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K-포맷 시대의 도래 [드라마/예능]

글 입력 2021.09.1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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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숙한 예능의 콘셉트, 그러나 낯설기만 한 출연자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위의 두 예능 트레일러는 한국 원작의 예능 포맷으로 현지에서 방송 중인 루마니아 <복면 가왕>, 스페인 <너의 목소리가 보여>이다. 현재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 예능들은 놀랍게도 2015년에 한국에서 제작되었다. 세상에 등장한지 오래되었지만 아직 프로그램을 현지화하여 방송을 앞둔 국가가 여럿 존재한다. <복면 가왕>은 2020년 기준으로 가장 많이 해외에서 판매된 100대 방송 포맷 중 23위를 기록했다(K7 Media, Special Report).


한국이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 영향력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한류'라는 말에 점차 익숙해졌다. 한국을 알린 음식, 드라마, 전자제품, 가수, 음악 등 기술이 발전하고 지구 먼 나라의 생활과 소식을 어렵지 않게 접하는 시대에 '예능' 또한 널리 퍼지고 있다. 2020년 67개 방송국에 프로그램을 판매하며, 아시아 중 한국이 가장 많은 프로그램을 판매한 국가가 되었다. 포맷 판매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영국, 미국, 네덜란드에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국 <복면 가왕>은 작년 영국 최대의 민간 방송사 ITV 황금 시간대에 방영했고 큰 화제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올해 가을 무려 시즌 6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 글로벌 유명 리서치 K7 Media(UK)가 올해 4월에 발표한 '세계 100대 포맷 정기 보고서'에서는 2020년 한국의 포맷 수출 성과를 보고서의 첫 소재로 집중해서 다루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정작 원작을 만든 한국에 사는 내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충분히 '콘텐츠 소비자'라고 스스로 칭할 수 있을 만큼 국내외 방송영상 콘텐츠를 즐기고 있지만, 이 기쁘고 자랑스러운 소식을 올해에 들어서야 'BCWW 2021' 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알았다. 'BCWW 2021'은 지난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 동안 개최되었다. '국제방송영상마켓(BCWW)'은 2001년에 시작되어 매년 개최되면서 국내외 우수한 방송영상 콘텐츠를 선보이고, 해외 수출 기회를 제공하는 글로벌 마켓이다.


올해에는 온라인·오프라인으로 동시 개최되었고, 업계 종사자가 아닌 학생 신분으로도 온라인상에서 원하는 콘텐츠들을 찾아보고 다양한 글로벌 트렌드를 배울 수 있었다. 방송영상마켓이 처음인 나에게 익숙한 참가업체의 콘텐츠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현재 시즌 9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는 <너의 목소리가 보여> 트레일러를 보게 되었는데, 콘텐츠 포맷 해외 수출에 대해 무지했던 나에게 다소 충격적인 영상이었다.

 

*

 

영상을 보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익숙함이란 무서운 것이구나. 나는 지난 몇 년간 일부로 본 방송을 챙겨서 본 적은 많지 않더라도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마주치던 예능이었기 때문에, 처음에 느꼈을 포맷의 신선함과 감탄은 잃어버린 채 콘텐츠를 감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예능이 등장한 2015년이면 '음악' '가수'라는 소재 자체는 대중들에게 새롭지 않았을 수 있지만(오디션 프로그램이 이미 크게 성행했기 때문) 세계가 주목한 예능들에는 분명하게 특별한 요소가 있다.


<복면 가왕>은 겉보기에도 '복면'이라는 생소한 도구를 통해 가창자와 패널 사이의 거리를 주는 게 차별점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복면 가왕>의 가장 핵심은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던 사람이면 누구든 그 무대에 있을 수 있다는 상상을 이끈다는 것이다. 역대 출연자 목록을 통해 알 수 있듯 배우, 스포츠 스타, 개그맨 등 노래 실력을 알지 못했던 인물들이 자신의 무대를 만들고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중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도 있고, 뜻밖의 가창력을 확인하기도 한다. 미국판 <복면 가왕>의 패널인 '켄 정'이 한국의 오리지널 <복면 가왕>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너의 목소리가 보여>는 비슷한 제목의 드라마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제작된 예능이다. 프로그램은 큰 인기를 얻었고 시즌이 계속 이어져 오면서 <너의 목소리가 보여>만이 가진 특징이 나타났다. 먼저 일반인들이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이다. 요즘에는 연애 리얼리티 예능이 아닌 경우에는 일반인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을 찾기가 어려운데, 매회 새로운 인물들이 출연하는 게 새로웠다. 그들은 연예인이 아님에도 프로그램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 예능의 가장 특별하고 매력적인 부분은 음치에게도 본인의 무대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보통 음치는 노래하는 상황에서 본인의 자신감이나 타인의 시선과 같은 이유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곳 출연자들은 자신의 음정이 틀리는 것에 당당하며 패널과 방청객의 반응에도 개의치 않는다. 물론 프로그램 마지막에 노래 잘하는 참가자가 가수와 환상적인 듀엣을 만드는 것을 나도 바라지만, 그 과정에서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진실의 무대는 음치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흥미롭다. 전 세계도 이런 한국 예능이 가진 매력을 알아보고 구매하는 것인데 나는 이런 포맷에 그저 익숙해하고 있었다.


