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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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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SF를 읽는가


 

우리는 왜 SF 작품을 향유하는가? 이에 대해 책 『SF, 포스트휴먼, 유토피아』는 인간은 서로 다른 미래를 열망하면서도 각기 다른 미래상으로부터 불안을 느끼고, 미래를 다루는 SF 작품들을 보며 ‘미리 우리 안에 온 미래’와 ‘이미 우리 안에 온 미래’를 경험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해당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SF 장르의 유형 및 관습의 이해, 한국과 일본의 주요 SF 애니메이션이 꿈꾼 미래의 양상, 당대 사회에 잠재된 문제들을 담은 작품 사례와 그 반영 양식, 그리고 상당수의 작품에 등장하는 트랜스휴먼·포스트휴먼 사회의 모습이 시사하는 바 등을 다루며, SF 애니메이션을 그것이 산출된 시공간적 맥락 속에서 다각적으로 재검토한다.

 

그 가운데 핵심 논점이 바로 책의 제목과 같은 ‘*SF’, ‘*포스트휴먼’, 그리고 ‘*오토피아’다. 저자는 책의 초반부에서 이 용어들에 관해 탐구한 이후, 본격적으로 개별 작품의 스토리텔링 분석을 통해 수많은 양상으로 나타나는 우리의 ‘미래들’에 대해 소개한다. 본 서평에서는 SF 장르가 가진 모순성에 관해 정리한 후 ‘오토피아’로 표현되는 여러 SF 애니메이션 작품의 미래 양상에 관해 언급하고, 오늘날의 문화사회학적 관점에서 그 가치를 탐구해보고자 한다.

 

*SF: 공상과학소설(영화). Science Fiction

*포스트휴먼: 현 인류보다 더 확장된 능력을 갖춘 존재로서, 지식과 기술의 사용 등에서 현대 인류보다 월등히 앞설 것이라고 상상되는 진화 인류. 생체학적인 진화가 아니라 기술을 이용한 진화로 반영구적인 불멸을 이룰 것이라고 여겨진다.

*오토피아: '당위적 요청 사회'의'ought to be(do)'와 'topia' 의 합성어로, 유토피아와 반대로 실현 가능한 사회를 말한다.

 

 

 

우리 안의 오래된 미래


 

오늘날의 사회는 짙은 모순성을 띠고 있다. 짧은 주기로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고정되지 않는 유연성과 확장 가능성은 사회의 전 영역에 널리 퍼져 있다. 때문에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다양한 얼굴이 존재하게 되고, 현대인은 의식적으로든, 혹은 그 반대의 경우일지라도 이 모순성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책 는 바로 SF 장르가 해당 문화사회학적 현상을 잘 보여준다고 이야기한다.

 

SF 장르가 그려내는 인간의 모습에는 현대 사회가 품고 있는 모순성이 극대화되는데, 이는 ‘비인간적인 인간, 인간적인 비인간’이란 말로 정리할 수 있다. 현대 디지털 문명의 기록과 저장 장치들은 인간의 기억력을 보완하는 차원을 넘어 문제 해결과 생활 패턴의 방식을 바꾸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현대인은 평범한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이미 *사이버네틱스적 융합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네틱스: 생물 및 기계를 포함하는 계에서 제어와 통신 문제를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Cybernetics.

 

뿐만 아니라 정보화와 가상현실 기술의 확산은 신체의 탈 물질화, 정신의 정보화, 정보의 탈 신체화와 같은 현상이 현실에서 동시적으로 실현되게 했다. 특히 신체와 정신의 경계는 해체와 재구축을 반복하며 몸의 성립 조건을 바꾸었다. 이로 인해 부분 혹은 전체적으로 인간 몸의 물리적 기반을 보완하거나 모방하고, 혹은 극복한 ‘인간적인 비인간/비인간적인 인간’이라는 모순적 개념이 탄생하였다.


