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잠시 동굴로 들어가겠습니다 [사람]

글 입력 2021.04.17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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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감. 그가 찾아오면 나는 동굴로 숨어버린다. 한번 동굴로 들어가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날 공격하는 것 같아서 동굴을 나갈 자신감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찾아온다. 나는 그것을 ‘왔다’라고 표현한다.

 

그는 마치 월례행사처럼 찾아오기 때문에 이제는 그의 방문에 '왜'라는 의미없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저 올 것이 왔다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쪽이 편하다.

 

그를 인정함으로써 모든 아픔이 사라졌으면 좋겠지만 왜 세상은 쉽게 풀리는 것이 없는지. 여전히 동굴 밖에는 폭풍이 불고 나는 폭풍을 피하기 위해 동굴로 들어간다. 그리고 나는 지금 동굴 속에 있다.

 

*

 

내가 우울해질 때 하는 행동들을 나열해보자면 하루 종일 잠자기, 계획 미루기, 모든 것에 예민해지기 등이 있다. 평소에 하는 행동들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평소 하는 행동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가 있다.


‘보통의 나’와 ‘동굴 속 나’를 구별해보자면 보통의 나는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를 뽐내기 위해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는 에너지를 아끼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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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속 나는 일단 자신감이 없어진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그로 인해 무기력해진다. 자연스럽게 계획을 미루게 되고 그럼으로써 모든 것에 대한 흥미를 잃는다. 이는 나를 지키기 위해 몸이 방어기제를 세우는 것인데, 외부에서 얻는 스트레스를 차단시키기 위함인 것 같다.

 

과거에 나는 동굴로 들어가는 날이면 폭풍이 끝나기 전까진 밖에 나오지 않았다. 3일 정도 외부와 모든 연락을 차단하고 손가락만 까딱이면서 보냈다.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것은 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알았다. 동굴로 들어가는 건 나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면서 나를 파멸시키는 행위였다. 힘들었던 일을 되감는 행위의 끝은 또 다른 동굴로 들어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래서 동굴로 들어가되 그 안에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걸 해보기로 했다.

 

 

- 슬픈 영상 보고 울기

- 명상하기

- 마구 뛰기

-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보내기

- 친구와 전화하기

- 글쓰기

 

 

“고작 이런 걸로 우울감이 사라진다고?”라고 말할 수도 있다. 사실 사라지지는 않는다.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쳐도 여전히 그는 옆에 찰싹 붙어 있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조난자들이다. 가만히 있으면 춥고 배고플 뿐이다. 이런거라도 해야 고통을 잊을 수 있다.

 

슬픈 영상을 보고 아이처럼 울고, 밤을 새우고 맞은 아침에 밖을 나가 마구 뛰어보고,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묵혀뒀던 고충을 쏟아낸다. 미안, 친구야. 오늘은 내 개인 상담사가 되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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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끝내고 나면 폭풍우가 멎어 있으리라. 그럼 나는 축축한 동굴에서 나와 따뜻한 햇볕을 맞을 것이다. 그동안의 고민이 무색하듯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몸은 에너지로 가득 차겠지. 나는 아직 동굴 안에 있지만 왜인지 이 글을 끝내면서는 온기가 느껴진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우울에게 말을 걸며,

 

"안녕, 너 또 왔구나. 조금만 머물다 가렴. 나도 얼른 다시 길을 떠나야 해서."

 

 

 

박소희 태그.jpg

 

 

[박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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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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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원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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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이
    • 리원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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