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낯선 예술가들의 자취를 따라서 - 독일 미술가와 걷다 [도서]

다른 시대와 장소의 예술을 향해 걷다
글 입력 2023.11.02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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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미술가와 걷다

 

 
독일인은 구름을 사랑하며, 선명하지 않고 생성하는 중이며 어렴풋하고 촉촉하며 가려진 모든 것을 사랑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중
 
 
어느 한 국가의 이름을 들을 때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그곳의 풍경과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또는 그 나라의 전반적인 역사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 국가가 가장 번창했던 나날을 또는 가장 비참했던 시기를 그릴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한 장면은 그 나라의 사실적인 모습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강한 고정관념이 만든 것이기도 하다.

대다수 사람이 독일이라는 나라를 들었을 때 무엇을 떠올릴까? 매사 정확하고 정직한 자세로 모든 일을 처리하려는 독일인의 성격, 세계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철학자들, 그리고 씁쓸하지만 지울 수 없는 역사의 비극이었던 2차세계대전 정도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일상의 삶에서도 항상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독일인들의 모습은 다른 이들에게 배워야 할 모범의 대상으로 또는 지나친 강박 주의로 비치기도 한다. 니체와 칸트 같은 독일 철학가들의 사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지난 역사의 과오를 반성하고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독일인의 모습, 다소 거칠게 들리는 언어까지, 이런 모습들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바라보는 독일의 특징이다. 하지만 독일 출신의 미술가 또는 그들의 작품에 대해 누군가 물었을 때 익숙한 듯 말하거나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이름이 얼마나 될까?

유럽 다른 나라 출신 예술가들이나 작품에 비하면 비교적 익숙한 주제는 아니다. 정확함과 분명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것처럼 보이는 나라의 예술가들은 어떤 삶의 흔적과 작품을 남겼을까? 이처럼 익숙하지 않은 주제를 한 권의 책으로 접할 기회를 얻었다. <독일 미술가와 걷다>는 미술사가이며 월간미술 독일 통신원으로 활동한 저자가 우리에게 아직은 낯선 독일 미술가들의 자취를 그들의 대표작과 작품을 전시한 미술관과 함께 소개한다. 본 오피니언에서는 이 책에서 다룬 독일 예술가들과 독일 미술사 중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가보지 못한 세계를 꿈꾸던 민족주의 화가, 프리드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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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의 고인돌>

 
 
독일 미술가들을 소개하는 책의 첫 화가로 저자는 낭만주의 시대의 민족주의자 화가로 알려진 프리드리히를 다룬다. 프리드리히가 살던 시기의 독일은 1806년 예나 전투에서 패배해 영토 일부를 프랑스에 잃은 굴욕을 겪었다. 전쟁 중에 형편이 곤궁해지자 프리드리히는 고향으로 향했고 피난길 중에 <눈 속의 고인돌>을 구상한다. 햇살의 따스함보다 찬 기운이 가득한 자연 속, 눈이 쌓인 대지 위에 꿋꿋이 자리한 참나무와 고인돌은 거센 외세의 침략에도 맞서며 해방을 바라는 독일인을 상징한다.

루터교도이며 미술을 종교적 행위로 여긴 프리드리히의 그림에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낡은 것은 떠나보내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고픈 희망이 담겨있다. 새로운 나날이 오기를 바랐던 그의 바람은 <짙은 안개 속의 나그네>에서도 드러난다. 산꼭대기 정상에 올라 구름이 떠다니고 안개가 일렁이는 저 너머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화폭에 펼치며 프리드리히는 “가보지 못한 저 세계”를 향한 그리움과 소망을 함께 담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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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안개 속의 나그네>

 
 
꿈꾸던 “저 너머의 세계”는 프리드리히에게 오지 않았다. 괴로운 말년을 보낸 후 생을 마감한 그의 이름이 다시 등장한 것은 1930년대에 나치가 그를 ‘독일적인 미술가’ 중 한 명으로 손꼽으면서였다.
 
