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개방 수장고, 보존·관리 넘어 공유·소통을 향해 [미술/전시]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개방 수장고'
글 입력 2021.08.2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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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술품과 민속품을 만나는 곳은 주로 미술관과 박물관이다. 박물관 상설전에서 주로 같은 시대나 지역으로 묶여 진열된 유물들을 보거나 미술관 기획전에서 특정 주제 아래 모인 예술 작품들을 감상한다. 작품들은 상설전이든 기획전이든 멋있고 화려하게 꾸며진 곳에서 최적의 상태로 우리를 맞이한다.

 

한편, 작품들과 유물들의 입장에서 그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은 전시장이 아니다. 그곳은 바로 이들이 보관되어 있는 수장고다. 전시를 한 번 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이 들기에 새로운 전시를 자주 열기가 쉽지 않고 전시된 작품을 자주 바꾸기도 어렵다. 전시에 내보일 수 있는 작품의 수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이들은 전시 기획자에 의해 선택을 받아야만 관람객들을 만날 수 있다.

 

수장고에서 벗어나 빛을 볼 날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작품들을 생각하면 왠지 짠하다. 그런데 요즘 이들의 슬픔을 달래줄 기회가 속속 마련되고 있다. 바로 오늘 소개할 곳 미술관, 박물관의 ‘개방형 수장고’다. 국내에서는 2018년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하 청주 국립현대미술관), 2019년에 건립된 국립경주박물관, 그리고 지난 7월에 개관한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이하 파주 국립민속박물관)이 개방형 수장고를 가지고 있다.

 

필자는 지난겨울 청주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문했었고 얼마 전 파주 국립민속박물관을 다녀왔다. 미리 고백하자면, 창고나, 창고 같은 미술관을 좋아하는 필자는 ‘미술관의 창고’인 수장고마저도 좋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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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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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 메인 홀

 

 

짙은 회색 프레임에 전통 창호지 문을 닮은 창들이 인상적인 파주 국립민속박물관. 그 외관은 생각했던 것보다 크지 않았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거대한 수장고에 생각이 달라졌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유리 캐비닛에 소장 유물들이 쏟아질 듯 빼곡히 채워져 있어 들어서자마자 압도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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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 1층 개방 수장고

 

 

중앙 세 블록의 메인 수장고는 1층과 2층에서 들어가 볼 수 있다. 블록 안으로 들어가면 높은 유리장이 삼면을 둘러싼다. 진열된 유물들은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을 그대로 받는데, 이들은 자연광에 취약하지 않은 유물임을 잠깐 사이 눈치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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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 2층 개방 수장고 

 

 

산이 보이는 풍경을 배경으로 놓인 항아리와 그 밖의 여러 용구들은 현재와 과거를 잇는다. 우리가 현재 민속품이라 부르는 것들이 당시엔 특별하지 않은 일상 사물이었듯이 지금 우리 주변의 평범한 물건들 또한 미래의 민속품이 될 것이다.

 

고려, 조선시대 물건들과 '호돌이'가 프린트된 유리컵처럼 꽤 최근의 물건들이 한곳에 모여있는 걸 보면서 ‘민속’하면 무조건 먼 과거의 것과 연관 짓는 관념이 자연스레 무너진다. 이 현대적인 유리 캐비닛 안에 놓인 삼국, 고려, 조선시대 민속품들은 '이 과거를 겪고서 지금, 우리가, 여기, 있게 된 것이구나'를 새삼 상기시킨다.

 

박물관 내 가장 보수적이었던 수장고는 소장품의 안전 관리를 위해 그 문을 꼭꼭 닫아두었다. ‘개방형 수장고’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박물관 수장고의 모습을 대중에게 공개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우리보다 먼저 미국과 유럽에서 수장고를 대중에게 공개했는데 영어로는 ‘visible storage’ 혹은 ‘open storage’라 불린다. 이를 처음으로 도입한 기관 중 하나는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Metropolitan Museum of Art)이고, 이후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앤알버트 뮤지엄(Victoria and Albert Museum)이 도자기 컬렉션에 이를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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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앤알버트 뮤지엄(V&A Museum), 출처: OPERA Amsterdam

 

 

청주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는 회화, 조각 등의 미술작품들을 보관하고 있다. 필자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1층 개방 수장고는 준비 중이었고 3층 개방 수장고와 2,3층의 '보이는 수장고'에서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었다.

 

개방 수장고는 관람객들에게 열려 있어 그 안을 돌아다니며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큐레이션이 잘 되어 있어서 완전히 보관·보존을 위한 수장고라기보다는 전시를 고려한 공간처럼 보인다. 보이는 수장고는 들어갈 수 없고 유리창 밖에서만 볼 수 있는데, 더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라 실제 작품이 어떤 식으로 보관되는지 직접 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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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보이는 수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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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개방형 수장고

 

 

청주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술관’이라는 이름에 맞게 전시실을 가지고 있어 주기적으로 기획 전시도 마련한다. 반면에 파주 국립민속박물관은 전시실이 따로 없고 수장고와 도서관, 어린이 체험실이 전부다. 수장고만을 위해 지어졌기 때문에 박물관이 그 자체로 거대한 수장고나 다름없다.

 

또 하나 일반 전시장과 다른 점은 작품의 보관이 주 목적이기 때문에 작품 옆에 따로 라벨이나 캡션이 붙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 파주 국립민속박물관은 터치스크린을 각 방에 비치해둬 궁금한 유물들은 찾아볼 수 있다. 두 곳 모두 '보이는 보존과학실'이 있고 박물관 내 도서관이 잘 되어있는데, 정보 공유, 연구와 체험을 중점으로 기획했다는 것이 잘 드러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개방 수장고를 관람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전시장에서 작품을 관람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장고에 놓인 작품들을 전시장 작품처럼 관람하려면 더욱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가 요구된다. 따로 설명이 없어 맥락을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보통 미술관과 박물관 전시들은 라벨과 캡션에 쓰인 설명 외에 주제를 확실하게 제시하고 흐름을 고려하는 등 작품의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들이 있다. 하지만 수장고는 전시가 주된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바랄 수 없다. 능동적인 감상을 돕기 위해 터치스크린과 도서관이 마련되어 있지만 전시만큼 직관적이고 편하지 않다.

 

그렇지만 접근을 달리하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어 갈 수 있다. 우선 미술품과 민속품을 더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특정 주제를 이해하지 않고서 공간을 거닐 수 있고 관람 순서가 따로 없으니 내가 원하는 순서와 방향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소화하기 어려운 방대한 양의 정보들로부터 자유로우니 오히려 작품에 집중할 수 있고, 특히 작품 정보만큼이나 중요한 작품의 형태, 질감, 색깔 등의 요소들을 신선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수장고의 개방은 미술관, 박물관들이 대중들과 더 자주 소통하고자 한 발짝 나아간 시도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기관’의 중재 하에 이루어지는 사람과 작품의 만남이지만 조금 더 자연스러운 만남이라고 할까? 단지 보존·관리하기 위한 닫힌 공간이 아닌 사람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변한 수장고. 소통을 위한 이 새로운 시도를 반기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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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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