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각+조각=彫刻 [미술]

'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
글 입력 2021.06.2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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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유감-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 이불, 1990

 

 

기성화 된 것들에 대한 질문. 기존의 여성의 몸의 형태란 무엇인가. 기존의 여성의 몸의 모습은 무엇인가. 기존의 여성의 역할은 무엇인가. 기존의 조각이란 무엇인가.

 

천, 솜 같은 유연한 재료를 이용한 일명 ‘소프트 조각’이다. 유동적이지 않고 딱딱한 재료를 주로 사용하여 조각을 제작하던 과거와는 달리 작가는 부드러운 재료로 조각을 만들었다. 작품의 주제인 신체는, 보편적 인간의 관점에서 부드럽고 유연하게 느껴진다. 순한 구성 요소들과는 달리, 작품의 비정형 한 덩어리는 결코 부드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총체는 거칠다.

 

자칫 험하게 보이는 조각은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킨다. 뻗어 나온 신체의 부분이 인간을 연상시키나, 이상화된 몸의 형태로 보긴 어렵다. 오직 분절된 신체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자유분방하게 뻗은 손과 발, 날개가 달린 듯 붙여진 상체, 튀어나온 파편들은 다시 붙여진다.

 

작가의 부모님은 군부체계에 반대하며 검열당하는 삶을 살았고, 이런 상황 속 자신을 ‘이방인’으로서 인식하게 된다. 조소를 전공했으나 기존 조소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다. 작가는 작품에서도 한계를 한정 짓지 않는다. 사회의 현실과 남성을 중심으로 전개된 여성의 이상적인 신체를 과감히 드러내 비판한다. 이에 맞서며 기성의 사회를 반대한다.

 

“성차별주의의 근본적 구조를 파헤치고, 가부장제가 지속적으로 재생산될 수 있었던 구조적 수단을 밝혀내고자 했다. (...) ‘예술은 거울이 아니다’라는 짧은 한 문장으로 요약”(마이클 해트, 샬럿 클롱크, <미술사 방법론>, 8장 페미니즘 중)될 수 있다. 예술은 모방하며 똑같이 생산해내지 않는다. 시대의 역사적,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는데, 예술가는 이를 바탕으로 생산방식을 선택하여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통찰한다. 그리고 시대상을 반영하는 예술은 관념으로서 고착된다. 육체적 아름다움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스의 신적으로 완벽한 비율의 몸. ‘오달리스크’의 오리엔탈리즘을 반영한 그림은 해부학적으로 일치하지 않으나, 길고 가는 허리와 곡선이 두드러지는 형태를 위해 의도적으로 왜곡하기도 한다. 철저히 남성의 시선에서 바라본 여성의 몸은 현대에서 날씬하고 아름다운 형태를 원하며 시대상에 반영된다. 이는 고착된 아카데미-즘과 연관된다. 당시 최고의 화가란 역사 속 영웅과 고전의 이야기로 장식할 수 있는 화가이다. 실제 인물이 펼쳐지는 듯 생생함을 담기 위해 누드 크로키가 필수였으며, 이 과정 속 여성은 벗은 몸과 대면할 수 없었다. 여성은 그보다 낮은 가치로 여겨진 꽃과 정물화를 그리며, 주류에서 철저히 배제될 뿐이었다.

 

현대의 여성 작가는 금기시된 여성의 몸의 표현에 도전하고자 했다. 관능적이고 유혹적이던 수동적 형상에서 나아가 직접 주체가 되어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는 기존의 여성의 육체적 아름다움을 반영한 결과물의 답습이었다. 이후 여성 작가는 제한적이고 억제를 잃은 유사한 신체를 작품에서 사용한다. 이는 ‘그로테스크’한 몸의 형태라고 할 수 있는데, “그로테스크한 몸은 몸의 육체적 실존과 유한성을 역설한다. 또한, 용인될 수 있는 외양이나 행위의 범위를 벗어남으로써, 개인적인 차이를 억압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회적 규범을 뒤집어엎고 저항”(진 로버트슨, 크레이그 맥다니엘, <테마 현대미술 노트>, 147p)한다. 작가는 여성 신체의 정의와 관습을 역설한다. 기존의 육체적 아름다움을 보여줄 것인가? 육체적 아름다움이란 어떻게 정의되는가? 어떤 이들이 정의했는가? 이를 부정하듯 현대미술의 ‘여성의 몸’을 직접 향유하며 몸 재구성을 통해 관습을 타파한다.

 

작품에서 팔과 다리, 파편화된 신체는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 형태는 얽혀진 인체의 장기, 여러 갈래로 뻗어진 나무뿌리, 심장과 튀어나온 혈관으로 형상화된다. 조각은 붉은색으로 강렬함을 입는다. 이는 더욱 자극을 불러일으킨다. 더는 관능적이고 에로틱한 여성은 없다.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여성의 육체는 없다. 기존의 조각은 없다. 기존의 체계를 부정한다. 오직 기형화된 붉은 신체 조각만이 있다. 이는 관객들에게 거부감이 들게 하며, 불편함을 가져온다. 아무렴 상관없다. 그것이 작가가 원하는 바다.

 

이불 작가의 작품은 여성의 외부에서 에로틱하지 않은 여성의 몸을 제시한다. 작가가 조물주로서 신체를 ‘분절-덧붙이기’를 반복하며 새로운 신체를 만들어 내고, 새로운 몸은 작가가 입는 행위로 인해 더욱더 생생해진다. 자신의 몸 위에 또 다른 몸을 입혀 도심을 배회한다. 작가는 직접 조각이 되어 배회하는 행위에 이를 시의 한 구절을 인용해 제목을 붙였다. “내 인생의 꽁무니를 붙잡고 뒤에서 신나게 흔들어대는 모든 아버지들아 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최승자,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작가는 납작 엎드리지 않기도 한다. 있는 그대로 살아가지 않으려 한다. 기존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해체한다. 부드러운 조각들은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명의 조각이 된다.

 

 

[임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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