나치는 프리드리히를 '민족 정체성을 드높이는 독일적인 미술가'로 호명하며 이데올로기 선전 도구로서 악용했다. 이로 인해 나치가 몰락한 후 독일에서는 나치 화이트리스트 예술가들을 외면하는 과정에서 프리드리히의 작품이 색안경을 낀 시선을 받기도 했다. 반면에 독일 국외에서는 그의 개인전이 열리며 독일 낭만주의 예술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한 명의 여성 미술가를 위한, 파울라 모더존-베커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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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라 모더존-베커 미술관>

 
 
브레멘이라는 지명을 들으면 많은 사람이 동물음악대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오랜 시간 농장에서 학대받고 버림받은 동물들이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하며 브레맨으로 길을 나선다는 유명한 동화의 무대인 이곳을 더 특별하게 해주는 장소가 동물음악대 조각상이 위치한 곳의 맞은편 거리에 자리한다. 바로 한 명의 여성 미술가에게 헌정한 파울라 모더존-베커 미술관이다.
  
오랫동안 여성의 자유로운 예술 활동이 제약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한 여성 화가를 위한 미술관이라는 공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의의가 있다. 동서를 막론하고 자리했던 가부장주의는 여성이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하는데 제약을 두었을 뿐 아니라 좋은 아내, 어머니로서의 삶을 여성이 갖추어야 할 최우선의 덕목으로 규정했다.
 
이전의 독일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3K가 결정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는 아이, 부엌, 교회를 가리킨다. 즉 아이를 양육하고 부엌살림에 집중하며 교회 생활에도 충실해야 하는 여성이 남성이 주류인 미술계에서 인정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또한 오랫동안 자리한 남성은 창조자이며 여성은 그 창조자의 뮤즈라는 공식도 여성 미술가의 주체적 활동에 장애물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견고한 공식에서 벗어난 여성 예술가들이 미술사에 등장한다. 서양 미술사 최초로 자신의 누드 자화상을 그렸다는 파울라 역시 그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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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결혼기념일의 자화상>

 
 
파울라의 사후, 작업실에서 발견된 위의 그림 속 여성은 시선을 관객에게 향한 채 자신의 부른 배를 감싸고 있다. 얼핏 임신한 여성의 모습인가 싶지만, 저자는 그 생각이 우리가 자연스럽게 매체로부터 주입된 “여성의 배는 납작해야 한다”라는 편견과 강박에서 비롯된 것임을 짚어낸다.

파울라 이전에 여성 화가의 누드 자화상은 알려진 바가 없다. 누군가의 시선으로 타자화된 대상이 아닌 태초의 자신 모습을 그대로 담은 그림 외의 대다수 누드화는 어떤 모습이었던가. 저자는 이 부분에서 서양 미술사가 가식과 위선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언급한다. 파울라의 누드 자화상 이전과 그 이후 수많은 남성 화가들은 여성의 누드화를 그리면서 욕망의 대상이 아닌 정신적인 아름다움을 담았다고 말했으나 간혹 그림 속 벌거벗은 여인이 주체적인 대상으로서 자리할 때 그 그림은 불손한 작품으로 낙인찍혔다. 그래서였을까, 나치는 파울라를 비정상적인 여성상을 제시해 독일 민족의 건강을 훼손했다며 “퇴폐미술가”로 판정했다.

매 순간 주체적인 예술가로 살아가길 바랐던 파울라는 딸을 낳은 후 얼마 되지 않아 서른하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평생 파리를 열망하고 고대 이집트 예술에 심취하며 자신이 꿈꾸는 대로, 자신으로서 살아가고자 했던 그의 인생을 생각해 보면, "아, 아쉬워라."라는 그의 유언처럼 그렇게 생의 마침표를 찍기에는 펼치지 못했던 가능성과 꿈이 너무나도 아쉽다.
 
저자는 파울라를 소개하며 성이 아닌 이름으로 그를 부르는데, 그 이유를 마지막 부분에서 언급한다. <여섯 번째 결혼기념일의 자화상>에서 파울라는 남편의 성을 뺀 결혼 전 이름의 약자를 새겼다. 그리고 절친했던 릴케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이유와 더불어 그가 항상 마음에 담았던 소망과 이루고자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어떻게 서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는 더 이상 모더존이 아니고 파울라 베커도 아니니까요. 저는 저입니다. 그리고 점점 더 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아마도 우리의 모든 싸움의 최종 목표가 될 거예요.”
 
 
 
퇴폐미술전과 카셀 도쿠멘타

 

“미술이 순수해야 한다는 말이야말로 정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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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폐미술전>

 
 
청년 시절 화가를 꿈꿨던 히틀러의 순수한 아리아인을 위한 세상과 우수한 독일인을 위한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열망은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인류를 향한 무자비한 학살에만 그치지 않았다. 히틀러가 지키고자 했던 이들과 가치의 순수함을 퇴색하고 탁하게 하는 가능성이 있는 것들은 사회에서 배제하고 퇴폐적이라 명시하면서 나치는 예술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독일적인 예술과 퇴폐적인 예술은 그렇게 명확한 선이 그어졌다.
 
