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능동적 독서, 페달을 밟는 주체로 현존하기 - 출판저널 522호

독서란 능동적인 행위이다
글 입력 2021.05.0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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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와 환경 문제, 자연 파괴가 심각한 현시대에 우리에게서 화두가 되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생태주의’. ‘생태주의 관점은 왜 필요한가’가 특집좌담으로 실려 있는 이 매거진을 곧바로 읽어보고 싶었던 이유였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자연과 함께했고, 그것을 탐구했다. 생태주의(ecology)는 산업 자본주의의 진전으로 인해 지구 자연이 급속도로 오염되고 파괴되는 상황 속에서 인류가 범해 온 잘못과 미래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일어난 일군의 생태 중심적 흐름을 의미한다. 이 사상은 인간은 지구라는 거대한 생태계의 일부를 구성하며, 자연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서로 밀접한 관계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기본 골조로 한다.

 

이전의 관점으로는 ‘환경주의’가 있겠다. 이 또한 인류가 당면한 생태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입장이나, 여기서는 인간이 중심·주체의 자리를 차지하고 이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사물은 주변적·대상적 존재로 머문다.

 

기존의 이성·인간 중심적 사고는 인간의 자연 지배를 정당화시켰다. 생태주의는 인간 또한 생태계의 일부로서 자연과 상호관계를 맺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뿐만이 아니라, 인간·이성 중심의 지배 구도에서 배제되거나 억압되었던 소수자들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이렇듯 생태계가 인간에게 주는 교훈은 얼마든지 적용, 확장이 가능하다. <출판저널 522호>에서는 이를 책 문화에 적용하여 독서 생태계의 담론으로까지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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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 ‘상호의존성’


 

‘책 문화 생태계 토크 23’에서는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와 <책 문화 생태론>이라는 책을 통해 생태주의 관점에서 책 문화 활성화 방안을 연구했다.

 

 

'인간(人間)'의 뜻을 살펴보면 '사람 인(人)'과 '사이 간(間)'이 합쳐져 있어요. 여기서 '간(間)'이라는 글자를 빼면, '인(人)'이라는 한 글자만 남아요. '인(人)'을 살펴보면 사람과 사람이 서로 등을 대고 있는, 이런 人 모습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누군가 한 명이 등을 뗀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렇다면 기대고 있던 사람은 바닥으로 넘어지게 되어요. 서로 등을 대고 있어야만 다치지 않고 서 있을 수 있죠. 누군가 한 명이라도 등을 떼는 순간 서로 다쳐요.

 

즉 모든 생명체는 독립적인 상태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상호의존성에 의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 유영만 교수

 

 

유영만 교수는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을 상호의존성이라고 본다. ‘모든 존재는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라고 말하며 생태계는 관계의 향연이자 축제라고 한다.

 

이 생태주의적 관점을 나를 둘러싼 독서 환경과 독서 생태계에 적용해 보았다. 어릴 적, 나는 연년생 동생과 TV의 원하는 채널을 틀기 위해 그렇게 다퉜었다. 당시 독서 논술 선생님으로 잠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어머니는 그런 우리의 버릇을 고치고자 TV를 아예 없애버리셨다. 그때 어머니는 도서관에서 하는 구연동화 봉사활동과 독서, 미술치료 자격증 취득 모임 등 여러 세미나에 참석하고 계셨기에, 주말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도서관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도서관의 뒷산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놀았지만 이내 그것도 시시해졌고, 그때부터는 어쩔 수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억지로 조성된 환경 속에서 독서를 시작했지만 책 속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무궁무진했다.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퇴근하실 시간에 맞춰 집에 간 적이 많았고, 그 이후에도 독서에 관련된 것이면 시 대표로 수상을 하는 등 지금으로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로는 가지각색의 핑계를 대며 독서를 오래 끊었다. 생각해보면 책 말고도 재밌는 게 많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이때 읽은 책들로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

 

내가 다시 책을 읽고자 다짐했던 것은, 면접 준비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어렸을 적, 번역서로 되어있는 외국 소설을 자주 접해서인지, 당시 내 입에서는 어린 애들이 일상생활에서 대화할 때 좀처럼 쓰지 않는 단어들이 여럿 등장했다. 특히 번역서로 되어있는 것은 문자로 봐도 어색한 표현들이 많은데, 아이들은 빨리 배우고 단어는 쉽게 묻으니까, 내가 생각해도 친구들과 대화하기에는 좀 어색한 표현들이 많았다. 그때는 친구들과 비슷하지 않으면 소외될 것 같았고, 지금보다도 소극적인 성격이었기에, 차라리 말을 안 하는 것을 선택했다. 머릿속에 생각나는 단어들은 친구들이 자주 쓰는 단어가 맞는지 고심하다 매일 말끝을 흐리는 버릇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머리를 긁적이고만 마는 그 순간이 더욱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이것이 습관이 되었다. 아니, 어쩌면 쓰지 않는 어휘들이 그 상태로 몽땅 소멸해버린 것일지도 몰랐다. 대학 입시 면접 준비를 하면서부터 하고자 하는 말을 상대에게 전하지 못하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차곡차곡 쌓아뒀던 나의 문장들은 제때 튀어나오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그 이후로 주어진 관계와 환경 속에서 독서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기 시작했다.

