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깨지고 조각난 사람들이 만나 -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영화]

글 입력 2021.09.2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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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계획을 가진 남자



완벽한 인생 계획을 세운 남자가 있다. 자신의 망상증과 조울증, 불륜을 저지른 아내, 그녀와의 별거. 이 모든 것을 없던 일처럼 뒤로 보내고 완벽하게 달라질 수 있는 계획.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 상담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몸을 만들고 정신을 차리면 아내가 돌아올 거예요. 그게 약보다 낫죠. (...) 이건 병원에서 배운 거고, 내가 믿는 건데요, 뭐든지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면 한 줄기 빛을 찾을 수 있어요."

 

"Niki's waiting for me to get in shape and get my life in order. and she's going to be with me. And that's better than any medication. (...) This is what I believe to be true, this is what I learned at the hospital. You have to do everything you can. You have to work your hardest. And if you do, if you stay positive, then you have a shot at a silver lining.”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의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게 흐르지 않는다.

 


[크기변환]플레이북 포스터.jpg

 

 

이 완벽한 계획의 주인공은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Silver Linings Playbook)>의 패트릭이다.

 

영화의 제목과 위 인용구에 등장한 ‘실버 라이닝(silver linings)’이란, 아래 사진처럼 어두운 구름의 테두리에 둘린 햇빛 띠를 말한다. 비유적으로 아무리 힘든 상황에도 희망과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플레이북(playbook)’이란 스포츠 게임에서 작전을 그린 도면을 뜻한다.

 

그러니 제목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모든 문제를 슈퍼 긍정 파워로 이겨낼 수 있다고 믿으며 매일 조깅을 하는 패트릭의 계획을 말한다. 운동해서 정신을 차리고, 살을 뺀 후에 아내를 찾아가면 (지금은 자신에게 접근 금지 명령까지 요청한) 그녀와 아무 문제 없이 재결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획.

 

이 계획은 뭔가 헐렁해 보이지만 동시에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한다. “무엇이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도 깃든다” 이 둘은 우리 사회에서 신화와도 같은 믿음이니까.



[크기변환]실버라이닝.jpg


 

패트릭은 자신이 옛날과는 달리 많이 좋아졌다고,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밤중에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를 읽다가 줄거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책을 던져버려서 창문을 깨버린다. 두 연인이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았는데 굳이 여자를 죽이는 게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자고 있는 부모님의 침실에 들이닥쳐 고래고래 부르짖는다. “해피엔딩으로 끝내면 어디가 덧난대요?”  패트릭은 계속해서 자신이 욱하는 성격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 욱하지는 않지만, 책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서 창밖으로 던져버릴 수는 있는 거 아닌가.

 

긍정 파워가 먹히지 않자 조금 화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패트릭은 계획을 밀고 나간다. 깨진 유리창 쯤이야 종이 박스를 얹어두고 살면 그만이다.

 

 

 

깨진 유리창에 종이 박스를 얹어둔다고 괜찮을리가



그렇게 완벽한 계획을 따라가던 패트릭은 친구와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친구 부인의 동생인 티파니는 최근 남편의 죽음 이후 회사 내의 모든 사람들과 잠자리를 가져 해고를 당했고, 아픔을 극복하려 하지만 자신의 통제하기 힘든 행동과 동네의 추문 때문에 힘들어 한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패트릭을 만난 후 티파니는 패트릭과 가까워지고 싶어하지만, 패트릭은 그런 티파니를 자신과 완전히 다른 사람인 듯 대한다. 티파니는 이상하고 문제적이며, 자신은 정상인 것처럼. 그런 패트릭의 태도에 화가 난 티파니는 답한다.

 

 
”내 안에 더러운 부분은 언제나 남아있을 거예요. 하지만 난 그것도 좋아요. 내 다른 모든 부분처럼. 당신은요? 당신은 용서할 수 있어요? 할 수 있냐고요?"

"There’s always going to be a part of me that is sloppy and dirty, but I like that, with all the other parts of myself. Can you say the same about yourself, fucker? Can you forgive? Are you any good at that?"
 

 

[크기변환]소리치는팻.jpg

 


티파니의 이 대사는 패트릭의 태도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힌트를 준다. 깨진 유리창을 종이 박스로 가려 둔다고 깨진 게 철썩 달라붙지는 않는다. 깨진 유리창을 고치려면 일단 유리창이 깨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나아지는 것의 시작이다.

 

긍정적인 태도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건 물론 중요하지만, 문제를 없는 척하는 건 긍정적인 게 아니다. 외면하고 다 괜찮다고 믿으며 운동만 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상에서 제일 건강한 몸을 가져도 정신과 마음은 아플 수 있다. 영화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굴던 문제 많은 사람이, 다른 문제 많은 사람과 함께 자신의 문제를 직면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유리창을 갈고 싶지 않다고 방치하던 패트릭이 종이 박스를 치우고 깨진 부분을 바라보는 것부터가 나아짐의 시작이다.

 

 

[크기변환]둘.jpg

 

 

 

불안한 이들이 사랑스러운 이유



패트릭과 티파니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같아서 주변 캐릭터와 영화를 보는 우리들까지 조마조마하게 만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이들이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한다.

 

영화는 둘 뿐 아니라 이들의 가족, 친구, 이웃집 주민 등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이들을 보다 보면 '문제 있는' 패트릭과 티파니를 걱정스럽고 이상하게 쳐다보는 '문제 없는' 이들의 삶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진다. 도박 장애와 강박증이 있는 사람, 관계에 대한 부담을 이기지 못 해 자신을 다치게 하는 사람, 다른 사람을 깎아내려야 자신의 자존감을 채울 수 있는 사람 등. 모두가 자기만의 깨진 유리창을 가지고 있다.

 

영화를 보는 우리가 패트릭과 티파니에게 연민과 애정을 갖는 이유는 아마 우리 각자에게도 깨진 유리창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흔들리고, 불안하고, '문제 있는' 사람인 건 사실 모두가 마찬가지니까. 우리와 같은, 문제 투성이인 이들이 만나 보여주는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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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음 (1).jpg

 

 

[조예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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