이를 독일인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나치는 "위대한 독일 미술전"과 "퇴폐미술전"을 나란히 개최했다. 서로 다른 주제의 두 전시회는 독일인에게 건강한 문화와 예술은 무엇인지, 독일 사회를 병들게 하는 문화와 작품은 무엇인지를 선보였다.

저자는 두 전시회를 통해 나치가 예술을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홍보하는 데 어떻게 이용했는지와 그 이후를 서술한다. 나치가 몰락하고, 과거 청산을 위한 탈나치화가 절실했던 시기에 분단국가의 독일은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데 분투했다. 국제현대미술 전시회인 "카셀 도쿠멘타"의 개최도 그 일환이었다. "20세기 미술"을 주제로 한 첫 번째 카셀 도쿠멘타는 나치가 퇴폐 미술가라고 정의했던 독일의 현대 미술가들 중에서도 표현주의자들의 작품을 더욱 조명했다.
 
렘브루크의 <무릎 꿇는 사람>은 "이와 같은 예술과 함께 독일 문화의 퇴폐화가 일어났다"라는 문구 아래 퇴폐미술전에서 전시되었으나 시간이 흐른 후 카셀 도쿠멘타에서는 방문한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주목하는 공간에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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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는 사람>

 
 
그러나 카셀 도쿠멘타는 나치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가들의 오명을 벗겨주는 것에 그 의의를 두지 않았다. 2회차부터 전시회의 구성은 '반공을 위한 리스트'로 변모했으며 전시회에서는 현대 미술품 중에서도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중심에 두었다. '자유로운 창작'을 상징하며 소련이나 동유럽에서 추구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다르게 보이려는데 중점을 두었는데, 그 예시가 액션페인팅의 대가 폴락의 작품을 전시회장의 중심에 둔 것이다.

후에 당시 서독을 점령한 미군정이 독일의 문화 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으며 미 중앙정보국이 문화자유회의라는 선전기관을 만들어 "서유럽의 지식인들을 마르크스주의와 공산주의의 매혹에서 벗어나 미국의 방식을 수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활발한 활동을 한 것이 밝혀졌다. 보편적인 예술 활동으로 포장했던 것들이 실은 자유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문화적 선전 활동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미술과 전시, 예술 작품은 다시금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것이다.

영원할 것 같던 권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 다시 새로운 힘이 등장하고 물러나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렇게 다른 이름의 권력자들은 자신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각자의 이념을 구축하고 예술은 끊임없이 이용당한다. 저자의 말처럼, 나치가 사라졌어도 이분법적 구별 짓기는 역사에서 계속 이어졌다. 사람과 이데올로기만 바뀐 듯한 순환하는 흐름에서 진정으로 예술 그 자체가 존중받은 적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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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의 서문으로 돌아가 본다.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고, 다수가 중시하던 가치의 무게에 짓눌려 자신의 가치를 피우지 못했던 미술가들의 인생과 작품을 알게 된 후 다시 읽는 서문은 다른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저자가 소개한 대부분 미술가들은 나치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퇴폐미술인”이라는 낙인이 찍힌 이들이다.
 
저자는 이들의 이야기를 적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계기로 나치가 저지른 죄악 중 예술을 향한 억압을 언급한다. 자유로운 예술가들의 생각과 표현을 억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치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했고 퇴폐미술전을 개최했다. 민중의 마음에 두려움을 심고 그를 이용해 국가를 지배하고자 했던 방식 중 예술을 악용한 기록과 흔적이다.

저자는 미술은 걸어야 읽히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일상에서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길로 들어서고 잠시나마 그곳을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마음에는 새로운 즐거움이 피어나기도 한다. 저자는 독자에게 예술 작품은 특정 장소에서 감상하는 것이 그 가치가 가장 크게 다가올 수 있기에 걸으며 마주하기를 권한다. 세상에 자리한 예술작품으로 우리의 걸음을 내디딜 때 우리의 세계는 예술가들이 담고자 한 생각을 이어받는다.
 
그렇게 낯설고 익숙하지 않던 것들과 그 가치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에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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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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