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슈퍼노바, 초신성 그 너머에 [영화]

우리의 사랑은 마지막에서 가장 빛난다
글 입력 2021.05.1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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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마미아>, <킹스맨> 등으로 익숙한 배우 콜린 퍼스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킹스맨> 등으로 익숙한 배우 스탠리 투치가 감동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스크린에 돌아온다. 5월 12일 개봉하는 <슈퍼노바; Supernova>는 해리 맥퀸 감독이 연출한 영화로, <캐롤>의 제작진이 함께했다. 94분의 러닝 타임을 가진 이 영화는 현실적인 인생과 사랑을 그려냈다.

 


슈퍼노바_메인 포스터.jpg


 

여기, 우리의 별이 머물렀다.

차마 사라지지 못하고 우주를 떠돌 마음의 파편,

그곳에 가장 빛나는 사랑이 있었다.

 

-영화 슈퍼노바 시놉시스 중

 

 

영화의 제목인 슈퍼노바는 초신성을 뜻한다. 초신성이란 어떤 항성이 진화 마지막 단계에서 폭발함으로써 일시적으로 매우 밝게 빛나는 특별한 별을 말하는데, 항성이 생을 마감하는 다양한 모습 중 하나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터스커 (스탠리 투치 분)은 인간은 우주를 떠도는 별들의 파편들이 합쳐진 존재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가장 밝은 빛을 내고 사라지는 별의 마지막 파편들은 영원히 남아 우리가 된다는 말이다.


터스커와 샘 (콜린 퍼스 분)의 여행으로 이루어진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고 고요하다. 영화는 그들의 여행을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담고 있다. 낡은 캠핑카가 덜그럭거리며 도로를 달리는 장면처럼 때로는 조용하고, 어떤 때에는 조금 답답한 분위기가 영화를 채운다. 그리고 시놉시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여행은 그들에게 있어 마지막 여행이 된다.


오랜 시간 동안 서로의 소중한 친구, 사랑하는 연인으로 지내온 그들은 그 시간 동안 서로에게 넓은 하늘 같은 존재였다. 터스커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병에 걸렸지만, 샘은 그런 터스커를 변함없이 사랑한다. 여행 내내,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그들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행은 그 억눌렸던 감정들이 결국 제 존재감을 드러내고야 마는 기폭제가 되었다.


어쩌면 이건 흔한 신파가 될 수도 있었던 이야기였다. 그렇게 관객의 눈물 어린 반응을 유도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그러지 않았다. 영화는 정말이지, 담백했다. 이 슬픈 이야기에 이렇게나 눈물이 안 나도 되나 싶었다. 원래 나는 신파에는 한없이 냉소적인 편이지만, 이 영화는 그런 신파가 아니었다. 진짜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뭔가 사라진 후에야 소중함을 안다는 게 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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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노바>에는 섬세한 감정선이 필요했다. 지금 발을 붙이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잊어버린 터스커. 터스커는 느껴지는 절망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다. 그 속에서 어떤 화학 작용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게 그저 묵묵하게 인내하고 있다. 터스커의 기억은 마모되고 있지만 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여전하기에, 샘에게 선물 같은 파티를 준비해주고 싶어 하는 섬세한 사랑도 표현해야 했다.


샘 역시 복잡한 감정선이 중요했다. 샘은 무너져서는 안 됐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한없이 유약해져 있음을, 지쳐 있음을 관객들이 충분히 알아야 했다. 그러면서도 터스커에게 기댈 수 있는 바위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도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게 샘이었다. 힘에 부쳐 가끔은 눈물 흘려도 언제까지고 터스커의 옆을 지켜주고 싶은 샘은 부러 터스커 앞에서 활기찬 모습으로 일관한다. 여행을 기획하고, 집을 알아보고, 콘서트를 준비하고. 샘의 움직임의 목적은 언제나 터스커였다.


콜린 퍼스와 스탠리 투치는 이 어려운 연기를 해냈다. 그들은 대사를 하지 않아도 손짓 하나로, 눈빛 하나로 마음을 전했다. 그 진심이 생각보다 무거운 것이어서 나는 그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영화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나는 명백한 제3자였지만, 영화를 보는 그 순간만큼은 두 사람과 감정을 공유한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순식간에 끝났다. 두 배우의 명연기로 영화는 비로소 완성됐다. 그들이 표현하는 사랑은 정말로 단단한 것이었다. 서로를 향한 신뢰와 애틋함이 두 사람을 감싸고 있음에도 상실은 그들을 위협한다. 그 고조되는 감정을 두 사람은 그저, 그저 잔잔하게 표현한다.

