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영화가 만나] 스즈키 세이준 영화의 메아리를 듣다

글 입력 2024.04.03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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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일 부잣집에 태어나 운명의 바람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나를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 삼촌의 손에 이끌려 리스본의 한 사무실에 취직하지 않았더라면, (중략)


나는 오늘날 이 글들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 『불안의 책』, 172쪽



페소아의 글이다. 리스본의 한 사무실에 회계사무원으로 취직한 페소아는 “불가능한 것에 대한 갈망,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그리움, 그렇게 될 수도 있었던 일에 대한 아쉬움, 누군가 내가 아는 다른 사람이 되지 못한 데 대한 비탄”을 느끼면서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지금은 아무도 자신이 끄적이는 글을 읽지 않지만, “먼 훗날 내 글이 읽히리라 상상하는 기쁨”을 누리면서 페소아는 제 글이 널리 알려지고 읽히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것이 페소아가 말한 “불가능한 것에 대한 갈망”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틈틈이 기록해 둔 단상들을 모아 『불안의 책』을 출간하려 시도했던 페소아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35년 47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불안의 책』은 그의 사후 47년이 되어서야 나온 책이다. 

 

나는 제 일에 권태와 싫증을 느끼는 회계사무원의 글을 – 그의 염원대로 후대의 독자가 되어 – 읽으며 자주 고개를 끄덕이곤 했는데 그중 하나가 앞서 소개한 페소아의 문장이었다. 나 역시 페소아의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리스본의 회계사무원에 취직하지 않았더라면, 부잣집에 태어나 운명의 바람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더라면, 그리하여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낙담과 좌절을 느끼지 않았더라면 이 글들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거라고. 뒤늦게 그 진가를 인정받은 페소아를 떠올린 건 다름 아닌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를 보고 난 직후였다. 폭력 미학의 거장, 영화계의 기인(畸人)이라고도 알려진, 일본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왜 세이준을 보며 페소아가 떠올랐는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송경원 영화평론가의 말을 빌려야 할 것 같다. “스즈키 세이준에게 충분한 물량과 여유로운 환경이 제공되었다면 지금처럼 들끓는 에너지가 기이한 형태로 뭉쳐진 영화들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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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지랑이좌>(1981)



스즈키 세이준은 1956년 <승리는 나의 것>으로 데뷔하여 10년간 40편이 넘는 영화를 제작한다. 1년에 평균 4편의 영화를 찍었다는 소리다. 이는 1967년 – 세이준보다 10년 정도 늦게 – 활동을 시작한 스웨덴 감독 로이 앤더슨이 지금까지 제작한 장편 영화가 단 6편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하면(가장 최근 영화는 <끝없음에 관하여>(2019)다)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스즈키는 왜 다작의 대가가 되었는가? 충분한 제작비나 촬영 기간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대한 많은 영화를 뽑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에 따르면 세이준이 니카츠 영화사의 스튜디오 전속 감독으로 활동하던 무렵, 이들 영화사의 프로덕션은 매주 평균 2편의 동시상영용 영화를 배급라인에 납품해야 했다. 연간 500편이 넘는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데뷔 이래 세이준 감독이 주로 천착한 액션/야쿠자 위주의 초기작, 즉 B무비들은 “흔히들 예술의 도살장으로 여기는 이런 식의 공장 시스템”에서 비롯한 것이었다(『박찬욱의 몽타주』, 226쪽).


 

무계획인 상태에서 서둘러 찍어대다 보니 숏이 부족하고, 편집상 연결이 안 되니 점프 컷을 남발하거나 아무렇게나 대충 신을 마무리 짓고 어서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 버리는 수밖에 없다. (중략) 


어색한 연기에도 그냥 오케이 사인을 내고 인물 동선이 흐트러져도 내버려두는 가운데 비로소 특유의 그로테스크함,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괴상한 리듬이 조성된다. 


