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루브르 박물관에 숨겨진 미지의 시간 속으로 [만화]

'영혼'이 알려주는 예술작품의 진짜 모습
글 입력 2021.05.1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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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작품을 감상할 때 사람들은 작품에 생명력이 깃들어진 듯하다는 표현을 주로 한다. 비단 뛰어난 작품뿐만이 아니라, 모든 작품에는 생명력이 깃들어있다. 예술가의 손길 하나하나가 거칠 때마다 그 예술가가 쌓아 올렸던 역사, 그가 바라보았던 피사체와 그것을 담아낸 예술가의 시선, 그가 있었던 환경, 그 모든 것들이 농축되어 만들어지는 것이 예술 작품이다. 어떻게 그곳에 혼이 깃들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혼을 읽어내고자 '시도'하는 소비자들은 많지 않다. 대학내일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대가 선호하는 전시회의 모습은 전시 공간에서 사진 촬영이 자유로운 곳(85.7%)이라고 한다. 어떤 전시인지 뿐만 아니라 그곳에 촬영이 가능한지도 중요시되는 것이다. 사진을 촬영하고 그것을 자신의 SNS에 올리는 것도 하나의 전시 소비 방법이 되는 이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전시회를 가는 것이 아닌 'SNS에 올리기 위해' 전시회를 가는 주객전도된 상황들도 늘어나고 있다.

 

단순히 한국의 2030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루브르 박물관, 특히 가장 대중들에게 유명한 작품인 모나리자 앞에 가면 타국 각지에서 온 많은 사람이 눈으로 모나리자를 보기도 전에 카메라부터 들고 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다면 자신의 모국에서 액정으로 모나리자를 바라보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을 텐데도 그들은 자신이 실제 모나리자를 봤다는 것을 인증하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등등 그들은 눈보다는 액정으로 모나리자를 먼저 바라본다. 결국 모나리자는 관람객들에게 감상 되지 않고, 카메라 액정에게 관람 되다 하루를 끝내게 된다. 모나리자에 깃들어져 있는 생명력은 당연히 관람객들에게 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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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당에서 출판한 루브르 만화 컬렉션 중 에릭 리베르주의 작품 '미지의 시간 속으로'에서도 이러한 모습들이 자주 나타난다. 루브르 박물관을 바탕으로 하는 이 작품에는 다양한 관람객들이 나온다. 작품을 뒤로하고 작품에는 관심 없다는 듯이 빠르게 걷는 여성, 모나리자 앞에서 자신의 카메라나 핸드폰을 들어 보이는 사람들, 작품을 관람하기 전 자신의 아이를 타박하기 바쁜 어른들, 혹은 수첩을 들고 그 수첩을 참고하며 작품을 예리한 눈빛으로 ‘해석’하려는 듯이 바라보는 남성. 진짜 작품과 교감하고, 이해하고, 영혼을 바라보는 데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러한 사람들 속에서 눈에 띄는 한 남성이 있다. ‘바스티엥’이다. 타악기 학교에 다니는 청각장애인 ‘바스티엥’은 견습을 위해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함께 견습할 지도자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러나 미술관 안에서 음식물을 먹으며 기다리던 중 경비원의 제재를 받게 되었고, 함께 견습할 관련자의 이름을 잊어버려 견습을 위해 왔다는 사실은 거짓 취급을 받게 된다. 결국 견습을 위해 왔다는 말을 믿어주는 이 없이 바스티엥은 미술관에서 불친절한 경비원에 의해 쫓겨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때 미술관 한쪽에서 청각장애를 가진 기묘한 야간 경비원 ‘퓌지아’를 만나게 된다. 이전의 다른 경비원의 불친절에 기분이 상해있었던 바스티엥은 퓌지아의 친절과 공감에 마음을 풀게 되고, 같은 청각장애인으로서 친밀감을 느낀다. 퓌지아와 바스티엥은 ‘순교자’ 등 예술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하며 함께 다니게 되고, 이후 퓌지아는 자신의 후임 경비원 자리를 바스티엥에게 제안한다.

 

처음에는 의심의 눈길을 보냈지만 결국 퓌지아의 후임이 되고자 밤의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한 바스티엥은 그렇게 ‘예술 작품이 살아 움직이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밤마다 예술 작품의 혼을 일깨워주는 일을 하고 있었던 야간경비원 퓌지아와 그의 후임으로 지목된 바스티엥,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예술 작품들. 제목대로 기묘하고 알 수 없는, ‘미지의 시간 속으로’의 이야기가 이 만화책에 담겨있다.

 

이 작품에는 중요시 등장하는 키워드가 몇 가지 있다. 나는 그중 두 개를 중심적으로 이야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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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소외’다. 루브르 박물관에 입장하는 많은 사람이 그 안의 작품들을 감상한다. 그러나 그들 중 그 누구도 ‘야간 경비원’을 위한 일의 후임자로 뽑히지 않았다. 선임자 퓌지아가 오직 후임자로 지목한 것은 바스티엥 뿐이다. 단순히 퓌지아 뿐만이 아니다. 바스티엥을 마주하는 루브르 박물관의 예술작품들 또한 퓌지아의 선택이 탁월했다고 ‘이야기’하며 바스티엥을 기꺼이 자신들의 혼을 깨우고 ‘위로해주는’ 역할에 적합함을 전달한다. 어째서 다른 관람객들은 선택받지 못하고 바스티엥은 선택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앞서 퓌지아는 바스티엥에게 예술 작품들에 관해 설명할 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작품을 아이들에 비유하면 그들은 모두 자신을 창조한 사람을 잃은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지. (…)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 대중, 일반인들은 자기들의 즐거움을 위해 작품을 감상하지.

