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Ice Breaking2. 다른 방식으로 보기 [도서/문학]

WAYS OF SEEING(다른 방식으로 보기) 리뷰
글 입력 2021.08.0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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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글에 이은 이번 안면 트기 글은 저번 글에서도 언급했듯 예술작품과 광고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인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번에 소개할 예술작품과 광고를 보는 새로운 시각과 인사할 기회를 주는 책은 「WAYS OF SEEING(다른 방식으로 보기)」 으로 John Berger(존 버거)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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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는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로 알려졌다. 그는 미술평론을 시작으로 예술과 인문, 사회 전반에 그의 관심과 활동 영역을 두었고 이에 대한 명쾌한 관점을 제시한 인물이다(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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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읽는데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저번 글에서 소개한 발터 벤야민의 논문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과 달리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쾌하다. 또한, 이를 서술하는 작가의 방식이 난해하지 않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둘째, 책이 차례로 번호가 매겨진 일곱 편의 수필로 구성되어 있다. 재밌는 점은 일곱 편의 수필 중 네 편은 글과 사진이 함께 있지만 세 편은 오직 사진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구성 이유에 대해 “순전히 이미지들로만 구성된 에세이들은 글로 쓴 에세이들만큼 여러 가지 다양한 질문을 제기하기 위한 것이다(p.7).”라고 말한다.

 

이처럼 내용의 평이함과 시각적 자료가 합쳐져 책을 읽는 독자는 어려움 없이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본격적인 책 소개에 앞서 이 글은 책 속의 7가지 수필 중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기존의 관점”과 “광고에 대한 관점”만을 중심으로 다룬다는 점을 알리고자 한다. 이 글이 책에 대한 모든 내용을 포함하지 않고 있으므로 관심이 생겼다면 꼭 한번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저번 글에 이어 이번 글에서도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먼저 답하고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누군가는 “1972년 BBC에서 방영된 텔레비전 연속 강의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WAYS OF SEEING(다른 방식으로 보기)」을 21세기 사람이 왜 읽어야 하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에 대한 답을 작가의 말과 옮긴 이 최민의 말로 대신하겠다.


“이들 에세이는 각각의 주제에서 단지 몇몇 측면-특히 현대적인 역사의식에 의해서 조명받게 된 측면들-만을 다루었을 뿐이다. 우리의 기본 목표는 다름 아닌 질문을 새롭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p.7).”


“이 강연은 이러한 기존의 지배적인 미술사 담론에 대한 전복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급진적 시각으로 인해 방송 당시에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남성적 응시를 중요한 의제로 제시함으로써 시선과 젠더가 연관된 권력의 문제를 처음으로 분명하게 제기한 것이 바로 이 책이기도 하다. 기존의 미술사 논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미술사와 미술비평의 새로운 담론적 차원을 여는 하나의 출발점이 된 이 책은 나온 지 사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의의가 있다(최민-책 평가)”


밑에 제시되는 작품 사진에서 공통점을 찾아보자. 각 사진은 차례로 펠릭스 트루타의 <누워 있는 바쿠스 여신>, 자코포 틴토레토의 <수잔나와 장로들>, 피터 렐리의 <넬 그윈>,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 한스 본 아헨의 <바쿠스, 케레스, 큐피드>,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우리비노의 비너스>,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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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에서 찾은 공통점은 무엇인가? 첫 번째 공통점은 누드의 모습을 한 여성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모두 우리, 즉 관객을 향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 공통점은 모두 여성의 누드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이라면 시선이 관객을 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작품 속의 모든 누드 여성의 몸이 정면을 향하고 있는지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자코포 틴토레토의 <수잔나와 장로들>에서 뒤를 돌아보며 관객을 바라보고 있는 누드 여성과 한스 본 아헨의 <바쿠스, 케레스, 큐피드>에서 남자가 앞에 있는데도 뒤를 돌아 관객을 향하고 있는 여성을 보면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관객을 봐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어 웃기기까지 하다.


이러한 벗은 몸의 여성이 관객을 바라보는 수많은 작품에 대해 존 버거는 이렇게 분석한다.


“결국 문제시되기만 했을 뿐 아직도 말끔하게 청산되거나 극복되었다고 할 수 없는 오래된 관습이나 관행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여자의 존재는 남자의 경우와는 다르다. 남자의 사회적 존재는, 그가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능력으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p.53).”


“이와 반대로 한 여자가 드러내는 사회적 존재는 그녀가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분명하게 보여 준다. 그 여자의 존재는 그녀의 몸짓, 목소리, 의견, 표정, 옷차림새, 그녀가 선택하는 장소나 환경, 기호나 취향 등, 그녀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한데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여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주어진 한정된 공간에서, 남자들의 보호, 관리 아래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했다(p.54).”