- 『박찬욱의 몽타주』, 228쪽

 


세이준의 이러한 영화적 공식을 모르고 처음 그의 영화를 접했을 때 받았던 충격과 당혹스러움을 기억한다. 박찬욱 감독은 말한다. 작가의 개성과 제작자의 요구가 충돌하면서 빚어지는 모순을 세이준은 조화시키지 않는다고. 그가 택한 방식은 조화가 아니라 충돌이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세이준의 이러한 영화적 충돌이 <살인의 낙인>에 이르러서는 ‘파괴’로까지 나아간다고 지적하는데 그의 말마따나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관객이라면 누구나 그 괴상한 리듬과 혼란스러운(한편으로 파격적인) 편집에 혀를 내두를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비약적인 컷에,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 전개, 말도 안 되는 상황 설정, 비현실적인 조명과 그 조잡성을 자랑삼는 특수효과들, 어처구니없는 대사와 터무니없이 심각한 포즈들”(233쪽)을 이해할 수 없던 영화사는 결국 그를 해고하고 만다.


경영진과의 계속되는 마찰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칩거한 그가 마침내 영화계에 복귀한 것은 1980년의 일이었다. <살인의 낙인> 이후 13년 만에 작품 활동을 재개한 것이다. 세이준의 성공적인 복귀를 알린 <지고이네르바이젠>(1980)은 이후 <아지랑이좌>(1981), <유메지>(1991)로 이어져 ‘다이쇼 3부작’의 원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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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고이네르바이젠>(1980)

 

 

세 편의 영화 가운데 가장 흥미롭게 다가온 작품은 다이쇼 로망 3부작의 시작을 알린 <지고이네르바이젠>이었다. 1960년대 <관동 무숙> <살인의 낙인> 등 기존의 관습성을 파괴하고 전복(顚覆)의 외피를 띤 영화를 찍어 온 세이준의 작품 세계는 1980년대 이르러 낭만주의와 퇴폐적인 분위기로 변화한다. 그 가운데서도 <지고이네르바이젠>은 세이준 후기 영화의 분수령이 되는 작품으로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우선 ‘지고이네르바이젠’은 무엇인가? 스페인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파블로 데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가 1878년 작곡한 곡을 가리키는 말이다. 영화는 축음기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레코드판을 비추며 시작한다. 축음기에서는 사라사테가 연주한 ‘지고이네르바이젠’이 흘러나오고 화면에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그 위로 겹친다. 관객은 레코드판만을 비추던 오프닝을 지나 영화 중반부에 이르러서야 그 목소리의 정체가 극 중 핵심 인물로 등장하는 두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오치와 나카사고다. 


바닷가 마을에서 휴가 중이던 독일어 교수 아오치는 전 동료이자 어부의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쫓기고 있는 나카사고를 마주친다. 경찰과 마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곤경에 빠져 있던 나카사고를 아오치가 구해주고 두 사람은 함께 여행길에 오른다. 마을을 떠난 아오치와 나카사고는 눈먼 걸인 악단이 지나가는 모습을 본다. 샤미센을 연주하는 젊은 여자와 노래하는 두 남자로 이루어진 기이한 형상의 걸인 악단을 아오치는 앞서 기차에서 마주한 참이다. 걸인 악단의 연주를 들으며 나카사고는 말한다. 어부의 죽은 아내의 다리 사이에서 6마리의 게가 나왔다고. 그들의 등딱지가 붉은 이유는 여자의 (몸 안에 머물면서) 피가 스며들었기 때문이라고. 


한편 두 사람은 동생의 장례를 치르고 온 게이샤 코이네를 만난다. 코이네에 따르면 그의 동생은 독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피를 한 방울도 토해내지 않고 죽었다. 내장 기관이 녹아 고이게 된 피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안으로 고여 벚꽃처럼 붉게 물든 뼈가 되었다고, 코이네는 말한다. 게이샤의 이야기를 듣고 나카사고의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뼈에 대한 욕망이다. <살인의 낙인>에서 킬러 주인공이 밥 짓는 냄새에 유독 성애적(...) 사랑을 보이는 것처럼 나카사고는 인간의 뼈에 강렬한 유혹을 느낀다. 다만 <살인의 낙인>과 <지고이네르바이젠>의 욕망 발현에 다른 점이 있다면 후자의 경우 욕망의 불꽃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번져간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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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고이네르바이젠>(1980)

