은 단순히 그 자체로 가치있게 여겨지는 것이라기보다 시스템의 미묘한 작동을 통해서 가치가 정해진다. ‘미술 제도(institution)’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미술관, 갤러리와 같은 전시기관, 미술 대학과 같은 교육기관, 미술에 대한 정보를 나르는 언론사, 그리고 작가, 큐레이터, 비평가, 수집가 모두를 포함한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미술 잡지에 언급된 작품’, ‘비평가가 인정한 작품’, ‘수집가가 사고 싶어 하는 작품’ 이런 타이틀은 그 자체로 작품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우리는 미술이 이 세상 너머의 것이 아니라는 걸 자주 잊어버리지만 미술도 역시 정치, 사회, 경제적 영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금전적인 가치는 미술 제도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그 앞에서 경의롭다며 감탄하고 진품이라 믿었던 작품, 몇백만 달러의 가치를 가지던 작품이 위작으로 탄로 나고 이제는 ‘아무런’ 가치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들러 재판에 대한 기사에 언급된 바로는 도메니코 데 솔레가 노들러 갤러리에서 구매한 로스코의 작품이 재판장에 등장했는데 그의 변호인단이 그 그림을 법정을 가로질러 아무렇게나 운반했다고 한다. 마크 로스코라는 추앙받는 화가의 대형 작품을 취급하는 전형적인 방식과 대조를 이룬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이 재판에 대해 웃기면서도 웃지 못할 스토리가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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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러 재판 일러스트레이션 © Artnet

 

 

노들러 갤러리에 대한 재판이 열렸고 ‘로스코 위작’이 재판 내내 법정에 있었는데 사람들끼리 작은 사각형이 아래로 가야 하는지, 위로 가야 하는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다들 이 그림이 로스코 그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어느 방향이 맞는지 고민했다는 게 코미디의 한 장면 같다.

 

위작은 아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에 밴 작품(위작)에 대한 매너였을까? “그래도 일단 작품을 제대로 된 방향으로 놓고 재판을 진행해야지”라고 생각했을 걸 떠올리면 우습지만 사람들의 미술에 대한 태도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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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세요. 예술에 대한 경험 중 어느 하나라도 그것이 주장하는 바가 아니라는 사실에 따라 바뀌는지.

And you think about whether the experience of the art, whether any of that changes based on the knowledge it’s not what it purports to be."

 

- 루크 니카스(Luke Nikas)

 


작품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진품이라고 믿었을 때와 위작임이 드러났을 때 모두 작품은 그 상태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원효대사의 해골물이 떠올랐다. 원효대사가 동굴에서 잠결에 바가지에 든 물을 마시고 달다고 생각했다가 다음날 그 물이 해골에 담긴 썩은 물이었다는 걸 알고 구토하며 깨달음을 얻는 유명한 일화.

 

어젯밤까지도 침실에 걸려있는 작품을 보며 역시 대단한 작품이라고 환호했을 사람들, 혹은 미술관에서 명작이라며 박수쳤을 사람들이 오늘은 마치 다른 작품인 것처럼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돌변하는게 해골물임을 알아버린 원효대사 같았다. 물론 원효대사도 몇백만 원 주고 해골물을 마셨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긴 했겠지만 말이다.

 

결국 ‘아름다움’과 ‘경의로움’을 선사했던 몇백 달러짜리 로스코, 폴록, 마더웰의 위작은 이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천 쪼가리가 됐다.  그러나 한가지, 이 가짜 그림들은 미술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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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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