 

한국엔 창조적인 에너지가 있고, 온갖 미디어에서 위험을 감수해요. 영화나 드라마, 예능도 상관없이요. 세계적으로 잘 전파되는 특징이죠. 다른 나라들을 봐도 큰 유럽 시장이든지 미국 시장이든지, 서양은 위험을 감수하는 걸 두려워해요. 위험 감수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해고되기 싫어서도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에요. 실패는 비용이 많이 드니까 지금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하길 주저하는 것도 이해하지만, 한국 사람들도 똑같이 어떤 면에서든 두려울 텐데 용기가 있어요.

 

- Rob Wade, 폭스 얼터너티브 엔터테인먼트 총괄 

(출처 : BCWW 컨퍼런스)

 

 

두 번째는 한국 예능의 성장을 트레일러 영상을 통해, K7 Media의 특별 보고서를 통해 두 눈으로 확인했음에도 아직 현 상황이 믿기지 않게 놀랍다는 것이다. 한국이 세계가 인정하는 수준까지 예능 포맷이 발전했다는 것이, 3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현지화 콘텐츠로 제작한다는 것이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내가 재밌게 소비하고 있으면서도 국제적인 인정은 별개의 분야로 생각하고 있었다.


스스로 잘난 부분이라고 생각해도 자랑스럽다는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은 한국에 살면서 내가 무의식적으로 학습된 태도이다. 겸손함의 미덕을 먼저 학습했고 나와 내가 속한 학교, 나라에 대한 자부심은 속으로만 접어두는 일에 익숙했다. 포맷 수출이라는 개념을 몰랐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이 모든 것이 핑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 일하는 해외 전문가들의 한국 예능에 대한 호평을 알고 나서야 한국 예능의 훌륭함을 깨닫게 된 건 나에게 부끄러운 감정을 느끼게 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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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보이는 파이 그래프는 2020년 한 해 동안 포맷 판매량을 나타내는 자료이다. 포맷 판매 및 옵션이 가장 많은 국가 측면에서 상위 3개 자리는 여전히 영국, 미국 및 네덜란드로 채워져 있지만, 판매만 놓고 보면 한국이 미국과 같은 3위(10.1%)인 것을 알 수 있다. 작년과 같은 좋은 성적이 꾸준히 이어져서 한국이 상위 10대 포맷 제작 국가에 영구적으로 머물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한 번 만에 끝날 일회성 이벤트는 아니리라는 것이다. 한국 예능은 점진적으로 세계에 영향력을 펼쳐갔다.


2010년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런닝맨>는 대만, 태국, 중국, 홍콩 등 아시아 9개국에 원작이 수출되기도 했지만, 현재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에 포맷이 수출되어 이미 방영을 했거나 앞둔 상황이다. 2013년에 첫 시즌이 제작된 <꽃보다 할배>의 경우는 아시아인 홍콩, 대만,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터키 등 10개 이상의 국가로 포맷을 수출했다.

 

*

 

세계에 한국 예능이 보여주고 있는 성공 스토리는 K-Drama, K-Pop에 이은 K-Format으로 범위를 넓히며 문화적 위상이 올라가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지금에서라도 산업 내에서 최고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땀을 흘리고 있을 많은 제작진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한국을 더 인상 깊은 나라로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글로벌로 뻗어 나갈 만반의 준비가 된 포맷들을 한국만의 창조적인 에너지와 참신함에 더 주목해서 감상하겠습니다.


또 앞으로는 해외에서 파악하기 전에 내가 먼저 돋보이는 차별점을 발견한다면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세상에 자랑할 것이다. 2020년 기준 가장 많이 해외에서 판매된 100대 방송 포맷 중 상위권을 차지하는 프로그램이 한국이 만든 프로그램보다 큰 차이로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작은 특별한 아이디어가 큰 성공을 가져오는 것으로 프로그램 자체의 아이디어가 참신해야 하지만, 좋은 퀄리티의 콘텐츠만큼 얼마나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알려져 있는지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 <복면 가왕>의 총괄 프로듀서인 Craig Plestis가 태국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태국 <복면 가왕>을 보고 한국 포맷의 존재를 알게 되었듯이, 보석 같은 콘텐츠도 큰 관심을 줄 수 있는 대상에게 알려져야 빛을 볼 수 있다. 나의 관심이 다른 사람에게도 흥미로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내가 보는 프로그램이 이렇게나 재밌다'라는 소식을 전하는 것에 더 힘써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건 예능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정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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