 


나카사고는 아오치에게 말한다. 내가 죽으면 - 살점 하나 붙어 있지 않은, 그야말로 깨끗한 - 육신의 뼈를 네게 주겠다고, 대신 네가 먼저 죽으면 그 뼈를 내게 달라고. 어딘가 낭만적이고 섬찟하게 들리는 이 대사를 남기고 나카사고는 돌연 운명한다. 그의 제안에 확답을 주지 않던 아오치는 담당 의사를 찾아가 묻는다. 죽은 사람의 뼈와 살을 발라낼 수 있냐고. 그래서 자신이 나카사고의 생뼈를 가질 수 있겠냐고. 아오치 역시 살가죽 아래 감춰져 있는 인간의 뼈를 어느새 욕망하고 궁금해한다. 생전 나카사고는 “썩고 있는 것이 가장 좋다”며 해골/뼈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드러내는데 이 대사는 아오치의 아내 슈코를 통해 다시 한번 반복되기도 한다. 꽃과 과일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슈코가 별안간 아무렇지 않게 반쯤 썩어가는 복숭아를 먹으며 그렇게 말한 것이다. 슈코는 나카사고가 죽기 전만 해도 벚나무에서 휘날리는 꽃들로 인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현기증을 느낀다. 슈코는 또 척수 안의 뼈가 마치 곤약 같다고 말한다. 곤약은 앞서 등장한 - 코이네와 같은 얼굴을 한 나카사고의 아내 - 소노의 불안을 상징하는 장치로 나온다. 


탄생과 죽음, 환상과 현실이 기묘하게 얽힌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권희철 문학평론가의 말이 떠올랐는데 그는 <한낮의 문학>이란 글에서 이주란의 세 단편 소설을 가리켜 “우리는 거기에서 무엇인가가 메아리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표면적으로 죽음이나 죽음을 향한 충동의 메아리라고 읽히기도 한다”라고 썼다(『한 사람을 위한 마음』, 293쪽). <지고이네르바이젠>을 보면서 이 문장을 떠올렸던 건 영화 안에서 무엇인가가 계속 울려 퍼진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을 맴도는 이 겹겹의 메아리를 ‘죽음이나 죽음을 향한 충동의 메아리’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편집상 연결이 안 되니 점프 컷을 남발하거나 아무렇게나 대충 신을 마무리짓고 어서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 버리는” 세이준의 이전 작품과는 확실히 다른 양상을 띤다. 영화의 많은 부분이(심지어는 오프닝서부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는 주로 인물을 통해 욕망이 전가되는 식으로 나타난다.


인간의 피가 스며든 붉은 게와 뼈, 벚꽃처럼 붉은빛을 띠는 뼈와 벚꽃 알레르기가 있는 여자. 아오치와 나카사고의 여정 도처에 등장하는 눈먼 걸인 악단. 샤미센을 연주하는 악단의 젊은 여자와 게이샤 코이네. 코이네와 똑같은 얼굴을 한 소노, 그리고 두 여인의 뼈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나카사고. 여기서 어부의 죽은 아내와 소노는 나카사고에 의해 죽게 된 여자들이다. 또 <지고이네르바이젠>에는 대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거나 미지의 존재에 의해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전해지기도 한다. - 관객과 등장인물 모두 그 목소리의 정체를 알 수 없다. 아오치 부부에게 ‘안 돼!’라고 외치는 축음기(레코드는 물론 틀어져 있지 않았다)의 응답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살가죽처럼 보이는 복숭아 껍질, 나카사고가 죽고 감쪽같이 사라진 사라사테의 녹음본을 슈코가 액자 뒤에서 찾아내는 등 모든 인물이 뼈와 벚꽃, 사라사테 등의 매개체를 통해 긴밀하게 연결된다. 기존의 형식을 전유하고 파괴한다는 점에서 <지고이네르바이젠>은 전작 <살인의 낙인>과 궤를 같이하지만 세이준이 이 영화를 통해 어떠한 울림의 세계를 창조하고 독보적인 미학적 성취를 달성했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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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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