 

혼자서 재시작한 독서, 그러나 항상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마침 친한 친구에게서 독서모임을 함께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고, 외부에서 진행되는 독서모임 등 여러 모임에 참석하며 다시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정윤희 대표는 건강한 독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풀뿌리 독서모임들이 생겨나는 것과 이를 도와주는 정책 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주변인들과 상호작용하며, 변화된 환경 속에서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의존성’이라는 사실이 독서 생태계에서도 역시나 적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독서란 능동적인 행위이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란, 자전거 타기와 같다. 나는 학창시절 6년간 내내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했다. 눈이 올 때도 탔고, 비가 올 때도 우비를 쓰고 타기도 했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비가 오면, ‘집 가서 교복은 바로 빨면 되니까’하는 어이없는 해결방안을 내세우며 와장창 내리는 장맛비에도 비를 맞으며 자전거도로를 통해 집에 갔다. 집에 가면 어머니에게 등짝을 후드려 맞긴 했지만 나는 자전거를 탈 때만 누릴 수 있는, 자발적으로 페달을 돌림으로써 맞이하는 바람이 좋았다.

 

그렇다고 조심성이 있는 편도 아니었다. 길을 지나는 고양이에게 인사하며 한눈을 팔다가 내리막길에서 넘어지기도 했고, 걸어가면 20분이 넘어가는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5분 안에 가겠다며 객기를 부리기도 했다. 학교까지 가는 버스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주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꿋꿋했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내가 자전거를 타는 이유를 내뱉었다.

 

“버스에서는 내가 제자리에서 아무리 뛰어도 버스가 가는 속도에 맞춰야 하잖아! 버스가 빠르다 해도 차가 막히면 어떡해? 그러면 내가 지각하면 버스를 원망하게 될 거 아니야!”

 

이럴 수가. 저 아이의 선택지에는 ‘일찍 출발한다’라는 란이 없었던 걸까? 지금 생각하면 저 단순하고 패기로운 발상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렇지만 이것 하나로 내가 집착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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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내가 주체가 되어 능동적인 활동을 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다. 자전거 타기는 내가 내 발로 페달을 밟고, 한 단계씩 올라가는 일이다. 교통 상황이 복잡해도, 속도가 느려도, 내가 능동적으로 하는 행위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독서 역시 그렇다고 생각했다. 텍스트보다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대, 영상 콘텐츠의 급부상과 넘실대는 뉴 미디어의 물결에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싶은 순간마다, ‘그래도 읽어야지.’하며 책을 집어 드는 이유였다. 책을 읽는 순간에는, 상상력의 주인은 '나'이고, 그 속도 또한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있다. 영상은 영상이 보여주는 것 그대로 시선을 움직여야 하기에 상상할 수 없었고, 속도를 조절할 수 없고 그 흐름에 맡겨야 해서 되감으며 의미를 생각할 시간도 부족했다. 내가 이전처럼 독서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 한구석에는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했다.

 

영상으로 정보를 얻는 것은 버스에 몸을 맡기는 것과 비슷했다. 나는 버스를 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영상은 어찌 보면 더욱 간편하고 트렌디하게 정보를 얻는 수단이다. 심지어 요즘의 검색 시장은 포털이 아니라 유튜브라는 소식도 들었다. 유튜브의 썸네일은 빠르게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알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인해 방문했습니다.’라는 댓글이 인기 영상마다 줄을 지을 만큼, 알고리즘은 나의 취향을 분석하고 추천한다.

 

그러나 이 추천을 받는 행위 역시 수동적인 행위이다. 유튜브는 수익 창출을 위해 이용자들의 시간을 붙잡아 두어야 하고, 그에 따른 치밀한 알고리즘은 우리가 주도권을 잃게 한다.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기존의 생각만을 공고하게 만드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알고리즘에 의해 떠먹여 진다면, 앞으로의 사람들은 비슷한 의견만을 받아들이고 또 다른 관점은 무시하게 될 것이다. 유영만 교수는 우리 사회의 중대한 문제가 공감 능력의 부족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공감 능력을 키우기 위해 가장 강력한 방법은 몸으로 체득하는 독서라고 한다.

 

책은 경험해보지 않은 타자의 아픔을 입체적으로 생각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한다. 정세랑 작가는 ‘읽는 사람은 죽기 전에 천 번을 산다’라는 <왕좌의 게임> 속 구절을 한 방송에서 언급한 바 있다. 책을 산다는 것. 그것은 ‘Buy’가 아니라 ‘Live’이다. 단순히 사는 게 아니라 그의 삶을 살아보는 것이다. 체득하는 독서는 나와 다른 세계에 접속하는 문과 같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영상 콘텐츠들과 이미지 중심의 문화로 변해가고 있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문해력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상 시대가 급격히 오면서 인간의 책 읽는 뇌 회로가 없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이러한 사유의 위기 속에서, 우리의 독서 근육을 단련시키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출판 산업은 사양산업이라는 인식들이 존재하기도 하며, 종이 매체의 몰락이라는 시대적 흐름 위에 존속 여부를 논의해야 했던 장기적인 간행물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 상황에서 <출판저널>은 건강한 독서 생태계를 만드는 것과 그것의 지속 가능성 보장을 위해 독자들에게 담론의 장을 제공한다. 이들의 노력이 무색하지 않게끔 상호작용하며 변화를 꿈꾸는 독자로서, 능동적인 독서 근육의 트레이너로서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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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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