그러나 장르에 등장하는 인간의 양상과는 별개로, SF 장르는 이미 그 자체만으로 모순성을 지닌 장르이다.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간의 처음에 대한 상징적 기억인 신화와 현재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다루는 SF의 스토리텔링은 본질적으로 닮아 있다. 신화는 과거에 대한 회고적 입장에서 현재 존재하는 것과 지금으로선 실현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는 한편, SF는 미래에 대한 예언으로서 현재 존재하는 것과 지금으로선 실현되지 않는 것을 다룬다. 태고와 미래라는 현저히 모순되는 두 시점은 상상력으로 맞물려, 신화의 원형은 SF 속에서 사이보그, 안드로이드와 같은 ‘포스트휴먼 캐릭터’, 창조적 파괴와 파괴적 창조의 권능을 실현하는 ‘포스트 프로메테우스적 캐릭터’, ‘기계화된 우주’라는 새로운 시공간 등으로 변주되어 표현된다.

 

『SF, 포스트휴먼, 유토피아』는 한·일 SF 애니메이션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오토피아의 양상을 분석하며 계속해서 SF가 가진 특별한 모순성에 주목하는데, 어떤 작품 속의 오토피아는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한편, 다른 작품에서는 오토피아를 미래세대의 주체적 탐색 결과로 본다는 점을 지적한다. 책에 등장하는 10개의 애니메이션 작품이 표현하는 오토피아가 모두 같은 방식으로 모순된 오토피아를 그려내는 것은 아니며,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 배경이나 그를 감상하는 향유층에 따라 각 작품의 오토피아의 특징이 겉으로 확연하게 드러나기도, 혹은 그렇지 않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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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소년코난>

 

 

먼저 전후 세대의 자기 성찰과 그로 인한 전복적 오토피아가 존재한다. 1970년대에 창작된 <미래소년 코난>과 <기동전사 건담>은 각자 이상적 공산주의 공동체, 그리고 실존에의 물음과 확장된 공론 영역의 꿈을 주로 다루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단절 혹은 극복으로서 오토피아를 그려내며, 앞선 세대를 장악했던 가치와 신념 및 기성세대의 영향력을 단절시키면서까지 새로운 세대가 독자적인 이상향을 열길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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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

 

 

이후 80년대에 들어 몇 SF 작품에 에코붐 세대를 향한 자유주의적 오토피아가 나타났다.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는 당시 일본의 경제적·문화적 나르시시즘을 드러내며, 평화와 안정적 사회 안전망 회복이라는 꿈을 제시하지만 결국 설득력 있는 오토피아를 표현하지는 못하였다. <아키라>의 경우, ‘데츠오’라는 캐릭터를 활용하여 트랜스휴먼 시대의 포스트 프로메테우스 캐릭터의 비극을 나타냈다. 한편 <2020 우주의 원더키디>는 당시 한국 상황이 빚어낸 테크노포비아에서 비롯된 전통적 환경주의를 지향하며, 첨단 기술 문명 속에서 편리를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비현실적인 오토피아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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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기 에반게리온>

 

 

한편 1990년대에 일본의 상황은 급변하여, 당시의 젊은 층은 버블 경제 붕괴로 초래된 장기 불황 속에서 성장하게 된다. 수많은 사회 문제가 발발했으며 그 여파는 여러 작품에도 나타났다. 이러한 흐름과 더불어 세기말적 상상력은 이 시기의 작품들 안에 강박적 성향을 띤 오토피아를 탄생시켰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는 기성세대가 재편한 현재 및 비밀리에 계획한 미래 모두를 부정하는 미래세대의 전복을 담아냈다. 그리고 <공각기동대>는 이전의 <아키라>에 등장하기도 했던 포스트 프로메테우스 캐릭터를 그렸지만, 포스트휴먼이 능동적으로 자기 존재를 인정받는다는 새로운 오토피아를 보여주었다.

