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섬세한 로맨스, '우리, 둘' [영화]

글 입력 2021.07.30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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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IEW ***

영화 <우리,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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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love]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3.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사랑'을 검색하니 제일 처음 나오는 설명. 납득이 가는 설명이다.

 

하지만 단 세 줄로 정의하기엔 사랑이라는 감정은 너무나도 방대하는 것을 우리는 모두 잘 안다.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겠다는 이도 있지만 사랑은 단지 호르몬의 교란이라며 일시적인 신체 변화에 불과하다는 꽤나 냉소적인 입장도 있다. 누군가는 순간의 끌림이, 누군가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 감정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내가 알던 '사랑'이라는 개념이 점점 흐려지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일까, 오래 전부터 인간은 다양한 예술로 사랑을 표현하려 노력해왔다. 연인의 불타오르는 사랑, 금단의 사랑,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사랑 등 여러 형태의 사랑을 영화나 문학 작품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영화 <우리, 둘>은 그동안 미디어에서 쉽게 만날 수 없었던 노년의 레즈비언 커플 이야기를 담았다. 이들이 보여주는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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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어딘가의 작은 아파트 맨 꼭대기 층, 복도를 사이에 두고 니나와 마도는 맞은편에 나란히 살고 있다. 사이 좋은 이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들은 20년 넘게 비밀 연애를 지속하고 있는 커플이다. 20년은 한 사람이 태어나 성인이 되기까지의 긴 시간이다. 오랜 기간동안 사랑을 이어오고 있는 이들은 서로에게 그 누구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장성한 자식과 손자가 있을만큼 나이가 든 마도와 니나는 이제 남은 여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바로 두 사람의 첫 만남 장소인 로마에서. 온전히 모든 삶을 공유하기 위해 둘은 살고 있는 아파트를 정리하기로 마음 먹는다.

 

니나에게 프랑스에서의 삶을 정리하는 것은 쉬웠다. 가족이 없는 니나는 바로 아파트를 처분하기로 결정하고 집안을 정리한다. 영화가 담아내는 니나의 집은 내일이라도 떠날 수 있는 곳처럼 휑하다. 모든 가구에는 비닐을 씌웠고, 냉장고의 전원마저 차단한 뒤, 마도의 집에서 매일 밥을 먹고, 함께 잠든다.

 

반면, 마도의 정리는 쉽지 않았다. 형식적이고 애정없는 결혼 생활이었지만 마도에게는 소중한 자식들과 손자가 있다. 단출한 니나의 집과는 달리 마도의 집은 가족들과의 추억으로 가득하다. 이런 집에서 자식들에게 니나와의 관계를 고백하는 것, 그리고 그 고백으로 인해 자식들이 받을 상처와 반대는 마도에게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다.

 

마도의 고백이 늦어지면서 니나는 크게 분노한다.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말을 내뱉고 헤어진 그날, 마도는 쓰러져 의식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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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가 쓰러진 순간, 니나는 그저 친절한 이웃이 되어버렸다. 모든 것을 공유하던 사이였지만 마도의 가족들 앞에서 니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감추고 걱정어린 안부만 물어볼 수 밖에 없다. 24시간 내내 간병인과 함께해 바로 옆에 있는 연인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불면의 밤에 시달리던 어느 날, 니나는 간병인 몰래 마도의 집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드나들었던 공간이 이제 CCTV를 신경쓰며 남몰래 들어가야 하는 공간이 되었다. 긴장감 넘치는 음악과 함께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하는 니나의 모습은 연인이라기보단 침입자에 가깝다.

 

기침과 사랑은 숨길 수 없다고 했던가. 한 번의 잠입은 그 다음날, 또 그 다음날로 이어졌다. 니나는 마도의 얼굴을 매일 같이 얼굴을 보기 위해 간병인이 의아할 정도로 과도한 친절을 베푸는 이웃이 되었고, 심지어 그 간병인을 마도에게서 떨어뜨리기 위해 이간질과 기물 파손까지 감행한다.

 

숨길 수 없었던건 마도도 마찬가지였다. 쓰러진 충격으로 말을 할 수 없게 된 마도는 니나에 대한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한다.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휠체어에서 일어나 한밤중에 니나의 집 문을 두드리고, 니나와 마도의 관계를 알게 된 앤(마도의 딸)이 마도를 요양원에 입원시켰을 때, 니나에게 전화를 건 것도 마도였다.

 

마도의 가족들에게 니나가 외치던 "내가 마도의 유일한 사랑이죠."라는 문구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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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에서 탈출한 니나와 마도는 다시 둘의 보금자리, 아파트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도의 집이 아닌 니나의 집이다. 도둑을 맞아 엉망인 니나의 집에서 둘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잠그고, 좋아하는 노래인 Petula Clark의 Chariot을 상상하며 서로를 소중하게 껴안고 춤을 춘다. 이 때 깔리는 노래의 가사는 우리는 떠날 거예요. 날이 밝아오는 저 편으로, 하늘이 첫번째로 반짝이는 곳이죠.

 

로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자금은 모두 사라졌고, 충동적인 행동들로 수습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지만 그 순간, 그 공간에서 오롯이 함께였다. 영화의 제목 그대로 '우리, 둘'만이 남은 순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인데 뭐가 더 필요할까. 어떤 대사도 없었지만 니나와 마도는 눈으로 사랑을 전하며 그 어느 때보다 가장 편안해보였다.

 

황혼의 문턱에 서있는 레즈비언 커플들의 사랑을 그린 <우리, 둘>은 두 인물의 섬세한 감정선과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예상치 못한 전개로 관객들이 의아할 수도 있을 때, 두 배우의 연륜이 서사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놀라울 정도로 깊게 탐구한 작품"이라는 비평처럼 오랜 시간 쌓아진 서로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영화라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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