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를 구원하러 온, 파괴자들에게 - 연극 '낮은 칼바람'

연극 <낮은 칼바람> 리뷰
글 입력 2023.11.3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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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에도, 교과서에도 쓰이지 못한 과거는 어떻게 기억될까. 경험도 불가능한 과거를 어떻게 감각할 수 있을까. 이 시대의 작은 불씨같은 축복이 하나 있다면 땀과 쉼이 뒤섞인 연극의 현장으로 가보는 것이다. 만나보지 못한 이들의 눈동자를, 떨리는 얼굴을,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을 보고 들을 수 있으니.


잊을 수 없는 시대, 잊어서는 안 되는 순간들의 합. 일제강점기의 삶을 21세기 한복판으로 옮긴 연극을 보고 왔다. 1930년 만주 하얼빈 북쪽 대흥안령 아래 외딴 객점을 배경으로 한 연극이다.


제목부터 따갑고, 아프고, 무시무시하다. <낮은 칼바람>. 그냥 바람도 아니고 ‘칼’바람. 칼바람은 ‘몹시 매섭고 독한 바람’이라는 뜻을 지니지만, 동시에 다른 의미로는 아주 혹독한 박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영어로는 cutting wind. 마침 그날도 발바닥이 굳어버릴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피부를 쓸어버리는 날이었다. 극장을 들어서기 전부터 의미심장한 날씨에 마음은 무겁시리 뒤숭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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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바람이 그들의 발목을 자를 것이다



 

[시놉시스]

 

객점 주인 ‘용막’과 건달 ‘종수’ 그리고 ‘수염’은 한족 지주들과 어울려 며칠째 투전과 아편에 빠져 있다. 객점의 일꾼 ‘금석’은 용막의 눈을 피해 글 배우기에 여념이 없지만, 어떤 꿈을 가지기에는 너무나 척박한 환경이다. 비밀임무를 띄고있는 ‘야마모토’ 중위와 ‘마에다’ 하사, 돈으로 팔려 온 어린신부 ‘부근’과 ‘맹포수’들은 늑대들의 하울링과 칼바람을 따라 작은 객점으로 몰려오고, 객점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은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각자의 생존을 위한 투쟁을 시작한다.

 


일제강점기의 만주를 배경으로, 마적과 일본군, 독립군, 협객들이 판치는 무법지대를 그린 <낮은 칼바람>. 연극은 작품을 쓴 신안진 작가의 외조부가 겪은 실제 이야기와 ‘나카무라 신타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해당 사건은 1931년 6월 27일, 관동군 소속 스파이였던 나카무라 신타로 대위가 농업기사로 위장한 것에서 비롯됐다. 일본 군부는 당시 소련의 북만주 출동에 대비해 흥안령 일대에서 작전을 수행하고자 나카무라 신타로 대위를 파견했고, 그에게 현지 조사를 실시하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그는 대흥안령 일대에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봉천군벌에게 억류되어 살해당했는데, 일본은 이후 이를 구실삼아 만주사변을 일으키며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일제 강점기 전기 조선 농민들의 만주 이주는 필연적이었다.1910년대 일제의 토지조사사업과 1920년대 산미증식 계획이 조선 농민을 몰락시켰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토지를 빼앗기고, 터전을 빼앗겼다. 이로 인해 그들은 도시 노동자가 되거나 국외로 멀리 이주하는 선택지밖에는 없었다. 사실상 선택이라기보다 숨 쉴 마지막 틈을 나서 쫓기든 떠난 것이겠지.  