 

비슷한 시기의 우리나라 SF 작품 <녹색전차 해모수>는 과거 세대의 과오를 비판하면서도 과거 세대와의 분리나 단절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작품은 기성세대의 문명 기획에 미래세대가 절대적으로 순종함으로써 도달 가능하다는 서사 진행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카우보이 비밥>의 경우, SF의 장르적 유연성과 확장 가능성을 이색적으로 보여주면서 장르 내 서로 다른 하위 장르의 관습들을 포용하며, 무정치적 지향성을 표출하는 주인공들의 삶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특정한 오토피아를 지향하지 않고 그 지향점 자체를 거부하는 서사 방식에서, 당시 세기말적 불안을 견디며 절망적 현실에 감정적 거리를 두는 일본 젊은이들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비교적 최근인 2010년대에 제작된 <테라포마스>는 기술 의존 사회 속 인류가 공유하는 테크노포비아 성향에 주목하여, ‘기술 객체-인간’의 양상을 부각한다. 작품은 두 부류로 기술 객체-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며, 인간의 자연 지배력과 기술 통제력이 결코 확신의 대상이 아니라 의심이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

 

이렇듯 책 『SF, 포스트휴먼, 유토피아』는 SF 장르가 지닌 모순적 특징이 작품 안에서 표현되는 과정에서 오늘날의 문화사회학적 측면을 반영한다고 이야기한다. SF는 단순한 오락적 재미뿐만 아니라, ‘인간과 기술적 타자 사이의 공존은 가능한가’, ‘태고와 미래의 접촉은 어디서 일어나는가’와 같은 무게감 있는 질문들까지 품고 있다. 즉 많은 편견과는 달리, SF 장르는 인간이 오랜 옛날부터 쌓아온 인문학적 철학의 깊이를 충분하게 담아낼 수 있는 힘을 지녔다.

 

『SF, 포스트휴먼, 유토피아』에서는 이러한 SF의 특성을 받아들여, 책 전반에서 ‘포스트휴먼과 포스트휴먼 사회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인류가 함께 지향해가야 할 오토피아 모델은 무엇인가’ 등과 같은 거대한 담론을 제시한다. 이미 이에 대해 수많은 SF 작품들이 개별적인 답변을 취했으며, 따라서 우리는 역설적인 얼굴을 한 SF 장르를 통해 현재 안에 잠재된 무수한 미래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나름의 답을 찾아나갈 수 있다.

 

정리하자면 책이 다룬 SF, 포스트휴먼, 오토피아의 세 개념과 10개의 한·일 SF 애니메이션의 분석에는 기존에 깊게 고려하지 못했던 SF의 새로운 모습이 보인다. SF는 수많은 미래를 다루지만 그것은 결코 허황에서 오는 과거와의 분리가 아니며, ‘오래된 미래’라는 모순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미 우리 안에 온 미래’이다. 이 SF만의 특별한 모순성은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다각화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분석되고 연구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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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가 가진 새로운 가치


 

『SF, 포스트휴먼, 유토피아』는 종종 간과되던 SF의 새로운 인문학적 가치를 소개한다. 이 과정은 10개의 구체적인 예시의 분석을 따라 이루어지며, SF를 향유하는 사람들에게 깊이 있는 질문들을 던지며 진행된다.

 

본론에서 밝혔듯이, SF 장르의 힘은 독특한 모순성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다양한 측면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복잡성과 다양성, 그리고 수많은 영역들 간의 유연성과 확장 가능성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르가 바로 SF이다. 즉 장르 향유층 스스로가 작품을 감상하며 그들의 미래‘들’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모순되는 질문들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모두 SF라는 장르에 녹아 있다.

 

현재와 유리된 막연한 미래가 아닌, 이미 우리 안에 도착한 무수한 ‘오래된 미래들’은 앞으로도 많은 SF 작품에서 표현될 것이다. 각기 다를 감상들 안에, 독자 혹은 관객들의 문화사회학적인 고민과 생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SF 장르의 큰 매력이다. 만일 언젠가 누군가가 SF 작품을 향유하는 이유에 관해 묻는다면, 그때는 책 『SF, 포스트휴먼, 유토피아』를 함께 언급해도 좋겠다.

 

 

[참고 문헌]

- 안숭범, 『SF, 포스트휴먼, 유토피아』, 문학수첩,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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