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건 희망의 맛이 분명합니다, 진짜루. - 김씨 표류기 [영화]

이해준, <김씨 표류기>(2009)
글 입력 2024.06.09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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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결코 혼자 살 수 없다는 이야기.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많이들 들어보셨겠지요? 누군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저는 언제나 혼자 있는 것을 원하면서도 정작 홀로 된 그 순간엔 정적을 이기지 못하고 주변의 관계들을 곱씹어 억지로 소음을 만들어 내곤 합니다. 누군가의 따스한 관심 혹은 시선이, 혹은 그 존재 자체가 상당히 위로 되는 날이 있는가 하면, 또 어느 날은 그 존재들 때문에 괴로움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곤 스스로를 좁은 방에 유폐시켜 버리고 싶은 날들도 있습니다.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다시 사람 때문에 위로받고. 이 지루한 연쇄를 끊어버리고 싶다가도 결국 이런 것들에 다시 매달리게 되는 것은, 아마도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겪고 있는 영원한 종의 딜레마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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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표류기>의 여자 김씨는 3년차 히키코모리입니다. 그녀에게 있어 옷장은 집이고, 방은 세계입니다. 몇 평 남짓한 어두운 방을 세상 삼아 살아가고 있는 그녀에겐 나름의 생활 패턴도 있습니다. 오전 8시 기상, 열량이 정해진 규칙적인 식사, 운동, 자기 계발, 취미생활, 그리고 9시 취침. 우리가 무심코 넘겨짚어 버리고 마는 히키코모리의 생활과는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나요? 타인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거부한다는 점과 인터넷 공간에서의 기행을 제외하고 보면 그녀의 삶도 나쁘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카메라로 텅 빈 길거리를 탐색하다 밤섬에서 생활하고 있는 외계인, 남자 김씨를 발견하게 됩니다. 인터넷 가상 자아들과의 텅 빈 소통이 전부였던 그녀의 눈앞에 활어처럼 생동하는 외계인의 존재란 얼마나 새로웠을까요. 그 후로 그녀는 밤섬에 살고 있는 그 외계인을 관찰하느라 자신이 지켜오던 삶의 규칙들을 모두 깨버리고 맙니다. 호기심에서 출발한 관찰은 결국 소통의 갈망을 불러일으키게 되어, 과거의 언젠가 그녀 자신이 직접 걸어 잠갔던 방문을 스스로 열고 그에게로 달려가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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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강에 사는 외계인, 남자 김씨는 어떤 이유에서 고립된 것일까요. 그는 삶에 비관하여 이를 직접 중단하기로 결심하고 한강 물로 뛰어들지만, 천운인지 불운인지 여전히 숨이 붙은 채로 밤섬에 떠밀리게 됩니다. 외곽으로 떠밀려 마지막에 도착한 그곳은 더 이상 밀려날 공간도 없는 세상의 가장자리입니다. 그는 죽으려고 마음을 먹은 순간 참을 수 없는 배변 신호에 바지를 내리고, 생리적 욕구를 충족한 뒤 보이는 사루비아 열매에 마음을 빼앗겨 예정했던 죽음을 유예하게 됩니다.

 