“그리하여 결국 그녀는 한 여자로서의 정체성이 이렇게 감시하는 부분과 감시당하는 부분이라는, 서로 분명히 구별되는 두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p.55).”

 

존 버거는 작품 속의 벌거벗은 여성의 시선이 관객을 향하는 이유를 여자와 남자가 다르게 취급되고 다루어졌던 사회적 배경에서 찾는다. 또한, 그는 이를 단순화하며 이렇게 말한다.

 

“남자들은 행동하고 여자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p.56).”

 

앞에서 제시한 작품의 사진을 보면 이러한 그의 분석이 타당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여성이 남성의 시선의 대상으로 여겨졌음을 분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수많은 화가가 여성의 누드를 작품 속에 등장시킨 이유도 분석한다.


“여자가 가장 중요한 주제로 끊임없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유럽 유화의 한 범주가 있다. 바로 누드화다. 유럽 회화의 누드화 속에서 우리는 여자들이 일종의 구경거리고 보여지고 판단되는 몇몇 기준과 관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p.56).”


그는 여성이 누드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 재밌는 분석을 시도하는데 이는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이 이야기에서 놀라운 점은 무엇일까. 두 사람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된 것은, 사과를 먹은 결과 그 이전과는 다르게 서로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벌거벗었다는 것이 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새롭게 생겨난 것이다. 두 번째로 놀라운 것은 여자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비난받고 남자에게 종속되는 벌을 받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자와의 관계에서 남자가 신의 대리인이 된 것이다(p.57).”


끝으로 그는 아뇰로 브론치노의 <시간과 사랑의 알레고리>에 대해 작품 속 여성의 자세는 두 사람의 입맞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여성의 육체 각 부분은 그림을 보는 남자의 눈에 잘 보이도록 배치되어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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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그림은 그것을 보는 남자의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그려진 것이다(p.65).”


그는 여자를 보는 방식, 즉 여자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여자와 남자는 다르지.”라는 전통적인 이유가 아닌 “여성성이 남성성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이상적인’ 관객이 항상 남자로 가정되고 여자의 이미지는 그 남자를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기존의 관객들이 가지고 있던 기존 관념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생각해보라고 말하며 수필을 마무리한다.


“만약 이 말에 의심이 든다며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해 보면 된다. 이 책에서 전통적인 누드화를 아무 작품이나 하나 고른 다음, 그림 속 여자를 남자로 바꾸어 보자. 머릿속에서 생각만 해도 좋고 직접 그려 봐도 좋다. 그리고 그런 전환이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지를 살펴보기 바란다. 이미지 자체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 관념에 대한 폭력 말이다(p.77).”


이처럼 그는 기존의 전통적인 이미지가 내포하던 관념과 특징을 사회적 배경을 토대로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전통적인 이미지에 대해서만 분석한 것이 아니라 현대의 이미지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여기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광고”가 등장한다.


광고의 정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광고 자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우리의 삶에 광고는 깊숙하게 침투해 있다. 예를 들어보면 휴대전화로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도 향수, 신발, 옷부터 시작해서 학원, 교육광고까지 수많은 광고를 확인할 수 있다. 포털 사이트를 들어가지 않고 텔레비전, 라디오에서도 광고는 등장한다.

 

버스 정류장에 붙어 있는 광고, 버스에 붙어 있는 광고, 지하철역에 걸려있는 광고 등 우리는 살면서 셀 수 없이 많은 광고를 접하며 살아간다. 저번 글에서 말한 복제되지 않은 것을 찾는 게 어렵다는 말처럼 현대 사회에서 광고가 없는 것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우리가 광고를 접하는 만큼 광고에 대해 알고 있는지 질문한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광고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누군가가 묻는다면 당신은 “광고는 상품을 홍보하는 역할을 하죠.”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 광고의 역할이 홍보일까? 만약 광고를 통해 당신의 관심사와 결정이 달라지고 있었다면 믿을 수 있는가?

 

존 버거는 일곱 번째 에세이에서 이에 대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고 있다.


“광고는 끊임없이 새로워야 하고 유행의 최첨단을 걸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역시 지금 이 순간에 속해 있다. 그러면서도 광고는 절대로 현재에 관해 얘기하지 않는다. 어쩌다가 과거에 관해 언급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항상 미래를 얘기하고 있다. 이를테면, 광고가 지금 이 순간에 속해 있으면서도 미래에 관해 얘기함으로써 이상한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어도, 우리는 광고에 매우 익숙해져 있는 까닭에 그 점을 쉽사리 깨닫지 못하고 있다(p.150-151).”


