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백으로 완성되는 삶 [미술/전시]

글 입력 2024.04.0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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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피터 폴 루벤스 [발리첼라의 마돈나]

우) 김홍도 [주상관매도]

 

 

두 그림 작품의 분위기는 굉장히 다르다. 왼쪽 그림은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루벤스의 그림으로, 빛을 이용한 화려한 색채의 형상들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루벤스의 그림뿐 아니라 서양의 회화 작품들은 대체로 뛰어난 기술을 사용해 화려한 작품을 완성했고 그 기술력은 오늘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이런 서양화에 비해 오른쪽 그림은 무언가 허전하다. 그려진 형상이라고는 배를 탄 두 사람과 나무가 전부이고 그마저도 종이 전체에서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 빈 공간이 주를 이루는 이 작품은 조선 후기에 활동한 김홍도의 대표작 <주상관매도>이다. 화려해 보이는 서양화에 비하면 어딘가 조촐하지만, 동양의 전통적인 분위기를 잘 담아낸 그림으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빈 공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 여백美의 역사


 

<주상관매도>를 포함한 동양화들의 큰 특징은 ‘여백’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여백의 미’라는 말을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비어있는 공간에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美’자를 붙인 것인데, 왜 여백이 아름다운 것일까?

 

여백에 미적인 가치를 부여한 것은 동아시아 전통 사상의 영향을 받는다. 그중에서도 비움과 자연스러움을 강조했던  ‘도가’ 사상은 동양의 미의식을 형성하는데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다.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데 뛰어나지만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道)에 가깝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도덕경> 제8장

 

  

도가의 대표적인 사상가 노자는 세상 최고의 이상적 가치로 ‘물’의 속성을 꼽는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 주로 낮은 곳에서 머문다. 약하고 여린 성질이 있으면서도 모든 생명체에게 생기를 주는,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자양분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유연하게 움직여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물의 특성은 도가의 가장 이상적인 표본이다.

 

물의 특성은 인간사회에도 적용되어 동양 사회에서는 채움보다는 비움, 자기를 과시하기보다는 겸손함과 소박함, 타인과 어우러지는 유연함과 겸양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다.

 

 

“형체가 없으나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이 생겨나고,

소리가 없으나 무성(無聲) 에서 다섯 가지의 음이 울리고,

미각이 없으나 무미(無味)에서 다섯 가지의 맛이 나타나고,

빛 깔이 없으나 무색(無色)에서 다섯 가지의 색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유(有)는 무(無)에서 생겨나고, 실(實)은 허(虛)에서 나온다.”

(無形而有形生焉, 無聲而五音鳴焉, 無味而五味形焉, 無色而 五色成焉, 是故有生於無, 實出於虛.)

 

淮南子, 原道

 


여백의 철학적 기반을 잘 설명해 주는 구절이다. 무(無)를 만물의 본원으로 생각하는 도가에서는 눈에 보이는 모든 형상은 빈 곳으로부터 나온다고 여겼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소리, 찬란하고 고운 빛깔, 다양한 모습의 형상 등 모든 유형의 아름다움은 감지할 수 없는 무형의 공간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무의 공간은 작가의 정신세계가 깃든 공간이기도 하다. 동양 예술에서는 눈에 드러나는 형상이나 형식보다는 참된 정신을 강조했다. 여기서 작가의 정신은 여백에 나타난다. 문인화 등에 여백 속에 작가가 그림을 그린 취지나 마음을 담은 시구를 적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여백의 역사에 더 궁금하다면 동양 미학 개념 '허실상생(虛實相生)론' 또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도가 사상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동양의 미의식은 여백의 공간을 눈에 보이는 형상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겼다. 여백의 공간은 단순히 '빈 공간'이 아니다. 다시 말해 여백은 색을 칠하고 ‘남은’ 공간이 아니라, 작가가 자신의 깊은 정신세계를 담아 의도적으로 ‘그려 놓은’ 공간이다. 여백에는 장차 아름다운 형상이 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공간이기에 동양화에는 언제나 여백이 함께 존재한다. 따라서 동양의 예술가들은 일부러라도 여백을 그려내려 노력했고, 여백이 잘 표현된 작품이야말로 가장 높은 경지에 있는 작품이었다.

 

 

 

여백으로 완성되는 삶


 

이우환-조용.jpg

이우환  [Correspondence, 1994]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항상 무언가로 하루를 꽉 채워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미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매일 눈에 띄는 성과를 만들어가야 할 것만 같고, 쉬는 날에도 멋진 취미생활로 하루를 채워야 할 것만 같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바쁨의 정도를 넘어선 일과들로 치이고 있다. 할 일을 끝내고도 또 다른 숙제를 스스로 만들어내어 쉴 틈 없이 움직인다. 열심히 일을 하면 쉬어가는 것이 당연한데도 쉬는 시간은 어느새 낭비의 시간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인지 가까운 주변인들로부터 슬럼프나 번아웃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많이도 듣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두 달 동안 누워만 있던 기간도 있었고,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부담감에 못 이겨 멋대로 여행을 떠난 적도 있었다. 남들처럼 멋진 성과들로 하루를 채워보려는 욕심이 가득하지만 부담감에 이기지 못해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낸 것이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지나간 하루들을 무언가가 새겨진 공간보다 더 중요한 '여백'의 공간이라 생각해 보고 싶다. 형상을 더 빛나게 해주는 여백의 공간처럼, 이뤄낸 결과물들을 더 빛나게 해주는 것은 혼자 편히 쉬고 사색하며 보낸 순간들일 것이다.

 

여백의 공간이 단순히 텅 빈 공간이 아니라 형상이 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공간이듯이, 우리의 공백기 또한 텅 빈 시간들이 아니라 장차 만들어질 성과들의 가능성을 담고 있는 기간일 것이다. 또한 그려진 공간은 형상을, 여백의 공간은 정신을 상징했듯이, 눈에 띄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던 기간들은 자신 내면 깊숙한 정신에 몰두하는 시간일 것이다.

 

번아웃 등으로 인해 원치 않은 휴식기를 가졌더라도 너무 스스로를 원망하지 말아보자. 멋진 성과를 보였던 기간들보다 더 소중한 '여백'의 기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별다른 결과물을 내지 못한 기간들 또는 성과를 내려 노력조차 하지 못했던 나날들은 절대 '의미 없는' 시간들이 아닐 것이다.

 

잘 쉬어야 잘 걸어갈 수 있다.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무언가로 채워진 하루를 보내지 못했더라도, 이 여백으로 인해 인생이라는 그림이 더욱 완성된 형태로 그려질 것이라 생각한다.

 

 

[임예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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