사실 그는 죽고 싶지 않았던 것이죠. 죽고 싶지 않고, 떠밀려지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떠밀렸고, 그렇게 고립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그들의 삶을 긍정하고 있는 지와는 별개로 말이죠. 여자 김씨의 좁은 방, 그리고 남자 김씨의 밤섬. 삶의 가장 자리끝단이자 그 군중 속 고독의 자리에서, 그들은 결국 서로를 발견하고 서로에게 가닿기를 간절히 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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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미지적인 타인을 향한 호기심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행위들을 촉발합니다. 지난 삶의 과정에서 그들이 마주한 관계의 모습이 어땠는지는 몰라도, 결국 그들은 사람에게 질려 스스로를 유폐한 그 공간에서도 ‘나의 존재를 알아주는’ 타인과의 연결을 갈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갈망은 그다지 순수하지 않습니다. 타인은 미지적이기 때문에 신비롭기 때문이지요. 펜팔을 통해 그저 몇 마디를 나누게 된 묘령의 여인과, 지구에 불시착하여 자급자족하는 외계인 남자. 여기에 정녕 허구가 담기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들의 소통엔 서로의 존재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신비롭고, 그렇기에 위험하지 않습니다. 환상이라는 한 겹의 필터가 끼여진 채로, 그들은 서로를 동경하고 궁금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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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이들의 관계에도 현실은 다가오고야 맙니다. 현실은 이들의 속도감을 전혀 고려해주지 않고, 급작스레 단절의 가능성을 선언합니다. 거센 태풍 때문에 밤섬은 초토화되고, 한강 정화 작업이라는 표어가 적힌 띠를 두른 근무 요원들은 억지로 그를 끌어냅니다. 여자 김씨는 자신의 좁은 방에서 그 모습을 모두 목격하고 있지요. 이젠 그와 영원히 이어질 수 없다는 불안함에 휩싸인 그녀는 결국 언젠가 자신이 잠갔던 방문을 열고 그에게로 달려갑니다.

 

갑작스레 떠밀리듯 세상에 복귀하게 된 남자 김씨, 그는 유예했던 죽음을 실행하기 위해 63빌딩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탑니다. 다 헤진 양복의 안주머니에서 꺼낸 지갑을 카드 단말기에 대자, 삑. 하는 소리와 함께 금액이 찍힙니다. 그 건조한 단말음은 <김씨 표류기>가 의도한 판타지의 시간을 현실로 돌아오게 하지요.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거대한 현실이 그 순간 밀려옵니다.

 

그리고 버스는 출발합니다. 허약한 히키코모리의 육신으로 열심히 달리던 여자 김씨는 결국 그가 탄 버스를 놓칩니다. 현실은 이제껏 희미하고 아름답게 쌓아 올려진 그들의 관계를 무너뜨립니다. 갑자기 들이찬 현실의 박자감에 놀라고 있던 중, 어디선가 민방위훈련 사이렌이 울립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춘 그 기적적인 타이밍. 여자 김씨는 남자 김씨가 탄 버스에 올라타곤 그의 앞에서 미뤄왔던 자기소개를 합니다. 결국 그렇게 둘은 ‘진짜’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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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김씨 표류기>는 판타지입니다. 한강에서 자살 시도를 한 남자가 밤섬에 떨어져 자급자족 생활을 할 확률, 한강뷰 아파트에 사는 히키코모리 여자가 밤섬에 사는 남자를 발견할 확률, 편지가 담긴 와인병이 정확히 밤섬에 가닿을 확률. 과연 얼마나 될까요? 얼마나 미세한 확률들이 만나 이들을 연결한 걸까요? 영화는 아주 희박한 가능성들을 이어 붙여 이들의 만남을 정확하게 직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허구 안에서의 순간적인 현실감을 뼈저리게 느끼게도 하죠. 이들은 결국 ‘진짜’ 만났습니다. 안온하고 완벽한 각자의 상상 속 모습이 아닌, 현실의 누추하고 비루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영화는 이들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끝을 냈지만, 그들이 허구의 모습을 벗고 현실 안에서 진정으로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만났던 지난 삶의 사람들처럼, 서로를 상처 주고 다시 고립시키게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한 번 더 타인에게로 나아가고 싶다는 인간의 용기가 감동적이었달까요.

 

어쩌면 영화는 ‘어렵게 얻어지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자 김씨가 중국집에서 배달된 짜장면을 기어코 거절하며 만들어낸 분말수프 짜장면처럼, 여자 김씨에게도 뜀박질을 통한 숨찬 희망이 어렵게 찾아왔습니다. 그들의 관계가, 그리고 만남이 그리 쉽게 얻어진 것은 아닐 겁니다. 지난 삶의 많은 상처가 있었음에도, 안온하고 안전한 자기 안의 공간을 버리면서까지 타자에게로 나아가고 싶은, 그 ‘어렵게 얻어진’ 그들의 희망을 응원하고 싶어집니다. 

 

그렇기에 <김씨 표류기>는 희망의 맛이 분명합니다. 진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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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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