하지만 떠난 그곳에서조차 일말의 희망은 없었다. 더 낮고도 시린 칼바람만이 불어닥쳤다. 조선 농민은 중국과 일본 양국 정부 사이에 끼어 막대한 경제적, 정치적 피해를 입었다. 작품은 가장 낮은 어둠 속에서 생존하고자 발버둥쳤던 이들의 순간들을 펼쳤다. 따라서 연극을 설명하는 핵심 문장도 ‘가장 낮은 바람이 그들의 발목을 자를 것이다’로 구성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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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파동을 일으키면서도 속도감있게 나아가는 이야기는 관람의 무게를 가볍게했다. 실타래처럼 꼬인 관계들의 역동을 파악하고 나면, 점점 더 작품과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그 중 야마모토와 금석, 그리고 맹포수의 관계는 놓칠 수 없는 클라이막스였다. 


비밀임무를 지닌 채 조선인으로 위장해 객점에 나타나는 ‘야마모토’ 중위와 그를 따라다니는 ‘마에다’ 하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침착한 기세를 유지한다. 물론 마에다 하사는 극의 재미를 위해 관객의 웃음을 사는 대사를 하거나 행동을 표하지만, 야마모토 중위는 분명 달랐다. 가장 냉철하면서도 이성적인 모습을 언제나 유지했다. 물론 그 이유는 만주에 사는 농민들을 감쪽같이 속이기 위해서다.


이상하게도 야마모토는 극 초반부터 나의 의심을 샀다. 의심을 사게 만든 것은 연출의 의도라는 확신이 든다. 딱딱한 말투와 마치 기계같은 어투가 너무 돋보였기 때문. 우리말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의심해 볼 ‘요상한 구석’이었다. ‘왜 이사람은 이렇게 어색하게 얘기하고, 어색하게 표정을 짓는걸까. 연기 준비가 제대로 안 되었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말이다. 실은, 정체성을 숨기고 조선 농민들에게 접근한 불투명함을 표현하기 위해 어색함을 더 부각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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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는 객점 일꾼인 ‘금석’에게 과거부터 접근했다. 글을 가르쳐주기 위해서다. 읽고 쓸 줄도 모르는 순박한 청년에게 다가가 ‘선생’ 노릇을 자처한 것. 객점에서 사람 대접도 받지 못한 그에게 야마모토는 영웅이나 마찬가지였다. 야마모토가 그에게 오는 날이면 금석은 행복했다. 하지만 금석은 몰랐다.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준 사람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을. 자신의 터전을 망치러왔다는 것을.


한편 맹포수는 조선의 역사와 농민들의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하는 사람이다. 야마토모가 뻔뻔하게 만주를 조사하러 왔을 때, 맹포수는 그에게 가장 직설적으로 행동의 의도를 물어보는 자였다. 

 

사실 맹포수는 야마토모가 조선인이 아닌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맹포수는 숨을 거두기 전까지, 끝까지 야마토모에게 스스로 진실을 말할 것을 권유하며 일침을 가했다.


극을 보면서 삶에 비유할 수 있는 몇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내게 필요한 것을 선뜻 내주는 사람에게 완전한 신뢰를 보내지 말 것.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존재다. 금석의 세상에서는 오로지 ‘글을 가르쳐주는 사람’, 야마토모가 구원자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구원자는 자신이 사는 고장을 파괴해, 파멸로 이끌 사람이지 않았나. 내게 좋은 것, 내가 필요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눠주는 사람에게, 삶의 가치를 바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석이 야마토모를 절대적으로 추앙한 것은 필연적이라 생각한다. 단 한 명도 그의 세상을 밝혀줄 이가 없었으니, 금석에겐 글을 읽게 도와준 야마토모가 영원의 은인이 될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는 정치&경제적 권력과도 직결되는 관계니 안타까움을 쓰게 삼킬 수 밖에는 없었다. 


다음으로, 역사의 페이지는 수정될 수 없지만 적어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 1세기 전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작품이 있기에 일제강점기를 거쳐간 이들을 떠올릴 수 있다. 아무리 쉽지 않은 세상이라한들 그때처럼 묵을 터전이 없어서 잠 못 이루는 밤은, 감사하게도 사라져가고 있다. 100년 전 수많은 이들이 맞았던 낮은 칼바람을 생각하면, 결코 현재에 주어진 공통의 과제들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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