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 마르첼로 바렌기 전 [전시]

"아무리 재미없는 물체라도 그만의 정점은 있다"
글 입력 2021.05.07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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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약 250만 명을 보유한 유투버이자, 하이퍼리얼리즘 아티스트 마르첼로 바렌기가 그의 월드투어 전시 < IT’S LIFE >의 시작을 지난 4월, 한국에서 열었다.

 



하이퍼 리얼리즘 (극사실주의)


: 주관을 극도로 배제하고 사진처럼 극명한 사실주의적 화면 구성을 추구하는 예술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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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에 입장하자, 그림인지 사진인지 헷갈릴 정도로 사진 같은 그림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작품은 더 놀랍다.

 

주전자에 비친 자신의 얼굴과, 그 위에 찍힌 지문까지 전부 그려내는 그의 정교한 표현력은 더 자세히 볼수록 감탄을 자아낸다. 가끔은 그림 옆 유리관에 실제 물건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구겨진 감자칩 봉지 같은 그림들은 종종 그림이 먼저고 제품의 연출이 그 다음이 아니었을까하는 이상한 의문마저 들게 한다.

 

더 놀라운 점은 작가의 작업 과정이 구독자들의 실시간 채팅과 함께 라이브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작업과정에는 거짓도, 리터치도 없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공개한다. 전시관의 비디오 존에는 자수정을 그리는 작가의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다.

 

영상 속 그는 이미 머릿속에서 모든 계산이 완료된 기계처럼 오차 없이 완벽하게 채색을 해나가는 중이었다.


 

 

“내 작업의 목표는 보는 이의 감각기관을 교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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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예전의 나는 극사실주의 그림, 그래서 도대체 이게 그림인지 사진인지 헷갈리는 경지에 이른 그림에 큰 관심이 없었다. 물론 작품이 나를 작가의 대단한 그림 실력에 감탄하게 만들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사진과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라면, 이미 사진이 그 목적을 다하고 있는 게 아닌지, 어차피 그보다 못할 것이 분명함을 전제한 그림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그 의도에 항상 의문을 가졌기 때문이다.

 

단지 기술적으로 뛰어난 ‘모방’ 정도로만 생각했던 극사실주의 작품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동시에 예술의 철학적 면모에 대해 더 고찰하기 시작한 것은 유튜브에서 극사실주의 화가 정중원 씨의 강연을 보고 난 뒤부터였다.

 

그의 강연 내용을 빌려 잠시 설명하자면, ‘하이퍼리얼리즘’에서 말하는 ‘하이퍼리얼리티’란 원본을 흉내 내는 허구다. 가짜들로 이루어진 가상세계, 즉 복제품과 같은 것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원본보다 더 원본 같이 느껴지는 가짜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너무나도 원본 같은 사본은, 우리로 하여금 가상세계와 실제의 구분을 불분명하게 하는 혼란을 야기하며, 종국에는 원본과 사본의 순서를 역전시키기에 이른다. 즉, 더이상 원본에 의해서 복제품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원본이 복제를 카피한다. 실재가 허구를 거꾸로 좇는 모순이다.


이렇듯 극사실주의 작품 안의 혼돈은 우리로 하여금 그림이 사진을 따라하는 것인지, 사진이 그림을 따라하는 것인지 헷갈리게 만들고, 나아가 가상과 실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심지어는 가상이 현실보다 아름답게까지 느껴지는 아이러니를 관람자가 몸소 느끼게 한다.

 

이것이 하이퍼리얼리즘의 목적이다.

 

마르첼로 바렌기 또한, 사진인지 그림인지 헷갈릴 정도로 보는 이들의 감각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이 본 전시 작품의 의도라고 했다. 전시 내내 우리는 그의 의도대로 흰 배경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세밀한 물건의 디테일과 완벽하게 사실적인 그림자를 보며 ‘이건 진짜 사진 같은데?’를 연발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재미없는 물체라도 그만의 정점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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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르첼로 바렌기가 갖는 차별점이 존재한다.

 

그는 가상세계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하이퍼리얼리즘을 이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 훨씬 긍정적인 접근이다.


마르첼로 바렌기는 방대하고 스펙터클한 유투브 시장 안에서, 극도로 일반적인 것들에 주목했다. 그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것에 포커스를 맞춘다. 우리는 그의 시선에 따라 냉장고의 케첩을, 튀겨지고 있는 달걀프라이를, 먹다 만 아이스크림 같은 것들을 커다랗고 자세하게, 그리고 오랫동안 바라본다. 우리의 시선은 그의 그림에 잠시 동안 갇혀있다. 그리고 그림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형태를 재고하게 하며, 그 사물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비로소 발견하도록 한다.


일반적인 것들은 아름답고, 평범한 것들은 저마다 특별하다.

 

마르첼로 바렌기는 일상적인 물건에서 본질적 아름다움을 주목한다. 그리고 그 응시는 더 나아가 방대한 사회적 허구 속에서, 실재로서의 각자의 아름답고 고유한 본질의 발견을 도울 것이라고 예상된다.


“모든 사물은 각자의 이야기와 아름다움이 있다. 아무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일상의 사물을 표현할 때 그 순수함에 매료된다.”

 

 

[신지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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