 

 

 

이 여행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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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몇 번이고 언급했듯이 영화는 잔잔하다. 그들의 여행이 주를 이루기에 캠핑카 안에서의 씬도 많고, 그렇다 할 큰 사건도 없다. 샘의 누나 릴리의 집에서의 파티 정도가 가장 활기 있는 장면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결코 단조롭지는 않다.


이는 분명 미장센의 효과다.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 없이 영화는 아름답다. 샘과 터스커가 마주하는 울창한 숲속도, 드넓게 펼쳐진 호수도, 별들이 수놓은 검은 하늘도 전부 아름답다. 단순히 아름다운 배경을 연속해 놓은 것이 아니라 장면들이 유려하게 영화의 흐름을 이끌기에 영화는 단조롭지 않을 수 있었다.


광활한 영국 북부의 자연은 꼭 터스커와 샘을 닮았다. 차분하고도 평온한, 불어오는 바람을 오롯이 받아내고 있는 두 사람과 닮아 있다. 그래서 그 미장센마저 하나의 감정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자칫하면 고양될 수 있는 감정을 식혀줌으로써, 샘과 터스커의 감정선을 차분하게 따라가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영화는 주로 어두운 색채다. 같은 제작진의 <캐롤>이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화사한 색감으로 주목받는 것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하지만 그 낮은 채도마저도 하나의 훌륭한 연출로 다가왔다. 본디 별은 어두운 곳에서 더 밝게 빛나는 법이다.

 

 

 

차마 사라지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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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뭘까.


삼류 로맨스 소설에서나 나올 것 같은 이 말은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머릿속을 헤집었던 생각이었다. 두 사람이 뭔가 감동적인 사랑을 하고 있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 사랑이 도대체 뭘까. 샘은 사랑하기에 함께 하고 싶어 하고, 터스커는 사랑하기에 떠나고 싶어 한다. 아무리 개인적인 것이라고 해도 사랑에 근간을 둔 생각과 행동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는 걸까.


어쩌면 그렇기에 사랑은 이기적인 것이다. 그 낭만적인 이름 뒤에 온갖 잔인한 것들이 그 정체를 속이고 사람을 잠식한다. 결국은 다 나를 위한 것인데, 그것이 상대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터스커도, 샘도 서로를 위한 결정이라고는 해도 결국은 스스로를 위한 선택을 하고야 마니까. 그럼에도 그들은 사랑을 한다. 그건 자명한 사실이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고도 한참이 지날 동안 좌석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영화를 감상할 때는 그저 잔잔하게 지나간 줄 알았던 감정이 훅 뒤통수를 치고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그저 가슴이 답답했다. 진심이란 그렇게 무겁게 사람을 짓누르고야 만다.


눈앞에 펼쳐졌던 별이 박힌 하늘은 그렇게나 아름다웠는데, 그 우주 속에서도 몇억 개의 별들이 그들의 삶 중에서 가장 밝은 순간에 스러질 것이라는 게 먹먹했다. 그 속에는 두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도 있을 것이고, 당신도 있을 것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두 사람과 같은 사랑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 인생에 그 오랜 세월 동안 서로를 향한 신뢰를 두터이 쌓아 올린 사랑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 역시 언젠가는 내 인생의 슈퍼노바를 맞이하게 될 것이고, 그 파편을 남기게 될 것이다. 그 파편의 끝이 어떤 가치를 향해 있을지는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단순한 퀴어 영화도, 로맨스 영화도 아니다. 그저 인생이 담긴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이 영화의 끝에야 비로소 희미한 줄만 알았던 별이 폭발을 위해 가장 빛나는 빛을 내는 순간에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가슴 저린 인생의 이야기를 느끼고 싶다면, 주저 없이 영화 <슈퍼노바>를 예매하길 바란다. 영화는 마냥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묵직한 감정을 곱씹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영화의 끝자락에서 샘은 홀로 들판에 누워 하늘의 별을 찾는다.

나는 아직도 그때 샘이 지었던 표정을 선명히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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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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