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이를 위한 어른 친구 되기 - 뮤지컬 오즈의 의류수거함

글 입력 2024.05.1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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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다운 어른을 만나기 쉽지 않은 세상, 나는 운 좋게도 닮고 싶은 어른을 만났다. 그는 수년째 위기청소년들을 위한 대안교육기관에서 일하는 선생님으로, 언제까지나 아이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어른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어른들이 ‘문제아’라 규정하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온 그의 삶을 생각하다, 문득 그가 말한 어른 친구의 모습이 그려졌다. 어른이 응당 갖춰야 할 이해심과 너그러움으로 아이를 대하지만, 아이에게는 그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아이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어 하고, 그에 대해 궁금해한다.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자기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저 들어주고 공감해 준다.


어른답지 않은 어른들, 아이와 친구가 되기보다 어른이라는 권위를 휘두르는 데 급급한 어른들이 이 사회에 너무 많다. 어떤 조건도 없이 이해받고, 사랑받으며, 어른의 인내심과 너그러움에 기대지 못한 아이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점이 차고 넘치지만, 그럼에도 사회통념 상 어른이라는 책임감 때문일까, 요즘 나는 그런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 뮤지컬 <오즈의 의류수거함>의 10대 주인공인 ‘도로시’와 일명 ‘195’로 불리는 차준호도 그런 아이들이다. 그들은 어른들의 기준에 자신을 끼워맞춰야만 했다. 어른들에게, 또 그들의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그들은 크게 절망했고, 또 스스로를 너무 쉽게 내던졌다.


상처받은 두 청소년은 어느 주택가의 의류수거함을 통해 연결된다. 이곳은 그들이 자신을 평가하거나 다그치지 않는, 친구처럼 그들을 위해주는 여러 어른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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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 입시에 실패한 도로시는 경쟁이 일상인 한국을 벗어나, 돈을 벌어 ‘아이들이 행복한’ 호주로 떠나려 한다. 그가 돈을 벌기 위해 향하는 곳은 의류수거함. 그는 그곳의 옷을 몰래 빼내 구제 샵을 운영하는 ‘마녀’에게 판다. 평소처럼 의류수거함을 돌던 도로시는 195번 의류수거함에서 누군가의 스마트폰과 수첩, 일기장 등을 연달아 발견한다. 자신의 흔적을 지워버리려 하는 사람. 그의 수첩에는 자살을 암시하는 글들이 가득하다. 도로시와 협업하는 마녀와 숙자 씨, 그리고 이들이 자주 찾는 식당의 주인 ‘마마’는 195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 이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195, 차준호는 마음을 열고 도로시의 의류수거함 수거 작업의 일원이 된다.


뮤지컬은 10대 주인공인 도로시와 차준호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누군가를 짓밟아야만 나아갈 수 있는, 한국의 ‘무한 경쟁’ 입시 시스템에서 도로시의 외고 입시 실패는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그를 부끄럽게 여기고, 꾸짖는 부모와 여러 어른들의 목소리도 그를 괴롭게 한다. 도로시는 누군가를 끌어내리지 않아도, 그럴듯한 성취로 자신을 입증하지 않아도 되는 호주에서의 삶을 갈망한다. 그곳은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의 행복을 위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주인공 차준호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욕망에 착취당하며, 무언가를 욕망하고 꿈꿀 수 없는 사람으로 길러졌다. 그는 생각하고 욕망하고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 공부하는 기계, 아버지의 명성을 위한 도구로 존재했다. 하지만 그에게 사랑이 찾아왔고, 그는 처음으로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온전히 자신만의 감정과 욕망을 느낀다. 하지만 그의 희망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이후 그는 자신을 놓아버린다. 약물에 손을 댔고, 은둔하기 시작했으며, 종국에는 자살을 계획하게 된다.


의류수거함을 매개로 만난 어른들, 마녀와 숙자 씨, 그리고 마마는 이 두 청소년들을 위한 가장 완벽한 어른 친구가 되어준다. 이들은 그들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훈계하지 않으며 그들의 이야기에 경청한다. 고민을 함께 나누며,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넨다. 힘든 시간을 버텨 준 그들을 따스하게 안아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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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새로운 삶을 위해 용기를 낸 준호에게 마마는 ‘버텨줘서, 살아남아 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그를 안아준다. 그는 ‘그 무엇도 너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준호를 격려한다. 약물 중독과 은둔생활, 그리고 자살 시도까지. 준호의 행동은 어떤 어른에게는 그저 질책과 비난, 꾸지람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준호의 어른 친구 마마는,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아프고 괴로웠음에도 끝까지 삶을 저버리지 않고 그저 나아가고자 하는 그의 용기와 대담함만이 보인다. 그리고 그런 그가 그저 감사할 뿐이다. 자기 삶의 흔적을 쓰레기통이 아닌 의류수거함에 버린 준호의 마음을 알아봐 준 것도 마마다. 처분되고, 소각되어,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니라, 수거되어 끝내 누군가에게로 향한다. 준호는 의류수거함에 놓인 옷들처럼, 자신의 상처와 괴로움을 꺼내어 알아봐 줄 누군가를 간절히 찾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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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그렇듯, 두 청소년과 어른 친구들의 관계는 호혜적이다.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아이를 돕거나 구원하는 서사가 아니라, 어른들도 아이들을 통해 위로받고, 새롭게 나아갈 힘을 얻는다. 아들의 자살로 괴로워했던 마마에게 준호는 마마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마마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위로한다. 도로시와 함께한 의류수거함 작업은 나름의 상처를 지니고 살았던 이들 간의 소통과 연대이기도 했다. 의류수거함 작업의 일원으로서 사람들과 함께하며 희망을 얻은 숙자 씨는 노숙 생활을 청산하고 자신이 포기했던 일을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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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뮤지컬을 보며 도로시, 준호에게 유독 마음이 쓰인 건 그들이 주요 등장인물이기도 하지만, 그들에게서 어릴 적 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어른들에게 인정받으려 애썼고, 그들의 기준에 맞춰 나를 증명해야 했다. 입시의 실패는 삶의 실패, 나라는 인간의 무쓸모로 이어지리라 생각했다.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도로시와 준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결코 그렇지 않다고. 너는 너의 존재만으로 특별하고 충분하다고. 그리고 그들은 그저 안아주고 싶었다. 아픔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진심으로 감사했다.


틀린 삶이나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어떤 이의 삶을 틀렸다고 재단하는 기준 역시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다른 빛깔과 향기를 지닌 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돌이켜보면 매 순간 흔들리고, 넘어지고, 무너졌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네준 어른이 없었다. 지금도 자기 가치를 의심하는 수많은 아이들에게 꼭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존재만으로 너무 충분하다고, 대단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들이 고민이나 일상을 털어놓아도 괜찮은, 그리고 대화가 통하는 어른 친구가 되고 싶다. 너무 쉽게 자기 삶을 내버리는 아이들이, 너무 많은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까지나 그들에게 어른이자, 친구로서 그들의 삶에 끝없는 격려와 지지를 보내줘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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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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