그는 광고가 다루고 있는 시점은 늘 미래를 향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그는 이러한 광고의 특징 때문에 사람들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미래에 필요한 것들을 찾게 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 각자에게, 무엇인가를 더 사들임으로써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생활이 변하게 될 것이라고 제안한다. 또한,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비록 돈을 써 버려서 전보다 가난하게 되더라도 우리가 조금 더 사들인 바로 그것들이 다른 면에서 우리를 부유하게 해 줄 것이라고 얘기한다(p.152).”

 

“광고는 겉보기에 전과 딴판으로 변화된 사람의 모습을 보여 주고, 그러한 변화의 결과로 그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우리를 설득한다. 남을 사로잡는 매력(glamour)이란 곧 선망의 대상이 되는 데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광고는 바로 이러한 매력을 제조해내는 과정이다(p.153).”


그는 이러한 현대의 광고를 회화작품과 연관시킨다. 그는 회화작품에서 사용된 기호체계의 차원이 현대 광고의 기호체계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예시로 그는 다양한 예시를 내놓는데 그중에는 현재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예시가 있다.

 

먼저 지중해의 이국적이고 향수 어린 매력, 천연 그대로의 순결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자연(나뭇잎들, 나무들, 물)의 낭만적인 이용, 새로운 삶의 생기를 북돋워 주는 바다가 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향수, 화장품 광고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향수 광고에는 늘 바닷가 배경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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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광고에서 자연을 낭만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정말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단 화장품을 광고할 때 내거는 문구인 “천연”만 봐도 우리는 이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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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삶의 생기를 북돋워 주는 바다는 주로 자동차 광고에서 크게 활용된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차를 타고 달리는 장면은 자동차 광고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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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부와 정력을 상징하는 남자의 신체적 자세는 주로 남성 옷, 향수, 시계 광고에서 활용된다. 누구든 시계를 차고 소파에 다리를 꼬고 거만하게 앉아 있는 남성의 화보를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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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러한 요소를 회화적 요소라고 말하며 광고에서 유화의 시각적인 언어에 의존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광고는 소비사회의 문화다. 광고는 이미지를 통해 바로 이 소비사회가 스스로에 대해 갖는 신념을 선전한다. 이 이미지들이 유화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유화란 무엇보다도 사유재산에 대한 찬양이었다. 그것은 당신이 소유한 것들이 곧 당신이라는 원리에서 나온 미술형식이다(p.161).”


그는 유화와 광고 모두 실제의 사물을 획득했다는 느낌을 보는 사람에게 제공한다는 연관성을 말한다. 그러나 그는 광고의 기능은 유화의 기능과 다르다고 말하며 유화는 자신이 가치 있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보는 사람이 갖게 한다면 광고는 광고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딘가 자신의 현재 생활방식이 만족스럽지 못한 느낌을 갖게 한다고 말한다.

 

끝으로 그는 광고가 자본주의 사회의 생명이라고 말하며 광고에 대한 시사점을 독자에게 던지며 글을 마무리한다.


“광고는 이 문화의 생명이고-광고 없이는 자본주의 사회가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동시에 광고는 이 문화의 꿈이다(p.178).”


이 책은 기존의 예술작품에 대한 폭력적인 관점과 현대사회에서 우리와 뗄 수 없는 광고의 역할, 광고의 구성요소에 대해서 말하며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책은 원래 1972년에 방영된 BBC 텔레비전 연속 강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이 강연은 기존의 지배적인 미술사 담론에 대한 전복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각으로 인해 방송 당시에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이 책은 어려운 단어도 없는데 다루고 있는 내용도 흥미로워서 고개를 끄덕하며 읽다 보면 어느새 다 읽어져 있는, 그런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는데 책을 추천해주신 교수님을 떠올려보게 됐다. 교수님께서 단호하게 "이 책 안 읽고 학년 올라가면 어디 가서 우리 학교 학생이라고 하지 마라."라고 하셔서 읽게 되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에 놀랐다. 첫 번째는 책의 내용이었고 두 번째는 교수님께서는 남성이신데 이 책을 추천하셨다는 점에 놀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수많은 예술작품을 배우며 생각해보지 못했던 “작품 속 인물의 시선”과 “그 시선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러한 방식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또한 흔하게 접하고 넘어가던 광고가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효과를 자아내고 있었다는 점을 알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광고처럼 우리 삶 속에 깊숙하게 침투되어 있어 그저 넘어가고 있는 것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을지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물론 이 책은 현재 사회에서 열렬하게 논의되고 있는 문제와 관련 있기 때문에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책을 옮긴 최민의 말처럼 기존의 미술사와 미술비평의 새로운 담론적 차원을 여는 하나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과 2012년 6월 이 책이 한국 번역본으로 다시 출판되었다는 점, 그리고 책 앞부분에 작가가 작성한 “한국의 독자들에게”에서 “나는 이 책을 사십 년 전에 썼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이 책에 담긴 생각들을 믿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점을 보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읽어보고 예술작품과 광고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마주해보는 기회를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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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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