비판도 하고 무시도 하며 때로는 무참히 학살하기도 하지.

그들은 표면에만 머물러 있어. 오로지 그것만 할 줄 안다네.”

 

 

창조자를 잃고 버려져 있었던 예술작품들은 자신과 ‘동질’의 사람을 원했다.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외면받고,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던 예술작품들이었다. 그들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고 진심으로 알아주는 사람들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바스티엥은 청각장애인으로 언제나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어왔고 어릴 적부터 문제아라는 칭호로 불려왔다. 그가 ‘왜’ 보청기를 끼기 싫어하는지, 말을 배우기 싫어하는지에 대해 설명할 틈도 없이 그저 일상적인 길을 거부하고 문제만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문제아, 그는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을 이해받지 못한 채 성장하게 되었고 내내 외로웠다. 그가 처음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왔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바스티엥이 왜 루브르 박물관의 경비원이 되고 싶어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여자친구와 주변인물들도 그랬다. 바스티엥은 퓌지아 이외에는 사람들로부터 제대로 이해받은 적이 없다.

 

 

“예술작품은 아이와 같은 존재야.

그보다는 오히려 고아라고 할 수 있지. 

자네가 작품 앞에 서서 진심으로 찬미하면,

작품과 너 사이에는 특별한 교류가 형성된다네.

작품은 자네의 거울이 되는 거지.”

 

 

예술작품은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자신의 영혼을 어루만지기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경비원은 박물관이라는 공간에서 그 누구보다 박물관에 대해 잘 알지만, 그 누구에게도 존경받지 못한다. 바스티엥의 선임자들은 ‘경비원’이라는 또 다른 '박물관 속 소외자'가 되어 작품과 교류하는 ‘진짜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바스티엥 또한 마찬가지다. 작품들 앞에서 카메라만을 들이미는 사람들, 그저 무심히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예술작품들에는 오직 바스티엥만이 진짜 예술작품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들에게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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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는 ‘타악기’에 대한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미지의 시간 속으로’에서 묘사하는 예술 작품은 고아와도 같다. 예술 작품 그 자체를 어루만져주는 이 없이 버려진 그들을 가장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같은 소외된 존재들이라고 이야기했으나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들과 같은 예술 작품 또한 그들을 어루만질 수 있는 중요한 존재일 것이다. 타악기는 같은 예술성을 가진 ‘음악’의 재료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기에 퓌지아도, 바스티엥도, 루브르 박물관의 작품들을 위로해주고 그들의 혼을 깨우기 위해 북과 같은 타악기를 울린다.

 

그렇다면 왜 다양한 음악 작품들이나 악기들 속에서도 하필 타악기가 이 만화에서 중점적으로 사용되는 것일까? 무언가 감정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는 예술 작품을 접할 때 흔히 우리는 ‘마음(가슴)을 울린다’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그 ‘울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악기의 진동 느끼는 것과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는 것, 그것을 동시에 이뤄야 해는 것이 타악기인 것이다. 멜로디에 중점을 두는 (타현악기를 포함한) 현악기가 아닌, 박자에서 느껴지는 울림과 진동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타악기가 이 작품의 중심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바스티엥은 청각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음악대학, 그것도 타악기 대학을 다니고 있다. 그리고 청각 장애인 퓌지아가 밤마다 예술 작품들의 혼을 깨우기 위해 사용하는 주술적 악기도 다양한 타악기들이다. 타악기의 울림은 청각 장애인들이 느낄 수 있는 울림이자, 작품들을 깨울 수 있는 울림이자, 그들을 어루만질 수 있는 울림이다. 이 작품 속에서 타악기가 연주될 때에도 그것은 어떠한 멜로디로 표현되는 것이 아닌 인물들과 작품 레이어를 아래로 한 물결의 흐름과 같은 울림으로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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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마지막에서 바스티엥은 박물관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경비원 자리를 박탈당한다. 그리고 한 밤 중 몰래 루브르 박물관에 다시 들어가 영혼들을 깨우고 그 영혼들을 박물관 밖으로 탈출시키며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사람들은 그 때에서야 작품들의 진짜 '영혼'을 마주하고, 그렇게 이 작품은 끝이 나게 된다.

 

앞서 이야기했던 두 개의 키워드 ‘소외’와 ‘타악기’는 결국 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들에게 ‘교류’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그 작품들이 살아있다는 상상력에 ‘울림’이라는 키워드를 함께 하며 그들의 갇힌 영혼과 그 영혼의 내면에 대해 표현하고자 했다. 결국 이러한 점은 모두 예술 작품을 보러 간 우리가 예술 작품을 소외시키고 있었다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우리의 과거 예술 작품을 감상했던 그릇된 자세를 반성할 수 있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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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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